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 on Mango Street (Paperback) - 『망고 스트리트』원서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 Vintage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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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leave you must remember to come back for the others. A circle, understand? You will always be Esperanza. You will always be Mango Street. You can't erase what you know. You can't forget who you are.- p. 105

 예전에도 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유치원 때. 여기서 본인이 좋은 유치원을 다녔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니 얼른 그 생각을 수정하시길 바란다. 내가 살던 곳을 같이 가봤던 남자친구도 인정한 사실인데, 그 유치원은 주변 환경이 많이 안 좋았고 당연 알파벳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쓰레기였다. 난 그 유치한 수준에 질릴 대로 질려 윤선생을 공부했었다. 지금은 외국인 교사들이 있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윤선생은 정말 싸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기엔 완벽한 프로그램이다.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고 외국인 선생님들이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기분이 내킨다면 직접 녹음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학원과는 달리 무한반복도 가능하다. 아무튼 이 작품을 내가 어째서 대학에서 돈 내고 들어야 한단 말이냐. 그것도 다 공부한 것도 아니고 반만 공부한다니! 아무리 2학년 수업이라지만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샌 것 같다. 아무튼 초등학교 아이들, 영어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유치원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어머님들에게 제발 기죽지 마시고 이런 책들은 원작으로 구입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니 어떻게 대학에 가서도 이 책을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다른 학과도 아닌 영어영미문화와 영어영문학과가? 난 정말 깜짝 놀랐다. 거의 충격을 받았다고 봐도 되겠다. 정말 이 초라한 영어관련학과를 졸업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초 지식도 없이 여길 들어온 건가? 무슨 깡으로? 적어도 기초문학은 공부하고 들어와야 정석 아닌가? 나중엔 이런 정말 이런 명작개념소설들은 뒷전이 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설이 판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아니면 돈 버는 법 자기개발하는 법같이 '너네도 이렇게 해보세요~' 뭐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비소설들만 판치려나?

 

 아 모르겠다 내 새끼 교육을 똑바로 시키면 되지. 여기서 끊고 본론 들어가겠다.

 

 망고 스트리트는 에피소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란을 펴보면 어떤 이쁜 여성의 그림이 나온 다음 '그녀'에 대한 주구장창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응당 소개란은 프롤로그가 아닌 이상 가볍게 넘어가는 편인지라 나는 담담하게 다음 장을 펼쳐보았다. 주인공은 '아름다운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은 야심찬 소녀이다.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고 있는 형편을 보면 대략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어느 사람이 '나는 적어도 욕실이 3개는 있고 지하실도 있고 계단도 확실히 안에 있고 굉장히 큰 뒷뜰이 딸려 있고 나무가 주위를 둘러싼 하얗고 아름다운 집을 갖고 싶어. 월세도 전세도 아닌 구매로.'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대충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혹시나 미국은 땅값이 싸서 그런 걱정 없다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미리 하는 말인데, 이 여자애의 가족들은 전부 스페인계 이민자들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소녀가 딴 집으로 이사가자고 하면 '복권 긁을께'라고 말하시는 분이다. 더 이상 그 집안 사정에 대해 말해 무엇하랴.;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앙증맞고 담대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시각으로 망고 스트리트에 사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상황은 정말 절박하고 심각하기 그지없는데 말하는 사람의 어투는 유머스러움이 넘치고 재밌기만 하다. 그러나 샐리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그 유머스러운 분위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게 된다. 어렸을 땐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이해가 가니 샐리를 그냥 어디 구석에서 쥐어박고 싶을 만큼 밉살스럽다. 저런 여자때문에 여자들이 단체로 욕먹지. 그러나 주인공은 진심으로 샐리를 친구로서 대하고 불쌍하게 생각했는가보다. 그녀의 심성은 이렇게 자신 주변의 불쌍한 인간들을 못 본체 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재미있고 따뜻하게 읽혀졌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지금 점점 희망도 없이 어둡게 침체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시대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참 구차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던 망고 스트리트의 여자들은 참하고 돈 많은 남자를 낚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도로 위에 서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갔다와서 가방을 내려놓기만 하면 뛰쳐나가서 놀기에 바쁘다. 그리고 어쨌던 망고 스트리트는 그녀에게 확실히 작별 인사를 하고, 추억으로서 남았다. 이 말이 매우 적절하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는'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마 망고 스트리트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암시한다. 주인공은 망고 스트리트의 온갖 추접스러운 남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샐리를 보며 마음 속으로 소리친다. 왜 저항하지 않냐고. 왜 싫다고 말하지 않냐고. 결국 그녀는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여 공간적으로는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망고 스트리트를 빠져나오려면 망고 스트리트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을 보여야 한다. 즉 망고 스트리트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망고 스트리트를 망각하고 있거나 혹은 망각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빠져나왔을지 몰라도 공간적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끙, 말이 너무 어렵군... 어떤 분은 이 것을 '망고나무의 저주, 악연의 굴레'라고 표현하셨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굴레에 갖혀 사는 게 아닐까. 인력으로 광화문 광장을 강제점령한 조현X, 그리고 친히 명박산성으로 베리어 쳐주신 우리 대한민국 각하, 미쳐가는 세계를 탓할 줄은 모르고 시위대를 탓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하겠다.

