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연인
우르스 비트머 지음, 이노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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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시작하는 ‘오늘’은 뛰어난 지휘자로 평소에 한 30년 선배이자 거장 브루노 발터와 20년 정도 선배인 오토 클렘페러와 동등하게 비교 받기를 원했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던 지휘자이면서 스위스에서 가장 큰 콘쩨른의 대주주로 막대한 부를 향유하고 있던 에트빈이, 보면대 위에 놓인 모차르트의 G단조 교향곡 원본 악보를 넘기다 악보의 오른쪽 페이지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상태로 넘어지면서 90세를 훌쩍 넘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언젠가 이이가 ‘나’의 어머니 클라라에게 이 G단조 교향곡이야말로 여태까지 인류가 만든 음악 가운데 최고의 것이라고 했단다. 41개의 모차르트의 교향곡 가운데 단조가 딱 두 곡 있는데 둘 다 G단조다. 25번과 40번. 작가는 당연히 40번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25번 역시 ‘발랄한 우수의 아름다움’으로 40번과 비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같은 사단조인 25번 교향곡의 매력에 관해서 한 마디라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왕 모차르트 얘기가 나와서 조금만 더 해보자면, 모차르트 음악 가운데 단조 음악에 좋은 작품이 많다. 매우 다양한 양식으로 작곡을 했으나, 하이든은 교향곡과 현악사중주, 베토벤 하면 교향곡, 슈베르트는 가곡, 바그너나 베르디는 오페라, 이런 식으로 분류를 꼭 해야 한다면 모차르트는 오페라와 피아노 협주곡,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치고,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20번은 근데 G가 아니라 D, 라단조다. 다양한 음반 가운데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고 클라라 하스킬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판을 소위 명반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또 애청곡인 현악오중주 K. 516이 사단조다. 아마데우스 콰르텟의 연주가 내가 자주 즐기는 레퍼토리 가운데서도 상당히 앞 순위에 올라 있다. 아무쪼록 기회가 닿는다면 들어보시기 바란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사단조, K.550. 3악장. 미뉴에트.

이이의 40번 교향곡은 미뉴에트마저 혁신적인 낭만성으로 넘실거린다.


  이 에트빈이라는 키 큰 작자의 죽음으로 첫 페이지가 열렸다. 결말은, 그의 장례식이다. 그러니까 죽음과 장례식날까지의 며칠 동안 ‘나’는 ‘나’의 어머니 클라라가 평생 사랑했던, 사랑도 사랑 나름인데, 심장과 애간장이 곰삭은 곤쟁이젓처럼 푹 절여져버렸을 정도로 간직했던 사랑에 관하여 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마저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내 어머니의 연인이 죽었다.”


  저 먼 시절, 적도 아래 아비시니아의 산간지대에서 개를 신으로 섬기는 부족과 사자를 섬기는 레오니 부족이 굶주림으로 인한 결투를 벌였다. 싸움에 진 레오니 족의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몰라도 극도의 기아와 갈증 상태에서 베르가모의 도모도솔라 근처 알프스 어느 골짜기 마을 입구까지 이르러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를 발견한 동네 여인이 탈진한 그의 발목을 끌어 돌로 만든 움막집에 들인 다음, 깨끗하게 씻기고 갈증을 풀어주고, 함께 잠들었는데, 검둥이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여인의 집에 들어와 보니, 여인은 발가벗은 채 잠에 빠져 있고, 검둥이는 이미 죽어 있었단다. 9개월이 흐른 후에 여인은 아들을 낳아 ‘도메니코’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당연히 짙은 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나귀를 몰고 떡갈나무 포도주 통을 산을 넘어 운반해 먹고 살던 짐꾼 도메니코는 열두명의 아들을 두었다. 물론 딸도 있다. 하여간 마지막 아들이 울티모. 많은 아들이 도메니코보다 먼저 세상을 떴더라도 여전히 아들이 많아 굳이 막내 울티모까지 험한 짐꾼 일을 시키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울티모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시골 교구신부가 그의 재주를 알아채고 브릭 예수회 기숙학교의 사생으로 보내, 신성한 학교 덕분에 평생 모든 종교적인 것에 대하여 극도의 거부감을 지니게 된 울티모는 그곳에서도 실력을 발휘해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스위스 국립공업전문대학에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 수혜를 입어 학비 없이 졸업한다. 기계전문기사 자격증을 따 갓 24세에 기계공장에 입사했고,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대기업으로 변모한 회사에서 부사장단의 일원으로 굉장한 부자가 된다. 자주색 피아트 오픈카를 들여놓았는데 그건 도시에서 처음으로 승용차를 구입한 사람들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후 아내가 죽었고, 어려서부터 이상한 기질로 외가 친척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한 딸 클라라는 예상치 못한 미인으로 성장했으며, 본인은 목석 같은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다가 다가온 1929년 10월 26일, 검은 금요일의 다음날 아침, 울티모는 조간신문을 통해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전 재산이 날아가버렸다는 소식을 읽고 뇌졸중을 일으켜 그날 아침에 파리에서 돌아온 클라라의 품에 안겨 숨을 멈춘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골짜기 출신 울티모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피부의 증조부, 갈색 피부의 조부, 구릿빛 아버지에 이어 태양의 아이와 같은 피부색을 지닌 클라라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빛나는 미모를 갖게 된다. 말년 팔자가 험해서 그렇지 세상에 날 때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이이의 나이 스물 근처에 이르자 늘씬한 다리, 검은 두 눈동자, 도톰한 입술을 하이힐, 모피, 자동차 바퀴만 한 커다란 모자로 치장한 채 아버지와 함께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관람하곤 했다. 아니, 주인공인 클라라보다는 이이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연인이라고 여겼던 지휘자 에트빈에 관해 말해보자.

  가난한 야심가 에트빈. 젊었을 때까지 지독하게 가난했다. 음악에 관해 굉장한 관심이 있었지만 하다못해 임윤찬처럼 아파트 상가에서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한 에트빈은 지방 작곡가에게 간곡하게 요청해 무료로 개인 레슨을 받는 기회를 잡는다. 그러다 작곡보다는 지휘에 천재가 있다는 걸 발견한 스승의 권유로 지휘법을 공부하게 되고, 천부적으로 비즈니스 마인드가 충만했던 젊은 에트빈은 음악학교의 남녀 학생들을 모집해 자신의 교향악단인 “청년교향악단”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에트빈의 마케팅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청년향’을 특화해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레퍼토리가 아니라 교향악단이 연주를 기피하는 현대음악을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첫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버르토크, 젬린스키, 그리고 지방 작곡가의 곡을 선정하고, 앞쪽에 앉은 연주자의 친인척과 친구들의 갈채와 뒷자리에 앉은 청중들의 야유를 동시에 얻어내, 어쨌든 장안의 화제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이때 나중에 베를린에서 연주자로 성공하고 부헨발트에서 살해당할 운명인 여성 첼리스트의 친구 자격으로 앞자리에 앉았던 클라라와 에트빈의 첫 눈길, 서로 눈이 마주쳤는지도 모른 채 교환된 첫 눈길을 주고 받는다.

