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     조선왕조실록 만화를 잠시 읽다가 밤에 있을 영어토론 페이퍼 작성. 오늘의

주제는 개인의 성공에 있어 개인의 노력이 더 영향을 끼치는지, 주변 환경이 더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하여. 나는 개인의 노력을 택함. 쉬울줄 알았는데 잘 안써진다...


오후       - 다리미질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난 혼자 할줄 아는게 별로 없다. 세탁기도 그렇고 너무

집에만 살아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배우기 위해 오늘은 다리미질을 배웠다. 앞으로 셔츠를 많이 입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배우는데, 역시나 어렵다. 어머니의 노련한 솜씨. 세상엔 배울 일이 참으로 많다. 게다가 요즘은 차승원의 크나큰 공헌으로 남자가 요리까지 잘해야 할 것 같다. 난 물론 올리브 채널을 좋아하지만, 거기서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뭐 그렇다고....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책 2권 대출해서 좀 읽다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 시간이구나.


저녁      - 저녁을 먹고 8시에 동네 카페에서 영어토론 진행, 한명이 빠졌지만 여전히 잘 된다. 

하지만 갈수록 내 없던 영어실력이 더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미군에서 약간 잘못배운 슬랭식 영어를 고치기 위해 나름 천천히 말하고자 하는데 이젠 단어도 다 까먹는다. 후...

그리고 집에와서 '무의미의 축제' 독후감 작성.


3월 15일, 평범한 일요일, 평범한 일상, 무의미한 하루, 편안한 하루, 날씨 좋은 하루. 오늘 하루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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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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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무의미에 대하여


  요즘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일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면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하는 행동들이 가치가 있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한다. 수집품을 모으는 사람들이나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일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잉여인간으로 취급 받는 세상. 기업의 입사 지원서에는 취미, 특기란이 있는데 이로써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하는 취미, 또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해서 특기가 되는 일도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하지만 면접에서 좋게 말하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 취미는 ‘즐기지는 못해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 혹은 전문적으로 보이는 일’이라고 재정의를 내려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그는 무의미를 찬양하고(제목이 무의미의 축제이듯이), 책에서는 무의미한 에피소드들의 연속이었다. 책은 배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배꼽티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배꼽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무의미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짧은 내용의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무의미와 의미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일과 무의미한 일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프로게이머의 게임과 청소년의 게임은 다른 것인가. 철학가가 자유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일반인이 지나가는 배꼽티를 보며 고민에 잠기는 것은 정말 다른 것인가. 나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의미 있는 일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의미 없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 둘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둘 모두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노래를 수없이 듣는 것, 주말마다 등산을 하는 것 모두 무의미하면서 의미 있는 일이다. ‘예술수업’이란 책을 쓰신 오종우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학기 말미에 이 책의 저자처럼 무의미한 일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다.  우리 모두 하나씩 의미 없어 보이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내 것도 아닌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처럼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필요하다고 역설하셨다. 의미만을 찾는 사람들은 메말라 갈 뿐이고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충전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의미를 찬양하시며 예시로 보여준 영화가 타르콥스키의 ‘희생’이란 영화인데, 영화의 시작과 끝이 주인공의 아들이 죽은 나무에게 물을 주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무의미적인 행위를 통한 의미의 발견. 지금 이 책을 읽고 교수님의 그 강의가 다시 생각나는 것을 보니 저자와 교수님은 같은 것을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리라. 나 역시 그 수업 내용을 듣고 무의미해 보이는 취미를 가지고자 했지만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취미도 가지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 어떤 모임에서 나를 소개할 때 나의 미래 꿈은 호숫가에서 바늘 없이 낚시를 해서 걸리면 놓아주고 석양이나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누군가 꿈이 상당히 노인네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 얼마나 무의미하고도 무의미한 일인가 라는 느낌이 든다. 그 무의미적인 꿈을 계속 간직해야겠다. 무의미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란 개인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무의미를 찬양하자.



-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에 대하여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특히 이 구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뿐인데 어떻게 그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은 구절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라는 문장이다. 이 부분은 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다리에서 강으로 몸을 날렸는데, 지나가던 행인 발견하고 구하러 오는 과정에 그녀가 죽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을 설명한 글이다. 나도 솔직히 왜 내가 이 부분에서 그런 감탄사가 터져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그 문장이 완벽한 모순이자 완전한 문장 같았다. 죽음이라는 단어와 ‘구한다’라는 단어는 정확히 극과 극에 있는 단어인데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문장. 나의 죽음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건데, 그런 구한다는 말이 성립이 되는 것인가, 항상 무언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새로운 접근. 이런 다양한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그 문장을 완전하게 만들어줬다. 자신의 죽음을 구함과 동시 자신의 목숨은 끝나는 이 아리송한 문장에 나는 그저 감탄했다. 이런 문장을 쓸 줄 알아야 책을 쓸 수 있구나 라고 혼자만의 생각을 해보았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저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에 대하여 


