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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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내 아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엄마, 나는 그래도 나가서 보고 싶어. 한 개의 둥근 공 모양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들아, 그건 태양이란다."
"나는 태양을 보고 싶어!"
"아들아, 그건 볼 수 없어. 그건 하나의 불덩어리라서 이 어미의 피부와 살까지도 태운단다."
"나는 들판 도처에 신선한 꽃이 널려 있는 것도 봤어. 그 꽃들의 향기도 맡아보았는걸."
"아들아, 그런 꽃들은 독이 있어서 그 향기에도 독이 있기 마련이야. 엄마도 그 꽃들의 독 때문에 죽게 생겼단다!"
"엄마, 나는 나가서 붉은 말의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아들아, 붉은 말은 없단다. 그것은 하나의 환영이란다!"
태아는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p. 274

 

 

 

책의 제목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모옌은 티엔탕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중국 농민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농민들이 영원히 고통받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가 보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둘이다. 하나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 까오양. 그리고 또 하나는 진쥐라는 여자아이에게 반한 귀환병 까오마이다. 까오양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회에 잔혹하게 탄압받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까오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사실 본인은 작가가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까오마와 진쥐의 사랑이야기를 어거지로 집어넣었다고 생각했으나, 매우 달랐다. 아마도 진쥐가 단순한 시골여자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진중한 여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중년아저씨와 결혼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질 않는 것이다. 앞뒤없이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까오마를 어린애 대하듯 하는 걸 보면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다. 

 중국이 확실히 더러운 나라이긴 한가보다. 모옌의 이야기에서 중점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더러운 오물들은 소설 텍스트의 모습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할 수 없는 찝찝함과 혐오감을 안겨다준다. 확실히 중국이 더러운 나라이긴 한가보다 -_-...

 

 

넓적데데한 얼굴에 근엄하게 생긴 것 외엔 별 다른 특징이 없는 이 얼굴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그로테스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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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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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뿐인지도 몰라. 원하는 사람은 내 몸뚱이를 가져가도 좋다. 이건 내가 아니니까.

 

 영문학에서 <폭풍의 언덕>, <리어 왕>과 함께 비극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래도 그 둘보다는 덜 우울하다고 생각한다. 폭풍의 언덕이 아침드라마 전개, 리어 왕이 주인공을 포함하여 거의 모두가 죽는 피바람 엔딩이라면, 모비딕은 기묘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던가 <해저 2만리> 등등에선 섬찟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 작품들의 분위기를 만회시켜주는 건 두 가지가 있다.

허풍과 사회풍자. 이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모비딕과의 전투는 매우 짧은 순간이었다. 그 동안에 끊임없이 주인공은 허풍을 섞어 포경선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흡사 하나의 심령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그런 방송에서는 으레 귀신이 나오는 장면의 이전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귀신이 나왔어요!'라던가 귀신이 나왔던 상황을 떠들어대지 않는가. 확실히 발디딜 땅도 없는 그 드넓은 바다에서 매머드같은 고래가 출현하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리라.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혹은 신으로 숭배해버리는 거겠지.

 참고래와 향유고래를 욕심껏 챙겼음에도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향유고래를 찾아나서는 피쿼드 호의 여정을 보다보면 인간세계의 여러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는 자연을 대하면서 가라앉는 면모를 보이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하는 인간들과 대화하면서 증폭된다. 어쩌면 그는 다리를 잃었을 때부터 선장으로서의 강철같은 마음을 빼앗겨, 그를 보충하기 위해 겉으로 그렇게 힘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환상과 실제가 얽힌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몰라서 재미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바다의 이야기야 더이상 말할 게 없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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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집들 - 첫 시집들, 초기 시들, 백의의 후작부인,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기도시집 릴케전집 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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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스로에게 다르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호화로움에 둘러싸인
멋지게 치장한 자가 아니니까요.
당신은 아낄 줄 아는 소박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턱수염 난 농부입니다.- p. 44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모습.

수없이 많은 여성이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하던데, 과연 요즘 남자배우들도 뺨칠만한 얼굴이로세.

