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 창비 / 301쪽
(2015. 10. 15.)

 

 


  "체면이 뭐가 문제라. 사람이 지 손으로 일하고 지 손으로 농사지우서 지 입에 밥 들어가마 그마이지. 남 쳐다볼 기 뭐 있노. 하이고, 그란데 와 자꾸 눈이 깜기까."
(P.31)

 

 

  선생은 천성이 술을 좋아하였는데 사람들은 선생이 가난한 것은 술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은 어느 농사꾼보다 부지런했고 농사일에도 익어 있었다. 문중 땅과 나이가 들어 농ㅇ사가 힘에 부친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주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술로써 망한 것이 아니라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나간 것이다. 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이 뼈였다.
(P.38)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P.40)

 

 

  "자네는 잘생긴 게 뭔지 아는가. 미남이 뭔지 아냐구. 세상에는 수 많은 미남이 있어.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어디에나 미남은 존재하거든. 그렇다면 본직적으로 니만은 뭔가. 진정한 미남은 그걸 아는 법이지. 가짜들은 몰라. 가짜 미남은 진실을 모르지."
(P.172)

 

 

  간부와 임원들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가축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하긴 나도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간부나 임원으로 보았다.
(P.228)

 


  결혼은 집안끼리 하는 거야. 신랑 신부는 집안, 그러니까 유전자의 집합체간이 유전자 교환의 매개체에 불과한 거지. 사랑하네 뭐네 착각을 많이들 하는데 그런 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우수한 조합을 통해 우수한 형질의 개체를 번식하느냐가 문제여."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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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서가
신순옥 / 북아비북 / 276쪽
(2015. 10. 15.)

 



  삶이란 본질적으로 다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 안에서 그동안 불러일으켰고 거듭해서 불러일으키는 것을 종종 우리 자신으로 경험하며, 인간관계, 특히 사랑의 관계에서 가장 내밀한 자기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것이다.
(P.20)

 

 

  자녀를 강하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다. 이른 시기에 부모로부터 자녀를 부리시키는 것이 어떤 근거에서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성장하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분리 과정에서 부모가 놓치기 쉬운 자녀가 겪을 수 있는 불행감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때로 무지랄 수밖에 없는 맹목적인 사랑의 이름으로, 자녀에게 모진 단계를 넘어 잔인한 수준의 양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일이다. 자녀가 주는 벌을 달게 받을지라도 벌 받는 기간이 길지 않게 하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P.54)

 


  시오리는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한 권의 책은 그대로 한 권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시오리 친구는 책을 좋아하는 시오리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시오리는 책을 싫어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된다. 날이 좋은 날에도 도서관에 가야 하는 이유를 시오리는 이렇게 말한다. "읽고 싶은 책은 수없이 많다. 더구나 내가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 비오는 날에만 책을 읽는다면 도저히 다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며 독자를 꼬드긴다.
(P.83)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의 저자는 살아가면서 그림책을 읽을 시기가 세 번 정도 찾아온다고 말한다. 아이였을 때,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인생 후반이되고 나서다.
(P.122)

 

 

  동화는 고통의 상실감은 마음속에 묻어둘 게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나도 그렇지만 부모들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가 자녀의 살멩 드리우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전염성이 강한 삶의 어두운 속성에 자녀가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못 보고 못 듣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차단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상실감 정도는 훌훌 털어버리고 밝고 꿋꿋하게 살아주길 바란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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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돌베개 / 400쪽
(2015. 10. 08.)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걱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P.24)

 

 

  고독한 상태는 일종의 버려진 상태입니다. 스스로 나아간 상태와는 동일한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창조의 산실'로서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독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처하고 있는 이 어두운 옥방의 고독이 창조의 산실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찬란한 햇빛 아래 산과 들과 숲과, 건물과...... 모든 것이 저마다 생동하는 우람한 합창 속에서 내가 지키고 있는 이 고독한 자리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도대체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
  고독은 고득 그것만으로도 가가스로 한 짐일 뿐 무엇을 창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고독을 깨뜨리지 않고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우렁찬 저 햇빛 찬란한 합창을 향하여 문 열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P.60)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 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징역 속의 동거는 타인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P.115)

 

 

  <시경>에 담긴 시들은 그 시대의 여러 고뇌와 그 사회의 여러 입장을 훌륭히 반영함으로써 그 시대를 뛰어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시대에 충실하였음은 물론 당시의 애환이 오늘의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까지 면면히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시가 그 시대를 뛰어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P.171)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봅니다.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마다의 노인'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언제 한번 온몸으로 떠맡은 일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만 달리는 일이 부질없기가 얼음 쪼아 구슬 만드는 격입니다. 그나마 내 쪽에서 벼리를 잡고 엮어간 일관된 사색이 아니라 그때 그때 부딪쳐오는 잡념잡사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연습 같은 것들이고 보면 빈약한 추수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위에 정직한 최선을 다하지 못한 후회까지 더한다면 이제 문닫고 앉아 봄을 기다려야 할 겨울이 더 길고 추운 계절로만 여겨집니다.
(P.225)