     세상은 지금 한심하게 굴러가고 있다. 가깝게는 취업 문제부터 멀리는 국제 경제 문제나 정치 문제까지, 기술의 발전으로 더 살기 편해지는 것이 맞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 한심한 세상에서 개인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진다. 대중 권력의 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고 있다고 빙산의 일각만 부숴져 내린 것일 뿐, 해저에 있는 빙산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해 저자는 등장인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라고. 사회의 지식인들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외친다. 젊은이들이여 투표를 하라. 대자보를 붙여라. 너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코 바뀔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정반대의 말은 묘한 끌림이 있다.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장난으로 대하자. 연회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해서 자신은 전혀 한국말을 못하는 듯이 장난을 치자. 뱅크시처럼 재미있는 벽화를 그리자. 한심한 세상을 만든 것도 그들인데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한심해질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뭐 세상을 평생 진지하게 보지 않으면 문제가 많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진지하지 않게 무의미하게 대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겠다. 인생은 재미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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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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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열풍 그리고 높은 대학진학률에 대하여


이 책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책이다. 우리가 곧 죽어도 사랑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명강사라고 소문난 교수의 책, 책 표지 한 가득 보이는 꽉 찬 하버드 대학의 강당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끌렸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읽은 시기는 그 열풍이 지나고 나서 읽은, 한마디로 뒤늦게 읽은 시기라고 봐도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라니 이게 정말 우리 국민의 수준이 높은 것인가, 아니면 정말 단순히 하버드 베스트셀러라 잘 팔린 것인가라는 의혹 아닌 의혹을 가졌다. 난 이 책을 어렵게 읽었다. 단순히 읽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노트에 적어가면서 이해하느라 다른 책에 비해 완독하는 데에 참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럼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을 계획을 하고 있는 책이다. 난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나를 포함하여)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1년에 책 1권도 안 읽는 나라에서 이런 깊이 있는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그 높디높은 대학진학률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가 그렇게 비난해마지 않는 대학이 너무 많다. 90%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줄이자이런 비난들. 그런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그만큼 양질의 시민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할 줄 알고,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 가란 생각한다. 나는 현재의 높은 대학진학률을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자원 하나 나오지 않는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머리를 써서 돈을 벌어야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세워졌을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해외유학생이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이고(인구 수 대비로 치면 우리가 1위이지 않을까) 다수의 고등 교육자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삼성이라는 세계 7, 브랜드 인지도 측면 세계 2위의 대기업을 만들 수 있었고, 세계 10위 권 수준의 경제 대국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아무리 제조업이 우리나라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이공계의 능력만으로, 순수 노동자의 헌신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카피캣 전략으로 주로 성장하기는 했다만 그런 카피캣을 위해서도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필요한 생각, 깊은 사고는 모두 고등교육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걸 지금 줄이자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그렇게 외치고 있는 혁신, 창조성을 멈추자는 얘기와 동일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서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 사고가 깊다는 것이고 머리가 잘 발달된 좋은 시민임을 의미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을 때, 사회가 더욱 건전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그래서 이 열풍이 반갑다.

 

이 책은 나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적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정리한 내용을 복기하며 정리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비록 1강부터 필기하면서 읽은 것이 아니라 많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을 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정리

<7. 소수집단우대정책논란 왜 우리는 지역균형선발을 하고 소수 집단에게 혜택을 주는가>


    보상논리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행위, 역사적 차별을 보상하는 차원. But보상받는 자가 애초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고, 보상해 주는 사람이 역사를 바로 잡을 책임도 없다면.


    다양성 논리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 다양성이란 곧 공동선. 섞여 있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무척 바람직. 하버드 대학도 인종적, 민족적 다양성을 고려. But , 정말로 효과를 주는지, 아니면 지원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지

 

    -공리주의자라면 권리를 침해 받는 정도보다 사회적 이익이 크기 때문에 소수 집단 우대 찬성


    -칸트식 or 롤스식 자유주의자 아무리 바람직해도 개인의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학문적 자질만을 고려해 선발하는 대학교는 별로 없다. 애초에 어떤 기준으로도 인정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학 허가가 정당한 경우는 대학이 정한 사회적 목적에 부합할 때뿐이다. 학교의 사회적 목적이 틀리지 않는 한(ex. 인종차별) 학교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


    -롤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날 자격이 있다거나 애초부터 사회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히 말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이기 때문에 입학하는 것


    -기여 입학생은 정당한가? 대학이 원하는 능력이 어떤 식으로든 대학의 사명에 기여하는 역량을 뜻한다고 보면, yes. 대학이 정한 사명과 그에 따른 기준으로 판단된다면 공정성은 확보 된다.