 

 정말 놀랄만큼 순수한 시였다. 처음에 루 살로메와 러시아 여행을 할 때 영감을 받았던 시라고 들었는데, 과연 중간에 사랑시라고 할 만한 요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러시아 여행을 하고 중간에 런던여행을 해도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때 시인이 느꼈던 감정이 '순례'의 무거운 분위기로 심화되어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투영하면서도 그럭저럭 장편의 시를 완성시킬 수 있다니, 조금 감탄했다.

 어머니가 심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그에 호되게 질린 릴케는 기독교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기도시집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일면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것과 마주쳐서, 어떻게든 그 갈등을 자기 안에서 풀어나가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닐까. 성경의 구절들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침묵과 검소함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 쓴 점은 참신했다. 또한 릴케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창조하는 장면을 사람들이 종교심에 힘입어 성당을 세우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그와 비슷하게 예술의 중요성을 역설하긴 했지만, 이국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에서는 기도시집이 더 뛰어나지 않았나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 시에서 비유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러시아 성당.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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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이름 2
사이토 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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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꽃들이 한껏 피어,
이 정원은 온통 꽃밭.

 

 

여주와 남주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이 책은 스토리보다는 설정과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그래서 매우 정적인 분위기가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친척간의 러브러브 이야기인데다가 커플의 나이차로 보면 명백히 키워서 잡아먹는 느낌이라(...) 문제가 심각해보인다만 워낙 여주와 남주가 조용하니 잘 어울려서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여주인 초코는 가뜩이나 해외로 떠나 잘 보지도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학교시절 잃어버려 자폐 비슷한 마음병을 앓는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다. 졸지에 그녀를 맡게 된 케이는 뒤에서 잠자코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반응을 약간 회복했을 때 쯤 슬그머니 말을 붙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때까지 자신이 그녀를 돌봐줄테니, 대신 집안일을 하라는 약속. 원래 성품이 착했던 그녀는 자신이 집에 묵고 있는 시간만큼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을 했다. 집안일을 다 끝낸 날에는 집앞의 황폐한 정원을 가꾸었다. 집에 여자가 생기고 꽃이 생기니 아무리 어둠과 황폐에 찌든 소설만 쓰는 작가라고 해도 마음이 절로 풀어질 수밖에 없다. 남주 케이는 소설 <화명>을 써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그 후에 그 둘에게 일어나는 일도 다루고 있지만 사실 분위기는 1권 초반인 그 이야기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정말 아름다워서 그와 비슷한 장면을 다시 보고 또 보게 되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꽃으로 전하고 소설로 답하는 사랑 그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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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캔들 1 스캔들 1
천루아 / My Dpot(마이디팟)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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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면이라면 이것 하나밖에 없다.

근데 좀 멋있다... ㅋㅋㅋ 가운 하나 걸친 상태로 온천과 욕탕 중간에서 그런 말을 ㅋㅋㅋ

 

 지금 보니 굉장히 유치하긴 하지만 읽는 순간에는 재밌다... 다시 말해 정말 심심할 때 시간죽이기로 읽기엔 딱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토모카는 얌전한 애들만 있기로 소문난 여학교에 다니는 천상 여자애 스타일이다. 매일같이 등교하는 길에 첫사랑을 훔쳐보는 걸 낙으로 삼지만 결코 말은 걸지 못하는 쑥맥상태. 그러다가 어릴 때 소꿉친구였던 아라타를 만나고, 첫사랑과 아라타 등이 밴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첫사랑 세리카가 여자라는 사실도. 잠시 번민에 싸였던 여주는 성별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 세리카 자체를 좋아하기로 결심한다. 여학교에서 레즈비언으로 낙인찍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변함없이 그녀만을 바라보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아라타를 사귀기로 결심하지만...

 이 책과 비슷한 스토리로 <하드러브>라는 책이 있다. 만일 현실성 높은 책으로 동성애자를 사랑하는 이성애자를 보고 싶다면 <하드러브> 쪽이 훨씬 더 괜찮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온 토모카는 동성애자보다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사랑하는 바이 즉 양성애자에 가깝다. 코미디 책이서서 그런지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정체성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는 토모카의 고민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라타보다 세리카가 훨씬 멋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주인공하고 잘 안 맺어지는게 소꿉친구라지만 남자가 너무 평범하게 생긴거 아니냐;;

 

 

뭐 이렇게나마 발랄하게 동성연애를 표현한 건 좋지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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