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현대 철학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하이트헤드가 인용하여 말한 것처럼 우리의 출발점은 원리로 환원될 수 없는 구체적 현실이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분명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남아 있는 이원론적 사고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의 도입이 필수적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포괄하는 방법론은 현상학적이라 불리든, 경험론적이라 불리든, 비판론적이라 불리든, 변증법적이라 불리든, 실천론적이라 불리든 결국은 단일한 현대의 정신을 공유하는 셈일 것이다. 나는 이것으로 현대 철학의 진보를 선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흔한 예이다. 아프리카 흑인 아이가 시를 하나 썼다.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뛰어 왔더니 심장이 쾅쾅 뛰고 얼굴이 발그레해졌단다.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는 아이의 경험의 절대성을 주창할 것인가, 아니면 인식론적 오류를 지적할 것인가? 물론 둘 다 아니다. 아이의 경험을 상대화하고, 즉 그것을 타자화하고, 그것이 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할 것이며, 다시 그 구성적 힘(사회적 실체)에 의해 생산되는 아이의 경험과 아이가 경험으로서 그 구성적 힘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추적하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때 매개항을 고려한 사유가 곧 변증법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엡도 테러 당시 파리 시민들이 내건 "자유, 평등, 박애"의 표어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방법이 아직도 '현대적'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읽고 있는 사상가들이 약간은 예전 사람들이고, 약간은 시대에 뒤진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어제 읽은 이번 호 "뉴 레프트 리뷰"의 "Why the Euro Divides Europe"(by Wolfgang Streeck)이라는 논문은 내게 큰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예전 사상가들'의 익숙한 논리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로존 위기를 색다르게 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로 관건은 어쨌든 방법론이다. 물리학에 대한 체계적 논술을 써달라는 요청에 대해 스피노자는, 아직 그것을 질서 있는 방법으로 서술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사고가 막장에 도달했다면 돌아볼 곳은 역시 방법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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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용.
    from 하나와 앨리스를 위한 작은 방 2015-12-06 04:11 
    "내가 느끼기로 관건은 어쨌든 방법론이다. 물리학에 대한 체계적 논술을 써달라는 요청에 대해 스피노자는, 아직 그것을 질서 있는 방법으로 서술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사고가 막장에&n...
 
 
무진무진 2015-11-24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신없이 몇 시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국시간으로 7시가 넘었네요. 에티카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영어는 잘 못하고, 한국 사람들이 저 책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논문도 검색해보다 우연히 weekly님의 사적인 공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워갑니다...자주 들리고 싶은 공간인 것 같아요. 땅을 한 곳만 깊게파면 옆의 토양이 점점 무너지듯이 weekly님이 쓰신 글들을 보고 그런 깊음과 넓음이 느껴져서 좋네요. 다쓰고 나니 이 글 <방법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weekly 2015-11-24 15:1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찬이시구요... 여기 있는 글들의 한계는 제게도, 제삼자에게도 명확한 거 같아요. 그 점이 항상 고민스럽지만 이곳이 저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그나마 면피책으로 삼게 되네요.

좋은 하루 되시기를...
 

새로 구독하기 시작한 "뉴 레프트 리뷰"에 한국의 백낙청의 논문이 하나 들어 있었다. 반가웠지만 논문을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은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 라는 것이었다. 이런 류의 담론이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내에서 어느 정도 현실적인 힘을 갖고 유통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알아 볼 일이다. 일단은 백낙청의 논문에 대한 나의 '편파적인' 인상을 짤막하게 정리해 두려 한다.

근대성이란 대체로 16세기 이후 서구가 경험하며 이뤄온 성과들(그리고 한계들)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근대성에 대한 이중적 기획이란 그러한 근대성을 수용하는 동시에 극복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이상은 백낙청의 논문 제목에 나타난 개념들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한 것이다. 백낙청은 그리 명료하지 않은 것 같다.)

