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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어려운 주제도 어렵지 않게 느긋하게 풀어내고 사람의 마음과 연관 지어서 나긋나긋 말한다. 문장이 강하지 않고 보듬어주듯이 말해 지친 이들에게 힘을 주는 듯 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지쳐 있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 역시 미술 작품을 우리의 영혼, 마음과 연관 지어 조곤조곤 이야기한 책이다.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론으로 시작하는데, 예술은 다음 7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나쁜 기억의 교정책, 2. 희망의 조달자, 3. 슬픔을 존엄화 하는 원천, 4. 균형추, 5. 자기 이해로 이끄는 길잡이, 6.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7. 감각을 깨우는 도구. 등등. 이렇게 기능에 대해서 알고 나의 미술관 방문기를 돌이켜 보니 난 항상 ‘희망의 조달자’ 로써의 예술만 편향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슬픔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공감하기 힘들어했고, 추상화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등,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그림만 바라본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그의 생각 중에 놀라운 점은 미술관에서의 기념품점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는 기념품점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새겨진 컵이나 볼펜을 살까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가격에 이내 내려놓는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그 일상용품에 담긴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한다. 반 고흐의 작품이 그려진 컵을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기념품점은 예술의 일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확장해야 할 공간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단순히 명화 그림이 프린팅 되었다고 값이 3,4배로 뛰는 머그 컵을 욕하지만 사실 그 컵의 가치는 그보다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20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을 다녀오면서 머그컵을 사왔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이 그려진 컵은 그의 눈동자까지 세세히 그려 넣어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를 생각할 수 있었는데,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바로 그 예술의 일상화를 나는 운 좋게 경험하고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아몬드 나무를 그린 반 고흐 작품이 프린팅 된 우산마저 가지고 있으니… 너무 과도한 일상화인 듯 하다… 그래도 그 효과는 참 좋다. 컵과 우산을 볼 때마다 그림을 떠올리며 그 때의 감상을 다시금 회상할 수 있으니 예술이 살아 숨쉰다. 앞으로도 더욱 구입해서 가방, 휴대폰 케이스 등등으로 확장시켜 나가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p.145 – 예술은 마음의 단점을 교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간에 구속된 동물이라는 사실을 그리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어디로 가고 있고, 얼마가 지나야 거기에 닿을지 알지 못하고,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곧잘 잊는다. ……... 예술가에게 가치 있는 프로젝트는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의 허약한 상상력을 지탱해준다.
-> 평소에 미술에 아주 미약하게 관심이 있었고 유화를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 더 구매하고 싶어 졌다. 유화의 그 거친 물감의 흔적은 사진이나 인터넷 화면에서는 느낄 수 없다. 유화를 보면 뭔가 입체적이고 나의 허약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요즘 마음에 드는 명화를 찾고 있다. 명화를 직접 그려서 판매하는 업체가 있어서 거기서 사면 될 듯 하다. 난관을 극복하는 그림으로 거친 파도를 뚫고 가는 배 그림과 죽음을 표현한 그림이 일단 낙점이다. 두 작품을 매일같이 보면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죽음이 항상 곁에 있다는 냉철한 현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아직 나의 상상력을 가득 채우는 그림을 만나지 못해 찾고 있을 따름이다.
p.232 –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술이 다루는 가치, 즉 아름다움, 의미의 깊이, 좋은 관계, 자연의 감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인식, 공감, 자비 등에 냉담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 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 예술은 좋은 것이기에 끝없이 확장하고 퍼져야 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큰 가르침을 얻는다.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이 결국 덜 필요한 세상이라니…얼핏 모순 같다. 하지만 예술은 우리의 부족한 점, 우리가 꿈꾸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현실이 만족스럽고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예술의 역할은 줄어들 것이긴 하다. 다만 우리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욕심이 많기 때문에 예술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예술의 궁극적 목표를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출처
1.아트샵 사진
http://www.thedahl.org/gift-shop.html
2.반고흐 머그
https://www.vangoghmuseumshop.com/en/tablew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