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13 그래그래 피었던 벚꽃이 송이째 떨어지는 시간.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너무 예뻐서, 떨어진 꽃잎이 흩어진 거리가 너무 예뻐서, 오랜만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전자책이라, 종이를 넘기는 맛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좋은 문장을 읽을 수 있다면야 전자책이 대수일까.

지난 번 올린 구절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실린 이 칼럼들을 편집한 패멀라 폴은 여러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어떤 대답에는 실로 감명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 있는 작가나 이미 고인이 된 작가 중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작가로 셰익스피어를 꼽았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독창적인 답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공상이 적어도 열 명의 다른 응답자들, 그것도 모두 내가 찬탄해마지않는 작가들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큰 힘을 얻었다.

​- 패멀라 폴 <작가의 책> 중에서



김연수 작가님이 <백년의 고독>을 추천해주셨고,

하준 교수님마저 제일 좋아하는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백년의 고독>을 꼽는다, 는 인터뷰를 읽으면

도무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비밀 독서단 시즌2에 출연하는 동진님이 매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언급하며 기승전쿤데라 하시면,

박웅현 작가님이 내 인생에 책으로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 납득이 되는 것이다.

한 명의 추천도 큰데, 이 두 명이 추천하는 책이라니.

그걸 체감했을 때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째로 읽었을 때였다.

그저 남들이 다 읽는 책이라며 개츠비에 시큰둥했던 내가, 개츠비를 세번이나 읽을 줄이야.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의 구절처럼 개츠비를 처음 읽던 그 무렵의 나는 너무 어렸고, 

궁지에 몰리는 것이 무엇이며, 회한이 인생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금 나이를 먹고 다시 읽으니, 개츠비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대한 개츠비였고 피츠제럴드는 대단했다.

글 재주가 없어서 온전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 덕분에 '추천에는 분명 한 이유가 있다'를 실감하게 되었으니

내겐 위대한 개츠비에 마지않다. 


p.s. 사진은, 알라딘 굿즈 '크레마 카르타 셜록 오거나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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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읽는가 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무언가를 말해준다. 종이책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의 가장 슬픈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무심코 ̄가끔은 엄청나게 계산을 해서 ̄책장에 진열해놓은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가 어떤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가, 하는 것에는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최소한, 내가 읽어두어야만 할 것 같은 책과, 언급이 반복되어 더욱 설득력이 높아진 견해를 듣거나 떠올리게 된다. 보다 미세한 차원에서, 뛰어난 작가가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책들은 지면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생각이나 보다 깊은 문학적 취향 및 견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일 때가 많다.

- 패멀라 폴 <작가의 책> 추천사 중에서 



*


김연수 작가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 29쪽에는 한 명의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그는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글을 썼고, 결국에는 사십여 년 뒤 <백년의 고독>을 자신의 서가에 꽂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백년의 고독>을 사서 내 서가에 꽂았다. 이어 등장하는 <양철북>과 <한밤의 아이들>도 함께 샀다.

내가 이 책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좋아라하는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이니, 두말않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 했으니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를 읽다가 샀다.

정말 좋아하는 책이고, 네 번 읽었다는데 심지어 네 번째 읽었을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하시는데... 하... 안 살 수가 없었다.

<안나 카레리나>와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누가 추천했더라 싶어서

지식인의 서재 박웅현 작가님 편을 다시보니, 3권이 나란히 올라와있다.

이 외에도, 맛깔나는 리뷰를 읽고 구매한 책들이 많은데 그건 차차 이야기 하기로 하고...

출근 했으니😭 할 일은 하고, 점심 시간에 투표하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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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끌시끌하게 크레마를 구매해 놓고는 오래 방치해두고 있었다.

더 이상의 방치는 안되겠다 싶어서, 그간 외면했던 문제를 들여다봤다. 


2. 크레마를 구매하기 전부터 해온 고민이었다.

종이책을 구매하는 것과, 전자책을 구매하는 것의 조율.