  천재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이기적인 품성을 에트빈 역시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겠다. 쉽게 말해서 그냥 인간으로의 에트빈은 그가 좋아했던 리하르트 씨들처럼 재수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얼마 후 클라라에게 교향악단의 행정과 회계, 그리고 정기권제도, 초청공연, 솔리스트 접대, 단원 복지를 총괄하는 “무급” 총무직을 제안하고, 클라라는 이를 받아들인다. 평생 부유하게 살았던 스무 살 남짓의 클라라는 청년향의 업무를 위해 아버지한테 받은 돈과 아버지 집의 방을 사용하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른다. 에트빈에 대한 선의, 호감 때문이었겠지. 클라라의 무급봉사, 금전적 지원을 에트빈이 몰랐다고 볼 수 없지만,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클라라를 자신의 충실한 수하처럼 부리는 에트빈은, 청년향의 첫번째 출장공연인, 제 3회 현대음악 주간의 파리 연주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한 라벨로부터 격찬을 받는 대성공을 이루고, 이에 감격한 파티 끝에 클라라의 방에 들어 기어이 자빠뜨린다.

  클라라는 에트빈을 사랑했겠지. 근데 에트빈은? 천만의 말씀. 아니올시다. 위에서 이미 얘기했듯, 파리 공연을 마치고 다음날부터 1박 2일로 끝난 기차여행 끝에 돌아온 1929년 10월 26일 아침, 클라라는 돈 한 푼 지니지 못한 가난뱅이 고아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이후 드라마는 전형적인 신파극으로 접어든다. 물론 클라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에트빈은 그가 겪은 숱한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지 애초부터 사랑은 무슨 사랑.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특이한 기질로 적지 않은 말을 들어온 클라라는 세월이 흘러도 자신의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당연하지. 그게 버린다고 버려지는 건가. 난 책을 읽는 도중에 클라라는 자신이 선택을 해서 하여간 평생 품을 수 있는 사랑이라도 한 번 해봤지만, 클라라의 남편과 아들은 무슨 죄가 있기에 남편은 자신의 죽음이 아내와 갈라놓기 전까지 변변한 정 한 번 받아보지 못했고, 아들은, 책을 읽어보시라, 하여튼 이 두 명의 남자들이 안타깝기 한이 없었다.

  감각적으로 돋보이는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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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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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베트남전 중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노동인구의 부족을 체감하면서 이민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어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주로 파시스트들의 공포정치에 불만을 품은 인텔리 계층을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 이민을 감행했다. 당시에 미국행 비행기에 가장 많이 오른 인종이 라틴 아메리카의 유색인들이었다. 저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영연방 앤티가에서 열아홉 살 아가씨 루시 조지핀 포터도 섬을 나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서 비행기를 타고 홀홀단신으로 미국 뉴욕주의 공항에 내려, 열아홉 평생 처음 북반구의 1월 겨울을 체험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고향인 앤티가 섬에서는 정말로 근사한 외모를 가진 덕택에 평생, 쉼없이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던 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속을 썩이며 사는 것을 숙명으로 아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가며 외동딸로 아홉 살까지 살았다. 그러나 심통맞은 삼신할매는 딸이 아홉 살이 되자 이제 산도가 막힌 줄 알고 살던 부부에게 내리 아들 세 명을 점지해주었으며, 첫아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부부의 모든 기대는 한 순간에 아들(들)을 향하게 된다. 부부는 아들 출산과 동시에, 비록 잘 생긴 아빠가 다른 여자를 통해 낳은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본인도 모를 정도이지만, 갑자기 금슬이 좋아져 아들이 자라면 여왕이 사는 영국에서 공부를 시켜 변호사나 의사로 만들기 위해 뒷바라지 빵빵하게 해주겠다는 다짐을 했으나, 이런 다짐을 옆에서 들은 열 살 먹고,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누나는 슬슬 속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의사, 변호사, 유학 얘기를 해본 적이 없잖아.

  전형적으로 할머니들이나 달고 다닐 구식 이름을 가진 루시가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도 잘 했느냐 하면, 퀸 빅토리아 여학교에 다닐 때, 학교 대표로 만장하신 귀빈, 학부모, 학생들 앞에서 영국시인이 수선화를 보고 쓴 길고 긴 시, 정작 루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황한 시를 외워 한 단어도 틀리지 않고 낭송을 해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시가 루시에게 조금의 감동이나 공감을 주기는커녕 왜 남의 꽃을 찬양해야 하는지 속이 뒤집히는 걸 그들이 알지는 못했지만.

  이런 딸은 고향 앤티가에선 당연하게 여겨진 딸 차별 속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해, 드디어 사춘기에 돌입, 정상적인 2차 성징이 도드라짐과 동시에 성격을 좀 삐딱하게 변해버린 것 같다. 이해 하시겠지? 하여튼 카리브 지역에서는 보통일지도 모르지만 동아시아에선 너무 일찍 아닌가 싶을 정도의 성적 경험을 솔직하게 적어간다. 열네 살 때 ‘태너’라는 남자 아이와 이른바 (*락* 님이 처음 언급하셨던)텅슬라이딩 키스를 경험하는데, 어이가 없거나 쇼킹하게도, 루시는 이 경험을 통해, 혀라는 부위가 별 맛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어서 진짜 성경험까지. 작가 킨케이드의 펜은 거침이 없다.

  이렇게 몇 년 더 살다가, 남동생이 셋 생기고 부부는 다 큰 딸까지 네 명의 아이들을 양육할 여력이 없게 되자 맏이에게, 살아가면서 한 순간도 좋게 얘기해본 적이 없는 간호사를 갑자기 여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직업이라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하더니, 미국에서 딸을 넷 키우는 중산층의 베이비 시터를 하며 야간학교를 다니며 간호사가 되라고 하면서 홀로 미국행 비행기를 태웠던 것. 이리하여 19세 젊은이 특유의 반항기로 똘똘 뭉친 루시 조지핀 포터는 결코 좋아하지 않는 이름이 쓰인 출생증명서와 여권, 체류 허가증 등등을 소지한 채 미국 땅을 밟은 것.