첫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획'을 언급했으면 그것의 주체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낙청의 논문에는 이런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주체에 대한 온갖 철학적 논의들 다 집어치우고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만 거론해 보자. 서구가 근대성을 만들어가면서 그것의 극복을 고민하는 것과, 예컨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근대성의 수용과 극복을 고민하는 것은 같은 개념으로 포착될 수 없다. 서구에게 근대성이 일차적인 경험이라면 동아시아에게 근대성은 이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게 근대성은 자신들이 창조하고 있는 것으로 경험되지만 동아시아에게 근대성은 이미 현전하는 것으로, 수용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 근대성의 수용과 극복은 매우 복잡한 양상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는 서구화(아침에 스타벅스를 들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등의 패턴화된 서구적 생활 양식), 표현의 자유 등의 규범적, 제도적 이념,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등이 혼합된 것으로 경험되며,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선택적 반응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선택적 반응이 변용일까, 극복일까? 백낙청은 이에 대한 고민이 없다. 예를 들어 싱가폴과 같이 경제적으로는 고도로 자본주의화되어 있지만 근대성의 제도적 측면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싱가폴은 아직 근대성의 수용에 있어 불철저한가? 이러한 괴리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가? 이러한 모순은 궁극적으로 지양될 것인가? 수용과 극복이라는 개념만 갖고 이러한 구체적인 현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본다.

촛점을 한국으로 끌고 와 보자. 백낙청에 따르면 한국은 결핍된 나라다. 즉, 근대성의 주요한 징표인 민족 국가를 아직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족, 민족 국가라는 개념의 생성을 둘러 싼 온갖 논란들을 다 제쳐두고 한 가지 구체적인 문제만 제기해 보자. 한국이 북한과 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에 단일 국가를 설립한다는 것은 우리의 근대성의 경험에 어떤 의의를 가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한국이 실질적 민주화를 확충하는 데 중요한 장애가 되는 것은 항상 종북 논리, 다시 말하면 분단 체제의 한계에서 온 이념이었다. 그렇다면 통일은 이러한 한계를 걷어치우는 것이니 통일은 한국이 근대성의 규범적이고 제도적 측면을 온전히 누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까? 글쎄... 나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첫째, 분단 체제는 사실상 명목적인 것 같다. 남한과 북한은 더 이상 하나의 체제 안에서 상호의존적으로 공존하는 두 항으로 볼 수 없다. 분단체제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힘이 없다.  
둘째,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된 후 새로 편입된 북한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에게 표를 줄까, 민주당에게 표를 줄까? 난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누구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싱가폴과 일본을 보라. 한국이 한반도의 단일 국가를 형성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근대성의 중요한 요구를 만족한다고 해도 서구적 근대성의 이념적, 제도적 측면이 완성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나는 백낙청의 이론이 이러한 문제를 분석하는 틀도, 분석 결과에 따른 실천의 지시점도 제공해 줄 수 없다고 느꼈다.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근대성의 담론은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반성한 것인데 동아시아는 서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발점은 동아시아의 구체적 경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숙고할 것은 수용과 극복이 아니라, 마주침과 변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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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테러 공포 와중에 가장 비판받는 정치인은 국제적으로는 메르켈, 영국 내적으로는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뱅인 것 같다.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유화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갈등이 첨예화되고 힘대힘의 정책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유화론, 이상론은 설 자리가 없다. 이렇다는 것은 이러한 국면에서 실제로 유화론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입맛에는 쓰지만...

영국의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뱅은 가장 진보적인 현실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리아 폭격을 반대하며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직후부터 매일 매일 군부의 비토를 당하고 있다. 코뱅같은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가 코뱅이라면 결국 현실론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에스가 대화가능한 상대인가? 아니다. 그러면 방치해도 될 상대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행동해야 한다. 행동은 일차적으로 군사적 대응일 수 밖에 없다. 가능한 짧은 시일 안에, 가능한 민간인 피해를 줄이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습과 지상군 투입을 동시에 고려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개입을 선언해야, 즉 손을 더럽혀야 민간인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려는 국가들(특히 러시아)을 견제할 수 있고, 문명 충돌론 등을 반박할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사태 종식 후 더 이상 근본주의 세력이 준동하지 않도록 국제 협력안을 짤 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나는 서방 세계가 무단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결집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것이 제레미 코뱅이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수 있으려면 권위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입해야 하고 손을 더럽혀야 한다... -이것이 이 사태에 대한 나의 결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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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스가 다음 테러를 기획한다면 그 대상 중 하나는 분명 런던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영국이 제국주의 시절부터 너무나 많은 나쁜 짓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현재 초비상 상태에 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을 테러로부터 지켜 낼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영국 정부의 능력을 믿는다.

