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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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호러의 귀재 기시 유스케가 10년에 걸쳐 그려낸 작품“(p356)인 비 시리즈의 첫 번 #가을비이야기 는 일본 설화문학의 진수로 꼽히는 에도시대의 고전 <우게쓰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야기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의 절망과 쓸쓸함을 맛볼 수 있었다.
이번에 찾아온 #여름비이야기 는 전작과는 다르게 인간의 악의와 그에 따른 공포와 형벌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5월의 어둠>
비 오는 어느 날 은퇴한 노 교사 사쿠타에게 중학교 때 하이쿠부에서 활동했다는 옛 제자가 찾아와 죽은 오빠가 유작으로 남긴 시집의 하이쿠를 해석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이쿠 부의 지도 교사로 활동했던 사쿠타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지금은 많은 것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처지지만 웬일인지 옛 제자가 건넨 시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보쿠토 기담>
1930년 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요시타케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나비가 그려진 유리그릇을 본 후 검은 나비 꿈꾸기 시작한다.
다시 찾은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지저분한 수험자 복장의 사내를 만나게 되고 꿈속에 나타나는 나비가 지옥으로 이끌 것이라 경고한다.

<버섯>
공업 디자이너인 스기하라는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한적한 시골에 단독 주택을 구매 후 가족과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는 부부 싸움 후 아들과 집을 나가고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사촌 형 쓰루다가 스기하라의 집을 찾았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버섯이 온 집안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이쿠, 곤충, 버섯을 기반으로 쓴 소설은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비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선뜩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를 소재로 한 <5월의 어둠>은 계절성을 나타내는 시어를 짚어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지만 신선하게 느껴진다.

세 편의 소설은 공통점이 전혀 없는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인간의 추악함과 악의를 다루고 있고 범죄를 저질른 이들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걸 보게 한다.
끊임없는 기억의 굴레에 빠진 남자와 향락에 빠져 죄를 저지른 남자, 그리고 재물에 눈이 먼 남자의 잔혹함의 끝은 그들이 저지른 죄의 크기만큼 죗값을 충분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다는 뜻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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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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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한 번도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다.
#아오이가든 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모르는 그곳에서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고 그 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 한 번에 읽기가 어려웠다.

#소년이로 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에 읽는 내내 슬프고 괴로웠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소설집은 아픈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표제작인 ‘소년이로’ 역시 아픈 아버지가 사망 후 집안이 몰락해 헤어지게 된 친구의 이야기이고 마지막 ‘다음 손님‘ 또한 치매를 앓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죽은 지 한 달 만에 냄새를 풍기며 발견된 친구를 떠올리며 87일 동안 ‘나’를 찾은 남자의 이야기(우리가 나란히)도 슬프고 자신에게 벌어진 사고의 원인이 누구의 책임인지 끊임없이 묻는 인물(원더박스)도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한가한 정원 가꾸기가 떠오르는 (식물 애호)는 장편소설 #홀 의 단편 이야기로 장편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을 집에서 누군가 전담하여 돌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관계에서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인 (다음 손님)은 가장 슬프고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특히 누구나 치매의 ‘다음 손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어떤 공포 소설보다 공포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시체와 쓰레기, 구더기 같은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아오이 가든>이 덜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었다.
너무나 사실적이라 더 불편했고 눈물났지만 머지않아 작가의 다른 이야기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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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배우는 아이 웅진 우리그림책 141
김민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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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웅진주니어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페달 없는 두발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드디어 페달이 달린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자랐습니다.
아빠는 멀리 보고 페달을 힘껏 굴러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는 자전거를 잡고 있던 아빠가 손을 놓을까 겁이 납니다.

”자전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슬아슬
비틀비틀
점 점 빠르게…….“

처음 타는 페달 자전거는 생각처럼 쉽게 균형을 잡을 수 없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손바닥이 까져도 포기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순간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고 달려 나갑니다.

