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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제목만 봤을 땐 물리학 이론서인가 하고 지나칠수 있다. 그런데 분명 소설분야의 카테고리인데 이게 왜 검색되나 해서 다시 살펴보니 분명 소설이었다.
아니 무슨 소설 제목이 이래서야 누가 읽겠나 했는데
이 이론이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보니 아 잘 따왔네 잘 따왔어, 이런 감각쯤은 있어야지 했다.
제목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구상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품을 써놓고 제목거리를 찾았는지 선후관계는 모르겠지만 제목 잘 지은 소설을 꼽으라 할 때 손에 꼽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국내작품 중에 상징성 있는 제목으로 신경숙의 부석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소설은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낭독해지며 꽤나 유명해지기도 했다.
절판된 이후 중고책이 꽤나 고가로 거래 되기도 했는데 최근 문학동네에서 재발간 되었다.
읽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번역문장이 부자연스런 부분 눈에 띈다.
동일한 번역자 본이라서 문장이 크게 바뀐 건 없고 토씨 정도만 다듬은 걸 확인할 수 있다.
작가들이라면 읽어보겠다 싶은 단편들이고 문장 사이 사이에 콕콕 박히는 서늘한 문장들이 하나씩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
나이가 들수록, 하루 이틀 전에 경험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11p
나라면 안 할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안 해.
40p, 136p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59p
그런 문장들이 환기시키는 삶의 불안 허무, 회의, 아련함..., 알 수 없음과 같은 정서들을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앤드루 포터의 특징인가 보다.
책날개에 준비 중이라는 장편소설이 2015년 발행된˝어떤 날들˝일듯싶어 리뷰들을 보자니 단편 만큼의 뭔가?는 부족한듯 싶어 안볼것 같다.
˝양자전기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 에서 리차드 파인만은
낮에 램프를 켜놓고 보면 빛이 유리창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100개의 빛입자 중 평균 네 개는 반사되어 돌아오고 96개는 유리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빛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옮긴이의 말에 설명된 이론을 읽어보면 왜 표지제목과 단편의 제목이 그것인지, 10편의 단편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역시 알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것에 있는지 짐작한다.
남성 작가가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쓴 이 소설에서 여성 작가가 남편의 입장에서 쓴(아내의 방 - 은희경)작품이 오버랩 된다. 오래전 읽고 난 후 닥쳤던 어떤 불편함 같은 감정이 생각 났다. 공통점이라면 배우자의 바람 같은 것인데 지금은 그저 무덤덤할 뿐. 특별한 이유를 갖다붙일 수 없는데도 문득 떠올랐다. 이런 이야기의 소설이 어디 한두 편이던가. 많은 소설이 삼각 관계 아닌가.
우리는 흔히 나도 모르게 그만 ... 했다,는 말 곧잘 한다. 내가 하면서도 나도 모른다는 게 웃기지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네 개의 빛 입자처럼. 왜 선택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참. 그런 내 마음은 누구의 마음이며 내 것이 맞기나 한 건지.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지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하고 예상한 대로 산 사람 얼마나 있을까...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우주이고 인간도 그 우주의 한 요소라 본다면 인간에게 위 이론이 적용 되는 건 당연한 일. 예측불가능성이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으니 인간의 모든 일 역시 예측불가능성이 내포되어 있겠지. 그런 두 인간이 만나는 일이라면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측불가능성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
예측불가능한 일이 사라진 인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일이 다 예방 가능해지는 것이다. 헤더가 로버트를 따라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로버트가 별거할 일도 없다. 그것은 진정 유토피아일까 아닐까. 물론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우주의 물리법칙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인간이 그 법칙을 조종 가능해진다면 우주의 종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