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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킹제이 - 헝거게임 시리즈 03 ㅣ 헝거 게임 시리즈 3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평점 :

3부작 장편소설의 대장정이 마무리 되었다. 같은 작품을 두고 독자들의 견해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참 다양하다. 그래서 글이란 재미있다. 수잔 콜린스 저자의 헝거게임을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물로 보거나 생존 서바이벌 게임으로 본다면 그 작품은 하이틴 로맨스물이 될 것이고, 생존 서바이벌 게임이 될 것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해석의 차이로 전혀 다른 감정을 받을 수 있다.
필자는 헝거게임 시리즈를 로맨스나 서바이벌보다 1편은 경쟁 2편은 협동 3편은 자유라는 나만의 큰 대주제를 가지고 읽어나갔다. 고작 소설 시리즈 하나로 너무 거창한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라는 말을 아는가? 길을 걸어가는 세명의 행인 중 누구에게나 본받을점은 있다는 뜻으로 세상 도처에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즉, 누구에겐 가쉽거리의 유희물이라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나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3편 마지막 시리즈인 모킹제이는 긴 이야기의 끝을 말하고 있다. 모킹제이란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새로 인간이 개발한 머테이션(작중의 개조생명체)과 흉내지빠귀(실존하는 새)의 교배로 태어난 변종 동물이다. 간단한 음을 흉내 낼 수 있고 소리들도 모창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없다. 캣니스가 반란의 심볼. 자유의 모킹제이가 되었을때도 마찬가지다. 반군들의 목소리를 따라낼 뿐 그녀의 의지는 없다. 없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캣니스는 모킹제이의 역할을 하면서도 항상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한다.
헝거게임 : 모킹제이 편은 모킹제이(흉내어치) 처지가 된 캣니스가 단순한 앵무새인 모킹제이에서 캣니스 에버딘이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자유의 상징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자유롭지 못한 모순적인 모습에서 아직까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캣니스의 고뇌를 보여준다. 전작 캐칭파이어의 엔딩에서 게일은 캣니스에게 말한다.
더이상 12번 구역은 없다.
게일이 구한 900 여명의 12번 구역의 주민만 생존해서 13번 구역으로 이주해서 생존해 나갈뿐이다. 13번 구역은 75년전 폭격에서 생존해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75년이 흘러 지하속에 그들만의 국가를 설립했고, 900 여명의 12번 구역 주민들을 흔쾌히 인원으로 받아들였다. 75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들은 폐쇠적인 공간에서 인구번식을 크게 이루지 못했고 사실상 12번 구역의 900 명은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13번 구역은 반란을 선동해 다른 구역들이 캐피톨과 전쟁을 일으키도록 자신들의 목적을 캣니스라는 흉내어치에게 학습시켜 선동 프로포를 만든다. 때로는 없는 위험도 만들어 잘 팔리는 선동 영상을 만든다. 그 값은 다른 구역 주민들의 목숨이다. 부당한 권력의 캐피톨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지만 13번 구역의 대통령도 사실 캐피톨의 스노우 대통령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캣니스를 이용할 뿐이다. 선동영상으로 전 구역에 반란이 일어난 후로는 코인 대통령에게 캣니스는 더이상 필요한 흉내어치가 아니었다.
캣니스는 모킹제이(흉내어치)가 되기에는 너무 자유롭다. 나쁜말로는 제멋대로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듣지 않는 모킹제이는 자기 스스로 말을 하는 모킹제이는 권력자에게 필요없다. 이제는 죽어서 순교함으로써 반란에 더 큰 불길이 되어주면 그만이다. 75회 헝거게임에서 캣니스는 구출되었지만 피타는 탈출하지 못했다. 피타는 캐피톨의 고문과 하이잭으로 캣니스를 죽이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캣니스는 절망한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던 그리고 사랑해줄 한 사람을 망가뜨렸다. 캣니스는 스노우 대통령을 죽여야 할 이유가 늘어난 것이다.
반군은 순탄적으로 캐피톨을 고립시켰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스노우를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캣니스는 독자적으로 그동안 선동 프로포를 함께한 팀.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캣니스는 스노우 대통령을 직접 죽이기 위해 나선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겪지만 캣니스는 더이상 프림(여동생)을 대신해 자원한 캣니스가 아니다. 헝거게임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캣니스가 아니다.
오로지 스노우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하는 17살 여자애다.

반군의 끊임없는 저항과 각 구역의 목숨값으로 캐피톨은 결국 붕괴하지만 스노우 대통령은 웃는다. 권력자가 바뀌었을 뿐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스노우의 권력은 코인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캣니스는 자신에겐 충실하지 못했지만 모킹제이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코인 대통령은 하나의 제안을 한다. 캐피톨 시민을 굴복시키고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들에게 공포심과 무력감을 주기 위해 캐피톨 최고 권력자들의 자녀들로 헝거게임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누가 휘두르냐만 달라졌을 뿐 권력이란 뱀은 그대로 인것이다. 결국 스노우 대통령 공개처형일날 캣니스는 단 한발뿐인 화살을 스노우 대통령이 아닌 단상의 코인 대통령 가슴에 박는다. 왜 그랬는지는 캣니스 조차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코인이 대통령이 되는건 잘못된 권력의 답습이지 결코 모두가 바라는 자유국가가 아닐 것이다. 캣니스는 코인과 함께 권력에 젖기보다 권력의 가슴팍에 화살을 박아넣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더이상 남의 말에 휘둘리는 모킹제이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캣니스 에버딘이다.
결국 새장은 깨졌고 모킹제이는 하늘로 날아갔다. 새장을 벗어난다고 진정 행복하고 안전하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남이 주는 안정과 공간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유로움을 찾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