 

자세히 보면 눈 썩는다. 가까이 가서 보지 말자.

 

 참고로 이 책은 정말 동화책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도 자신만의 아담한 집이 있다.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인구 많은 미국에서 이 책을 안 읽는 애들이 없다고 하니 그녀는 아마 소설만 팔고도 집을 살만큼의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집을 책을 써서 돈을 벌어 자신의 집까지 살 수 있다니, 대단히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여성이 아닐 수가 없다.

 

출처: 돋을새김 http://blog.naver.com/doduls/150033523999

아... 내 경우에는 저 벽을 핑크색이 아닌 보랏빛으로 칠하면 될 것 같다.

2008년에 찍은 사진이라 한다. 나이도 드셨을 텐데, 참 곱게 늙으셨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우시다.

 

 P.S 시험도 안 끝났는데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까,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서평을 2000자 이상 쓰다니. 으아아아 시간이 벌써 저렇게 되었어... 이젠 어쩌면 좋지? 물 같은 걸 끼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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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태 2011.12
자연과생태 편집부 엮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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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는 5~10분 안에 금방 접어서 만들 수 있는 것들만 주로 만든다. 공예가니 예술가니 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고 또 그런 틀에 갖히기도 싫다. 그냥 좋아하는 풀잎 접기를 해서 여러 사람들이 즐겁고, 또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풀잎이라는 소재가 지닌 숙명이자, 그런 풀잎을 소재로 한 초편공예의 참 가치라고 생각한다.- p. 50

 12월이다. 겨울이다. 날씨가 유래없이 따뜻해서 실감이 안 나고 있었지만, 우리의 존재를 깨달아달라는 듯 겨울바람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이다. 게다가 서울에는 아직 눈도 안와서, 상당히 조용한 계절이다. <자연과 생태>도 동면에 들어갔는지, 조용한 내용들이나 혹은 씁쓸한 내용들이 많았다. (혹은 본인이 시험기간에 읽었던 것이라서 우울해보인 것인지도.) 사진에 찍힌 담비는 매우 귀여웠지만, 등산객들의 이기적인 정복욕심으로 인해 마음대로 산등성이를 뛰어다닐 수 없다는 글이 슬프게 들렸다. 그 다음 제주도 어느 창고에 자리잡힌 둥지에서 목을 불쑥 내민 붉은부리찌르레기 새끼가 조금 귀여워보였다. 그러나 '한강의 강물은 서울로 통한다'에서 다시 마음은 우울해졌다. 그 구정물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생물들이 있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흘러가는 강물이 막히면 결국 사람들의 마음도, 생명도 막히고 만다는 사실을 높으신 분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그나마 큰 웃음을 주었던 기사는 어김없이 정병길 기자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쓰여져 있는 글을 다시 베스트에 올리기엔 다른 기사들이 너무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기사를 쭉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초편공예가이신 김봉원 님을 접하게 되었다.

 

책에서 나온 곤충은 진짜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였다. 

 

 중앙정보부에서 일하셨던 이력도 있다던데 왜 길거리에서 몇 푼 안되는 작품들을 팔고 계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분은 진정한 자유인이시다. 주말에만 작품들을 팔고 그때 번 돈으로 월화수목금을 논다니.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의 우선순위로 꼽는 것 같은데, 이 분은 직접 실천하고 계시지 않은가. 사실 인사동에서 그를 내쫓았다는 상인들도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질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질투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이 직업이 되는 즐거움은 둘째치고, 온종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본인에게 직업이 생긴다면, 저렇게 몰두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인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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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언 전기 12 - 초마여신 전설
임달영 지음, 정수철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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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되돌리면 돼. 예전의, 페이시아 란드 필리스틴으로...

