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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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죄가 그 가지를 저렇게 시들어 죽게 만든 것인가? - 로저 맬빈의 매장 p. 61

 
   

  이 정도면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한꺼번에 밀린 후기를 쓰고 있다. 그 동안 토익공부와 시험공부를 같이한답시고 너무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물론 본인은 공부만 죽어라 하는 스타일이 절대로 아닌지라 적당히 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밀린 후기를 쓰고 있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다... 헉헉. 나는 11시까지 너새니얼 호손 후기를 다 쓰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시작한다.

 <주홍글씨>는 <데미안> 이후로 내가 읽다가 짜증내면서 덮은 두번째 책이다. 물론 <데미안>처럼 스토리가 막장으로 간다거나 어렵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분은 소설을 쓸 때 굉장히 말을 길게 끈다는 특징이 있다. 비록 그런 문체가 우회적으로 비꼬는 효과를 거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도를 나갈 때마다 점점 스토리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이 단편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처음에는 과제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은 책이었다.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언니가 내 책을 보더니 "너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읽는구나?" 이렇게 말을 거시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껴안고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이거 재밌어"라면서 <목사의 검은 베일>을 가리키셨다. 그 이후부터 왠지 좋은 예감이 들어서 무작정 펼쳐서 읽었다.

 엄청 편안하고 가볍게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공포와 호러의 요소가 있어서 책을 펼치는 행위에 속도가 붙었다. 너새니얼 호손은 냉정하게 보면 전혀 공포같지 않은 장면을 공포스럽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미국 초기의 도시가 신시티같은 느낌으로 표현되었다고 할까. 창작의 고뇌와 남성예술가에게 작용하는 여성의 뮤즈역할이 우화로서 리얼하게 드러나는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액자형 소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다 할 수 있는 <라파치니의 딸>. 누가 죄를 지었는지, 혹은 누가 죄를 숨기고 있는지를 추적해보라. 소름끼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남의 눈에서 대들보를 발견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그 시선은 부메랑처럼, 결국 독자에게 되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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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하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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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 태학에는 늙은 학구가 있었는데, 이름은 왕곡정이다. 왕곡정은 한인인 어린아이 호삼다에게 글을 가르쳤다. 호삼다는 나이 열세 살이었다. 또 만주 사람으로 왕나한이란 자가 있었는데, 나이는 바로 일흔셋으로 호삼다에 비하면 한 갑자가 더한 무자생이다. 곡정에게 강의를 받는데 매일 신새벽이면 삼다와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곡정을 찾는다. 더러 곡정이 이야기때문에 틈이 없을 때는 노인은 언뜻 몸을 돌려 호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주저하지 않고 글을 한 차례 받아 가지고 간다. - p. 208  
   

 전에 열하일기 중권을 도둑맞았었다는 것까지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정말 어지간히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나보다. 열하일기 하권의 후기를 쓰지 않았다니.. (눈물) 좋은 글귀에 있는 것도 페이스북에 적은 짜투리 후기덩어리들을 뒤적거린 결과 간신히 발견해냈다. 아무튼 난 정확히 10월 21일에 이 책을 다 뗐다. 다른 책들의 반납기간이 밀리는 것도 다 감수하고 열하일기 상중하를 열심히 뗀 게 언젠데 후기를 쓰지 않았다니. 정말 자학스러울 정도로 세게 내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싶다. 그렇지만 어차피 밀린 것은 밀린 것이고, 워낙 강렬한 문체이다 보니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살아있다. 그러므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도의 느낌들을 충분히 옮겨내겠다.

 청나라에서도 특별한 경우라 하지만, 위에 있는 글은 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놈의 인권 때문에 마음대로 학생들을 때릴 수도 없다"라고 불평하는 선생이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라. 정말 보기가 민망하고 화가 날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는가. 박지원은 초반엔 오랜 시절부터 역사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과거들을 낱낱이 들추며, 망한 명나라의 환상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선비들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본인은 요즘에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정말 시대에 따라 빠릿빠릿하게 행동할 줄 모른다. 눈치볼 줄도 모르고 염치도 없다. 좋은 점은 다 빼버린 채 네거티브로 FTA 체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명나라와의 신의를 지킨다'는 변명과 '미국과의 대의를 지킨다'라는 변명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단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곡정필담>에서 곡정이 지적했듯, 박지원 또한 중국의 옛 사상인 유교에 너무 깊이 빠져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탓인지, 그의 이론은 너무나 단순명확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리만으로 세상이 바로잡힐 수는 없는 법이다. 중국도 많은 피를 뿌렸고, 청나라도 결국 세계를 오랑캐 취급만하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서양에게 망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겨난 철학과 사상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단, 현재 세계의 상황을 볼 때 피를 쏟아내진 못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전쟁이 아닌 갈등을, 육탄전이 아닌 심리전과 두뇌싸움을 벌이면서 직접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우리들의 근본적인 철학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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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십대 사이 우리 사이 시리즈 2
하임 기너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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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지도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들을 대출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면서도,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부모라는 은행이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 주어도, 대출 받은 십대들은 이자에 대해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십대들은 도움을 주면 간섭한다고, 관심을 보이면 어린애 취급한다고, 조언을 하면 지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율을 두려워하긴 하면서도, 최고의 가치로 평가한다. 자율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 그들에게 원수가 된다.

