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볼권리 침해` 언제까지?
[연예영화신문 2005-02-17 10:14]
영화계는 물론 사회 전반이 뜨겁다. 지난 1월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50부(재판장 이태운)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영화 처음과 끝의 흑백 다큐멘터리 등 세 장면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영화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인회의, 여성영화인모임, 영화제작자협회 등 영화단체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문화연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도 판결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네티즌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그때 그 사람들"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수천건의 의견 중 대부분이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그때 그 사람들"로 인해 또다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볼권리 침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관객이 판단해야 함에도 소수 의견에 의해 "그때 그 사람들"처럼 몇몇 장면이 잘려 상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객과 만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도 있다. 1월25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연속 2회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은 틴토 브라스 감독의 "두잇"이 대표적인 예다.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일체 광고를 할 수 없고,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제한 상영관의 거의 없다. 결국 "두잇"은 관객과 제대로 된 만남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사라질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 영화의 수입사인 미디어소프트측은 "제한 상영가의 피해를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장면들을 자진 삭제해 심의를 넣었는 데도 다시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아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영등위 관계자는 ""두잇"은 일부분이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선정적이라 제한 상영가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잇"의 한 관계자는 "영등위의 판정기준이 모호하다. "칼리큘라"는 "두잇"보다 야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도 18세 관람가를 받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제한 상영가 판정을 내리려면 그에 걸맞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두잇"은 3개월 뒤 비디오로 출시될 예정이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삭제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중의 볼 권리가 침해당하는 주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전문가주의'다.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부 사람만이 예술 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전문가주의'는 한마디로 "나는 봐도 되고 너는 안 된다"는 논리다. 즉, 교육받은 몇몇 사람이 대중이 봐도 되고 안 되는 예술 작품이나 내용을 선별한다는 것.

문화연대의 한 관계자는 ""그때 그 사람들"과 "두잇"은 상황이 다르지만 대중의 볼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며 "'전문가주의'를 내세워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는 데 이는 구시대적 발상이며 대중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한 상영관을 두거나 예술 작품에 대한 심의·검열이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억압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제도가 아직도 행해지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 "그때 그 사람들"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세 장면, 약 3분50초 분량이 검게 칠해진 채 상영되고 있다. 과연 그 검은 부분을 보면서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부시 대통령을 대놓고 '까는' 내용의 "화씨 9.11"이 어떤 장면도 삭제 당하지 않고 개봉됐던 미국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지는 않을까.

발행: 연예영화신문 7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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