  미국 땅을 처음 밟은 1월 중순, 루시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몇 개가 있다. 엘리베이터, 아파트, 냉장고, 냉장고 속의 음식을 먹는 것, 자기 개인용 화장실과 욕실 등등. 취직한 가정은 머라이어와 루이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생긴 네 명의 어린 딸, 루이자, 메이, 제인, 미리엄, 그리고 요리사 겸 가정부와 이제 새로 베이비 시터가 되는 루시, 이렇게 여덟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여주인 머라이어의 말대로 그들이 루시와 가정부를 정말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머라이어와 루이스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품성을 지닌 전형적인 60년대 백인 미국인 중산층 가정을 꾸려간다.

  그러나 카리브해와 서인도제도, 미국에 사는 문명인보다 훨씬 더 자연과 유사하게 살아온 루시는 선량한 미국인 주부 머라이어의 생각이 낯설다. 다행스럽게 루시의 생각을 별 필터 없이 그대로 밝혀도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고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머라이어도 참 괜찮은 여자다.

  루시의 생각은 참으로 다양하게 반항적이다.

  제일 먼저 고향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남자들의 바람기와 허세, 그리고 이런 점이 비단 앤티가 섬의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미국 남자이자 자신의 주인집 남자이기도 한 루이스도 똑 같은 짐승이란 것.

  섹스에 관한 솔직하기 그지없는 묘사. 그렇다고 톡톡 튀게 야하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괜히 김칫국 마시지 마시라. 내 의견으로는 서인도제도 유색인종들이 적도의 태양 아래 세상 어디보다 자연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건강한 자연으로의 섹스 관념이 아닌가 싶었다.

  백인들, 특히 식민모국인 영국과 미국적 네오 제국주의에 대한 반식민 의식,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식 속물에 관한 서인도제도 사람의 시각을 통한 관찰 등등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루시의 건강한, 그리고 스무 살 젊음 고유의 권리인 반항적 시각이란 의미다.


  짧은 작품을 시시콜콜 다 이야기하는 건 모든 이에게 공개하는 독후감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루시가 미국 땅에서 벌인 좌충우돌에 관해서는 직접 읽고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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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12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텅 슬라이딩 덕분에 제가 소환되는 리뷰로군요. 마침 저도 이 책을 사둔 바, 이제 읽어보아야 겠습니다. 루시가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바를 따라가는 게 책을 읽는 재미가 되겠군요. 후훗.

Falstaff 2022-07-12 12:18   좋아요 2 | URL
죄송합니다. *락* 이라고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때 다락방 님의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재치 있어서 뒷골이 땡땡해지던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슬쩍 그냥 쓸까, 하다가 알라딘의 눈 밝은 독자께서 혹시 표절 운운하실까봐, 그게 아니더라도, 어엿하게 그건 제 아이디어가 아니니까 원래 사용하신 분을 거론하는 것이.... 비록 ‘다*방‘ 이 아니고 ˝*락*˝ 이라 해 좀 더 알기 어렵게 하더라도 밝혀야겠다. 싶어서 말입죠. ^^;;;
이 책은 솔직히 별점을 세 개 줄까, 네 개 줄까, 고민하다가 재치있는 문장 덕에 하나를 더 줘서 네 개를 준 것입니다. 아주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coolcat329 2022-07-12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글 읽어보니 소설에서 코믹함이 느껴지는데 맞나요?
루시라는 인물이 엉뚱하면서도 굿센 그런 여성같아요 ㅎ

Falstaff 2022-07-13 08:04   좋아요 2 | URL
오, 코믹하지는 않습니다.
루시는 기성세대의 눈길로 보면 삐딱하고 반항적이고 저만 잘난 젊은이일 수 있습니다. 문장은 그래서 시니컬합니다. 저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글을 통해 여성차별, 남성 속물성과 남성 위주의 사회 (근본적으로 카브리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식민주의와 신제국주의, 섹스, 자연성 등등 많은 이야기를 자잘하게 풀어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근데 분량이 너무 짧아 그냥 툭, 던져놓고 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게 아쉽더라고요.
 
탐욕 제안들 35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지음, 정보라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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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키에비치는 1927년 말에 <탐욕>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근현대 소설사, 무르익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문학사에 작지 않은 탑 하나를 세우게 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지난 세기말의 퇴폐주의적 또는 악마숭배적 묘사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데, 나는 이것이 비트키에비치가 아직도 세기말 주의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19세기 토마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나 미하일 불가코프의 <모르핀>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당대까지는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던 ‘약물에 대한 관용’의 덕을 본 상태에서 글을 썼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한 가지 감정이나 상황, 또는 사물에 관해 실로 무지막지하게 장황한, 게다가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사법이 쏟아지는 문장을 읽을 때의 난처함을 매우 자주 실감할 수밖에 없다. 불어, 독어, 영어, 노어, 여기에 자국어인 폴란드 말까지 섞어 정말 유창하게 쏟아내는 말장난까지 합쳐지면 대략 난감하기 그지없다.

  책의 115쪽에 푸트리찌데스 텐키에르 라는 이름의 마흔두 살의 천재적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심한 장애인 작곡가가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좀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다가가―연주하기 시작했다. (오, 세상에, 어떻게 연주했는지!!!) 마치 땅 밑의 인간 내장이 하늘로 폭발하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지상의 하늘이 아니라 진실로 무한하고 공허한 우주적인 무의 하늘이었고, 그곳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인 돌풍의 구름들로부터, 납작하고 기어 다니는, 불타는 불모의 비밀의 가장 밑바닥까지 무너졌다. 세상의 결속은 삐걱거렸다. 멀리서부터 죽음의 안도감이 반짝였는데, 그것은 눈앞의 무한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초(超)신적인 고문의 바퀴에 시달려 망가진 무명의 신들의 부드러운 점으로 변한 죽음이었다.” (115~116쪽)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주에 관한 직접적인 묘사가 이것의 두어 배쯤 더 진행하고, 이어서 주인공 게네지프의 다양한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지다가 지금 연주하는 텐키에르의 작곡 작업까지 계속되고, 문제는 비단非但, 위에 인용한 피아노 연주 상황이 아니더라도, 도대체 작가가 지금 무엇을 주장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자주” 벌어진다. 이리하여 독자는 환장할 지경이 된다.

