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ED는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출판사 웅진닷컴에서 마련한 "이윤기와 함께 하는 제주도 신화 켐프"에 참여했었거든요.
내세울 만한 '쯩'이 있는건 아닙니다만, 스스로는 알라딘 공식 여행 가이드라 여기고 있는 김 ED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보시죠. 시원했던 제주도 바람부터 이윤기 선생님 숨소리까지 ED가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ED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제주도 여행입니다. 이름난 관광지만을 돌아다녔던 수학여행이 첫 번째 였고, 자전거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던(정확하게는 달리다 포기했던) 여행이 두번째 였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도로, 잘 꾸며놓은 공원, 비싸서 못 먹는다는 한라봉의 고장... 이런 정도가 사실 제가 알고 있는 제주였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제주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셈입니다. 1만 8천 신들이 어울려 산다는 제주도 신화를 듣고 그 현장을 밟으며, 비로소 파란만장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땅 제주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멀게는 유배의 땅이자 외침을 받은 절망의 땅이었고, 가깝게는 항일운동과 4.3의 땅인 제주에서 굴곡지고 척박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져온 이야기, 제주 신화를 들으며 어찌 "하늘은 푸르고 술맛은 쥑인다" 만을 외칠 수 있었겠습니까.
제주의 술을 헤치우느라 다사다난했던 밤을 보내고 맞은 둘째 날, 일행이 처음으로 찾은 곳은 부씨, 양씨, 고씨 3성의 시조인 신인이 솟아났다는 신화 속의 장소 삼성혈이었습니다. 제주는 우리 나라에서 드물게 창세신화가 있는 곳이고, 삼성혈은 이를 뒷바침해주는 물리적 장소라는 점에서 제주신화 기행의 첫 장소가 되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신화, 가슴 속 깊은 바닥을 '툭' 건드리는 끝없는 이야기
삼성혈을 둘러보고 가이드 분을 따라 들어간 곳은 신화 속 이야기를 인형으로 재현해놓은 박물관입니다. 사실 아직도 박물관을 숙제하는 곳 정도로 아는 ED는 쓰윽 둘러보고 일찌감치 나왔답니다. '인형은 잘 만들었는데 옛날에 정말 그랬을까, 누가 무얼하자고 저것들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밖에 나오니 이윤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뜻밖의 오붓한(?) 시간에 가슴 떨려하던 몇몇 사람들에게 건내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나는 저렇게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안 좋아해요. 내가 상상하는 것이 닫혀버리니까. 사실 지금도 박물관에 들어갈까 망설였는데 저런 이미지들이 웅장한 신화의 무대를 상상할 것 기회를 빼앗아버리니까... 신화가 뭐예요? 깊숙한 곳을 '툭' 건드리는 이야기들 이거든요. 근데 저렇게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가슴을 울리지 못 하잖아요. "
생각해보면 시간을 뚫고 살아남은 이야기는 엘리트 층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킨 것이 아닙니다. 몇 천년이 지나도 신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거기에는 인류의 가슴을 '툭'하고 건드리는 무언가가 담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특정한 기념물 없이도, 어려운 고유명사나 전문적 용어로 뒷받침 되지 않아도,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면서 살아남는 이야기들, 밑에서 만들어져서 사람에 사람을 거쳐 이어져온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들 결국은 그런게 신화이니까요.
학교 다닐때 부지런히 닦아논 '땡땡이" 습관 덕분에 신화를 현실로 구성해놓은 박물관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값진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로써 안타깝게도 '땡땡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감을 한층 강화시킨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일행이 두 번째로 들른 곳은 제주도의 오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작가 서재철 선생님의 갤러리 '자연사랑' 입니다. 폐쇄된 초등학교 분교를 아담한 개조해 놓은 사진 전시실에 둥글게 둘러 앉아 이윤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