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평점 :
-한국에서의 열풍 그리고 높은 대학진학률에 대하여
이 책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책이다. 우리가 곧 죽어도 사랑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명강사라고 소문난 교수의 책, 책 표지 한 가득 보이는 꽉 찬 하버드 대학의 강당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끌렸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읽은 시기는 그 열풍이 지나고 나서 읽은, 한마디로 뒤늦게 읽은 시기라고 봐도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라니 이게 정말 우리 국민의 수준이 높은 것인가, 아니면 정말 단순히 하버드 베스트셀러라 잘 팔린 것인가라는 의혹 아닌 의혹을 가졌다. 난 이 책을 어렵게 읽었다. 단순히 읽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노트에 적어가면서 이해하느라 다른 책에 비해 완독하는 데에 참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럼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을 계획을 하고 있는 책이다. 난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나를 포함하여)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1년에 책 1권도 안 읽는 나라에서 이런 깊이 있는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그 높디높은 대학진학률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가 그렇게 비난해마지 않는 ‘대학이 너무 많다. 90%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줄이자’ 이런 비난들. 그런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그만큼 양질의 시민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할 줄 알고,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 가란 생각한다. 나는 현재의 높은 대학진학률을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자원 하나 나오지 않는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머리를 써서 돈을 벌어야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세워졌을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해외유학생이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이고(인구 수 대비로 치면 우리가 1위이지 않을까) 다수의 고등 교육자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삼성이라는 세계 7위, 브랜드 인지도 측면 세계 2위의 대기업을 만들 수 있었고, 세계 10위 권 수준의 경제 대국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아무리 제조업이 우리나라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이공계의 능력만으로, 순수 노동자의 헌신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카피캣 전략으로 주로 성장하기는 했다만 그런 카피캣을 위해서도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필요한 생각, 깊은 사고는 모두 고등교육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걸 지금 줄이자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그렇게 외치고 있는 혁신, 창조성을 멈추자는 얘기와 동일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서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 사고가 깊다는 것이고 머리가 잘 발달된 좋은 시민임을 의미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을 때, 사회가 더욱 건전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그래서 이 열풍이 반갑다.
이 책은 나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적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정리한 내용을 복기하며 정리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비록 1강부터 필기하면서 읽은 것이 아니라 많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을 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정리
<7강. 소수집단우대정책논란 – 왜 우리는 지역균형선발을 하고 소수 집단에게 혜택을 주는가>
보상논리 –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행위, 역사적 차별을 보상하는 차원. But보상받는 자가 애초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고, 보상해 주는 사람이 역사를 바로 잡을 책임도 없다면.
다양성 논리 –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 다양성이란 곧 공동선. 섞여 있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무척 바람직. 하버드 대학도 인종적, 민족적 다양성을 고려. But , 정말로 효과를 주는지, 아니면 지원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지
-공리주의자라면 권리를 침해 받는 정도보다 사회적 이익이 크기 때문에 소수 집단 우대 찬성
-칸트식 or 롤스식 자유주의자 – 아무리 바람직해도 개인의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학문적 자질만을 고려해 선발하는 대학교는 별로 없다. 애초에 어떤 기준으로도 인정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학 허가가 정당한 경우는 대학이 정한 사회적 목적에 부합할 때뿐이다. 학교의 사회적 목적이 틀리지 않는 한(ex. 인종차별) 학교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
-롤스 – ‘뛰어난 재능을 타고날 자격이 있다거나 애초부터 사회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히 말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이기 때문에 입학하는 것
-기여 입학생은 정당한가? 대학이 원하는 ‘능력’이 어떤 식으로든 대학의 사명에 기여하는 역량을 뜻한다고 보면, yes. 대학이 정한 사명과 그에 따른 기준으로 판단된다면 공정성은 확보 된다.
