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랑하는 또 미워하는 엄마에 대한 생각을.
내 어린시절 엄마는 나에게 '너만 안 생겼어도 이 집안에 시집안왔다.'라는 말을 항상 했었다. '그럼 하지 말지 그랬어.'라고 쏘아붙이기는 했어도 나에게 그 말은 항상 상처였었다. ('너 다리밑에서 주워왔어'라는 말에는 나중에 웃어넘길수 있었지만 도저히 저 말에는 웃어 넘길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내가 짐이 되었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짓눌렀고 나는 그렇기에 일찍 철이 들어야 했고 그렇기에 엄마를 내 의논상대로 삼을 수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영화속의 부모님과는 다르다. 아니, 닮았다. 엄마는 욕을 잘 하지는 않지만 억척스럽고 돈을 밝히고 아빠를 구박한다. 아빠는 무능력하고 몸도 안좋고 소리를 가끔 지르며 '그만 좀 해'라고는 하지만 엄마의 궁시렁 소리를 듣는다.
그런 엄마와 아빠가 나는 싫었다. 그래, 나는 딸인 나영과 닮았다. 고아인게 부럽다고, 차라리 나도 고아였으면 한다고 제대로된 추억하나 없다고 부모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소리치는 나영의 모습이 나와 같다. 그래, 철없이 어리던 시절 나는 그렇게 바랬었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차라리 고아였으면 그게 내 바람이었다. 추억들이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주위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나에겐 너무 컷기에 나는 그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곤두세운채 모든 사람들을 대할수밖엔 없었다. 그게 엄마, 아빠라도, 그게 설령 내 동생들이라고 할지라도.
아빠의 무능력이 싫었고, 무책임이 싫었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이 싫었다. 엄마의 수다스러움이 싫었고(누구에게나 무슨말이든 해대는) 툭하면 부부싸움을 해대는 두분이 싫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그저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우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고 좀더 커서는 싸우는 두분 사이에 끼어들어 더 크게 소리지르곤 했었다. '싸우지좀 마!' '왜! 나도 집나갈까? 싫어. 나도 이런집! 그만좀 싸워대!'라고. 그리고 그후엔 완전히 포기했다. 두분이 싸우든지 말든지 나는 그저 작은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무것도 안들리는마냥 책만 읽어댔었다. 그리고는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랬기에 나는 기회가 왔을때 아무 망설임없이 집을 뛰쳐 나왔었다.
엄마는 하나뿐인 딸이 걱정되어서 인지 자꾸 자꾸 전화를 했지만 난 그마저도 귀찮았다. 조금 철이든 동생녀석은 나에게 집에 전화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집이란 나에게 숨막히는 감옥과도 같았다.(동생 녀석은 사춘기시절 가출을 밥먹듯이 해대며 반항이라도 했었지만 나는 그저 숨죽이고 언젠가 벗어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동생과 나의 그 차이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도 동생처럼 그렇게 표출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아들녀석 하나가 삐뚤어져 나간다고 울던 엄마를 보고 기억하는 이상  그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에 불과했다.)
나는 정말이지 엄마를 닮고 싶지 않다. 엄마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속 아버지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알게는 되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던 나는 영화속 어머니를 보면서 엄마를 조금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이미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억척스럽지 않고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남편을 두고 세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엄마는 그래야만 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역시 용서하기 힘든 것은 내가 아직은 어리기 때문일수도 있고 깊게 박혀있는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엄마를 이해는 하지만 용서할 수도 없고 닮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딸들의 숙명이려나? 아니면, 나만의 이기심이려나...집에 내려가게 되면 엄마와 영화를 봐야겠다. 그도 안되면 살살 꼬셔서 다운받아서 보든가. 그냥 말없이 둘이서 그렇게 데이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임. 하지만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번주에 내려갈 건데 동생녀석이 휴가나온다고 하니. 그래도 잘 꼬셔볼까?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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