  당신이 이 책을 구입했다면, 푸트리찌데스 텐키에르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115쪽까지 읽을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것이다. 저 지점까지 읽었다 해서 좋아하지 마시라. 이제 책의 11.5%에 도달했을 뿐이니.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시간이 문제지 당신은 장황하게 펼쳐지는 다중인격 소유자와 대체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 얼마나 허망하게 결말을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피아노 소리와 인류 역사의 사실상 마지막 작곡가인 텐키에르의 연주를 듣지 못하고 일단 책을 책꽂이에 꽂는다면, 당신이 다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이라는 생각은 접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은, 적어도 6백쪽 정도 까지는 문장을 분리해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탐색해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분명하게 약쟁이였을 비트키에비치의 코카인에 빠진 형이상학적 문장을, 다시 얘기하건대, “해석하는 대신 직관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나는 6백쪽, 6백쪽? 어쩌면 7백쪽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정말로 주장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문장 속 구절과 단어들의 조합이 비록 구체적이지 않지만 마치 하늘에 뜬 구름 모습을 보고 닭장 속 암탉이 알을 두 개 낳았는지 세 개 낳았는지 짐작하는 것처럼 읽었다. 그래도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 8백쪽을 넘어가면서 어느새 작가의 문장과 표현이 익숙해졌는지 “직관적”보다는 더 향상된 책읽기가 가능했다. 소위 길이 보이더라는 말씀. 그리하여 한 번 더 읽으면 초독보다 훨씬 부드럽게 읽히겠지만, 아이고 어머니― 편히 쉬시기를― 그럴 마음이 지금은 눈곱만큼도 없다. 눈곱만큼도 없을 정도로 오랜만에 책 한 권 읽느라고 똥을 쌌다. 그것도 푸짐하게.

  이렇게 쓰고 보니, 거 참. 나야 일개 독자로 그저 읽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 작품을, 그것도 서문까지 합해 천 쪽이 넘는 길고, 길고, 또 길고 긴 데다가 문장까지 오리무중의 험한 “폴란드 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 정보라는 이 고생을 해서 번역료 얼마를 받았을까? SF 소설에 관심이 없어 그렇지 역자 정보라가 <엽기 토끼>인가 <낭만 토끼>인가, 확인해보니 <저주 토끼>가 맞는데 이걸로 부커-인터내셔널 숏 리스트에 오른 작가란다. 하여간 이이도 <탐욕> 번역하느라고 얼마나 똥을 쌌을까? 팔자다, 팔자.


  평소의 독후감을 염두에 두면, 늦어도 지금쯤이면 작품의 줄거리가 조금 나와줘야 한다. 이 길고 읽기에 고통스러운, 그러나 기념비적인 장편소설을 정말로 읽을 독자가 있다면, 소설의 줄거리는 책방의 미리보기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정도로 끝을 내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저자와 역자가 조금 기분 상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아참, 출판사 워크룸프레스도, 스토리는 분량과 비교해서 그리 복잡하지 않아 책의 9쪽에 실린 “이 책에 대하여”에 쓰인 내용이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고 최대로 많이 줄거리를 소개한 것일 터이다. 그래 지금은 줄거리나 작가 소개보다는 이 책이 어떤 면에서 독특한지에 관해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랭 로그브리예와 나탈리 사로트 같은 프랑스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를 떠올렸다. 로그브리예와 사로트가 사물과 순간을 포착해 완전히 건조한 상태에서 하이퍼 레알리즘 적 묘사를 한 것과 유사하게 비트키에비치는 등장인물의 유동적인 감정과 상태,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하려 한 것 같았다. 누보로망 작가들과 달리 이이는 다분히 약물에 의존한 지경에서, 혹은 그 지경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이는데, 실로 무수한 단어들을 기총소사하듯 난사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저 골치 아픈 누보로망 작가를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이제 열아홉 살이 된 주인공 게네지프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아 장례식을 치루었으나 작가는 장례식 따위는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걸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할 때였다. 그 다음이 게네지프가 자기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리나 브시에볼로도브나 티콘데로가 공주와 처음으로 이성간 섹스를 하기 위해 담을 넘다가 담장 위에 방범용으로 꽂아 놓은 깨진 유리조각에 손바닥을 심하게 베어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후에 공주가 치료를 해준다거나 따로 처치를 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듯 작가가 곧바로 잊은 것일 거라고 짐작했을 때였다. 그러다가 저 뒤, 868쪽에 이르면 괄호를 치고 이런 선언을 한다.


  “우리 문학을 망치는 이 저주받을 자연 풍경과 분위기 묘사는 그만하자. 이런 배경에선 본질적인 것들을 만들어 낼 수가 없고 감상적인 이런 장면들 때문에 정교한 심리를 간과하게 된다.”


  이게 비트키에비치 소설, 적어도 <탐욕>의 진리일 것이다. 이 바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사고를 치는 게네지프의 심리, 행동 변화가 중점이 된다. 게네지프는 책 속에서 여러가지 애칭으로 불린다. 지프치오, 지페크, 지프카, 지풀카, 지폰 등등. 슬라브 소설책을 처음 읽을 때 곤혹스러운 점 가운데 성명이 이름-부칭-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걸 아시아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 마음대로 막 섞어 부르는 것 같은 점과, 많고도 많은 애칭 때문에 정작 누굴 지칭하는지 헷갈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선 주로 지프치오가 많이 쓰이고 가끔 게네지프와 지프치오는 같은 육체의 다른 인격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호칭을 바꿈으로 인격 변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나중에 그(게네지프)는 지프치오의 얼굴로 기어 나와서 그의 낯짝으로 기어들어 가 주둥이에 달라붙었고 모두들 이 젊은 생도의 눈에 나타난 이상한 표정에 놀랐다―이미 그것은 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그것은 이전의 인격과는 공통점이 아무것도 없는 바로 그 ‘후[後]심리적 인격이었다.” (755쪽)


  위의 인용은 게네지프가 처음으로 살인한 바로 직후에 그를 묘사한 것이다. 첫 살인? 그러면 나중에 누구를 또 죽이느냐고? 그렇다. 누구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작품은 당시 시각에서 미래 소설로, 세계는 전부 공산화되었고, 폴란드만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폴란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경계를 이루는데, 이걸 의인화하자면 후심리적 인격인 게네지프 역시 하나의 경계라고 할 수 있을 것.