    Q. 대학은 어느 정도까지의 학문성, 어느 정도까지의 시민성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대학의 목표는 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 But, 각 사회 조직의 적절한 사명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까다로운 문제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응원단원이자 장애인인 켈리의 응원단 퇴출 문제

 

질문 1. 공정성 질문 응원 단원으로서 제 역할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 2. 영광과 분노 화려한 기술 없이도 미덕을 보여 준다면, 체조실력은 볼거리 중 하나로 격하되는가?

 

    -사회적 행위는 도구적 목적(팀 응원)뿐만 아니라 영광과 모범을 제시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일맥상통


    -그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ex. 플루트를 분배한다면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가 그걸 가져야 한다)


    -정의는 능력에 따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정의가 부, 타고난 신분, 외적 아름다움, 우연 같은 기준에 따라 차별 적용 된다면 부당한 일


    -공리주의적 관점을 뛰어넘는 것으로 목적론적 추론을 보여준다.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해당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물어야 한다.

 

Q. 대학의 목적, 텔로스는 무엇인가.

- 누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고, 소수민족우대정책을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대학의 존재를 둘러싼 이야기로 텔로스를 이야기 하는 것. 다양한 의견들, 사회조직의 목적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의 본질은 단번에 정해져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Q. 누가 통치권을 쥐어야 하는가?


- 정치 연합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보통 정치에 특별하고도 목적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민이 지지하는 다양한 목적에 가능성을 열어둘 뿐. But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은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두정치, 민주정치 둘 다 비판. 민주주의도 정치의 목적이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결국 정치 공동체는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 최고 공직과 영광은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Q. 왜 정치 참여는 좋은 삶의 필수 요소 일까?


- 답은 우리 본성에. 인간에게 언어란 선을 식별하고 고민하는 매체. 도덕적 삶은 행복을 목표로, 여기서 행복은 쾌락을 극대화하여 고통을 넘어서는 공리주의적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 상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며, 미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


-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시민은 숭고롭고 까다로운 존재.

1. 시민의 삶은 심사숙고 능력과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

2. 시민은 좋은 습관과 좋은 인격을 형성해야. 그래서 시민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옹호, 그에게 정의는 적합성의 문제. 과연 누가 내게 적합한 역할을 단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점에 대해 그는 노예가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노예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자유주의 정치론은 사회 역할은 적합성이 아닌 선택에 따라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 그래서 노예제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역할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함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 항상 본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충직 딜레마>


Q.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사회 반대자들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 세대가 사죄해서도, 사죄할 수도 없다. 이것은 도덕적 개인주의, 개인을 이기적인 존재라고 전제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 칸트와 롤스의 생각도 비슷. 정의를 생각할 때 특정한 정체성을 배제해야 한다면 각종 사죄의 이유가 없다. 왜냐면 나를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Q.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 칸트와 롤스는 좋은 삶에 대해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특정한 개념을 강종하는 정의론은 자유에 맞지 않다고 봄. But, 그들도 특정한 도덕적 이상을 지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 우리가 선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없기 때문

- 선택의 자유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로는 충분치 않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가 때로는 불가능

 

Q. 그렇다면 공동체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서사를 갈망. 내가 속한 이야기와 타협할 때만이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난다.


-롤즈는 이제 반대, 자유주의적 사고에 따르면, 의무는 오로지 두 가지, 인간이기에 생기는 자연적 의무와 합의에서 생기는 자발적 의무. 엄연히 말해, 시민이 일반적으로 이행해야 할 정치적 의무는 없다는 입장.


-인간은 서사적이다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충직과 책임이라는 도덕적 힘에 의지해 살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정체성은 도덕과 정의를 고민할 때 배제할 수 없는 필연적 요소

 

Q. 애국심은 미덕인가


-장 자크 루소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은 보편적 인간성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요소.

 

Q. ‘국산을 사자라는 주장은 불공평한가


-동료 시민을 도울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애국심이 도덕에 기초를 두었다고 믿는다면, 합의가 필요없는 연대의무나 소속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Q. 연대는 우리 사라만 챙기는 편애 아닌가?