영국 정부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고 영국 정보원들이 얼마나 책임감 있고 탁월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예를 들 수 있다. 딱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러시아 민항기 사태때 발칵 뒤집어 진 곳은 러시아도 이집트도 아니고 바로 영국 정부였다. 즉각 비상 회의가 소집되고 테러 첩보가 분석되고 해당 지역에 남아 있는 영국 국민들에게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조처가 내려졌다. 러시아는 2, 3일 후에나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해당 공항의 검문 강화를 위해 이집트 정부에 계속 압박을 가해 온 것도 영국이었다. 결과적으로 수하물을 통해 반입되는 폭탄을 막지는 못했지만...)

11월마다 런던에서는 현충일 행사가 열린다. 커먼웰스 국가들(영연방 국가들)에서 온 대표들과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내가 보기에 영국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식민지 시대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정말 미안해. 용서해 주면 안되겠니? 1차 대전때, 2차 대전때 우리 힘을 합쳐 전체주의와 싸우지 않았니? 그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마음 영원히 간직할테니 우리 앞으로는 사이 좋게 지내자."

영국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 관세 혜택을 주고, 교육, 환경 보호 등을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올해 영국이 국가적으로(비비씨의 기획인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에볼라 퇴치다. 그냥 무심코 보면 영국 국민들하고는 거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에볼라 퇴치를 위해 영국이 왜 저렇게 신경을 쓰나, 하고 생각될 정도다.

인종적 다양성 문제. 예를 들어 영국 테레비젼에서 흑인 앵커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앵커가 히잡을 쓰고 보도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인종주의자라는 말은 인간 쓰레기라는 말과 동급이다. 그래서 간혹 축구 경기 중에 일어나는 인종주의적 욕설 한 마디에도 난리가 난다. 비비씨는 파키스탄 커뮤니티에 관한 코메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한다. 크리켓 레전드인 인도 선수의 은퇴 소식이 거의 긴급 뉴스급이다. 넬슨 만델라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긴급 뉴스였다. 백인 경찰의 과잉 대처로 흑인 남성이 사망했을 때 영국 내무부 장관의 조처는, 인구 비율에 맞게 흑인 경찰 수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등등.

영국 의회는 영국군의 시리아 폭격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뱅은 중동의 테러 세력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뱅은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면 이라크 침공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겠다고 이미 선언한 상태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영국의 이라크 침공 참여에 책임이 있는 토니 블레어 전총리는 실제로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토니 블레어조차 이라크 침공이 아이에스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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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5-11-1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이 정책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만 보면 그렇지만 the sun 이나 다른 보수 언론의 커버기사나 거기에 달리는 덧글에 극명히 보이는 외국인/난민 혐오도 함께 염두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weekly 2015-11-18 01: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느 사회건 극우적인 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구가 20%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증폭시켜서 주도적인 여론으로 만들때 발생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잠재되어 있는 20% 정도의 극우적 성향은 그냥 정상적인, 건강한 사회의 일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도 유킵이 이 정도 지지를 받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영국은 극우적인 성향이 주도적 여론이 되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극우 세력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잉글랜드 백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러면 유나이티드 킹덤의 통일성이 깨져 버리죠. 더구나 현충일 행사에서 보듯 영국의 정체성은 여왕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인종까지 포괄합니다. 즉, 극우적 목소리는 여왕의 상징적 통일성마저 위태롭게 하는 셈이지요...

얼마 전 보수당이 가난한 가정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시키는 법안을 내었지만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하우스 오브 로드에서 이를 부결시켰다는 기사를 보셨는지요? 중도라지만 어쨌든 경제 전문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하우스 오브 로드를 지지하는 기사를 냈더라고요. 영국은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난한 서민 계층을 가능한 압박하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워킹 클라스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것도 극우의 준동을 막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퓌쉬앤칲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게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썬이나 데일리 메일을 보게 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이 신문들은 이민자/난민 혐오를 열심히 조장하고 있습니다. 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왜나하면... 얼마 전에 엄청난 일이 있었죠? 파키스탄 동네에서 백인 소녀들을 다년간 성폭행하고 매매춘시킨 것... 한국에서라면 원자폭탄급 이슈였을 텐데요... 영국은 조용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기사들을 썬이나 데일리 메일 등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제가 보지를 못했지만 이러한 엄청난 사건도 반-이민, 반-외국인 문제를 표면화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껏 이슈화되는 수준은, 루마니아나 시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베네핏을 갉아 먹는다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야 뭐~ (게다가 영국 언론에서 이민자들이 영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열심히 선전해 주고 있죠. 예를 들면 엔에치에스 인력의 10% 정도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것 등등.)