 

 

  세모의 사색이 대체로 저녁의 안온함과 더불어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는 이른바 유정(幽情)한 감회를 안겨주는 것임에 비하여, 새해의 그것은 정월달 싸늘한 추위인 듯 날카롭기가 칼끝 같습니다. 이 날선 겨울 새벽의 정신은 자신과 자신이 앞으로 겪어가야 할 일들을 냉철히 조망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P.229)

 


  증오는 그것이 증오하는 경우든 증오를 받는 경우든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게 마련이지만,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有和)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대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P.256)

 


  장승처럼 선 자리에 발목 박고 세월보다 먼저 빛바래어가는 우리들에겐 수시로 우리의 얼굴을 두들겨줄 여름 소나기의 질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릎 칠 공감을 구하여 깊은 밤 살아 있는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같은 앞음을 가지기 위하여 좁은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기도 하며, 어줍찮은 타산의 돌 한 개라도 소중히 간수하면서......, 우리의 내부에서 우리를 질타해줄 한 그릇의 소나기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P.257)

 


  제가 징역 초년,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개달은 사실은 생각을 녹슬지 않게 간수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녹을 닦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컨대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징역 속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맨 처음 시작하는 일이 책을 읽는 일입니다. 그러나 독서는 실천이 아니며 독서는 다리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한 발 걸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 발 걸음이라 더디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현실의 튼튼한 땅일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다른 모든 불구자가 그러듯이 목발을 짚고 걸어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목발로 삼은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 즉 '과거의 실천'이었습니다.
(P.277)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이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서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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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허먼멜빌 / 김석희 / 작가정신 / 720쪽
(2015. 10. 01.)

 

 


시민 공동체, 즉 국가라고 불리는 그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인공적 인간일 뿐이다.
-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첫 문장
(P.17)

 


그대가 난생처름 배를 타고 여행할 때, 당신이 탄 배가 이제 물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로 나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당신이 탄 배가 이제 물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로 나왓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신비로운 전율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다를 신성ㅇ하게 여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스 사람들이 바다의 신을 따로 두고, 그 신을 최신 제우스이 형제 자리에 앉힌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들은 하나도 무의미하지 않다. 샘물에 비친 아름다운 영상을 잡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물에 뛰어들어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는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바로 그 영상을 우리는 모든 강과 모든 바다 속에서 본다. 그 영상을 결코 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이고, 이것이야말로 그 모든 것의 열쇠인 것이다.
(P.33)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은 천지 차이다. 돈을 내는 행위는 과수원의 두 도둑이 우리에게 물려준 괴로움 중에서도 아마 가장 불쾌한 괴로움일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것' -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기거이 우리 자신을 파멸에 내맡기고 있는가!
(P.35)

 


우리는 이 삶과 죽으이라는 문제를 매우 잘못 생각해온 것 같아.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람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인지도 몰라.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뿐인지도 몰라. 원하는 사람은 내 몸뚱이를 가져가도 좋다. 맘대로 가져가. 이건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 삼창! 구멍 뚫린 보트, 구멍 뚫린 몸뚱이는 언제든지 올 테면 와라. 하지만 제우스라 할지라도 내 영혼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으리라.
(P.71)

 

 

내 영혼은 굴복하여 노예가 되고 말았다. 미치광이 한테! 그런 전쟁터에서 제정신을 가진 자가 무기를 버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속 깊이 뚫고 들어와 나의 이성을 몰아내버렸다! 그의 불손한 목적은 뻔히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그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좋든 싫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그에게 묶어 버렸다. 그는 나를 밧줄에 묶어서 끌고 가지만, 나에게는 밧줄을 자를 칼이 없다.
(P.223)

 

 

인간의 광기란 참으로 교활하고 음흉할 때가 많다. 겉보기에는 광기가 사라진 것 같지만 사실은 훨씬 포착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형되어버린 것에 불과할 때도 있는 것이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가라앉기는 커녕 점점 심해지고 깊어졌다. 그것은 저 고상한 북쪽의 강인 허드슨 강이 산악지방의 골자기를 지날때 폭은 좁지만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게 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경우, 좁게 흐르는 편집증 물줄기 속에 그의 넓은 광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듯이, 그 넓은 광기 속에는 그의 타고난 지성이 하나조 죽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엇다. 그지성은 전에는 살아있는 주체였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격렬한 비유가 허락된다면, 에이해브의 특별한 광기는 전반적으로 온전한 그의 정신을 공격하여 사로잡고, 중심에 모인 모든 대포를 자신의 무분별한 표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힘을 잃기는 커녕, 그가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합리적인 목표에 쏟아 부었던 것보다 수천 배나 더 많은 잠재력을 그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되었다
(P.243)

 

 