- 연대와 소속의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성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 애국적 자부심을 느끼려면 세월을 뛰어넘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무는 모두 의지나 선택에서 나왔을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자유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얽매이지 말라고 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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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    잠


오후        -  2시쯤에 오늘의 활동을 시작. 오늘 소개팅을 간다는 ㄱㄴ이 옷을 산다고 하여

같이 따라나섰다. 나는 친구들에게 왜 이런 옷을 샀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듣기 좋은 말이다. 일반적인 셔츠에 니트보다는 느낌있는 옷을 주로 사고 싶고 그래서 기본 옷들이 많이 부족하지만 난 나의 안목을 사랑한다. 뭐 언젠가 좋은 소리를 더 많이 듣겠지. 오늘도 친구에게 그냥 내 생각을 말했고(예를 들면, 회색은 무조건 옳다 이런식, 난 회색이 좋으니까)

친구는 1시간도 안되어 25만원 가량을 질렀다. 마음먹고 온거기는 한데 시원시원하게 잘 사는듯.....그리고 이 친구는 센스가 있다고 많이 듣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겠다. 고르는 것 마다 진열된 상품만 남았거나 한장 남았거나 없는 상품...심지어 아울렛 밖에서 할인해서 파는 상품들 중에서도 하나 골랐는데, 재고가 없단다...이것도 능력인가 보다. 


저녁      - 내가 사는 지역에서 농구를 하러 온다는 ㅌㅎ와 ㅈㅅ이에게 철판 볶음밥을 사주고 귀가

게임 후, 멍청이 같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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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   새로 산 양복을 입고 면접 장소로 이동. 새로 산 정장은 곤색인데 느낌이 좋다. 수선해

서 나에게 딱 맞는 듯한 느낌이었고, 요즘 유행하는 가슴팍이 끼는 스타일이 아닌 편한 스타일이라 더 좋았다.

10시 20분 면접이기에 10시쯤에 미리 도착. 이 회사는 내가 인턴을 맨처음 구할 당시 ㅈㅇ란 외국계회사와 전세계적으로 경쟁하는 회사기에 느낌도 비슷했고, 왠지 모르게 친근한 이미지였다. 작은 라운지 같은 곳에 혼자 양복을 입고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요즘은 자율복 출근이 대세인가 보다, 면접보러 갈 때마다 모두 평상복) 잠시 후 나를 부른다. 외국계 회사의 6개월짜리 인턴. 4학년 졸업대상자가 자격 요건인데 들이민 약간의 패기와 안될 거라는 자책감.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격 요건이 졸업대상자인 이유는 인턴을 6개월하고 바로 정직원이 되는 구조라고 하는 말에 더더욱 떨어질거라는 자책. 지원서에 학년을 내가 명시하지 않아서 실수로 서류 통과한거 거짓말이라도 할까 했지만 그냥 밝히리라 하고 면접실로 이동


면접관은 남여 두분이었다. 면접자는 나 혼자. 그런데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는 면접, 애국자니 미래의 선되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자기소개 1분치를 만들어 놨었는데 모두 허사였다.그런데 면접이 참 편안하고 좋은 분위기였다.

-질문들을 두서없이 적어보면 장래희망은 무엇이냐(창업이라고 대답)

-이게 이벤트 조직 업무라 야근이 많은데 잘할 수 있냐(전 인턴 업무를 예시로 대답)

-인더스트리 4.0과 3.0을 영어로 설명해봐라(어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

-친구들을 두루두루 사귀는 편이냐, 아니면 작지만 깊게 사귀는 편이냐(깊게 사귀는편)

-이 업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에 두루두루 사귀는 편이 좋다(그에 대한 나의 부연)

왜 하필 이 회사이냐, 짧게(짧게 대답)

- 물어보고 싶은 점은(지속가능한 회사라고 칭찬을 많이 받는데 구체적 사례)


이런 질문들이었네, 나에게 자기생각이 확고하다는 칭찬인지 모를 말도 들었고, 전 인턴에서의 일을 말하니 자료조사는 잘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자료조사도 중요한 업무인가 보다. 3학년인 점에 대해서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내가 첫 면접자라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20분정도로 상당히 짧게 끝났다. 아리송하다. 면접 자체는 잘 했는데 자격요건이 너무 걸린다. 오늘도 면접 한 수 배우고 간다고 자기위안을 삼아보지만 뭔가....잘 모르겠다. 될 거 같기도 하고....됐으면 좋겠다....


점심     - 학교로 가서 ㅇㅅ와 점심. 함박스테이크를 내가 사주고 왔다. 로스쿨을 준비중인데 로

스쿨에 가기 위해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중이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자 또 다른 어려운 관문을 준비하는 친구. 응원과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풀고 돌아왔다. 그 친구의 옷차림만큼은 바로 합격이다. 


오후     - ㄱㄴ, ㅈㅎ, ㅅㅁ와 함께 ㅁ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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