 쯧쯧. 펠리스야. 여자의 마음은 폭력을 쓴다고 되돌려지는 게 아니란다. 마법진에 있다보니 어째 11화에 있던 광전사랑 합쳐진 것 같은데, 어쩌다가 저렇게 정신머리를 못 차리고 있는지. 분명히 예전의 펠리스라면 페이시아한테 필살기까지 쓰고 이렇게 죽자사자 싸우진 않았을 텐데. 아무튼 여기서부터는 먼치킨이 된 (더불어 살짝 맛이 간), 소년 펠리스가 아닌 청년 펠리스가 등장한다. 여자보다 더 이뻤던 얼굴은 어디가고 남자다운 얼굴에 차도남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어버렸다. 역시 페이시아를 잃어버린 데 쇼크먹었나. 강해지겠다는 집념을 보면 그녀를 희생제물로 삼아버린 자신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고. 아무튼 단순히 마법에 의한 부작용으로 치부하기엔 정신상태가 너무 이상해졌다. 예전의 사글사글했던 펠리스를 내놔...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저 장면은 좀 멋있었다. 밑에서 위로 치켜든 눈매..

 

 문제를 꼽자면 급속한 전개이다. 시간을 후딱 몇 년 후로 돌려놓지 않나, 신캐릭터를 떡하니 올려놓질 않나, 펠릭스와 페이시아의 전투장면이 벌써부터 등장한다. <베르세르크> 정도의 스토리 수준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스토리에 개연성을 줘야 하지 않나? 그러려면 12권보다 최소한 4권 정도 뒤에, 신캐릭터들의 특성이 대강 감이 잡히게 한 뒤에 페이시아를 내보내도 내보냈어야지. 전에 마이언 전기를 읽으신 분들이 계속 결정적인 반전장면은 언제 나오냐며 지루해하던 눈치인데, 임달영님이 제발 고정하시고 스토리에 안정감을 주었으면 좋겠다. 블로그에 달린 덧글을 보면 '마이언 전기 정말 급속도 전개에 뻔한 내용으로 끝나요.'라고 하던데 잘하면 그렇게 될 기세이다. 뻔한 엔딩까지는 봐주겠지만, 임달영님은 스토리가 옆으로 새면 만화책으로 미연시를 구상하실 분이라서... 여러모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왠만하면 만화책따위는 한꺼번에 읽은 다음 한꺼번에 서평을 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마이언 전기는 기본적으로 오래 전에 썼던 소설을 다듬어서 그런지, 구성이 비교적 안정되었다. 최근에 다단계로 만화를 연재하시던 모양이던데, 그 중 제일 좋아하는 걸 뽑으라면 난 이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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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r Purple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앨리스 워커 지음 / Harcourt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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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I'm pore, I'm black, I may be ugly and can't cook, a voice say to everything listening. But I'm here.- p. 210

 

 시험때문에 봤다곤 하지만, 교수가 미리 스포일러를 팡팡 뿌려댔기는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처음부터 끝까지 육성으로 읽었다.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실 시험은 거의 안중에도 없었다. 책 처음 부분부터 내용 스케일이 감당못할 만큼 크다. 주인공은 흑인여성 샐리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고, 그는 샐리를 강간한다. 결국 샐리는 그의 아이를 두 명이나 낳게 된다. 이 모든 게 이 소설의 첫 1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를 넘어선 수준이다. 이후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셀리의 나이와 비슷한 새엄마를 새로 구하며, 셀리는 바람핀 전 아내를 죽인 미스터란 사람에게 동생 네티대신 시집을 간다. 동생 네티는 곧장 샐리를 따라서 미스터의 집에 들어가지만 영문 모를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다. 이후 네티에겐 소식이나 편지 하나 없다. 그리고 샐리의 집에는 그녀가 동경했던 집시 셕이 미스터의 애인으로서 찾아온다.

