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샤프심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신문 헤드라인에 눈이 꽉 박혀 버렸다. 이번 파리 테러범이 난민을 가장하여 유럽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젠장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시리아 난민에 동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이 시리아 난민에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아이에스가 난민들에 섞여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한 동정론자들의 주장은, 난민을 막아도 어짜피 들어온다, 그때는 불법으로 몰래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가 어떻게 들어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당국이 전혀 파악할 수도, 그러므로 관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 라는 것이었다. 이번 테러 사태로 이러한 주장이 무효화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도 답이 없던 난민 문제가 더 한층 꼬여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나는 파리 테러 소식을 어제 낮에야 알았다. 그때부터 비비씨와 씨엔엔을 번갈아 보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이토록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답을 듣기는 힘들었다. 어떤 분석가는 레스토랑, 바, 축구 경기장, 콘서트 홀 등이 타겟이 된 것으로 봤을 때 유럽적인 생활 양식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헛소리를 하더라. 어떤 기자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신성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유럽 사람들의 자기중심주의와 한심한 지성 수준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테레비젼을 껐다.

프랑스인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철학적 문제는 인간 현상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폭탄을 칭칭 동여맨 채 수십, 수백의 무고한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극단적 행위에도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방 언론들은 테러의 원인에 눈길을 주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프랑스인 사르트르에게서 배운 모든 것은, 인간의 행위는 자연 재해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인 것이다.

프랑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10% 가까이 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알제리 출신일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베트남에 대해서도, 시리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프랑스 사회의 배타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슬람계 시민들이 2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이민자 후손들이 프랑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등등... 엡도 테러가 났을 당시 비비씨의 리포터가 프랑스에서 취재를 했다. 그 리포터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이었는데 프랑스의 극우 청년과 인터뷰를 했다.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 아닌 사람은 프랑스를 떠나라고 주장한다. 나는 종교가 이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당신만큼 프랑스말을 유창하게 한다. 그런데 나도 프랑스를 떠나야 하는가?" 그 청년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난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내가 프랑스를 떠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리포터가 반문했지만 그 청년은 눈길을 슬며시 피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필 파리에서, 이토록 극단적이고 커다란 규모의 테러가 일어난 것과 정녕 아무 상관도 없을까? 이번 테러 사태에 대한 프랑스 현지 취재 꼭지를 마무리하면서 비비씨의 기자는 이렇게 코멘트하였다. "엡도 테러가 벌어지고 난 후 사람들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두려워 했다. 그리고 이번 테러가 그 답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무자비게' 싸우는 것만이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최선이 될까?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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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1-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로 위클리님 글에 동감하고 공감하던 사람인데요, 이 글은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힘드네요.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몇 자 적습니다. 파리 한 복판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미디어가 앞장서서 테러가 일어난 이면을 밝혀야했을까요? 사르트트가 인간현상에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고 테러로 죽은 자식앞에서 울부짖고 있을 부모를 위해 테러의 이면을 지금 파헤친들 미친년놈 소리밖에 더 듣겠습니까? 락콘서트장 축구장등 테러가 일어난 곳이 주로 젊은층위주로 모이는 장소던데,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그 평범한 일상이 인생 즐거움이었던 사람들이었고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자식이나 부모가 죽었는데, 그들 앞에서 이슬람 테러의 원인 규명이 우리 서방 세계의 이슬람 착취와 탄압과 억압이었다라고 저 자리에서 누구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반성하자, 이런 말을 미디어나 지성인들이 티비나 라디오에 나와서 했어여 했나요? 위클리님께서 사르트르를 공부하시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현상을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정말 위험한 자세입니다. 저도 한 때 평론가를 꿈 꿔 김현의 비평서적을 읽으면서 모든 문학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한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지 말라고 모든 작품을 그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텅빈 곳을 찾아 너의 사고체계로 만들라고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 말이 님의 페이퍼 보니 생각나네요.

테러가 끝난 후, 어떤 말들이 나오겠지요. 911테러 후 미국 지성계가 부시가 일으킨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요. 유럽의 아프리카나 아시아 착취에 대한 반성도 유럽지성계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프랑스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한 자성은 지금은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프랑스란 나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번 테러로 자식을 부모를 잃은 분들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weekly 2015-11-16 14: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프랑스가 행한 민간인 학살의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현대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가 날 때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는 샤를리 엡도다˝, ˝자유, 평등, 박애˝ 등의 표어를 내거는 것이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무자비한`이란 단어를 쓰는 것에 흠짓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에 흠짓함을 느낀다면 입을 열어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자, 그것이 흠짓하다고 말하자, 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청산되지 않은 오명의 `민간인 학살`의 현대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시엔엔 뉴스를 보니 프랑스 공군이 아이에스의 수도격이랄 수 있는 라카에 커다란 공습을 감행했다고 하더군요. 시리아에서 오래 살다 온 기자가 말합니다. 라싸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가 별로 없다, 아이에스와 민간인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받은 프랑스 공군의 폭격은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란 말의 뜻은 민간인 피해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민간인들은 유럽인이 아닙니다. 뉴스 카메라도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잡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입니다. 무고하게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으며, 아직 살아있다면 곧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순간에 어떻게 프랑스 사람들의 죽음에만 우리가 가슴 아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프랑스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해주면 공감해 줄수록 프랑스의 폭격은 더욱 `무자비해질 것`을 우리는 이미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무자비한 보복이 프랑스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해줄까요? 위에서 말한 기자는 회의적이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사르트르를 언급한 이유는 꼭이 그를 추종해서는 아닙니다.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사르트르는 알제리 편에 섰습니다. 프랑스가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한편으로 알제리도 프랑스에 대해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프랑스는 억압자이고 알제리는 피억압자이기 때문에 알제리의 만행은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요.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두 번의 폭탄 테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르트르의 과격한 입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파리 테러 희생자에 대한 슬픔 때문에 시리아 민간인들이 처한 당장의 운명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종이 위에 적힌 숫자에 불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weekly 2015-11-16 17: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첨언하자면...

1). 테러범들 중 3명은 프랑스 국적인 것으로 나오고 있네요.
2). 위에서 이야기한 시엔엔 보도에 의하면 많은 고등 교육을 받은 튀니지 젊은이들이 아이에스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제게는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이 파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인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제 뉴스에서는 집단으로 패닉에 빠진 파리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이리 저리 내닫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더군요. 파리 시민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qualia 2015-11-17 09:28   좋아요 0 | URL
“프랑스의 무자비한 공습” 같은 보복 공격은 “오히려 테러의 씨를 흩뿌리는 것”일 뿐이죠. weekly 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중동/아랍은 (먼 옛날엔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근대 이후 계속 영미권, 유럽권으로부터 계속 인종차별/민족차별/종교적 박해/문화적 음해/착취/수탈/무차별 공격/왕따 등등을 당해왔다고 볼 수 있죠.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에서 주장했다는데요.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폭력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지금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중동/아랍권 시각으로 본다면 스티븐 핑커 주장과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weekly 2015-11-17 17: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qualia님
예,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에 서방 열강들이 근원적인 책임이 있고, 이른바 대테러 전쟁이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 전쟁이기 때문에 저도 서방 세계의 지금과 같은 대응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스의 거점 도시 라카를 맹렬히 타격한들 새로운 대량 난민만 발생시켜 유럽을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리 테러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극우 세력의 준동을 야기하여 새로운 악순환의 강력한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겠죠? 저는 당분간 뉴스 안보기로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