  여기에 중국이 새로운 공산주의의 대표주자로 등장해 키릴 황제가 다스리는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진격해 점령을 해버리고 이어서 폴란드까지 침공한다. 어떻게 중국이? 중국이 한자어를 버리고 알파벳을 받아들여 새로운 문자를 사용하니 이제껏 자신들이 만들어 왔던 놀라운 문화와 문명,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력까지 전 세계를 압도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의견이 놀라웠다.

  곤혹스러웠지만 한편 즐거웠던 책 읽기였다. 아무리 천 쪽이라지만 그깟 천 쪽을 읽기 위해 일 주일을 통째로 헌납해야 했던 즐거운 “고뮨”. 지금 말한 ‘고뮨’은 ‘고문toture’이다. 그런데 왜 ‘고뮨’이라 썼는지, 정말 알고 싶으시면 책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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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08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코카인에 빠진 형이상학적 문장이라...^^
환각상태에서 1000쪽의 분량!;;
읽으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리뷰 첫머리에서 누보로망을 떠올렸는데... 역시 그렇군요.;;

Falstaff 2022-07-08 07:46   좋아요 3 | URL
읽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진도도 무척 느리게 나가더군요. 읽으면서, 이런 거 좋아하는 것도 팔자다, 팔자. 여러번 자조했습니다. 흑흑.....

mini74 2022-07-08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이름조차 읽기 힘들고 길군요 ㅎㅎ 전 이런 책이 있구나하는 걸로 하다가 독자가 환장할 지경이 되는 책이란 도대체 뭔가 궁금증이 생깁니다 거기다 옮긴이가 저주토끼의 정보라작가님이네요 !!!

Falstaff 2022-07-08 15:09   좋아요 1 | URL
하여튼 좀 특별한 경험이 될 겁니다. 힘차게 함 도전을 해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전 책임지지 않습니다.
역자 정보라는 또 교정작업을 한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이 얼마나 똥을 쌌는지 애닲아 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2-07-08 1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으셨군요. 전 그냥 고이 모셔두기만....ㅎ 리뷰 읽으니까 여름에 읽으면 죽겠는걸요? ㅋㅋㅋ

Falstaff 2022-07-08 15:11   좋아요 1 | URL
옙. 근데요, 언제 읽어도 비슷한 상황까지는 갈 거 같더라니까요!
뇌가 마구 얽히는 느낌이, 햐 참, 며칠 지속되는 겁니다.
ㅋㅋㅋㅋ 사셨으니 함 경험해보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

VALIS 2022-07-08 1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말부를 읽고 나면 이거 지금까지 고의로 읽기를 방해하려고 이렇게 썼나 싶기도 하네요 ㅋㅋ..

Falstaff 2022-07-08 15:13   좋아요 1 | URL
본문에도 썼다시피 애초에 스토리 중심으로 읽으시면 진도 빼는데 애로사항이 많은 거 같네요.
모두 2부로 되어 있는데요, 1부, 450쪽까지가 불과 사흘에 걸쳐서 일어난 일일 정도로 약빤 문장이 충만해 있답니다. ㅎㅎㅎ

- 2022-07-08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러니까 이 책은 약빨고 쓴 책이라는 거죠? ㅋㅋㅋㅋ 궁금하네요ㅋㅋㅋㅋㅋ (약이? 책이?)

Falstaff 2022-07-08 15:14   좋아요 3 | URL
옙. 진짜로 약 빨고 쓴 게 확실한 듯해요.
읽는 도중 뇌에 경련이 일어나 책 덮고 쐬주 병 깐 것도 며칠 된답니다.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8-10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골드문트님~

Falstaff 2022-08-11 06:40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도 축하합니다!

mini74 2022-08-10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저도 축하드려요 *^^*

Falstaff 2022-08-11 06:4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미니 님도 축하합니다! ^^

새파랑 2022-08-10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2-08-11 06:4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새파랑님도 축하합니다! ^^

이하라 2022-08-10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골드문트님^^

Falstaff 2022-08-11 06:43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이하라 님도 축하합니다! ^^
 
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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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진巴金. 쓰촨 성 청두 출신으로 루쉰魯迅, 라오서老舍와 더불어 중국 근대문학의 문호라고 일컫는다 하는 작가. 쓰촨四川 성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일찍이 중국의 시선, 다른 건 모르겠고 시 쓰는 거 하고 술 마시는 거 가지고 신선의 반열에 오른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흰고양이–검은고양이 론을 들고나와 대나무 장막으로 불린 중국의 개방을 선도하고, 죽은 다음에 화장을 해 대만 해협에 골분을 뿌려 통일 중국의 꿈을 기린 키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을 배출한 지역이다. 이 사람들은 태생이 쓰촨 성이다. 비록 출신은 다른 곳이지만 쓰촨 성, 특히 성도省都인 청두成都에서 천하 패업의 꿈을 이룰 기틀을 마련했지만 결국 한 여름 밤의 몽정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물로는 유비, 제갈량, 장비, 황충, 조운, 마초 등 촉한의 영웅들이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쓰촨, 하면 역시 사천 탕수육, 사천 짜장 등으로 대표하는 저렴하고 매운 중국식 먹거리일 듯.

  바진은 1904년에 봉건 관료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20세기 만을 살다 갈 것으로 추측했지만, 천만의 말씀. 신해혁명으로 인한 청 제국의 몰락, 5.4 운동, 중일전쟁, 국공합작과 내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문화혁명, 죽의 장막, 개방을 모두 거치고 대망의 21세기를 맞아 백세가 넘은 2005년에야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 스무 살 때 베이징 대학에 지원했지만 폐병 진단을 받아 입학 시험도 치루지 못하고 요양생활을 하게 되면서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게 된다. 그래도 원래 있는 집 아들이라 2년 후인 23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이때부터 바진이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휴식의 정원>에 등장하는 중요한 조연 야오궈둥이 청두 출신 해외유학파로 대학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하고 2년간 공직에 근무하다 조기 퇴직한 30대 부르주아인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게, 원래 다 해봐야 제대로 쓸 수 있는 거거든.

