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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eppa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97
김안(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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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안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하대와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 재학의 가방끈을 가지고 있고, 2004년 《현대시》에 시를 발표하여 등단했고, 《현대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인스턴트” 동인으로 활동중이라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기는 한데, 자료의 현재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잡지 《현대시》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현대시학》, 《현대시선》 그리고 《현대시문학》이란 잡지는 있다. 시집을 읽어보면 이번 학기 강사로 뛰는 일이 조금 줄어들 거 같은 먹고 살 궁리를 하는 것 보니까 《현대시》 편집장이 아니라 대학의 강사나 전임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근데 독자가 시만 읽으면 되지 뭔 프라이버시까지.
아닐 걸? 시도 있는 집 자제들이 써야지 먹고 살기 빡빡한데 시인입네 해서 이름이 나 먹고 살만 하려면 겨드랑 간질간질, 간질여주는 시인지 낙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기성품을 풀빵처럼 팍팍 찍어내는 생산업자가 되어야지, 생전 돈 안 되는 모스부호만 타전하고 앉았으면 그거 참 정말 깝깝하거든. 이럴 때 종종 시가 궁상스러워지고, 비키니 옷장엔 형제, 가족 같은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리는 거고 막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다행히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서, 간혹 시인들은 밥 말고 칼로리 보충을 위하여 소주병 깨나 장하게 비워버리는 경향도 보인다. 한 시절 저 창한 젊음의 리비도가 뿜뿜 뿜어져나오던 정의의 시절에는 이 몸이 이래봬도 시 쓰는 인간이다, 어딘지 모르게 폼도 좀 나고 그랬던 거 같은데, 말 그대로 그랬던 거 같은, 아 옛날이여, 그냥 추억일 뿐,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꾸준히 장복했던 돼지고기와 소곱창과 뺄 수 없는 라스트 코스인 볶음밥까지 홀랑 다 긁어먹을 때까지 입에 달고 다닌 소주잔 때문에 빽빽한 내장지방과, 손톱으로 긁으면 손톱 밑에 허옇게 굳은 기름 끼는 지방간을 보유하게 됐을 거란 말이지. 이런 것들이 시에 다 나오거든. 그러니까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특히 시를 쓰려면 좀 있는 집구석 자제들이나 쓰란 거다. 아이고, 제발. 누구처럼? 안 알려줌.
시집 《Mazeppa》.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했다. 나도 몰랐는데, 실제 인물 표기는 Mazepa라고 적고, 바이런, 에밀 베르네, 리스트, 차이콥스키 등 예술가가 예술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p’를 하나 더 보태서 Mazeppa라고 쓴단다. 나, 이거 확인하려고, 난봉꾼에 알코올 중독자 장애인 바이런의 책은 집에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고, 베르네는 인터넷 검색, 리스트와 차이콥스키는 정말로 CD 뒤져봤다는 거 아냐? 시인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지만, 위키피디아에 적힌 내용이 맞다면 김안은 우크라이나의 코사크 대족장, 헤트만Hetman 본인이 아니라 일단의 예술가가 형상화한 작품 속 인물을 읽고, 보고, 듣고 그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빗대서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시집의 표제시 <Mazeppa>를 이해하기 위하여 마제파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좀 알아두는 게 좋다.
바이런, 베르네, 리스트 등이 차용한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 1663년, 마제파가 스물네 살 때, 볼히니아 마을에서 이웃의 아내 팔보브스카와 모텔 대실을 해 한참 즐기고 있다가 그만 팔보브스키 씨한테 장렬하게 현장 급습을 당했다. 머리에 뿔이 돋아 잔뜩 열을 받은 팔보브스키 씨는 이반 마제파를 홀라당 벗겨 말등에 하늘을 보게 똑바로 눕힌 다음 움직이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고 말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려 질주하게 만들었다. 말의 힘이 보통인가 말이지. 뛰면서 말의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마제파의 몸을 묶은 밧줄이 피부를 파고 들어 마제파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는데 아직 죽을 팔자가 아니라서 다행스럽게 말은 집에 도착해 목숨을 건졌다. 이때 하도 피를 많이 흘리고 피부가 터져 부모도 고깃덩이가 누군지 몰랐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젊은 시절 마제파가 포로로 잡아 배반 혐의로 폴란드 왕에게 넘긴 얀 크리조스톰 파섹이 전한 말로 푸시킨을 비롯한 많은 작가가 작품으로 각색했지만, 원수지간에 만든 말 아닐까 의심을 하기도 한단다.
