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뭐든지 다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책읽는 것도 별로 안땡기고, 노는 것도 별로 기분이 안내키고, 술은 원래 싫어하고, 밥먹어도 먹은거 같지 않고, 굳이 먹고 싶은 마음도 별로 생기지도 않고. 이제 인생의 절반도 살아오지 못한 어린 애가 벌써부터 재미없는 인생에 질려가고 있다. 하긴 인생 어디 재미있어서 살겠는가 만은...

질린다. 회사도, 사람도. 내 주위의 친구들도 그런 말을 한다. 질렸다고, 지겹다고. 너무 일찍 세상에 눈을 떠버렸다. 내가 학생시절 생각하던 세상은 핑크빛은 아니었지만, 이런 잿빛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선 행복에 겨워 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보다 더한 잿빛세상에 눌려 지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을(회사원 생활을) 시작한지 년수로 벌써 5년차가 되어가는 지금 나는 지쳐버렸다.

'나이들어 봐라. 지금이 그리울거다.'라고 하셨던 선생님들의 말이 새삼 기억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은 내가 지금 간절히 그 시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고 싶다, 간절히.

생각해보면, 그 시절만큼 행복하고 즐겁고 추억많은 시절도 없는 것 같다. 내 고등학교 시절이 내겐 천국이었나 보다. 나름의 걱정과 시름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던 시절이 그 때였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게 크면 얼마나 컷다고 벌써부터 이런 생각들인지 모르겠다.
한 일년만 푹 쉬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다가 여행도 한번씩 가보고,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배낭여행도 해보고 싶다.(굳이 해외가 아니라.) 지금처럼 금요일밤에 떠나서 일요일 오전에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 쫒기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몇일을 마음 편히 쉬면서 보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내가, 내 친구들이 함께 하는 여행이란 항상 그런 것이었으니.

얼마전에는 친구들끼리 그런이야기를 했다. '우리 회사 그만두고 한 일년 놀면서 할 거 다해보고 그럴까?' 라는 이야기. 그냥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많이 걷기도 해보고. 밤을 새서 놀기도 해보고. 내일 회사가야 하니까 오늘은 그만하자 라는 말없이 그냥 원없이 놀다가, 늘어지게 자는 일상이 있었으면 한다.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지라도 지금 나에겐 간절한 것이 긴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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