평생 소장하고 싶은 책의 경우, 전자책보단 종이책으로 구매하기.
컬러 사진이 많은 책, 전자책보다 종이책으로 읽는게 괜찮겠다 싶은 책 역시 종이책으로 구매하기.

책을 읽다 곳곳에 메모가 필요한 책들은 종이책으로 구매하기 (예로, 인문학 서적).

 다음과 같은 책은 전자책 구매를 고려해 볼 것.


활자 위주의 소설.
활자 위주로, 두껍고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적합하지 않은 책.
로맨스 혹은 판타지 소설.

전부는 아니지만 대략 이렇게 생각하고 구매를 해왔다.

기준을 두고 구매한 건 좋았지만, 되려 기준에 얽매이고 말았다.

요즘 소설을 읽지 않아서 소설을 구매할 일이 없었고, 무거운 책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로맨스나 판타지는 애초에 끌리는 책이 있을 때만 구매했다.
여기에,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서 전자책 구매와는 더 멀어졌던 것이다.

크레마를 구매하기 전에 이곳 저곳에서 받은 전자책은 그 수에 한계가 있었고,

전자도서관은 내가 원하는 책이 없을 때가 많았다.

다시 말해, 크레마를 이용한 독서는 읽고 싶은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그래서 방치해둔 게 아닐까 싶어서, 큰맘 먹고 책을 구매했다.

얽매였던 기준 따위 무시하고, 읽고 싶은 책을 살 것. 그렇게 고른 5권의 책들.

소장하고 싶어서 구매한 소설 <레베카>와 지대넓얕 완독도 못해놓고 덜컥 산 <시민의 교양>,

읽고 싶어서 담아뒀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도서관에서 잠깐 읽고 목록에 올려뒀던 <작가의 책 : 작가 55인의 은밀한 독서 편력>.
그리고... <피로 사회>. 지난 주 비밀독서단을 보고 본의 아니게 영업당해서 구매를 결심했다.

전자책으로 구매할 줄은 몰랐지만. 

 

3. 새책은 새책이라고, 기분이 좋다. 전자책은 물성이 없어서 이런 기분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전자책도 책장 가득 채워뒀겠다, 다시 크레마에 정을 붙여봐야지 다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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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이란 한번 정하고 평생 지키는 것보다 그때그때 바꾸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를 페라리로 달리는 게 아니라 범퍼카 타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버티는 모습이

내 인생과 닮았다고 인정한다면 말이죠.

- 밥장, 몰스킨에 쓰고 그리다 p.240. 



고3시절, 노트마다 써두었던 좌우명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그땐 이 구절을 그렇게 좋았다.

2016년 3월, 나의 좌우명은 프로필에 내걸었듯 '꾸준히 읽고, 끝까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이다.
친구가 이런 내 좌우명을 보고, 되고 싶다가 아니라 되자! 라고 바꿔야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지만

난 여전히 '되고 싶다'라는 말이 좋다.
'되자!'라고 하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일상(끝까지 쓰는 사람은 커녕 꾸준히 읽는 삶 조차 묻어두고 사는 나날)을 살 때

좌우명을 바라보는 게 우울할 것 같았다.

반면에 '되고 싶다'는 마음이 편했다.

어떻게 보면 간절하지 않고, 그저 막연해보여서 뭐 이런 좌우명이 있나 싶지만, 부담이 덜한 게 매력이다.
부담이 덜 하니, 하루에 한 장을 읽는 것으로 '꾸준히'를 합리화 할 수 있다.

또, 글을 많이 쓰는 것보다 한 편을 쓰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하는 글을 쓰는 게 좋다.

'끝까지'라는 말이야말로 막연함의 '끝판'이지만, 누군가 진심을 담아 내 글이 좋다고 말해주면,

이게 기쁨이고 행복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무한히 설레는 일이다.

그러려면 꾸준히 읽고, 보고, 진득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에는 써야한다. 가능하면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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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해어화'에 대한 지극히 감성적인 리뷰. 스포일러 주의. 