Q. 대학은 어느 정도까지의 학문성, 어느 정도까지의 시민성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대학의 목표는 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 But, 각 사회 조직의 적절한 사명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까다로운 문제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응원단원이자 장애인인 켈리의 응원단 퇴출 문제
질문 1. 공정성 질문 – 응원 단원으로서 제 역할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 2. 영광과 분노 – 화려한 기술 없이도 미덕을 보여 준다면, 체조실력은 볼거리 중 하나로 격하되는가?
-사회적 행위는 도구적 목적(팀 응원)뿐만 아니라 영광과 모범을 제시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일맥상통
-그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ex. 플루트를 분배한다면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가 그걸 가져야 한다)
-정의는 능력에 따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정의가 부, 타고난 신분, 외적 아름다움, 우연 같은 기준에 따라 차별 적용 된다면 부당한 일
-공리주의적 관점을 뛰어넘는 것으로 목적론적 추론을 보여준다.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해당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물어야 한다.
Q. 대학의 목적, 텔로스는 무엇인가.
- 누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고, 소수민족우대정책을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대학의 존재를 둘러싼 이야기로 텔로스를 이야기 하는 것. 다양한 의견들, 사회조직의 목적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의 본질은 단번에 정해져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Q. 누가 통치권을 쥐어야 하는가?
- 정치 연합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보통 정치에 특별하고도 목적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민이 지지하는 다양한 목적에 가능성을 열어둘 뿐. But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은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두정치, 민주정치 둘 다 비판. 민주주의도 정치의 목적이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결국 정치 공동체는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 최고 공직과 영광은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Q. 왜 정치 참여는 좋은 삶의 필수 요소 일까?
- 답은 우리 본성에. 인간에게 언어란 선을 식별하고 고민하는 매체. 도덕적 삶은 행복을 목표로, 여기서 행복은 쾌락을 극대화하여 고통을 넘어서는 공리주의적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 상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며, 미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
-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시민은 숭고롭고 까다로운 존재.
1. 시민의 삶은 심사숙고 능력과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
2. 시민은 좋은 습관과 좋은 인격을 형성해야. 그래서 시민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옹호, 그에게 정의는 적합성의 문제. 과연 누가 내게 적합한 역할을 단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점에 대해 그는 노예가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노예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자유주의 정치론은 사회 역할은 적합성이 아닌 선택에 따라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 그래서 노예제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역할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말함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 항상 본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충직 딜레마>
Q.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사회 반대자들 –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 세대가 사죄해서도, 사죄할 수도 없다. 이것은 도덕적 개인주의, 개인을 이기적인 존재라고 전제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 칸트와 롤스의 생각도 비슷. 정의를 생각할 때 특정한 정체성을 배제해야 한다면 각종 사죄의 이유가 없다. 왜냐면 나를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Q.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 칸트와 롤스는 좋은 삶에 대해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특정한 개념을 강종하는 정의론은 자유에 맞지 않다고 봄. But, 그들도 특정한 도덕적 이상을 지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 우리가 선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없기 때문
- 선택의 자유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로는 충분치 않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가 때로는 불가능
Q. 그렇다면 공동체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서사를 갈망. 내가 속한 이야기와 타협할 때만이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난다.
-롤즈는 이제 반대, 자유주의적 사고에 따르면, 의무는 오로지 두 가지, 인간이기에 생기는 자연적 의무와 합의에서 생기는 자발적 의무. 엄연히 말해, 시민이 일반적으로 이행해야 할 정치적 의무는 없다는 입장.
-인간은 서사적이다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충직과 책임이라는 도덕적 힘에 의지해 살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정체성은 도덕과 정의를 고민할 때 배제할 수 없는 필연적 요소
Q. 애국심은 미덕인가
-장 자크 루소 –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은 보편적 인간성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요소.
Q. ‘국산을 사자’라는 주장은 불공평한가
-동료 시민을 도울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애국심이 도덕에 기초를 두었다고 믿는다면, 합의가 필요없는 연대의무나 소속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Q. 연대는 우리 사라만 챙기는 편애 아닌가?
- 연대와 소속의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성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 애국적 자부심을 느끼려면 세월을 뛰어넘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무는 모두 의지나 선택에서 나왔을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자유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얽매이지 말라고 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