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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황정은 작가의 신작 “연년세세”가 나왔다
문예지에 나눠 발표한 두 편과 미발표작 두 편을 모은 연작소설 형식이지만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말고 경장편 소설처럼 읽어보면 될 것 같다
1. 기본적 소설 소개
2. ‘작가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는 소설 “연년세세”
1. 기본적 소설 소개
이 소설은 ‘순자씨’로 불리는 1946년생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과 한세진의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나는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일 경우 인물들의 이름과 직업 서로간의 관계 등을 그려보곤 하는데 “연년세세”를 읽으며 등장 인물들을 정리해보았다.
대가족은 아니지만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먼저 주인공이랄 수 있는 이순일(순자 씨)과 그의 남편 한중언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장녀 한영진, 차녀 한세진, 막내 아들 한만수가 있고
결혼한 한영진은 남편 김원상과의 사이에 예범, 예빈을 두고 있다.
첫 번째 수록작 ‘파묘’에서 이순일이 찾아가는 묘는 외조부의 무덤이다.
그리고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미국 이름 안나)과 그의 아들 노먼 카일리 그리고 카일리의 딸 제이미 정도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한세영의 여자친구 하미영 역시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관계들을 “연년세세” 라는 제목의 소설로 써냈는데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의 소설일지 읽기 전부터 궁금하기도 했다.
소설 “연년세세”를 이루고 있는 네 편의 단편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짜임세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파묘 : 이순길과 한세진이 외조부의 무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이순길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현재 이순길의 집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하고 싶은 말 : 제목의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순길의 장녀 한영진의 하고 싶은 말이다
사위와 함께 사는 친정 부모, 그리고 번듯한 직업이 없는 동생 한세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한영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장녀로써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명 : 이순일의 어렸을 적 이야기가 한층 더 깊이 있게 다뤄진다. 이순일과 이름이 같았던 어렸을 적 친구 순자의 이야기나 고모네에서 허드레일을 하게 된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사위집에서 딸과 함께 사는 현재의 이야기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이모 윤부경과 만나게 되기도 한다.
다가오는 것들 : 한세진과 이모 윤부경의 손녀 제이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가운데 한세진의 여자친구이자 동거인 하미영 까지 포함해서 생각해보면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 ‘작가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는 소설 “연년세세”
비교적 얇은 분량의 소설인 “연년세세”를 다 읽고 한 며칠 동안 딱히 떠오르는 말이나 느낌이 없었다 일전에 나는 앞서 나온 “디디의 우산”을 읽고 들뜬 마음이 되어 “이 작품으로 황정은 2기의 시작이 되는건 아닐까”라는 말을 했었다.
그만큼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은 어떤 변화 아니면 도약 같은 그런 느낌을 준 작품이었다 “연년세세”의 발간 예정 소식을 듣고 다른 때보다 살짝 기대가 더 컸던 건 그 “디디의 우산” 다음으로 나온 첫작품이기 때문이다
“연년세세”를 다 읽은 지금 다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동시에 되고 있다.
물론 우리의 황작가는 잘 써낼것이라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서도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_작가의 말
책 제일 뒤편에 실린 작가의 말 일부를 옮겨와 봤다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1946년 생 이순일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순자’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어머니가 이순길과 비슷한 세대라면 순자, 미자, 혜자처럼 이름이 ~자 로 끝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황정은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에 주목했고 그것을 소설로 썼다. 그 말은 곧 누구나 알 법한 흔한 이야기의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각오했다는 것이다.
물론 흔하고 별 것 아닌 걸 낯설게 만드는 게 소설가의 재능이 하는 일이긴 하다.
이 리뷰 영상을 보고 소설을 볼지 안볼지 모르겠지만 사실 소설 “연년세세” 속의 이야기는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그 흔함을 어떻게 소설화했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
그게 궁금한 적이 있었고 실은 지금도 궁금하다.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로 읽히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
황정은이 이 소설에 대해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라고 한 것은 가족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싶다.
읽기에 따라 가족이라는 관계가 읽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가족 구성원 개인의 이야기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이순길의 세 자식들이 각자 선택한 상황이다.
첫째 딸 한영진은 결혼과 출산을 거쳐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하는 그런 가족 형태의 일원이 되었다.
둘째 딸 한세진은 아직 미혼이지만 동거인인 여자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 동거가 일시적인지 아닌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한세진과 하미영의 정서적 교감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들의 동거는 단순 동거 이상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 형태 역시 가족의 한 형태로써 충분히 자리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내 아들 한만수는 현재 뉴질랜드에 나가 있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영진이나 한세진도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것이 막내에게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아들인 한만수가 집안의 대를 이어나가야 하겠지만 그런 사정과는 좀 멀어 보인다.
이렇듯 세남매의 경우만 보더라도 제각각의 형태로 가족을 꾸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각 단편이 발표된 지면을 보았는데 두 번째로 실린 ‘하고 싶은 말’의 경우 발표 당시의 제목은 ‘연년세세1: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것으로 보면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을 제일 앞에 배치하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지만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파묘’를 제일 앞쪽에 배치했다
이 이야길 왜 하냐하면 방금 전 이야기한 이순길의 세남매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파묘’에서 이순길은 자신이 돌봐오던 외조부의 무덤을 앞으로는 거동이 불편해진 자신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고 자식들 또한 찾아올 것 같지 않아 무덤을 파내고 화장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가정의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이 단편 ‘파묘’를 제일 앞에 배치시킨 것은 이 작품이 단순하게 가족내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과 시스템의 와해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담겨진 게 아닌가 한다.
그러기 위해 그 신호로써 무덤을 없애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진다는 뜻의 “연년세세”라는 제목은 어제 오늘까지는 어찌어찌 이어져 왔지만 내일은 장담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반영해보자면 아이러니한 제목이며 작가적 센스가 돋보이는 지점 같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읽는다면 채 100년이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전통적 가족의 해체와 내일의 가족 형태를 집약적으로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제도적인 측면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다루는 소설은 아니라고 말해 둔다.
그리고 소설 속의 작은 장치같은 것들에 나름의 의미부여를 해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파묘’에서 이순길은 외조부의 무덤가에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등산화를 벗어두고 오게 된다. 그 등산화의 경우 파묘해 없어진 무덤의 허전함이나 다시는 올 수 없을 것이라는 쓸쓸한 마음을 두고 돌아서야 하는 이순길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아 읽고 나서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벗겨진 신발이 남겨지는 장면은 쉽게 쓰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론 과잉 해석이랄 수도 있겠는데 장녀 한영진의 직업을 이부자리 판매 사원으로 설정한 것도 예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불이라는 사물의 쓰임새나 이미지를 떠올려 봤을 때 인물을 부각 시켜주는 설정이었다.
나는 앞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오만 가지 경험을 다 한다고 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 지간에도 끝내 하지 못하는 말, 하지 말아야 하는 말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연년세세”에서 식구들 간의 하지 못한 말에 대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의 여운은 이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 깊이감을 한층 더 느끼게 하는 지점이었다.
이 소설을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하는 문장을 꼽으라면 다음의 문장이다.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_182p
어쩌면 이 한 문장과 만나기 위해 읽어왔나 싶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는 것이라는, 그게 나는 작가 황정은이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쯤에서 도대체 이 소설은 뭐냐고 할법한데
딱히 이거다 하고 할 말은 없다. 내가 읽은 건 이것밖에 없다.
가족소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다.
끝으로 다시 한번 작가의 말 일부를 옮겨보며 영상을 마친다.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로 읽히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_황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