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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첫 문장 – 지구상의 각 지역마다 역사의 진행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문명의 불평등, 식량에 대하여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뉴기니라는 나라에서 원주민 친구에게 받은 질문 때문이었다. 왜 흑인 원주민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했던 건지, 왜 유럽이나 미국이 제일 잘 발달하게 되었는지. 나 역시 평상시에는 인지하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는데, 원주민의 물음에 쉽사리 나만의 대답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히 유럽이나 미국이 먼저 발달을 했으니까 라고만 생각했을 뿐, 왜 하필 유럽이나 미국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그 질문을 끝없이 파고들어 결국 총, 균, 쇠의 영향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 균, 쇠 이전에 식량의 역사가 결국은 총, 균, 쇠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유라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지중해의 동쪽)에서 작물화가 쉬웠고, 가축화가 쉬웠기 때문에 유라시아가 발전을 먼저 시작할 수 있었고,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앞서 말한 ‘화물’을 원주민들이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발전이 넘어오지 않고 시간만 더 있었다면 원주민들도 자연스럽게 ‘화물’과 같은 문물을 만들어 냈을 거라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하지만 비옥한 초승달지대도 너무 많은 작물화와 가축화로 인해 그 비옥함을 잃었고, 결국 문명의 중심이 점점 서쪽으로, 유럽으로 갔고, 그 뒤 아메리카 대륙으로 흘러갔기에 현재와 같은 결과에 도달했다고 한다. 결국은 식량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단지 그 행운의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발전을 거듭한 종족이 다른 지역을 지배하고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간 것. 이런 내용들을 통해 저자는 현재 나라들간의, 문명들간의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명의 불평등이 인종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이론, 종족의 우월성으로 설명하려는 지배적 문명들의 오만함에 보내는 역사의 증언서인 것이다.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이 결국은 우연 때문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를 압박하는 듯하다.
- 융합형 교육에 대하여
나는 문과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딱 정하고 나서 나의 진로는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수학보다는 국어를, 과학보다는 영어를 조금 더 공부했었고, 이과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놀았다. 그렇게 대학을 와서도 경영학을 배우고 있으니, 나에게 과학과 수학은 이제는 넘볼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몰라도 되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내가 ‘인터스텔라’를 보고 유려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상관없었고, 미적분을 풀지 못해도 괜찮았다. 나는 문과생이니까 이과의 영역은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마패를 얻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전문성에 감명을 받았다. 생태학에서부터 시작해서,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고고학 등등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파헤치기 위해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공부를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25년 동안 말이다. 그런 다방면에 걸친 전문성이 있었기에 문명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있어서 막힐 법도 한 문제들을 때로는 이쪽 학문, 때로는 저쪽 학문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런 다방면의 학문 융합을 통해서 저자가 인류라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가 점점 난장판으로 향하고 있고, 새로운 과학은 매일같이 나오는 와중에도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 우리 인류를 위한 것이고 인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이 책은 또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다양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기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학문을 배우면 서로 다른 학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전체를 볼 수 밖에 없다. 즉, 저자처럼 각각의 학문의 전문성을 기르며(이게 사실 어렵지만) 여러 학문을 동시에 섭렵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은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나 지엽적인 학문들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져 가면서 한 부분에 딱 맞는 톱니바퀴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존 학문의 하위 학문)들이 계속해서 생겨나 대학교에서 과로 만들어지고 미래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광고하는 상황. 과거부터 르네상스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 융합 학문이 대두하고 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 이과로 나누어버리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어설픈 전공수업만 많이 듣고 있으니 르네상스형 인재, 정부가 부르짖고 있는 창조인재가 나오기엔 아직은 척박하지 않나 싶다.
매년 수능과 더불어 우리 교육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문, 이과의 분리인데, 개인적으로 문, 이과의 구분은 당연히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이 한 단계 발전할 시기가 왔는데 사회 기득권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유지하려고 입학사정관제다, 무스펙제도다 하며 은근슬쩍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더 강화하는 상황을 빨리 타도하자.
- 혁신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인류사에서 발생한 혁신의 원천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창조 경제가 한창 화두인 우리나라에서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인 것 같다. 저자는 한마디로 인류사에 있어 혁신, 창조라는 것은 정말 초반에만 발생한 것이고 그 이후에는 그런 창조의 원천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만들어진 더 나은 모방품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로는 한글이 있다. 우리는 한글이 세종대왕님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한글이 만들어질 때에 유라시아에서 널리 퍼졌었던 알타이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문자라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말인 것 같다. 우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과학계에서의 여러 새로운 물질이나 상품은 기존의 물품에서 기능을 조금 개선시킨 것이거나 우리가 그 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낸 것이 대부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얼마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발명 아닌 개선이 옳지 않다거나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창조경제를 외치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외국의 좋은 사례나 원천 아이디어를 개선시키는 것이 인류사에 있어서 더 자연스러운 혁신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없다. 모든 것에는 개선할 점이 있으며 그 개선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찾아내는 자가 결국은 혁신을 이루어 내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다른 나라에도 없는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그런 것 보다는 기존의 것에서 가능성을 엿보는 역량을 키워야겠다.
마지막 문장 – 따라서 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룡에 대한 연구에 못지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