<Mazeppa> Vernet, 1826
차이콥스키가 차용한 늙은 시절의 에피소드: 예순아홉/일흔 살, 노년의 마제파. 아내 한나 폴로베츠가 죽고 벌써 5년째 밤마다 꽉 움켜쥔 채 잠을 자다가 드디어 한 아가씨와 연애를 시작한다. 다만 불행하게도 상대가 우크라이나의 대지주 코추베이의 딸 마리아로 십대 후반의 어린 나이다. 간혹 권력지향의 여성도 있고, 노인을 좋아하는 성적 취향도 있으니 잘못된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마제파가 코추베이의 집을 방문해 잔치를 하는데, 여기서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 어이, 친구 코추베이. 마리아와 나는 사랑하는 사이라네. 장인,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시게. 코추베이가 들으니 도대체 말이 안 되거든. 그래서 반대, 반대, 결사반대. 이렇게 대들다가 급기야 마제파가 허공을 향해 권총 한 발 발사, 꽝. 그리고는 잽싸게 마리아를 호주머니에 넣고 자기 본영으로 날라 버린다. 코추베이가 열 받아 모든 농노와 친구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지만 산채로 잡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본인도 처형을 당한다. 이걸 본 마리아는 홀랑 미쳐버리고, 마제파도 때마침 쳐들어온 스웨덴 러시아 연합군에게 패해 오스만 제국으로 도망했다가 이듬해 일흔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럼 김안의 마제파는? 젊은 시절 홀랑 벗고 말 위에 묶여 피투성이가 된 마제파라는 데 만원 건다. 그러니 시집에 실린 작품들이 어떻겠어? 처참, 참혹 무인지경이다.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 추가될 약의 이름을 생각한다.
약의 개수만큼 손가락을 접는다.
남겨진 손가락을 귀에 넣고 전진시킨다.
전진,
희망과 삶의 전진.
(중략)
선생님, 무엇 하나 지탱할 수 없는 검고 가느다란 언어의 팔을 휘두르는 게 한때 제 직업이었습니다만……
듣는다,
변명을 시작하기 위한 음소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약물의 이름을. (<Mazeppa> 부분. P.10~11)
두 번째 줄에 등장하는 “약의 이름”은 <피붙이>라는 시에서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가스피란, 뉴옥시탐, 그리고 도네페질. 가스피란은 속쓰림, 구역, 구토 방지제. 뉴옥시탄은 혈관성 인지장애 증상 개선. 도네페질은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이걸 먹는 사람이 누구?
그는 지옥이었고 사랑이었고 희생이었으나
그는 무능력이었고 아집이었고 알코올이었으나
나는 그와 비슷한
피부 색깔과 좁은 어깨와 걸음걸이를
가진 탓에
그는 두려움이고 사방 창 없는 벽이고 천장이고
가계의 첫머리였기에
그의 신화가 죽은 화분 위에 버리는 물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피붙이> 부분. P. 26~27)
워뗘? 암울하지? 여기까지 독자는 본다. 시인이 닮은 올림 피붙이와 “무엇 하나 지탱할 수 없는 검고 가느다란 언어의 팔을 휘두르는” 시 쓰는 직업인의 지금을. 이러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다 지옥이다. 좋아, 시인이 한때 자기 직업이었다니까 지금은 자신이 휘두르는 언어의 팔이 검고 가느다랗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이제 시인은 말한다.
우연히 흔들리던 바다의 수상한 노래
그러나 내가 젊을 적 좋아했던 것은
노래나 시조차 될 수 없었던 마음들, 혹은
되레 그런 절대가 있다고 믿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향한,
되레 더 절대적이었던 일갈,
결국에는 비어 있는 미로
그 속에서 홍매 빛깔 같던 돼지 속살이 타오르는 리듬에
부딪는 술잔
같은 것뿐이었으나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뒤룩뒤룩 늙었지
이리도
늙고 뚱뚱해져서야
말의 해방, 말의 깊이 따위를 향하여 손 내밀다니 (<시인의 말> 부분. P.12~13)
시인은 살아봤더니 이제는 올림 피붙이가 늘 보여주던 무능력, 아집, 알코올의 상당부분을 그저 따라한다. 다행히 그동안 조국은 조국조국 능률능률 GDP 상승상승해서 올림 피붙이 젊었을 적엔 상상도 하지 못할 푸짐한 돼지고기 구워 술잔을 비우느라 옆구리 살이 뒤룩뒤룩해지고, 즉 그냥 평범한 중년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기껏 고생하고, 노력하고, 변명과 술수를 써서 평범한 사람이 됐다고 자기 입으로 해놓고도, 지랄이다. 평범하면 됐지, 그렇게 아팠다며. 그러나 독자여, 우리가 참자. 현상에 만족해 함포고복하면 그건 시인도 아니니까.