에이해브는 다른 문제도 잊지 않았다. 강함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인간은 모든 천박한 생각을 경멸하지만, 그런 순간은 금세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신이 만든 제품인 인간의 본질적 상태는 바로 천박함이고,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설령 흰 고래가 이 야만적인 선원들의 마음을 충분히 자극하여 그들의 야만성 주위에 너그러운 의협심까지 만들어낸다 해도, 그래서 그 때문에 모비 딕을 추천한다 해도, 그들은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욕을 채워줄 음식도 먹어야 한다
(P.274)

 


우연은 한편으로는 필연이라는 직선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제한을 받고 측면에서는 자유의지가 그 움직임을 한정하지만, 그래서 필연과 자유의지의 지시를 받지만, 우연도 그 두 가지를 번갈아 지배하면서 사건의 최종 형태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P.277)

 


인간을 가장 화나게 하고 약 올리는 것은 모두 몸뚱이가 없다. 하지만 물질로서는 몸뚱이가 없지만, 힘으로서는 실체를 갖고 있다. 거기에 가장 특별하고 가장 교활하며 가장 악의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다시 단언하건대, 바람이란 존재에는 매우 찬란하고 우아한 무언가가 있다. 적어도 그 따뜻한 무역풍은 맑은 하늘에서 강하고 꾸준하며 활기차면서도 온화하게 곧장 불어대고, 바다의 비열한 조류가 아무리 방향을 바꾸고 갈지자로 흘러도, 육지에서 가장 거대한 미시시피 강이 막판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진로에서 벗어나도, 무역풍은 절대로 방향을 바구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곧장 불어간다. 영원한 양극에 맹세코! 내 배를 독바로 불어 보내는 이 무역풍, 또는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 절대로 변하지 않고 힘으로 가득 찬 무언가가 배처럼 용골을 가진 내 영혼을 불어 보내고 있다. 바람을 위해 건배!
(P.669)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빌어먹을 고래여, 나는 너한테 묶여서도 여전히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그래서 나는 창을 포기한다!"
  작살이 던져졌다. 작살에 찔린 고래는 앞으로 달아났고, 밧줄은 불이 붙을 것처럼 빠른 속도로 홈에서 미끄러져 나가다 엉클어졌다. 에이해브는 허리를 구부려 그것을 풀려고 했다. 그래서 엉킨 밧줄을 풀기는 했지만, 밧줄의 고리가 허공을 날아와 그의 목을 감았기 때문에, 그는 터키의 벙어리들이 희생자를 교살할 때처럼 소리 없이 보트 밖으로 날아갔다. 선원들은 그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다음 순간, 밧줄 끝에 매달린 묵직한 고리가 완전히 텅 빈 밧줄통에서 튀어나와 노잡이 한 사람을 대려눕히고 수면을 친 뒤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P.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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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아디스 워튼 / 송은주 / 민음사 / 457쪽
(2015. 8. 25.)

 

 


  "여성들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의 선언은 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기로 합의한 문제의 뿌리를 건드렸다. '참한' 여자라면 아무리학대를 당해도 그가 의미한 거과 같은 자유를 절대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이 너그러운 남성들은 뜨거운 논쟁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이 권리를 기꺼이 허용해 줄 자세가 되어 있다. 이러한 말뿐이 관대함은 사실 모든 것을 묶어 놓고 사람들을 낡은 양식에 속박하는 엄격한 관습을 기만적으로 위장한 데 불과해 그녀가 교회와 국가의 격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할 행동을 하더라도 옹호해 주겠다고 맹세했다.
(P.59)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본성은 솔직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본능적으로 뒤틀린 교활함에 가득 차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순수가 어머니, 숙모, 할머니 들과 이미 죽은 지 오랜인 여자 선조들의 음모로 교묘하게 조작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왕처럼 마음썻 부술 수 있는 눈으로 빚은 조각인 양 그가 원하고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강요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이 순수에 억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P.62)

 

 

  아처는 항상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타고난 성격에 비하면, 우연과 환경은 사람의 운명을 만드는 데에서 사소한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는 올렌스카 부인에게서 처음부터 이런 성격을 감지했다. 조용하고 거의 수동적이기까지 한 이 젊은 여인은 아무리 몸을 사리고 피해보려 무진 애를 써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정해진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너무나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아온 나머지 그런 상황을 야기하는 본인의 성격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놀라는 법이 없는 것을 보면 그녀는 산전수전 다 겪는 와중에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녀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보면 어떤 것들과 맞서 왔는지 짐작이 갔다.
(P.147)

 

 

  교활한 거짓말쟁이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말해 주지만, 아예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거짓말쟁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 떠올랐다. 메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괴로움은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한 척하려고 앴는 모습을 봐야 하는 괴로움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P.348)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렇죠? 그저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고 그 밑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하셨을 따름이지요. 사실 귀머거리에 벙어리들 수용소 같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보다, 부모님 세대가 서로의 은밀한 속마음을 더 많이 알고 계셨다고 생각하요."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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