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건조함이 밀려온다. 유독, 이 [낙하하는 저녁]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녀의 이야기들이 견딜수 없을 만큼 건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숨막히게 한달까?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긴, 사랑이 이것이다.라고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지만, 나는 사랑을 해본적이 없기에, 그렇기에 리카도, 다케오도, 하나코도, 그 주변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정확히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겐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니까..
물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같은 종류라는 건 존재할 수 없겠지만.
없다는 것은 신선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낙하하는 저녁]의 등장인물들은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식상하다. 적절히 가슴아플 정도로.

나는 리카의 '집착' 혹은 '미련'을 조금은 그래,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같다. 사람이란 원래 기르던 동물이 사라져도 허전함과 미련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물려, 십년을 함께한 사이임에야...
다만 나는 그 남자, 다케오를 이해 할 수가 없다. 헤어진 남녀사이에 '친구'라는 관계가 성립가능 한가? 에 대한 물음은 던져두고 라도.
나는 다케오가 '하나코'를 사랑하는지, '하나코라는 여자'를 사랑하는지 분간이 안간다. 아니, 다케오뿐만이 아니라 그 '하나코의 남자'들. 그들은 정말, 진짜 '하나코'를 사랑한 것일까?
'하나코'와 '하나코라는 여자'의 차이는 조금 많이 크다. '하나코라는 여자'는 그들이 보는 여자다. 그들이 보고 그들이 느끼는 여자이지, '하나코'자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는 리카가 '다케오'를 사랑하는 것을 알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물론, 리카의 집착이 너무나도 집요(!)하고 무섭기까지도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이 잘라지는 것도 아니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다케오의 존재들 - 다케오와 하나코, 그리고 그 집 - '이 더욱 자르기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리카의 잘못만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다케오의 감정은 미묘하다. 하나코를 사랑하면서도, 리카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래, 이건 확실히 그렇다. 그는 리카를 완전히 떠났어야 했다. 리카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하나코를 위해서. 적어도 하나코와의 관계 중간에 있는 리카를 이용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물론, 리카 스스로 이용당해 준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코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십년의 세월을 버렸으며, 그리고 그 십년의 여자를 이용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가 싫다. 너무나도 싫다. 이도저도 아닌 태도가 세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잘못된 것임을 그는 깨닫지 못하고 - 혹은 알면서도 방치하고 - 그로인해 리카는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고, 그는 지쳐갔고, '하나코라는 여자'는 죽었다.(물론, '하나코'의 죽음은 다케오의 잘못이 전혀 아니지만. 다케오의 '하나코라는 여자'는 그가 스스로 죽였다.)

하나코는 제멋대로이다. 제멋대로인 바로 그점이 매력인 여자이다. 그리고 또 도무지 알 수 없는 여자이며, 그렇기에 또 매력적인 여자이다.
나 또한 '하나코'를 모른다. '하나코라는 여자'를 알 뿐이지. 하나코는 그 누구에게도 '하나코'를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하나코라는 여자'를 보여줄 뿐이다.(세상 누구나가 그렇듯이, 말이다.)
하나코는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했고, 사랑을 이룰수가 없었고, 사랑이 이미 있기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여자다.
하나코가 왜 리카를 찾아왔는지, 리카가 왜 하나코를 받아들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는 '하나코'를 모르고, '리카'를 모르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보고 그 마음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단지, 제멋대로가 매력적인 '하나코' 혹은 '하나코라는 여자'는 그렇게 또 제멋대로 세상을 등진다. 그리고 그 등짐에 가장 슬퍼하는 것은 다케오가 아니라 리카다.
그리고 그 헤어짐을, 등짐을 기점으로 리카는 점점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15개월간의 이별을 한다.

책장을 덮음으로써 느껴지는 먹먹함은 리카와 하나코와 다케오가 던지는 것일 것이다. 건조하다 못해 슬프기까지한 문장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갈증나게 한다.
순간, 바로 이러한 것들이 나로하여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반갑게, 조금은 거북스럽게 그렇게 또 나는 훗날 그녀, 에쿠니 가오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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