 
   

 

 기타 접어놓은 대사들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반납해버려서... 다 쓰지 못했다. 뭐 어차피 이 책은 십대들의 특성 때문에 '실전용'이나 다름없는 책으로 나와서, <부모와 아이 사이>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기노트 스스로도 예시에서 그렇게 밝혀놓았기 때문에, 틈 잡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기노트 특유의 깔끔한 정리능력이 더욱더 돋보였다고나 할까. 일단 십대를 이해하는(혹은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는) 방법, 그들을 다루는 공식적인 원칙들을 지적해 놓았다. 십대들을 무턱대고 함부로 빠져들 수 있는 술, 담배, 성관계, 그리고 약종류들로부터 떼어놓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10년 정도 전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기관에 대한 정보는 이 책만 봐서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미국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다. 반드시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육아책과 같이 병합해서 보고, 여러 정보들을 더 모으길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부모로서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기본적인 기술과 원리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제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책은 아니다. 후반기에 가서는 십대가 있는 각양각색의 부모들이 직접 토론한 내용을 실음으로서, 부모들의 태도 자체를 지켜보고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 좋은데 한 가지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면, 아이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태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장이었다. 솔직히 누구나 대학을 졸업하면 꼰대가 된다. 아무리 "내 마음은 청춘이다"라고 주장하더라도, 십대들에게 아저씨 아주머니로 불리는 데엔 장사없다. 한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의 패션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설령 다른 십대들에 비해 무지 뒤쳐지는 옷이라도, 어차피 친구들에게 지적을 당하면 아이가 스스로 옷 입는 스타일을 바꾸기 마련이다. 아이의 몸에 해로운 것이라면 모를까, 나는 맘에 드는 옷 입을 자유 등등은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것을 보면 기노트도 꼰대로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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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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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ㅡ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 ㅡ몰라요.
왜 땅굴을 팠지? ㅡ몰라요.
언제부터 여기에 숨어 있었나? ㅡ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 ㅡ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 ㅡ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 ㅡ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ㅡ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아직 존재하는가? ㅡ몰라요.
이 아이들이 당신 아이들인가? ㅡ네, 맞아요.

 
   

 

 간단하게 시 하나 올리고 시작. 비슬라바 쉼... 발음하기도 힘든 이 분. 아무튼 비슬라바 씨는 폴란드 출신으로 상당히 현실적인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노동문제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면 되는지 언어과 글자를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자신의 일상을 소박하게 일기처럼 적어낸 시들도 꽤 있는데,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거나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전업시인의 삶을 살면서도 꽤나 열심히 일하시는가보다. 딱 내가 어렸을 때 소망했던 삶을 살고 계시는, 그런 사람이다. 1923년도에 태어났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살아계신다고 한다... 수명이 거의 촘스키와 동급이로군. 그녀는 당당하게 여류 시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탔다. 사실 매우 편파적인 노벨상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시가 단순히 현실의 어려움만 담아낸 게 아닌 탓이리라.

 위의 '베트남'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녀의 시는 읽을 수록 미묘한 분위기가 풍겨난다. 일단 굉장히 쉬운 듯해 보이는 무언가를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시에서 표현되는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그녀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현실에서 무엇을 담아냈는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대중들이 자신의 생각을 시로서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쓰려는 그녀의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단점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시 자체의 특성인 운율과 여유로움, 예술성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 하지만 리얼리즘 혹은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문학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고퀄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를 읽기 위해 역사를 깊이 알 필요도 없으니, 시사시에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일단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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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구) 문지 스펙트럼 11
작자 미상, 이동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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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은 이세상의 모든 재물이-지금 이세상 도처에서 벽이 바람에 부딪치고, 하얀 서리에 덮인 채 서 있으며, 집들이 폭풍우로 허물어지고 있는 것같이-황폐하게 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를 깨달아야 하느니라. - p. 339~340

 
   

  일단 책이 겉모양부터 누렇게 뜬 것이 매우 고전적인 맛이 있다. 오른쪽에 베오울프를 원문 그대로 올린 것도 신기하지만, 역자가 번역을 하면서도 (원문)란에 시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결과를 올려준 게 가장 흥미로웠다. 딱 하나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면 시를 산문처럼 그냥 쭉 열거해서 올렸다는 것 정도? 게르만 신화 특유의 잔인성으로 인해 장면 곳곳에서 피가 많이 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세상사를 대화체로서 제법 현실감있게 썼기 때문에 세련된 면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 구절. 그런데 아무리 수도승이 필사했다고 하지만 걸핏하면 하느님 운운하는 구절은 좀 많이 불편하다. 분명 그 시절 게르만 민족들은 베오울프 이야기를 할 때 자기네 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했을 텐데.

 무엇보다도 이 놈들 영웅이라면서 왜 이렇게 돈을 밝히는지... 황금이 쌓여있는 용의 보물창고를 보고 죽겠다는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간 정신이 아연해졌다. 자신이 죽은 이유가 자신의 백성 중 한 사람이 저 금을 탐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책에서는 베오울프가 죽은 이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음을 '방랑자' 등의 시를 붙임으로서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한창 잘나가는 용사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이 <방랑자>라는 시를 읽으니, 허무함과 씁쓸함이 더 고조되는 것 같다. 방패와 투구의 장식에서 드러나는 애니미즘이라던가, 소소한 데에서 게르만의 전통적인 풍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괴물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교훈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베오울프와 관련된 책으로는 <그란델>이라는 이름의 심리적 소설과 동일한 제목의 소설이 또 한 권 있는데, 원본을 읽었으니 다른 책들도 좀 더 읽기가 쉬워지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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