자전거 타기 좋은 가을날 처음으로 페달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여러 컷의 그림으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흑백이던 풍경은 아이가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질수록 색을 얻게 되고 아빠와 함께 멀리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에는 울긋불긋한 낙엽이 꽃잎처럼 날리며 달리는 길을 밝혀줍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이 눈물 나게 대견합니다.
한 뼘 정도 더 큰 듯한 아이의 밝은 표정과 아이의 뒤를 대견해하며 따라가는 아빠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책은 아이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을 선물하고 부모에게는 아이와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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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웅진 우리그림책 75
김민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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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웅진주니어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아직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는 두발자전거를 타는 형들만큼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을 힘껏 굴러도 형들을 따라갈 수 없지요.
형들은 자꾸만 멀어져 가고 아이는 풀이 죽어 가던 길을 되돌아오다 자전거 바퀴가 돌멩이에 걸려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게 됩니다.

페달 자전거를 타지만 형처럼 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었던 아이는 기를 쓰며 형들을 쫓아갑니다.
친구들과 앞서 달리던 형아가 동생이 걱정돼 되돌아오는 마음도 이해되고 돌아가라고 하는 형의 말에 상처받은 동생의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혼자 돌아오는 길에 바람마저 쓸쓸하게 불어옵니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와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이름표가 붙어 있는 텃밭 등 익숙한 풍경을 검은색과 빨간색이 주를 이룬 단순한 색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빨간 안전모를 쓴 아이와 빨간 집을 짊어진 채로 느리지만 꾸준히 나무를 오르는 달팽이의 모습이 어딘지 닮았습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그 처음은 언제나 능숙하지 못하고 느리기까지 합니다.
달팽이가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무를 오르는 것처럼 아이도 느리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만난 달팽이와 아이가 나무 위에서 보는 노을이 물들어가는 하늘은 서툴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는 아이가 찾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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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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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니들북(하빌리스)에서 진행한 픽션클럽모집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소설은 인간의 이상 심리를 잘 다루어 극한의 공포를 선물하는 건 물론 그것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 지면을 통해 이미 발표된 12편의 단편을 한데 묶은 <제로섬>은 모두 세 개의 챕터로 나눌 수 있다.

학생과 교수, 부모와 자녀, 그리고 동료와 배우자 등의 대인 관계에서 오는 문제를 다룬 첫 번째 장과 특별한 이유가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자살에 끌리는 소설가의 혼란스러움을 다룬 ‘자살자’가 두 번째 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는 신체의 이상에서 오는 공포와 문명의 이기가 주는 두려움과 어두운 현실을 다룬 이야기가 담겨있다.

‘끈적끈적 아저씨’라는 다소 가벼운 제목의 소설은 어린아이들을 짓밟는 어른들을 단죄하는 소녀들의 활약을 담고 있다.
‘끈적끈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감과 소녀들이 단죄에 사용했던 도구의 특성이 맞물려 읽고 난 뒤 제목이 주는 의미까지 되짚어 보게 된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느끼는 불면의 고통과 한기가 느껴지는 ‘한기’와 엄마에게 학대받는 아이의 간절한 외침처럼 들리는 ‘저 데려가세요, 공짜예요’는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다.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고통과 무책임한 양육자의 태도에서 오는 고통이 양면의 동전처럼 한 몸으로 붙어있는 이야기 같아 슬픈 마음이 든다.

가장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베이비 모니터’ 속 엄마의 고통이었다.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를 위해 설치한 베이비 모니터를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에서 육아에 지친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실재하는 아이가 아닌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는 아이를 더 신뢰하는 엄마의 모습이 현대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 닮아서 더 두렵다.

<제로섬> 속 주인공들은 여성들이다.
‘자살자’의 주인공은 남성 작가이지만 그 작가를 돌보는 이는 부인인 여성이고 ‘상사병’의 이야기는 남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스토킹을 당하는 당사자는 여성이다.
교수에게 특별하게 보이고 싶었던 학생도 여성이고 임신과 출산, 유산은 물론 아이를 주 양육하는 이들도 여성이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도 여성이다.

소설은 작가가 표현하는 특유의 공포로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며 사회와 가정 안 여성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세상에서 여성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제대로 대우해 주고 시정하라고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이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줌으로써 여성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고 사회를 점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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