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쾃’운동위해 프랑스에서 날아온 김윤환·김현숙씨 부부

목동 예술인회관을 무단으로 점거한다? 생각만으로도 기발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스쾃(squrat)'. ‘스쾃’은 방치되었거나 버려진 공간을 예술가들이 문화활동을 통해 재활용한다는 개념을 품고 있다. 이미 프랑스, 네델란드, 덴마크 등 유럽에서 시작돼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을 불법점유하는 행위’로 여겨지는 불법행위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점점 ‘스쾃’예술(?)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돈 없고, 가난한 예술인들 사이에서 개인의 작업실을 떠나 삶과 예술 공동체를겠다는 시도가 뜨거운 여름, 서울이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인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김윤환(40)씨와 김현숙(35)씨는 이를 위해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이들을 14일 오후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만났다.

◇ ‘오아시스 프로젝트’란 불법이 아닌 ‘예술행위’

오아시스가 준비중인 ‘스쾃’은 죽어있거나 방치된 도시공간을 예술가들이 불법점유해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행위다. 지난 99년 프랑스 파리 리볼리가의 버려진 공공건물에 예술가가 침입해 예술소통 작업을 시작하면서 세계적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개관을 앞둔 홍대 앞 갤러리 에스파스 다빈치에 젊은 작가 12명이 입주해 지난달 15일까지 스쾃전을 벌였다.

예술그룹 ‘미친’이 섭외한 작가 30여명도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옛 방위산업체 재건축 사옥에 잠입해 석달간 숙식하며 작업하는 등 한국에도 ‘스쾃’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스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작업실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가난한 예술인이 타국에서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따기’.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예술가들이 본래 은행건물이었던 ‘알터나시옹’에서 예술점거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공짜로(?) 작업실을 구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개인의 작업실을 찾는다는 개념을 떠나, 시민과 함께 나누는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끌렸죠. 예술가와 소수의 시민들이 향유하는 것으로만 치부됐던 예술이 ‘스쾃’과 결합하면서 시민과 함께 향유하는, 만들어가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김현숙씨는 이 점에 매료돼 이까(icart) 에꼴 졸업논문도 ‘삶과 예술의 실험실, 스쾃아티스트’를 택했다. 버려진 공간이라지만 사유물을 무단으로 점거한다는 점 때문에 ‘불법’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김현숙씨는 "버려진 공간을 살리려는 예술가들의 발칙한 상상으로 봐야 한다”며 “예술가들의 권리찾기 혹은 순수한 예술행위로 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윤환씨도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불법으로 예술인회관을 점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재개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예술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예술가들의 의지표현”이라며 “위법·탈법 행위가 아니라 작가공간 운영에 소홀한 예총과 당국에 경종을 울리는 행위, 가난하지만 열심히 작업하려는 예술가들의 최소한의 액션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하필이면 왜 예술인회관이지??

작년 여름 귀국한 김윤환씨는 프랑스 ‘알터나시옹’에서 느꼈던 ‘삶과 예술의 자율적 공동체’를 한국에서 만들어 보고 싶었고, 그 즈음 ‘목동 예술인회관’을 주목하게 됐다. 현재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 역시 ‘목동 예술인회관’을 접수하는 것이다.

첫 시작은 단순했다. “보증금 없고 월세 5만원에 넓직한 공간을 세 놓습니다!”라는 문구로, 그가 꿈의 작업실의 조건을 내건 광고를 미술·예술관련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던 중 ‘사비나 미술관’에서 기획하고 있는 ‘리얼링 15년’ 전시참여를 제안받으면서 이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목동 예술인회관은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씨가 예술인들을 위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다. 그러나 당선 이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에 이 사업을 일임하면서 사실상 ‘예총회관’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예총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예총회관을 국가(문화예술진흥원)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105억원을 받아 이 돈으로 목동 방송회관 옆 터를 사들여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모자란 건축비는 임대료를 뽑아 충당하겠다는 구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IMF 이후 시공회사가 부도나고 임대시장이 얼어붙으면서 1999년부터 예술인회관 건립공사가 중단됐다. 5년째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김윤환씨는 예술인회관에 주목했다. “4월16일 홍대 앞 ‘카페 10월’에서 ‘불온한 점거’ 워크샵에 열었고, 같은 달 29일 ‘한국사회에서 예술점거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죠. 30여명이라는 예상보다 많은 예술 관계자가 모였죠. 이들의 뜻을 모아 5월26일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으로 목동 예술인회관 답사를 진행했고, 지난달 18일부터 목동 예술인회관 임대분양 광고를 시작했어요."

이달 12일 홍대 인근 쌈지스페이스에서 임대분양에 참여의사를 밝힌 300여명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도 열었다.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인 김현숙씨도 지난 2일 프랑스에서 귀국하면서 사업추진에 있어서도 탄력을 받았다. 김씨 부부는 이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까지 한국에 머물 생각이다.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요.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갖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가난한 예술인을 반기지 않는 ‘예술회관’ 접수(?),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들의 프로젝트는 17일 모델하우스 방문과 ‘움직이는 전시회’를 시작으로 구체적인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날 이들은 브리핑 퍼포먼스, 자리추첨 퍼포먼스, 움직이는 전시회 등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작권을 시민들에게 알릴 계획을 갖고 있다.

김현숙씨는 “한국 내에서 생존권이나 거주권 등에 대한 인식은 풍부하지만 예술창작의 권리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스쾃이 위법요소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공공성과 순기능을 고려할 때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주 퍼포먼스 이후에는 입주 전까지 매주 토요일 목동 예술인회관과 대학로 예총 앞에서 게릴라 페스티벌과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예총쪽은 자신의 소유인 예술인회관을 2006년까지 건립하겠다는 것과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불법점유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현숙씨는 “문화예술 및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할 것이며, 정부지원까지 받아가며 ‘스쾃’운동이 확대되고 있는 프랑스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며 “예술인회관이 진정한 예술인을 위한 삶과 예술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예술가들의 발칙한 상상과 기발한 행동은 시작됐다.

다만, 이들이 하고자 하는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예술적 행위로 인정받을지, 단순히 가난한 예술가들의 한낮 푸념 같은 투정 정도로 비춰질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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