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인생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냥 인생극장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태웅이 살아가는 시대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시대와 같다. 그리고 하류인생에도 아버지가 나온다.  '효자동 이발사'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순박한 이발사이지만 하류인생의 아버지는 배울만큼은 배웠고, 싸울만큼 싸워봤고, 권력의 맛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그런 아버지이다. 이 영화는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저 시종일관 담담하게 한 깡패의 - 상철(?)의 친구말대로 하류인생의 -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하류인생...

담담히 들려오는 한 남자의, 한 남편의, 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련한 듯 저 멀리서 다가온다. 그저 맞고온 친구의 복수를 위해 다른 학교로 쳐들어갔던(?) 태웅은 자신을 칼로 찌른 승문 가족과의 인연이 시작되고 그 인연으로 인해 명동파와의 인연도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철을 만나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이야기를 길게 끌지 않고 짧게 짧게 끊어쳐대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영화의 장점을 부각시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짧은 듯한 런닝타임이지만 오히려 여기서 더 길게 늘어졌다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게 나았다. 그게 삶이려니...

이번에도 영화속의 아버지는 나에게 말한다. 아버지란 이런 존재야.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는 거란다. 삶이, 세상이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단다. 너를 사랑한단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렇듯 아련하게 울려오고 있지만 고집세고 냉정한 나는 오늘도 그 울림을 냉정히 뿌리치고야 만다.

태웅처럼 살아오신 것은 아닐지라도 내 아버지도 어쩌면 저렇듯 처참히 세상과 묵묵히 맞서오신 것일지도 모른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으로 그렇게 아버지는 아둥바둥 살아오셨으리라. 하지만 아버지는 태웅처럼, 아니 태웅보다도 나에겐 끔찍한 이름으로 남아버리고야 말았다. 이기적인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들이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내 기억에 영웅이던 아버지를 패배자로 비겁자로 만들어버리셨다. 부모, 자식은 천륜이라고 한다. 태웅은 자식을 낳고서야 어머니를 찾아가 '용서하고 말게 어디있어요. 어머니잖아요. 아들이잖아요. 부모자식은 천륜이라는데..'라는 비슷한 대사를 읊어댔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자식을 낳으면 태웅이 그랬듯 아버지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해라도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리기에 너무나도 어리기에 아직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렇듯 아버지들의 삶의 흔적을 보고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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