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근로자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는 형편없이 이기적인 남자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마저 그닥 원만하지 못한 남자다. 필연적으로 그는 이혼 당할 수 밖엔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작과 함께 영화는 10여분 동안 레이 페리어의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동료에게 '난 쉬는 날'이라고 거절하고, 이혼한 전부인이 주말을 함께 보내라며 데려온 아이들은 아버지를 귀찮아 한다. 그나마 레이첼은 아빠에게 잔소리라도 하지만, 로비는 아빠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레이 페리어는 정말이지 한심한 아빠다. 딸에게 식사도 챙겨주지 않고, 시켜먹으란 소리만 하고 침대에 들어가 버리고. 태어날때부터 있었던 딸의 땅콩알레르기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자신이 내키는 대로만 사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조차 아빠를 귀찮아 하고, 달갑지 않게 여긴다. 트라이포드의 공격이 시작되고, 그 아비규환에서 어찌 어찌 도망쳐 집까지 온 레이는 처음엔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무작정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이들에게 짐을 싸라고 한다. 그리곤 멈추어 버린 자동차중에서 어떻게 고쳐진 단 한대의 차를 (자신의 차도 아닌) 말도 없이 무조건 '빼앗아' 도망친다. 이 한심한 아버지는 패닉에 빠진 딸을 달랠줄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믿을 수 없는 아버지'와 함께한 레이첼은 영문도 모른채 도망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패닉에 빠져 소리지른다. '엄마한테 보내줘!' 이 장면에서 레이첼을 패주고 싶었던건 개인적인 생각일뿐.

아들 로비는 단 한번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도망가려는 아빠와는 반대로 맞서 싸우려고 한다. 말리려는 레이에게도 소리친다. '보스턴에 가려는 것도 우리를 떨궈놓으려고 가는 거잖아!'  어린 딸 레이첼은 그런 로비에게 '어딜 가려는 거야, 오빠가 없으면 누가 날 돌봐줘!'라고 바로 옆의 아빠를 두고도 소리치며, 아빠의 품에 있다가도 로비의 품으로 도망간다.

이 영화에는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땅 속에서 커다랗고 다리가 셋 달린 괴물이 나타나 일방적인 살육을 시작한다. 경고도 없다. 무작정 빔을 쏘아 죽이고 파괴한다. 번개 친 곳에서 부터 나타난 그들은 가장먼저 카메라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파괴한다. (영화 썸에서도 그랬지만,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호기심에 사진부터 찍고 본다.) 괴물이 쏘아댄 광선에 맞은 사람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것은 그것이다. 비명지를 새도 없이, 죽는다는 과정도 없이 파.괴 되어 버리는 사람들.

처음엔 그렇게 그저 파괴만 하던 괴물은 어느 순간부터 살육자로 변해있다. 피를 먹고 자란 듯한 정체모를 붉은 색 식물들은 마치 지구 전체가 피로 물들 것을 예고 하는 듯 하다. 외계인들은 처음엔 그저 파괴하다가 잔인한 피의 향연을 벌인다. 사람들을 잡아다 우리(?)에 가두고 한 사람씩 꺼내어 그 피를 지구의 대지에 뿌려댄다.

길고 긴 피난길에, 이동수단이라고는 오로지 자신의 두 발뿐인 사람들의 눈앞에 달리는 자동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서 들어나버리는 인간의 본성은 잔혹하다. 끔찍하게. 오로지 자신만 살려는 욕심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레이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는 연약한 아버지다.

언덕위에 다리 셋달린 괴물이 나타난 순간, 로비는 달려간다. 싸우기 위해. 그런 아들을 말리려는 레이이지만 그는 아들을 말릴 재주도 없는 사람이다. 그 순간 잠시 떨어뜨려놓은 딸을 다른 가족이 데려가려고 한다. 레이는 무기력하게 아들을 놓을 수 밖엔 없었다. 달려가 딸을 안는 순간 언덕위에 폭발이 일어난다.

아들마저 잃고, 딸만 남은 상황에서 두 사람을 구해준 사람은 오길비라는 남자다. 그는 괴물과 맞서 싸우자고 레이를 설득하려고 한다.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레이가 원하는 것은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딸 레이첼과 함께 살아 남는 것이다.

결국, 레이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린 오길비를 폭행(살해)한다. 딸 레이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채, 노래를 부르게 해놓고, 땅을 파고 있는 오길비에게 가서 그를. 레이가 오길비를 폭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문을 닫아 놓고, 울먹이며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는 레이첼과 방문 너머로 들리는 신음소리과 둔탁한 타격음만이 들릴뿐.

그러함에도 결국은 레이첼이 괴물에게 잡혀가고, 딸 레이첼을 구하기 위해 레이 또한 일부러 잡힌다. 그리고 잠시후 한 동양인 남자가 괴물에 의해 피의 제물이 되어버리고, 이제는 레이가 잡혔다. 그리고 간신히 빠져나온 레이의 입에서 수류탄의 안전핀이 나왔다.

여기서 왜 앞서 끌려간 사람들은 구해주지 않고, 레이만 구해야 했을까? 아마도, 레이첼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물론, 영화이고, 레이는 죽어선 안되는 캐릭터이지만.) 그렇게 극적이게 살아난 두사람은 드디어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런 두 사람앞에 죽어가는 그 괴상한 붉은 생물이 보이고, 스스로 죽어있는 트라이포드를 발견한다.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황량한 보스턴 거리에 두 사람만이 걸어가고, 그들의 앞에 커다란 집에선 문이 열리고 메리앤이 뛰어나오고 레이첼 또한 엄마를 향해 뛰어간다. 파괴되지 않은 보스턴과 너무나 편안한 복장으로 나타난 메리앤의 가족들. 메리앤은 레이에게 말한다. '레이첼을 무사히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라고. 마치 레이첼이 레이의 가족이 아닌듯이. '살아와서 고마워요.'가 아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인 것이다.

헤어졌던, 죽은 줄 알았던, 살아있을거라고 믿고만 싶었던 로비는 헤어질때의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나 드디어 레이에게 '아빠'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레이는 여전히 이기적인 항만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고, 아이들은 메리앤과 팀의 보호 아래 자랄 것이며, 그들이 서로 그렇게 가까워 질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분히 이해는 가지만, 허무한 결말이라고 말하고 나또한 그렇게 느꼈지만, 이 영화는 '우주 전쟁'을 다루었다기보다는 레이에게 일어난 일종의 재앙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트라이포드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의 최종 목적지인 보스톤 만은 파괴되지 않았다. 그가 보는 세상은 파괴되었지만, 그가 아직 가지 않은, 보지 않은 세상은 보존되었던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레이 페리어라는 한 한심한 남자앞에 나타났던 한 때의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 재앙으로 인해 변한 것은 없다.

사실, 오염될데로 오염된 지구에서 (지구인들조차도 그 오염된 공기에 병들어 가는데)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 어떻게 이겨냈겠는가! 물론,영화에서는 미생물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오염된 지구의 미생물들도 오염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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