 얼마 안 있어 샐리는 셕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레즈비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그 쪽 부분은 인터내셔널 버전보단 무삭제판, 그러니까 unabridged edition을 사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본인이 리뷰를 쓰는 책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후자는 해외배송이다. 셕은 분석적으로 말하자면 양성애자인 듯하다. 샐리는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자들의 성적인 접촉을 개구리에 비유하며 매우 싫어하는 편이고, 여성밖에 좋아할 수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내가 보기에 미스터는 다시 샐리를 사랑하게 되는 듯한데, 샐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점도 슬픈 일이고 그녀의 첫사랑이 하필이면 자유분방한 셕이란 점도 슬픈 일이다. 이 책에서는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라는 태도이지만. 아무튼 현명한 흑인여성들의 태도로 인해 온갖 남성들과 백인들이 벌려놓은 일들이 수습되고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왜 아프리카에서 사는 백인들은 마을을 마구 파괴하고, 미국에서 사는 흑인들은 천대받으며 사는 것일까. 가깝게 지내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대표적인 백인과 흑인의 관계를 꼽자면 흑인여성 소피아와 백인시장의 딸일 것이다. 소피아는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많은 폭력을 당해서 자신의 몸을 방어하려 파이터(;;;)로 성장해왔고, 백인시장의 딸은 흑인들에게 가정사의 모든 것들을 의존하지만 흑인들을 차별하는 전형적인 백인가정에서 성장해왔다. 그들은 매일같이 사소한 일로도 심각하게 다투지만, 그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싸운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대등하게 취급한다는 것 아닌가, 즉 소통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백인과 흑인의 관계, 그리고 혼혈 흑인과 아프리카 토종 흑인의 관계가 소설에서 어우러지면서 이야기의 주변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백인들은 무조건 악독하다는 이야기도 없고, 흑인들은 무조건 선하다는 이야기도 없다는 점이다. 그저 '인간'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작가 앨리스가 얼마나 인간들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인간들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애정을 품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소설 속에 아담과 이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집어넣은 점도 흥미있었다. (근데 공개하는 것 자체가 이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라서 일단 읽어보시라 추천만 하겠다.) 이전에 <미친년>을 읽다가 종교와 페미니즘의 관련성에 대한 책으로서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라는 책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는데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엇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글이 서술형이 아니라 편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차별을 받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욱 잘 파고들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사생활을 읽는다는 소소한 즐거움 때문인지 글이 매우 쉽게 느껴진다. 영어가 서투른 사람들도 왠만큼은 중간부분까진 쉽게 읽을 수 있다. 샐리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흑인들의 방언을 그대로 편지에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gonna의 줄임말인 gon을 자주 사용한다거나, give를 git라고 쓴다거나, 문법이 보통 영어와는 좀 다르게 섞여 있다거나... 그러나 기본적인 언어만 이용한다면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다. 영어공부에 좋겠다 뭐 이런 추천을 해줄 순 없지만 영어책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특히 독자가 여성이라면 글이 저절로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P.S 샐리는 온갖 구박을 받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여성이다. 비록 잡초밭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아 잡초같은 난이 되었다. 그저 당신이 열심히 현재를 살기만 해도, 무언가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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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2
이인애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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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건 인상깊은 구절 중 뭘 갔다 붙여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고로 이 책에서는 평가만 하기로 하겠다.

 일단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권 마지막에서 5명의 주인공들은 4개의 출구를 두고 갈등하게 되는데, 출구를 선택하는 데서 둘로 나눠진다. 하나는 준수가 고른 길 또 다른 하나는 아마도 여정이 고른 길로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책을 반 정도 읽고 난 후에는 꺼꾸로 뒤집어서 뒷부분부터 다시 중간까지 읽어야 한다. 굳이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을 따지자면, 하나는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새드엔딩이고, 또 하나는 뒷맛이 씁쓸한 해피엔딩이다. 작가님은 어느 쪽부터 먼저 읽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지만, 나는 이왕이면 순서대로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2-2에서 스파이의 작전이 엿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2-1을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ㅎㅎ

 딱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스토리의 부수적인 '책'내용이 좀 더 길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탈출 시나리오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감보다는 인간의 심리라던가 그런 정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해서 재미가 반 이상 경감되었다. 그리고 인물 시점이 너무 왔다갔다해서 스토리가 연결되기보다는 딱딱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아이디어 부분을 더 강조했더라면 이렇게 스토리가 두서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미로게임을 만들었더라면 더 재밌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1권에서의 심리적인 스토리는 조금 줄이고 2권 스토리에서 남은 탈출루트 2개를 넣어서 엔딩을 4개로 만든다. 뭐 작가언니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흥행을 고려해서 커플도 좀 맺어주고. 우리나라 게임계에선 은근 고전게임도 먹히는 편인데 '고전팩션게임'을 내세워 동인계열로 만들었더라면 그럭저럭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뭐 작가님이 동인계를 알리도 없고 여기는 어디까지나 내 상상력이지만. 어떤 분이 리뷰에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셨는데, 사실 스토리가 뚝뚝 끊기는 것 자체가 문제라서 영화로도 그닥 메리트가 없다.

 이 책에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언니의 새로운 상상력 자체엔 감동을 받았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무시무시한 내용이지만.) 다음에 언니가 또 소설을 출간한다면 제일 먼저 읽고 널리 홍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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