이제 새로 이슈화된 것이 테러 위협인데 이건 또 보수당이 잘 하고 있죠. 영국이 할당받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터키의 난민촌에 직접 가서 선별하여 데려온다든지 하는...

qualia 2015-11-18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라도 “대화”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차별/테러/폭력/전쟁 따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weekly 님 전언의 핵심으로 이해합니다.

weekly 2015-11-18 17:3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 사실은 제 의견도 계속 진동하고 있기 때문에...

Forgettable. 2015-11-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했지만 이 글은 약간 편파적인것 같아 덧글을 달았네요. 영국인의 각자 개개인의성향이 어떻든 국가에 대한 믿음은 완고한 것 같아요. 스페인이나 한국의 그것과는 대조적이어서 질투도 나고 뭐 그렇습니다. ㅎㅎ

weekly 2015-11-18 17: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현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원 글은 단지, 영국이 (원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선도적인 조치들을 하고 있는가를 두서없이 떠벌인 것 뿐이랍니다.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구요.

다 떠나서 포겟터블님이 말씀하신 대로 영국인 각자의 국가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 보여요. 저도 놀랍고 질투나고 그렇답니다. 그러나 공짜로 그렇게 된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이구요. 영국 왕실과 정부가 국민적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들을 평가해 주어야 하리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국인의 국가에 대한 믿음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국가의 노력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뜻이라고 저는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샤프심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신문 헤드라인에 눈이 꽉 박혀 버렸다. 이번 파리 테러범이 난민을 가장하여 유럽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젠장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시리아 난민에 동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이 시리아 난민에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아이에스가 난민들에 섞여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한 동정론자들의 주장은, 난민을 막아도 어짜피 들어온다, 그때는 불법으로 몰래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가 어떻게 들어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당국이 전혀 파악할 수도, 그러므로 관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 라는 것이었다. 이번 테러 사태로 이러한 주장이 무효화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도 답이 없던 난민 문제가 더 한층 꼬여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나는 파리 테러 소식을 어제 낮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비비씨와 씨엔엔을 번갈아 보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이토록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답을 듣기는 힘들었다. 어떤 분석가는 레스토랑, 바, 축구 경기장, 콘서트 홀 등이 타겟이 된 것으로 봤을 때 유럽적인 생활 양식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헛소리를 하더라. 어떤 기자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신성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유럽 사람들의 자기중심주의와 한심한 지성 수준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테레비젼을 껐다.

프랑스인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철학적 문제는 인간 현상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폭탄을 칭칭 동여맨 채 수십, 수백의 무고한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극단적 행위에도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방 언론들은 테러의 원인에 눈길을 주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프랑스인 사르트르에게서 배운 모든 것은, 인간의 행위는 자연 재해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인 것이다.

프랑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10% 가까이 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알제리 출신일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베트남에 대해서도, 시리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프랑스 사회의 배타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슬람계 시민들이 2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등등... 엡도 테러가 났을 당시 비비씨의 리포터가 프랑스에서 취재를 했다. 그 리포터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이었는데 프랑스의 극우 청년과 인터뷰를 했다.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 아닌 사람은 프랑스를 떠나라고 주장한다. 나는 종교가 이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당신만큼 프랑스말을 유창하게 한다. 그런데 나도 프랑스를 떠나야 하는가?" 그 청년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난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내가 프랑스를 떠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리포터가 반문했지만 그 청년은 눈길을 슬며시 피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필 파리에서, 이토록 극단적이고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난 것과 정녕 아무 상관도 없을까? 이번 테러 사태에 대한 프랑스 현지 취재 꼭지를 마무리하면서 비비씨의 기자는 이렇게 코멘트하였다. "엡도 테러가 벌어지고 난 후 사람들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두려워 했다. 그리고 이번 테러가 그 답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무자비게' 싸우는 것만이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최선이 될까?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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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1-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로 위클리님 글에 동감하고 공감하던 사람인데요, 이 글은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힘드네요.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몇 자 적습니다. 파리 한 복판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미디어가 앞장서서 테러가 일어난 이면을 밝혀야했을까요? 사르트트가 인간현상에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고 테러로 죽은 자식앞에서 울부짖고 있을 부모를 위해 테러의 이면을 지금 파헤친들 미친년놈 소리밖에 더 듣겠습니까? 락콘서트장 축구장등 테러가 일어난 곳이 주로 젊은층위주로 모이는 장소던데,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그 평범한 일상이 인생 즐거움이었던 사람들이었고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자식이나 부모가 죽었는데, 그들 앞에서 이슬람 테러의 원인 규명이 우리 서방 세계의 이슬람 착취와 탄압과 억압이었다라고 저 자리에서 누구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반성하자, 이런 말을 미디어나 지성인들이 티비나 라디오에 나와서 했어여 했나요? 위클리님께서 사르트르를 공부하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현상을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정말 위험한 자세입니다. 저도 한 때 평론가를 꿈 꿔 김현의 비평서적을 읽으면서 모든 문학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한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지 말라고 모든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텅빈 곳을 찾아 너의 사고체계로 만들라고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 말이 님의 페이퍼 보니 생각나네요.