  책의 앞날개를 보면 이이의 본명이 리페이간(李芾甘)이라 나온다. 반면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중국시사문화사전엔 리야오탕(李堯棠)이라 실려 있어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데, ‘페이간’은 옛 시절 사람들이 흔하게 쓰던 소위 자字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고산, 율곡, 추사, 백범, 미당 등의 호號를 사용했듯이 중국에선 의례 자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 <휴식의 정원>은 1944년, 샤오산과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나이 마흔에 발표한 것으로 장편소설은 1946년을 끝으로 더 이상 쓰지 않았으니, 이걸 후기 작품이라 하기에는 백 살이 넘어까지 산 사람한테 우습기도 한데, 그럼 뭐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수이리라. 제목 “휴식의 정원”의 원제는”게원憩園”이다. 여기서 한자어 게憩는 ‘쉴 게’, “휴게실” 할 때의 게 자. 책의 ‘일러두기’에 쓰여 있기를 “이 책은 巴金의 憩園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憩를 ‘정’으로도 발음을 하는지, ‘정’으로 발음한다면 그 때는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마터면 미칠 뻔했다. 역시 문자는 우리나라 문자가 세계 제일이다.

  하여간 중국 사람들 내력 찾으면 복잡하기가 짝이 없다. 이 사람의 무정부주의 등 할 얘기 더 있는데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책 얘기는 언제 하나. 그만 하자.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그리고 대단히 작위적이다.

  화자 ‘나’는 대학을 겨우 반 년 다니다가 학비를 대주던 숙부가 죽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 그간 여섯 권의 (‘크게’라고 말할 정도로는)주목받지 못한 작품을 발표한 30대 중후반의 작가. 여태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여차저차하여 16년 만에 대후방이라 불리는 고향 청두에 들러 이름만 비까번쩍한 싸구려 ‘국제호텔’의 어둡고 좁은 방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대체로 오전에 소설을 쓰고 오후엔 청두 시내를 산보하는 루틴을 지니고 있는데 며칠 되지 않아 시내에서 소학교, 중등학교, 대학교 동창을 만난다. 이이가 바로 저 위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야오궈둥, 유학파, 대학교수 3년, 공직 2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로부터 거액과 7~8백 무畝의 논마지기를 유증 받아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다 때려치우고는 스스로 얼리 리타이어를 이룬 룸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다. 1무가 30평이니 750무 잡고, 22,500평. 대강 110 마지기. 게다가 땅 한 평 팔지 않고도 청두 시내의 큰 정원이 딸린 저택을 한날 한시에 딱 현금을 주고 샀을 정도로, 은행 금고 아래에 깔린 돈이 위에 쌓인 돈에 눌려 숨을 못 쉴 정도이다.

  야오궈둥. 중국에선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은 이들 중에서 친한 사람에게 앞에 늙을 로老(라오) 자를 쓴다. 그래 앞으로는 야오궈둥을 ‘라오야오’라고 칭한다. 이 라오야오가 ‘나’를 보고는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당장 ‘나’를 자기 집, 비까번쩍하기 이를 데 없는 저택의 아랫사랑으로 들이고는 쓰고 있는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머물게 한다. 라오야오는 청두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인 자오(趙) 씨 집안의 외동딸한테 장가를 들어 아들 (아명)샤오후(小虎)를 두었지만 아내가 일찍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그래 자기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젊은 아내를 새로 얻어 둘이 지극히 사랑하며 살림을 꾸미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다 좋을 수 있나. 자오 집안의 안주인인 샤오후의 늙은 외할머니는 움딸이자 샤오후의 새엄마 완자오화(萬昭華)를 미워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줄창 어린 샤오후를 끼고 있으려 해서 학교도 나날이 결석이고 가끔 가더라도 땡땡이가 다반사였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싶은데 문제는 외사촌들과 어울려 하는 짓이라고는 개망나니 짓에 어린 놈이 노름이고, 온갖 투정을 다 받아주어 아이가 갈수록 망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 읽기로 세상의 위안을 삼고 있던 어린 아내 완자오화 앞에 이이가 좋게 생각하던 소설가 ‘나’가 등장했으니 야릇한 관계가 몽실몽실 피어날 수도 있으리라, 하고 김칫국 마셨다면 아서라, 얼른 꿈에서 깨는 게 좋다.

  왜 책의 제목이 <휴식의 정원>이냐 하면, 친구따라 들어간 친구의 저택 대문 상부 문틀에 큰 글씨로 “게원憩園”이라 쓰여 있고, 이 정원이 실로 크고 아름다워 가벼운 산책이 가능할 정도이며 작품이 끝날 때까지 중요한 관계를 맺을 청년 양(楊)도령과 친분을 맺기 때문이다. 양도령은 저택을 판 집안의 셋째 아들이 낳은 둘째 아들이다. 복잡할 거 없다. 대가족이 살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네 형제네가 집을 팔아 재산을 나누고 분가한 것이니. 당시 셋째 아들만 죽자고 집을 파는 걸 반대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됐다. 이 셋째 나리의 둘째 아들이 저택의 정원에 들어와 동백꽃을 꺾어 가지고 가려는 장면에서 ‘나’와 관계가 시작되고, 양도령과 양도령의 아버지, 룸펜 부르주아로 하는 일이라고는 노름과 여색밖에 없던 한량으로 말년이 고단하게 된 양도령 집안의 내력을 알아가게 된다.

  눈치 채셨나? 라오야오의 외아들 샤오후가 나이를 먹는다면 혹시 모른다. 라오야오의 기대대로 성장하면서 심성이 저절로 곧아져 바른생활 사나이로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약 59배의 확률로 양씨 댁네 셋째 나리처럼 파락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작품은 이렇게 두 가족, 선량한 심성을 가진 어린 아내 완자오화와 파락호 예비소년 샤오후를 둔 라오야오 가족, 헌신적인 효자 양도령과 파락호 출신이며 바야흐로 본격적인 말년 불행을 맞이하고 있는 셋째 나리를 둔 양씨 가족을 대비시키면서 1940년대 중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양념처럼 마음씨 좋고 아름답기까지 한 완자오화의 대사를 통해 소설이 사회와 독자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 노골적인 대사도 나오지만 그래도 조금 비유적인 완자오화의 말을 인용해보자.


  “세상사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소설가는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


  ‘나’는 부르주아나 영웅들의 삶 대신 천민 프롤레타리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주로 그들의 처참한 죽음이란 비극으로 결말짓는 소설가이지만, 라오야오와 양씨 가족, 거기다가 완자오화의 영향을 받아 결말을 바꾼다는데, 흠,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웃펐다. 아무리 작가라도 자기가 쓰는 작품의 주인공을 자기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이 작품에서? 알려드릴까? 따뜻해서 뭉클한 결말도 있고 역시 별로 개연성 없는 (그래서 작위적인) 처참한 죽음의 결말도 있다. 진짜다. 결말이 두 개다.

