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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낮 ㅣ 거장의 클래식 3
츠쯔졘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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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려고 위키피디아로 작가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나, 츠쯔젠遲子建이라는 이름을 딸한테 지어준 사람이 다 있다. 중국의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는 삼국지에서 가장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던 조조의 아들이다. 조조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조앙은 아버지하고 함께 완성宛城 정벌에 나섰다가 죽었다. 이 일화가 재미있어 소개를 하자면, 이때 현명한 완성의 성주 장수는 세 불리 함을 깨닫고 조조한테 항복해 성문을 연다. 이후 환영잔치가 벌어져 술이 얼큰해진 조조가 성주 장수의 숙모를 겁탈(또는 합의한 동침)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나름대로 명문가임을 자랑하던 장수가 이걸 알고 크게 열을 받아 조조의 진camp을 급습했다. 이 바람에 천하 맹장 전위가 자다가 벌떡 깨 옷을 훌렁 벗은 채로 조조의 텐트를 지키다가 죽고, 맏아들 조앙 또한 위급에 처하자 조조의 옷을 대신 입고 달아나는데, 완성의 병사들은 옷을 보고 조앙을 조조로 알고 죽자사자 쫓아가 조앙을 두 조각 내버린다. 조조는 도망 중에 말 잔등 위에서 수염을 깎아버리는 불상사를 겪으며 명을 보존했으나, 이 와중에 가장 큰 덕을 본 건 둘째 아들 조비다. 조조가 죽고 죽은 맏아들 조앙 대신 조비가 대권을 잡은 다음, 후한 헌제한테 황위를 선양받아 위나라를 건국하고 스스로 문제文帝를 칭했다. 조비한테는 형제들 모두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왕조의 비운이지 뭐. 그가 가장 센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동생이 시인이기도 한 조식. 스스로도 한 문장 한다고 자부하던 조비가 조식을 불러 네가 시 좀 쓴다고 하니, 내가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그럴 듯한 시를 하나 지어봐라. 해서 목숨 걸고 지은 즉흥시가 칠보시, 즉 일곱 걸음 시다. 여기서 주목. 이 시인 조식의 자字가 바로 자건子建, 쯔젠. 1964년 2월, 중국의 저 최북단 헤이룽장성 다이싱안 지구 모하 시의 소학교 교장으로 있던 츠쩌펑遲澤鳳 씨는 평소 조자건을 흠모해 딸을 낳았음에도 이름을 자건, 쯔젠으로 지었다. 나는 그런지도 모르고 작품 속에 여자 주인공이 많이 등장해서, 남자 작가가 여자 마음을 참 잘도 아네, 어쩌구저쩌구 지청구를 해댔다는 거 아냐?
다이싱안 지구, 즉 대흥안령 산맥 근방에서 출생한 츠쯔젠은 헤이룽장 성의 성도인 하얼빈에서 학교를 다녔고, 1981년에 다이싱안 사범대학에 들어가 열아홉 살이던 1983년에 『북방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이후 베이징으로 옮겨 가 공부를 더 하다가 1990년에 다시 헤이룽장 성으로 와서 전업작가의 길을 가고, 1998년에 결혼을 하지만 한일월드컵이 열리기 바로 전인 2002년 5월에 과부가 된다. 어쩐지 작품 속에 과부가 된 30~40대 여성이 종종 등장하더라니까. 지금은 국가 1급 작가의 칭호를 달 정도로 출세를 했으니, 책을 읽고 팬이 되었다고 팬레터를 보내봤자 답장도 못 받지 않을까 싶다. 소개글에 작가 생활 30년에 1백편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고 해서 단편 전문 작가인 줄 알았으나 대표작이라고 꼽기도 하는 <이얼구나 강의 오른쪽>은 장편소설이다. 이것도 도서관에 있다. 꼭 읽어 봐야지. 그만큼 단편집 《가장 짧은 낮》이 좋았다는 말씀이다.
츠쯔젠
모두 열여섯 편이 실은 단편집. 그런데 놀랍게도, 굉장히 오랜만에 단편집에 실린 모든 작품 전부 다 마음에 들어 읽는 내내 잔잔한 기쁨을 즐겼다. 내가 단편집에 이런 찬사를 보내는 건 얼마 살지 않았지만 일생에 몇 번 없었다. 한 편도 예외 없이 무대가 헤이룽장 성에서도 벽촌지대인 다이싱안 지구와 산맥, 흑룡강의 중소국경 지역의 농촌과 삼림지역이며, 필요에 따라 하얼빈의 대형병원과 노르웨이의 해변가에 위치한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기념관이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다이싱안 지역의 섣달 그믐날과 설날이 여러 번 나와 다이싱안 지역 민속/풍습도 재미있게 소개한다. 그러나 츠쯔젠의 작품을 읽는데, 물론 이 작품집에 실린 것에 국한해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가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연민과 돌봄과 인애이며 둘째가 저 광활한 벌판의 웅장한 장면일 것이다. 영하 30, 40도 아래로 내려가는 엄혹한 추위와 큰 눈과 바람 속에서도 츠쯔젠에게 큰 유혹이었을 잭 런던 또는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같은 작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고난과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얼어버린 손을 비벼주고, 불을 지펴주는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이래서 열여섯 편 가운데 비극은 없다. 정말로 없다. 작품의 무대도 촌스럽고, 인물도 촌스럽고, 작풍도 촌스럽고, 문장도 촌스럽다. 섬세한 문장도 없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쓴 문장들이 모인 문단, 문단들이 모인 전체는 독자를 웃음짓게 하고, 찔끔 소금물을 짜기도 하고, 한숨도 한 번 푹 내쉬게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섬세한 날줄과 씨줄의 감정적 난파와 간혹 발칙한 명징성이 빛나기는 하지만 (상당히 무례한 표현인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걸 이해해주시면 좋겠는데)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작품집을 연타로 읽다가 난데없이 투박하게 아름다운 츠쯔젠을 읽을 때의 감격이라니.
단편집의 독후감을 쓸 때 가장 난처한 것은 스토리를 옮기기 힘들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길지 않고 단순한 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말하면 단박에 결말을 눈치챌 수도 있으니. 그저 처음 읽는 츠쯔젠이 촌스럽지만 정말 매력적인 작가였으며, 그래서 이제야 이이를 읽어 만시지탄을 금하지 못했으며, 앞으로 다른 작품도 찾아 읽을 예정, 혹시 이 책이 “나만의 명작”일 수 있어서 함부로 책을 사서 읽어보시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도서관에 있다면 꼭 한 번 골라 읽어보십사, 권할 정도라는 건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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