테러가 끝난 후, 어떤 말들이 나오겠지요. 911테러 후 미국 지성계가 부시가 일으킨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요. 유럽의 아프리카나 아시아 착취에 대한 반성도 유럽지성계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프랑스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한 자성은 지금은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프랑스란 나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번 테러로 자식을 부모를 잃은 분들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weekly 2015-11-16 14: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프랑스가 행한 민간인 학살의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현대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가 날 때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는 샤를리 엡도다˝, ˝자유, 평등, 박애˝ 등의 표어를 내거는 것이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무자비한`이란 단어를 쓰는 것에 흠짓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에 흠짓함을 느낀다면 입을 열어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자, 그것이 흠짓하다고 말하자, 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민간인 학살`의 현대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시엔엔 뉴스를 보니 프랑스 공군이 아이에스의 수도격이랄 수 있는 라카에 커다란 공습을 감행했다고 하더군요. 시리아에서 오래 살다 온 기자가 말합니다. 라싸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가 별로 없다, 아이에스와 민간인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받은 프랑스 공군의 폭격은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란 말의 뜻은 민간인 피해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민간인들은 유럽인이 아닙니다. 뉴스 카메라도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잡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입니다. 무고하게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으며, 아직 살아있다면 곧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순간에 어떻게 프랑스 사람들의 죽음에만 우리가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프랑스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해주면 공감해 줄수록 프랑스의 폭격은 더욱 `무자비해질 것`을 우리는 이미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무자비한 보복이 프랑스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해줄까요? 위에서 말한 기자는 회의적이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사르트르를 언급한 이유는 꼭이 그를 추종해서는 아닙니다.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사르트르는 알제리 편에 섰습니다. 프랑스가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한편으로 알제리도 프랑스에 대해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프랑스는 억압자이고 알제리는 피억압자이기 때문에 알제리의 만행은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요.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두 번의 폭탄 테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르트르의 과격한 입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파리 테러 희생자에 대한 슬픔 때문에 시리아 민간인들이 처한 당장의 운명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종이 위에 적힌 숫자에 불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weekly 2015-11-16 17: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첨언하자면...

1). 테러범들 중 3명은 프랑스 국적인 것으로 나오고 있네요.
2). 위에서 이야기한 시엔엔 보도에 의하면 많은 고등 교육을 받은 튀니지 젊은이들이 아이에스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제게는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이 파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인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집단으로 패닉에 빠진 파리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이리 저리 내닫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더군요. 파리 시민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qualia 2015-11-17 09:28   좋아요 0 | URL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 같은 보복 공격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일 뿐이죠. weekly 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중동/아랍은 (먼 옛날엔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근대 이후 계속 영미권, 유럽권으로부터 계속 인종차별/민족차별/종교적 박해/문화적 음해/착취/수탈/무차별 공격/왕따 등등을 당해왔다고 볼 수 있죠.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에서 주장했다는데요.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폭력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지금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중동/아랍권 시각으로 본다면 스티븐 핑커 주장과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weekly 2015-11-17 17: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qualia님
예,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에 서방 열강들이 근원적인 책임이 있고, 이른바 대테러 전쟁이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 전쟁이기 때문에 저도 서방 세계의 지금과 같은 대응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스의 거점 도시 라카를 맹렬히 타격한들 새로운 대량 난민만 발생시켜 유럽을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리 테러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극우 세력의 준동을 야기하여 새로운 악순환의 강력한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겠죠? 저는 당분간 뉴스 안보기로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