  하여튼 내가 읽기로는 야오가문과 양씨 가문의 절묘한 대비와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의 결말을 짓는 것 등,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중국의 문호 바진의 (작위적) 작품 구성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몰라도, 촌스러웠다. 다만 내용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이 주둥이만 발랑 까진 독자의 감상이니 선택은 알아서 하시라. 단, 이건 분명히 하자. 난 일독을 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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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05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내용 보다도 작가와 작가 출생지 등에 얽힌 다른 얘기가 더 재밌습니다.😁

Falstaff 2022-07-05 16: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저 위 명단에 관우가 빠졌습니다. 그이는 형주를 지키기 위해 한 번도 청두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육손, 여몽의 꾀에 빠져 죽고 말았거든요. ^^;;
 
켈트의 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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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가 이번엔 한 에이레 사람의 전기를 썼다. 로저 케이스먼트. 이 책을 쓰기 7년 전에도 페루 태생의 화가 폴 고갱과, 스페인-프랑스 혼혈 외할머니이자 노동조합 운동가이자 여성주의 운동가 플로라 트리스탕을 모델로 한 <천국은 다른 곳에>를 쓴 적도 있으니 별난 일은 아닐 터. <천국은….>을 통해 플로라 트리스탕이라는 여성 운동가를 처음 알았던 것과 같이 <켈트의 꿈>을 읽으면서 로저 케이스먼트를 알게 됐다.

  로저 케이스먼트는 1864년 9월, 더블린 교외 샌디코브에서, 8년간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기병연대 출신이자 자신의 아버지, 아들과 이름이 같은 로저 케이스먼트 대위의 딸(아그네스)-아들(찰스)-아들(톰)에 이은 네 번째 아이로 태어난다. 케이스먼트 가문은 18세기 이래 북아일랜드의 신교도적이고 친 영국적 지역인 얼스터의 중심지 앤트림 카운티에 정착한 앵글로-아이리시 프로테스탄트로, 얼스터 지역은 벨파스트의 서남쪽에 위치해 현재도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가 아니라 영국 영토에 속해 있다. 당연히 성공회적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지배를 받을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 땅에서 누렸던 우월한 지위 비슷한 것을 태어나서부터 은근히 향유했을 것이다. 이 가족이 살던 북부 에이레의 정반대, 섬의 최남단에 터를 잡고 살던 앵글로-아이리시 프로테스탄트 가문 가운데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윌리엄 트레버.

  로저 케이스먼트 대위는 영국사람이 아니라 가톨릭을 믿는 에이레 여인 앤 젭슨과 결혼했는데, 앤은 혼인을 위해 개신교로 개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아들 로저가 네 살이 되던 때, 웨일스에 살고 있던 형제를 보러 갔다가 자식들로 하여금 가톨릭 영세를 받게 한다. 이렇게 로저 케이스먼트는 가톨릭 영세를 받은 성공회 교도가 되며, 이건 그의 삶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중요한 기재로 작용하지만 여기에 밝히지는 않겠다.

  그러니 주인공 로저 케이스먼트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약간 혼돈이 생겼을 수도 있다. 반half 잉글랜드, 반 에이레 인. 반half 성공회, 반 가톨릭. 이러한 가치의 혼돈은 천생 잉글랜드 사람이었던 아버지 로저, 할아버지 로저 케이스먼트와 완전하게 다른 길로 접어서는 첫번째 핀트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자, 뜸은 그만 들이고 무엇이 다른지 확 말해버리자.


  로저 케이스먼트는 전직 영국의 영사로, 아프리카 콩고와 페루의 아마존에서 현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행위, 수탈, 인신매매, 신체절단, 기아를 비롯한 노예상태가 각각 벨기에 레오폴드 2세와 영국에 법인을 둔 고무 채취 회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음을 문명국 진영인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폭로해 식민지 내 원주민의 인권보호에 혁혁한 공을 세워 1911년에 기사Sir 작위를 받았고 (영국의 왕에게 작위를 받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작위 수여식에는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기는 했지만), 외무부에서 퇴직할 당시엔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도 받은 바 있는 성마이클-성조지 훈장도 서훈받는다. 그러나 콩고와 아마존에서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 점령의 실체를 진저리치게 절감한 케이스먼트는 영국 외무부를 사퇴하기 이전부터 에이레 독립 단체에 깊숙하게 관여하기 시작했던 바, 유럽 국가에 의한 유럽 지역의 식민지는 통치 중에 피식민지 국민들에게 가하는 학대의 잔혹성만 비교적 가벼울 뿐 기본적으로 그들이 아프리카나 아마존에서 원주민을 학대하며 갖은 부를 독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진리를 체득한 때문이었다.

  어머니 앤 젭슨은 로저가 아홉 살 때 죽고 만다. 아버지 케이스먼트 대위는 이에 몹시 상심해 네 아이들을 자신의 작은 아버지에게 맡기고 호텔에서 숙식하며 고통과 고독에 반 미치광이 생활에 접어든다. 영매, 카드점, 유리구슬을 통해 죽은 아내와 교신에 열을 올리다가 로저가 갓 열두 살이 됐을 때 결핵으로 아내를 따라가고 마는데, 종조부는 3년을 더 학교에 보내고는 이제 더 이상 케이스먼트 대위로부터 보조금 없이 교육을 시킬 여력이 없어 이모네 가족이 있는 리버풀로 이사한다. 여기서 평생 가슴 속 연인과 비슷한 친구로 지낼 외사촌 누이, ‘지’라는 애칭으로 부를 거트루드 베니스터와 친하게 되고, 이모부가 오래 근무했던 영국-서아프리카 상선회사 엘더 뎀프스터 라인에 입사한다. 케이스먼트 대위는 로저가 어렸을 때부터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던 바, 백인이 밟아본 적이 없는 대자연의 통로를 개척한 일, 이 과정의 고통을 온몸으로 용맹스레 인내한 것, 자연의 장애물을 제거한 모험 등에 흥미가 많았던 로저 케이스먼트는 처음엔 회계일을 하다가 서아프리카에 세 번 다녀온 후, 회사를 그만 두고, 마치 프랑스 시인 랭보처럼 훌쩍 아프리카로 떠나버린다.