2. '비긴 어게인'과 '위플래쉬'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좋은 영화를 관람했다는 것과

더불어, 음악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것이었다.
(여담인데,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1차 2D, 2차 4DX, 3차 명필름아트센터에서 관람한 바 있다.

세번째 관람이었으나, 환상적인 오디오(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이었던가😌) 덕분에 3차 관람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든 차지연 배우님은 조연도 아니고 특별출연이니,

분량이 내 성에 안 찰 것은 눈에 선했지만 영화관에서 꼭 한 번 듣고 싶었다.

내 예상보다 더 적게 나오고, 이후론 아예 안 나와서 너무 아쉬웠지만. 


3. 말을 알아듣는 꽃. 더 나아가 예술과 학문을 아는 예인 '해어화'. 기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화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명창 산월의 딸로 권번에서 나고 자란 소율과,

권번으로 팔려와 기생으로 자란 연희와,

당대 최고 작곡가인 윤우의 이야기.

두 사람이 동경했던 이난영 선생님 앞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노래했지만 이난영은 연희를 지목했다.

연희의 노래 앞에서, 윤우는 연희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관리들 놀음에, 일원 한 장이라도 주고 들어야하는 노래가 아니라 너는 하다못해

저 길 가는 거렁뱅이도 들어야 하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이 말이 연희를 움직인다. "선생님이 그러셨어, 내가 조선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소율은 윤우에게 달려간다.

작곡가이자,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김윤우라는 남자에게.

 연희의 가슴을 뛰게 한 '조선의 마음'은 윤우가 소율에게 주겠다고 했던 곡 이름이었다.
왜 자신이 아닌 연희를 선택했냐고, 정가만 들려줘서 그렇지

자신도 대중가요를 얼마든 부를 수 있다며 소율은 대중가요를 외친다.

세차게 퍼붓는 빗속에서, 소율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윤우는 '너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아본 적 없다'는 말로 소율을 위로한다.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연희의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겠지 하고 소율은 안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4. 물론 하루 아침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율에게 둘도 없는 동무였고, 오랜 정인이었기에 그럴리 없을 거라 믿었다. 믿었던만큼 배신감이 컸다.

그렇게 소율은 '질투'라는 화차에 오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둘을 갈라놓는다.

이 과정에서 소율은 되돌릴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렇게 악역이 된다.

그렇지만, 어디 소율만이 악역인가. 연희와 윤우 그 누구도 소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율을 찾아와 연희의 행방을 묻는가 하면, 소율의 잘못을 따지고 든다.

소율의 악행이 두드러져서 묻혔을뿐, 두 사람도 소율에게는 악역이었다. 


5. 연인이 된 시점을 중심으로 연희와 윤우라는 두 캐릭터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천재성있는 가수와 작곡가가 아니라, 오직 소율의 감정선의 극대화를 위해 쓰이는 인물이 된 것 같아 아쉬웠다.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살릴 수 있는 건 분명히 있었다. 그 시대의 음반 산업도, 예인으로서의 삶도.

시대극이 보여줄 수 있는 배경까지 빠짐없이 소율의 감정선에 소비된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소율을 연기하는 한효주의 연기만큼은 빛난다는 것이다.

소율에게 영화의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말이다.

경무국장에게, 바칠 것은 자신의 가무뿐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돌아왔던 소율은 고되 보였으나 행복해보였다.

사랑하는 윤우 앞에 앉은 그 순간만큼은 윤우의 말마따나 복사꽃 같이 예뻤다.

그랬던 소율은 화차를 굴릴수록 생기를 잃어갔다. 두 사람을 망가뜨릴수록 소율 자신도 망가졌다.

텅빈 두 눈으로, 윤우가 자신을 위로하며 해주었던 그 말을 돌려주던 소율.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처럼, 자신을 잃어가며 계속했던 사랑이었다.

거짓말만이 남은 사랑 곁에서, 모든 후회는 온전히 소율의 몫이다.

비단 설득력만이 문제가 아닌, 아쉬움 많은 치정극의 끝에서 소율만이 남는다. 


6. 그래도 그렇지. 정도가 있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싶지만,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의 알렉스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오래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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