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성문화축제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No.0’여성에게 삶이란 얼마나 선택 가능한 영역일까? 사랑·연애·결혼 같은 것을 빼면 여성에게 주어지는 삶과 상상력의 가짓수는 얼마나 될까? 여성의 삶과 욕망에 가해지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왜곡과 편견을 깰 연극·마당극·뮤지컬·무용·밴드공연 등 10여편이 한 무대에 연달아 오른다.
페미니즘 문화운동을 벌여온 (사)여성문화예술과 젊은 여성 예술인들의 모임 [문:]이 함께 주최하는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No.0’이 오는 13일부터 26일까지 2주동안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열린다. 여성영화제나 여성주의 연극·무용이 개별 무대 위에 올랐던 적은 있지만, 여성이 만들고 여성을 주제로 다룬 다양한 형식의 공연 작품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관객을 찾아가는 것은 드문 경우다. 기획 의도도 참신하다. 기획에서 시나리오작업·연출·배역까지 남성들로 채워지는 국내 공연무대를 여성 예술가들의 재능을 실험하는 장으로 바꿔보자는 바람이 간절히 담겨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문화예술을 전공한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젊은 여성들. 그동안 공연예술계에서 역할을 못 찾고, 네트워크도 부족해 30대가 넘으면 이 바닥에서 ‘사라져줘야’ 했던 여성 예술인들의 더 큰 가능성을 열어보자는 ‘출발’의 의미다.
젊은 여성 예술인 모여
기획·연출·연기까지 재능 실험
연극·무용·마당극 등
10여편의 유쾌한 상상
작품들이 모두 여성의 삶과 고민을 유쾌하고 건강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페스티벌의 부제인 ‘맹랑한 배꼽들, 놀까?놀자!’에서 ‘배꼽’은 ‘어머니, 즉 여성의 흔적’을 뜻한다. ‘여성성’으로부터 여성 예술가의 상상력을 키워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정된 성역할을 흔들어 간다. 페스티벌을 총기획한 [문:]의 서나영(31)씨는 “기존 연극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하고 건강한 모습의 여성들을 이 무대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착한 여자, 순종하는 여자, 창녀 혹은 성녀, 커리어우먼 등 고정된 모습이 아닌, 건강하고 주체적이어서 참신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첫날 개막행사인 〈여는 배꼽〉에서는 관객이 고백하는 경험담을 배우들이 즉석에서 연극으로 옮기는 ‘플레이백 시어터’가 시도된다. 공연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영상 〈연극판을 달리는 여자 얼굴 100개〉도 선보인다.
본공연에서는 제주도의 ‘삼공 설화’를 소재로 한 마당극 형식의 가족극 〈가믄장아기〉가 눈에 띈다. ‘검은나무그릇으로 먹여살린 아기’란 뜻의 가믄장아기가 부모에게 쫓겨나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척박한 제주 땅을 일궈 수확을 거두고, 이를 이웃과 나눈다는 줄거리다. ‘착한 여자가 복을 받는다’는 통념을 깨는 〈쑥부쟁이〉는 여성의 삶이 주어진 운명에 의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명랑순정 뮤지컬이다. 전통 마당극 〈젊은 어멍 먹은 늙은 딸년 얘기〉, 〈연애얘기 아님〉을 포함해 모두 4편의 극이 상연된다.
무용으로는 금기를 거부하는 여성을 그린 〈여자, 다리를 벌린다〉, 억압된 현실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여성의 욕망을 표현한 〈여자이야기〉 등 4편이 무대에 오른다.
마지막날엔 국악과 밴드로 이뤄진 축하공연과 함께 〈배꼽수다방〉이 마련된다. 무대공연 안에서 여성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젊은 여성주의 창작자·비평가들이 관객들과 수다를 통해 찾아보는 시간이다. (02)587-0591.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