  로저 케이스먼트가 처음 생각했던 식민주의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살며 때때로 식인의 습관마저 버리지 못한 원시상태의 원주민들에게, 원주민들을, 노예제와 식인이라는 악습을 끝내고, 아프리카 부족들을 야만의 상태에 가두었던 우상숭배와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 소위 3C, Christianity, Civilization, Commerce, 기독교, 문명, 무역이란 삼성위를 바탕으로, 콩고 영토에 무역을 개방하고,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이교도들을 문명화 하며, 기독교화 하기 위한 선한 행위였다.

  로저는 빅토리아 호수 부근에서 행적이 사라진 위대한 인도주의자 탐험가인 리빙스턴을 다시 발견한 웨일스 출신의 미국 기자이자 사실상 냉혹한 원주민 탄압자였던 헨리 모턴 스탠리에게 열광하여 그의 수하에서 일하는 것으로 아프리카에서 첫 발을 뗀다. 얼마 안 있어 스탠리의 정체를 확인한 로저는 그에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인해 대장은 때때로 회한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십니까?”라고 질문하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자기 땅에서 원주민에 가한 무자비한 폭력을 전 세계에 고발하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동시에 콩고 현장과 원주민에 가하는 폭력에서 조국 에이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 조국은 케이스먼트 가문의 성공회-잉글랜드가 아니라 어머니 앤 젭슨의 에이레였기 때문에.


  이 책은 7백 쪽을 넘어가는 장편소설이다. 위에 쓴 것은 첫번째 파트인 “콩고” 까지를 아주 짤막하게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이 작품에 관해 말해보자. 아주 솔직하게 쓰겠다. 가끔 솔직하게 쓰면 생각지도 못한 저 음침한 구석에서 돌멩이가 날아와 눈두덩과 관자놀이를 때리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엣다 모르겠다, 한 번 더 돌 맞고 아프다 싶으면 이까짓 독후감 냅다 지워버리고 또 한 석 달 책 안 읽으면 된다.

  영어에 능숙하신 분은 이 책을 읽는 대신 위키피디아에서 “Roger Casement”를 검색해보시는 건 어떻겠나. 능숙하지 않은 분은 자동 번역기를 돌리거나 하다못해 나무 위키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게 정가 25,000원, 적지 않은 돈과 7백 쪽이 넘는 분량을 읽기 위해 시간을 투여하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정말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예컨대 콩고, 벨기에, 아마존, 아일랜드, 페루, 뉴욕, 런던, 스페인의 각지에서 숱한 사람과 도서관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시대별로 정리한 다음, 그래도 빈 곳은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해 적절하게 작품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위대한 인권주의자이며 실천가, 민족주의자, 혁명가이면서 반역자이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마친 로저 케이스먼트. 이이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렇게 묘사한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 그윽한 회색 눈, 검은 곱슬머리, 맑은 피부, 고른 치아, 절도 있고 신중하고 깔끔하고 친절하고 자상. 아일랜드 억양이 두드러지는 영어를 구사해 놀림감이 되기도 함. 진지하고 끈기있고 말수가 적은 소년. 지적인 준비가 잘 돼있지 않지만 노력파. 내성적인 성격. 금욕적인 습관 때문에 친구가 거의 없음. 골초.


  로저 케이스먼트가 체포되고, 가택수색에서 일기장이 발견되고, 일기장 안에서 당시는 물론이고 향후 50년 동안 혐오범죄 가운데 하나였던 동성애적 취향이 드러나, 동성애를 향한 성적 갈등의 해소에 관한 약간 쑥스러운 이야기를 억지로 결점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케이스먼트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추호도 뜻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갖춘 정의남.

  일생을 통해 단 한 번, 전범국가 독일과 연합해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판단의 오류를 겪었을 뿐인 무결점의 사나이. 그를 위한 연대기. 이를 위해 꽉 짜여진, 그래서 독자는 그냥 읽어주기만 하면 될 뿐 책을 읽으며 결코 머리 굴릴 기회를 주지 않는 친절함. 그리하여 주인공 로저 케이스먼트는 자신의 신념에 관하여 조금의 의심도 없는데, 세상에 이런 인간도 있는가. 나는 전기물이 아닌 “현대” 소설로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게 뭡니까? 그래도 명색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인데 말이지. 왜? 아예 논문을 쓰시지 그랬을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띈 문장 하나.

  “삶은 갑자기 소극笑劇으로 바뀌는 연극처럼 부조리한 것이 아닐까?”




* 요사가 아닌 다른 작가가 이 책을 썼다면 별 넷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전작들로 한껏 고양된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점이 나로 하여금 별 하나를 더 깎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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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7-01 0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사가 쓴 ‘소설’ 얘기 맞지요??
요사에게 던질 짱돌을 찾아야….

Falstaff 2022-07-01 06: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주인공을 너무 전형화 시켜서 오히려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아예 내놓고 전기나 평전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쓰기엔 또 소설가 특유의 창작욕이 내버려두지 않았던가 봅니다.
뭐 짱돌 씩이나요. 혹시 사셨어요? 그럼 몰라도.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7-01 0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고 이 책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안타깝네요. 요사 예전 책이나 찾아봐야겠네요. ㅠㅠ

Falstaff 2022-07-02 08:08   좋아요 1 | URL
ㅎㅎ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면..... 특히 3부에서 더 그런데, 재미 없어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7-01 0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저 케이스먼트라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의 전기소설이군요.
이 책 비싸더라구요. ㅎ
요사가 썼기에 세개! 작가에 대한 골드문트님의 애정이라고 봐도 되겠죠?

Falstaff 2022-07-02 08:09   좋아요 2 | URL
옙. 그렇습니다.
제가 요사를 많이 좋아합니다. 번역해 나온 그의 책은 거의 다 읽었거든요.
전 <천국은 다른 곳에>가 제일 좋았답니다. ^^

포스트잇 2022-07-01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사가 왜 이 인물의 전기소설을 쓰고 싶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습니다.
궁금하고 기대하는 책을 먼저 읽어보신 분들의 이런 소중한 후기, 고맙습니다.^^

Falstaff 2022-07-02 08:12   좋아요 1 | URL
요사의 특기 가운데 하나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독재자들을 한 명씩 돌려 까는 거였는데 이젠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하여튼 페루를 비롯한 그곳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거 같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학대를 지적하고, 반식민주의와 독립을 주장한 로저 케이스먼트라면 당연히 요사가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레이스 2022-07-01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안사고 기다렀는데... 일단 빌려봐야겠네요^^
이런 리뷰 넘 감사해요 ~

Falstaff 2022-07-02 08:13   좋아요 1 | URL
옙. 대출해 읽는 게 갑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