아무리 세상이 지옥이고 지옥의 유황불에서 명줄이나마 건사하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알코올을 쏟아 붓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죽지 못하면 살아야 하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시인이 돈을 벌려면 시를 써서 좋은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게 시만 잘 쓰면 되……나? 간혹 이런 짓도 해야 하나보다.
번번이 나는 속절없이 진지하기만 하고 쓰잘데없는 앎의 허영을 좇으니, 그것은 어쩌면 어리석어야만 들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울며 받아 적을 수 있다는데, 내 손은 마음 없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기나 뒤집다가 마흔이 넘었구나. 허옇고 쭈글쭈글한, 고깃덩이처럼 마음 없는 손이 되었구나. 고기 굽는 전문가인 양 붉은 입속에 고깃덩이 한 점 집어넣고 궁글리다 보니 그 역시 그들이 토해놓은 말의 겹이라서. (<말과 고기> 부분. P.17)
시를 읽고 판단해서 시집을 내게 해주고, 좋은 단어를 골라 주례사 비평을 해주는 전문가들 모셔놓고 시인은 홍매처럼 붉은 고기를 굽는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시인은 이런 일 하면 안 돼? 자존심에 스크래치 가나? 어차피 세상은 지옥이고 쉬운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마흔 살의 평범하게 늙은 시인이라니. 아, 욕하는 거 아니야. 짠해서 그랴, 짠해서. 근데 김안의 경우 원래 싹수가 좀 그랬나 보다.
학부시절은 아닌 거 같고, 대학원 다닐 때 같은데:
강의 준비를 마친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발이 없다. 믿음은 언제 끝날까. 늙은 선생이, 노래방에서 여학생을 껴안고 춤을 추며 몸을 쓰다듬는 장면을 본 날도 그랬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었고, 난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낮고 얕은 도덕들. 덜구럭거리다가, 걷다가, 전진하다가 귀를 뜯어버렸었다. 통증은 다친 부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감지한 뇌가 보내는 멈추지 않는 비상벨. 씌어진 것과 씌어져야 할 것의 거리. (<대학 시절> 부분. P.54)
비겁하지? 보고만 있는 자, 너희들 다 유죄다. 근데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렸다고…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니? 이걸 보기만 하다 뒤에서, 아이고 아파. 다친 곳만 아픈 게 아냐, 엄살은 원. 이런 청춘을 누린 자가 세월이 흘러 마흔이 되면 어떻게 변할까?
젊은 연인은 이제 보이지 않고,
바람피우다 걸렸다는 한 어른의 낯짝을 떠올린다.
낯짝에는 두껍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사랑은 두꺼운 것이로구나.
너도 나도 두꺼워지는구나.
(중략)
두꺼워 통증 없는 것이 사랑이구나.
그것은 이제 내가 영영 모르는 것인데,
내 살덩이들만은 용케 알고 있는 것이로구나.
요행히 여태 미치지 않았으니, (<마흔> 부분. P.73)
이젠 바람피우다 걸린 늙은이를 “한 어른의 낯짝”이라 하긴 한다. 근데 가만 보면, 내 살덩이들도 알고 있는 거다. 세월이 가면서 두꺼워지는 거, 시인도 두꺼워진 낯짝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고백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젠장. 대학 시절에 여학생을 껴안고 춤을 추다가 몸 더듬던 교수새끼한테, 교수님 참 낯짝도 두꺼우십니다, 했어야지, 이게 뭐냐, 이게. 나 같으면 했겠냐고? 독후감 쓰기 전에 생각해봤는데, 그랬을 거 같다. 물론 얼른 군대로 튀었겠지만. 제대하고 돌아온 새에 교수새끼 정년퇴직 했기를 바랐을,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터이지만 말이지.
독후감이 길어져 쓰고 싶었던 거 하나는 간단하게 쓰려다 말았다. 시가 쉽고 좋은데 좀 과하게 우중충한 거 같지 않아? 이렇게 얘기하면 웃겠지. 그래도 보태 말해보자. 여태 잔뜩 포복했으면 시인에게 이제 남은 건 각개 약진이다. 이젠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좀 웃었으면. 이렇게 말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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