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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범우사 / 534쪽
(2015. 01.18.)

 

 

 

  전쟁과 평화는 다른 유명한 고전들과 달리 유수의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한 판본이 다양하지 않다. 톨스토이 번역은 "박형규"라는 얘기만 듣고 무조건 범우사 번역본으로 시작해서 작년부터 떠듬떠듬 1,2권을 읽고는 중간에 조금 쉬었다가 계속 3권까지 읽었지만 3권도 힘겹게 2주만에 읽었다.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속도가 나질 않는다. 3권과 같이 4권을 빌려왔는데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처럼 전쟁에 대한 내용들은 항상 내겐 감흥이 떨어지는 소재들인것 같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레미제라블의 워털루 전쟁 부분도 참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아마 배경이 되는 역사적 지식의 부족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빠져든다...

 


 

  우리에게는 나폴레옹의 권세욕이 왕성하고 알렉산드르가 완강하고, 영국의 정책이 교활하고 혹은 올덴부르크 대공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수백만명에 이르는 그리스도교도가 서로를 살해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에는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과, 살육 내지 폭행의 사실 그 자체와는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 또 대공이 모욕을 당했다고 해서 어째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유럽의 한쪽 끝에서 몰려와 스몰렌스크 현이며 모스크바 현의 주민들을 살해고 파멸시키고 또 자신들도 상대방에게 살해당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들, 역사가도 아니며 연구의 과정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은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사건을 관찰한 후세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원인은 무수하게 상상된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깊이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많은 원인이 발견된다. 그리고 규명된 원인의 어느 하나를 보아도, 또는 총체적으로 보아도 그 자체로서는 한결같이 정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사건의 거대함에 비하면 너무도 사소하기 짝이 없고 우연히 중복된 다른 원인 없이는 또 그러한 시각을 야기시키기에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한결같이 거짓된 것으로 생각지 않을 수 없다.
(P.8)

 

 

  우리는 저마다 자기를 위하여 생활하고 자기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유를 이용한다. 그리고 자기는 지금 이러저러한 행위를 할수도 있고 이것을 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자기의 온 존재로서 느낀다. 그러나 그가 그 행위를 하자마자 시간의 어느 한 순간에 행해진 이 행위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 되고 자유를 상실한, 그저 선천적인 의미밖에 띠지 않는 역사의 소유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P.10)

 

 

  역사상의 사건에 있어서 이른바 영웅이란 사건에 명칭을 부여한 레테르(라벨)와 같은 것이고, 레테르와 마찬가지로 사건 그 자체와의 관계는 가장 적은 것이다. 자기들로서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영둥들의 일거일동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자유가 아니라 역사의 온갖 진행과 관련되어 있고 영겁의 옛날부터 결정지어져 있는 것이다.
(P.11)

 

 

  피에르는 말했다.
  "전쟁이란 장기와 같은 것이라고 하니까요."
  "그렇지" 하고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자지만 약간 차이가 있어. 장기에서는 밀야, 말을 한 개 움직이는 데도 시간의 조건을 무시하고 얼마든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야.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점이 있어. 그것은 마는 언제나 졸보다 같하고 졸 들은 언제나 졸 하나보다 강하지만 때로 실전에서는 한 대대가 한 사단보다 강할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중대보다도 약할 때가 있어. 그러니까 군대의 상대적인 힘이란 누구든 알 수 없는 것이지. 절대로 몰라."
(P.251)

 

 

  "전쟁이란 그 전쟁에 반드시 이겨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승리가 돌아가게 마련이야. 우리가 왜 아우스테를리츠에서 졌을까? 아군과 프랑스 군의 손해는 거의 맞먹었는데도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게 우리 편이 졌다고 생각해버렸어. 그래서 정말 지고 만 거야. 그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대 우리는 사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전장을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야. '졌다, 그러니까 도망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는 도망쳤던 거야. 만약 저녁때까지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던들 그 전투는 어떻게 끝났을지 모르지."
(P.251)

 

 

  인류의 운동도 무수한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흘러나오면서 연속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이 운동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의 총화와 연속적인 운동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인간의 지력은 제멋대로 단편적인 단위를 허용한다. 역사의 첫번째 연구법은 연속적인 사건 중 몇 가지를 임의로 채택하여 그것을 다른 사건과 떼어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이든 절대로 그 자체가 시작인 것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언제나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에서 줄곧 흘러나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연구법은 어느 한 개인, 즉 제왕이라든가 장군이라든가 하는 사람의 행동을 사람들의 자유 의지의 총화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의 총화는 절대로 일개 역사적인 인물의 행동에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P.317)

 

 

  역사와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찰 대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황제와 대신, 장군은 도외시하고 대중을 지도하고 있는 무한히 작은 같은 종류의 요소를 연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 방법으로 인간이 얼마 만큼 사적인 법칙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직 이 방법에 의해서만 사적인 법칙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 과거에 있어서 역사가가 여러 황제와 장군, 대신의 활동을 기술하고, 또한 이 같은 활동에 관한 자기의 고찰을 표백하기 위해 경주한 노력의 백만분의 1 정도도, 이 방면에는 경주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지극히 뚜렷한 사실이다.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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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튼 펙 / 김옥수 / 사계절 / 182쪽
(2015. 01. 07.)

