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원칙은 자율과 다원성에 근거를 둔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두려움없이 표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겐 정말 하찮아 보이는 생각이라도 말이다. 다양한 의견이 오랜 논의 끝에 수렴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절차이자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이다. 표면적으로는 다툼이 일어나고, 결정에 이르는 길이 지지부진해 보여도 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하지 말자.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야 말로 이땅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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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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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추상적이다. 추상이라함은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 무한하며 총체적인 속성을 유한하고 파편적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무한한 차원을 가진 우주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유한한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바로 추상화이며 언어가 가진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이러한 언어의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하고있다. 그의 소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우리가 언어로 사고하는 고정적인 시선을 초월한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설명하고 바라보는 세상은 어쩌면 제한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을때 느껴지는 현기증은 그의 소설이 난해해서라기보다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때 느껴지는 아찔함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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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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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새누리당의 모 의원이 성범죄자를 물리적으로 거세하는 법을 입안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레이코프의 책인<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이 법안이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이러한 법안의 기저에는 어떠한 가치가 숨어있는지 밝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레이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진보와 보수의 기저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 모형이고, 다른 하나는 자애로운 부모의 모형이다. 엄격한 아버지는 현 시대를 구성하는 규칙을 옹호하며 이 규칙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징벌을 내리는 존재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부자들은 사회적 규율을 내면화함으로 성공한 사람들이고, 가난한자들은 나태함으로 실패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난은 일종의 징벌과 같은 것으로 이들을 위한 복지는 줄이는 것이 마땅하고, 부유함은 반대로 열심의 산물이므로 감세와 같은 정책으로 더 큰 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아이들을 계도해야하는 도덕적 절대자에 위치시키기 때문에 소통보다는 일방향적인 지시에 익숙하다. 따라서 이러한 모델은 일사분란함을 특징으로 가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한가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진보의 원형은 자애로운 부모에 가깝고 이런 원형에는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자녀는 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야하는 존재이지, 일방적인 길들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또한 자녀들이 일정한 나이에 이르러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때까지 보살펴야한다는 관점을 가진다. 자애로운 부모의 모형에서 복지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걸음을 떼고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을때까지 도와주는 보살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립할 수 있을때까지 교육, 보육 및 의료에서 보편적인 복지를 확대해야하고 그래야만 국민들이 자신의 꿈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원형을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은 하나의 성 역할에 국한하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성적 특성도 우위에 서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따라서 어느 누구도 타인을 억압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정의로 확대된다.

 이러한 통찰은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다시 새누리당의 성범죄자 물리적 거세 안으로 돌아가보자. 엄격한 아버지의 모형을 추구하는 이들이 바라볼때 성 범죄자들은 이미 사회적 규율을 내면화하지 못한, 심판을 받아야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화학적 거세나 물리적 거세는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범죄자에게 행해지는 징벌에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듬어 주었는지는 그들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반면 진보는 범죄를 행하게 만든 구조에 관심이 있다. 표면에 드러나는 범죄 이전에 사회가 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지를 돌아보고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감성적으로는 전-혀 동감을 얻을 수 없기때문에, 물리적 거세와 같은 징벌적인 방법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욱 더 열광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의 표출이 오늘날의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행동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5년간 소통의 부재로 비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것 역시 엄격한 아버지의 모델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원형을 무의식적으로 체화하고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은 계도되어야할 문제아일 뿐인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거세게 반대할수록 그 대상은 단순히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쟁이에서 악(惡)의 화신으로 변해간다. 조지 부시가 자신들의 반대측에 위치한 세력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새누리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이번에도 국민과의 소통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엄격한 아버지의 모형에 기반한다면, 그 누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더라도 또 다른 소통의 불가능만을 양산해는 것은 그 구조에서는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소통 자체를 원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지시해주기를 바라고, 또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수를 지칭하는 정치인들보다 영혼이 없는 그들이 나는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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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념이 점점 현실에서 멀어질때,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으로 흘러갈때 재빨리 그 우물 안에서 나와야만한다. 현실에 기반하지않은 어떤 것도 뜬구름 이상이 되지 못한다. 디테일 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미스 반 데 로에의 말이 와닫는 것은 오늘의 경험이 꽤나 의미 깊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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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예술 및 문화 관련에서 잘 선정이 되지 않는데, 이번에는 하나정도 선정되었으면하는 바램이 있네요. 그래서 예술 및 문화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그 중 첫번째 서적입니다. <배흘림기둥의 고백>은 전통건축이 생겨난 근원을 역사적인 사료를 통해 치밀하게 밝히고 있는 책인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를 개정한 것입니다. 어떠한 양식을 사전적 설명이 아닌,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양식에 이르렀는지를 마치 탐정처럼 추리해가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 이전에 숨어있는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궁금하시죠? 저는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아름다움이 치열한 '생존전략' 에서 나온다는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개정판은 좀 더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기 쉽게 자료와 설명을 보충했다고 하는군요. 건축을 전공하지 않는 독자가 읽어도 고개가 끄떡여질법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예술 및 문화 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 두번째입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셨더군요. 미술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고전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에 그리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관람자에 의해 완벽하게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관람자의 열린 해석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와닫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개가 짖는 것을 유심히 듣고 그 개가 배고픔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번식을 하고 싶다는 신호인지, 적대감의 표현인지를 일일이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단지 개는 짖어댄 것 일 뿐인데 말이죠.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뒤샹의 <샘>과 같이 작품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대 미술의 경우 누가 더 말도 안되는 자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처럼 보입니다. 기존 관념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그런식으로 치면 치기 어린 고등학생들의 짖궂은 장난도 예술의 일부분이겠지요. (독)설이 길었습니다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통해 이런 저의 좁은 시야가 좀 더 넓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예술 및 문화 서적 밀어주기 프로젝트 세번째.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의 관념이 다분히 서양에서 물건너온 것이라는 것, 이미 모두가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관념이 되버린 듯 합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오늘날의 미인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높은 콧대와 큰 눈 보다는쌍거풀 없는 눈과 동글납작한 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은 다분히 학습된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아름다움의 관념에 학습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지고, 또 그것이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영속해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알지못하는 좀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고, 고정된 아름다움에서 자유로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해봅니다.



 

 흔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시대를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숭고한 맛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오늘날은 보이는 것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배부르지만 무언가 정신적으로 공허하게 말이죠. 결국 이 시대의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은 이 두가지 - 물질과 정신 - 가치의 조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며 두 가치의 중간점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읽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책. 오늘날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시사만화 <장도리> 단행본 입니다. 길어지면 분노할게 분명하니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둠이 길면 곧 아침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해서 승리한 사람은 박수받고 쓰러진 사람은 보듬어 다시 달리게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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