 

 

큰아이 책을 골라주려고 여기저기 추천 도서들을 찾아보고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하다보면 가끔 아동실이 아닌 일반실에 있는 도서들이 있다.

그래서 큰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이다.

한겨레 금요일판 책과 생각의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란

코너를 참 좋아해서 한미화님이 추천해주시는 책들은 별도로 추려놨다가

큰아이에게 권해주는 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토대로 쓰여있다

 

며칠 전 둘째에게 읽어 주었던 "내가 함께 있을께"라는 관한 동화책도

소중한 것들과의 이별인 죽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 걸까?

큰 아이가 책을 다 읽으면 한 번 물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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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부자 아니에요. 아빠,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부자야, 우리에겐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이 있고, 농사지을 땅이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 땅이 완전히 우리 것이 될 거야. 여기 이렇게 체인을 감으며 우리의 짐을 덜어 주는 솔로몬도 있고. 저기를 봐라, 벌써 곳간을 거의 다 끌어 냈잖니? 그리고 날마다 따뜻한 우유를 주는 데이지도 있고. 세수도 하고 더러운 때도 벗기게 하는 비도 있어. 우리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어. 황혼은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마음을 바쁘게 만들지. 바람에 실려 오는 음악을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발장단을 맞추게 된단다. 바이올린처럼."
(P.49)

 

 

  "그래.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난 이제 얼마 못 살 것 같다. 동물은 자기가 죽을 때를 아는 법이야.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예민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빠가 나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아빠는 의자에서 일어나 난로에 있는 뜨거운 돌멩이를 보자기에 주워 담고 침실로 갔다. 엄마와 이모도 부엌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집 안에 정적과 어둠이 깔렸다.
  나는 빨간 불씨가 사그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불씨가 더 꺼질 때까지 마냥 그리고 있었다. 결국 모든 건 죽게 되나 보다.
(P.150)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돼지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그 손에 말이다. 죽은 돼지의 기름과 피가 묻어 있었지만 나는 계속 아빠 손에 입을 맞추었다. 설사 나를 죽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아빠가 허리를 펴며 잿빛 겨울 하늘을 등지고 우뚝 일어섰을 때도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아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소매로 두 눈을 훔쳤다. 나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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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 돌베개 / 420쪽
(2015. 01. 07.)

 


 

  역사가들이 일하는 방식도 언론인과 다르지 않다. 역사가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취향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에 끌리며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과거의 사실 가운데 자신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해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죽고 없더라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을 겪었거나 정당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 있다. 우리는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한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
(P.9)

 

 

  나는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 받으려 했다고 추측한다. 그들은 일제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쟁과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내고 기나긴 군사독재의 시대를 통과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화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후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년 2012년 12월에는 그것 말고는 적절한 표현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가설을 2012년 대선 결과를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P.22)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의 노예인 것도 아니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기의 사실을 가지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기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이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전문 역사연구자가 쓴 민족사에서부터 평범한 시민이 쓴 소박한 개인사까지 다 마찬자지다. 역사는 어떤 사실을 선택해서 어떤 관계를 맺어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P.29)

 

 

  나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desire)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라는 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힘은 국미이 개별적,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욕망이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안고 산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P.52)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함으로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중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행위가 된다. 단, 민중의 저항권 행사는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우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이것이 포퍼의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혁명은 바로 그런 혁명이었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운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P.178)

 

 

  최근 우리의 민주주의가 과연 성숙해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개탄도 나온다. 그러나 2014년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민주주의가 거의완성된 것처럼 보인 때도 있었다. 검열과 통제가 사라져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만개했고 대통령과 정부가 권력 행사를 절제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어제 내린 눈처럼 새롭지도 귀하지도 않은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이것은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대통령과 정부, 집권세력이 헌법을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P.188)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 대통령의 부하도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빋는다.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유주의적 각성'이라고 부른다.
(P.280)

 

 

  미래는 아직 오직 않은 것잉 아니다. 미래는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 았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우리가 만든 대한민국현대사의 갈피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 야망과 좌절, 희망과 성공, 번민과 헌신, 어리석은 악행과 억울한 죽음이 묻어 있다. 그 55년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공명하고 싶어하는 동 시대의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벗이여, 미래는 우리 안에 이미 와 있습니다!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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