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시인선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3
나혜석.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공진호 엮고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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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안의 여자 중에서

샬롯 뮤

"나는 그녀를 죽였어요. 여자들이여, 당신들도
그녀를 죽여야 해요!"

 

 

  

우리나라의 현대시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귀족들의 언어인 한자를 쓰기로 고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아감으로서 모든 굳건했던 질서들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새삼 우리말의 대중성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여성들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위해 자살해서 절개를 지킨 훌륭한 부인으로 남느냐 아님 어떻게든 그녀를 모함하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개죽음을 당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이 책에서 신여성으로 불리는 여성 문인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왔지만, 최소한 전자에서 벗어나려 했음은 확실하다. 이미 그들은 글을 씀으로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세상에 널리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때는 차라리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 사회의 보수적 가치관을 급격히 무너뜨리려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위안부 등 여성들에게 너무나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에 결국 무시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특이한 점은 외국시의 경우 남장을 좋아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거나 양성애자인 여성들이 쓴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종류의 시를 모은 덕분에 이 시집은 마치 여러 색깔의 보석을 모은 듯이 눈부심을 그 안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혼에 대한 나혜석의 산문을 마지막에 올린 것도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학적 책도 좋지만, 그런 종류는 너무 객관적이라서 마음 속에 있는 앙금을 풀어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들을 읽을 때 핍박받는 여성의 마음에 대해서 더 잘 이해가 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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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묘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4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 민음사 / 197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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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잃어버린 포도주 중에서

어느 날인가 나는 대양에
(허나 어느 하늘 아래선지 모르겠다)
던졌다, 허무에 진상하듯,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을.

누가 너의 유실을 원했는가, 오 달콤한 술이여?
내 필시 점쟁이의 말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술을 따를 때 피를 생각하는
내 마음의 시름을 쫓았던가?

 

 

  

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불명확하게 사실을 전달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판타지 소설에서도 그러하듯이, 한번 가상세계의 글을 잡으면 우리는 제법 그 흐름에 우리의 의식의 대부분을 던져넣는 편이다. VR같은 영상은 육체에 상당한 피로를 느끼게 하지만 오감이 동시에, 비교적 신속하게 그 세계에 빨려들어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은 작가의 마음대로 독자가 그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걸 늦출 수 있다. 지금이야 삽화를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당되지 않지만 일부러 등장인물의 묘사를 최대한 줄여 독자들이 스스로 다양한 팬아트를 그리게 한 판타지작가도 있었다. 만일 그게 작가의 무신경함이나 불친절이 아니라, 최대한 의식을 집중한 끝에 이룩한 절제의 극치라면? 최근 그런 기법을 사용한 소설은 오와리모노가타리(특히 오우기) 정도겠다.

  

이 시인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시 자체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인물과 배경을 따로 떨어뜨려 가면서 서서히 묘사하는 시들도 많지만(특히 여자가 많다.), 자신에 대한 프로필이라던가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같은 상황을 상정하여 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왠지 그런 시들이 훨씬 끌렸다. 시로 철학적 성찰을 했다고나 할까. 자신을 시의 젖을 빠는 아기라거나 자신을 너무 사랑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 순수 이성만 생각하는 기계장치에 비유하면서도 그에 대한 긍지를 표현해낸 점 또한 독특했다. 보통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번역되는 해변의 묘지 시 부분을 그렇게 단순히 번역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번역가가 단어 하나하나에 관하여 깊은 생각을 해서 번역해나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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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 미당 서정주 대표시 100선
서정주 지음, 윤재웅 엮음 / 은행나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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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내 너를 찾어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닥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순아, 이게 몇만 시간 만이냐.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눌만 남드니, 매만져볼 머릿카락 하나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 오고...... 촉불 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어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어떤 청년이 시를 읽어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시를 읽기 싫으니 시를 재밌게 읽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나에게 부탁해 왔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 그때 읽고 있었던 서정주의 시를 추천해 줬는데 '교과서에서 충분히 공부해왔으니 옛날 시들은 싫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시쓰세영 같은 책들은 너무 쉬워서 흥미가 없다는 둥 뭔가 이야기를 더 하긴 했는데 내가 결국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허세로 보인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책들을 결코 시로 보지 않는다. 그저 글일 뿐이지. 그는 아마 서정주의 화사 같은 얌전하고 진지한 시들만 생각했지(사실 화사도 신중히 잘 읽어보면 섹시하다.), 쌈바춤에 말려서라거나 돼지 뒷다리를 잘 부뜰어 잡은 처녀 같이 섹드립이 풍부한 시는 결코 읽어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냥 당신이 시라는 분야를 읽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라. 떠먹여주지 않는 주변 탓하지 말고.

 

  

 그런데 확실히 서정주의 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가벼워지고 유머가 풍부해지며 읽기가 쉬워진다.

 한자라던가 고상한 문체를 쓰는 데엔 변함이 없는데, 여성에 대해서 특히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태도가 바뀐다. 아내도 아내지만 40대에 그를 사랑한다는 노처녀를 만난 이후로 시인 자체가 많이 변화한 듯하다. 시에 굉장히 활기가 담겼다. 바람피는 사람들을 싫어하긴 하지만, 바람난 사람이 그 경험으로 인해 작품의 혁명적인 진화를 이룩한 경우라면 어떨까? 나는 이 시집을 보며 회의를 느꼈다. 친일 행적 또한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가 친일파에 선 것도 아닌데 그의 예술적 능력에 대한 평가를 깎아 먹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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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선 민음사 세계시인선 55
이시카와 타쿠보쿠 지음, 손순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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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 한 잔 중에서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굉장한 순정파로 유명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첫 시집으로 써서 내고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비록 가난한 생활에 질려 아내가 첫째 아이를 안고 도망갔다지만, 이시카와 타쿠보쿠가 죽고 나서 겨우 1년만에 죽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헤어진 이후에도 남은 아내에 대한 좋은 감정을 청년의 고난과 함께 시로 써낸 것도 인상깊다. 사회주의자의 시선으로 본 일상생활이란 느낌이랄까. 비록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스트라이크를 했던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혁명만 줄창 부르짖던 시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유연하게 다듬어지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성장소설을 보는 느낌이랄까.

 브나로드 운동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봐서 순간 이게 어떤 건지 한참동안 생각했다. 단어상 해석으로는 민중들의 생활 속에 섞이는 걸 의미하지만 계몽주의와 합쳐져 민중들을 교육시키는 걸 의미하게 되었다. 좀 심한 말이긴 해도, 한 학교의 교장을 쫓아낸 건 사실상 굉장한 일이지만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못한 건 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브나로드하면 교육으로 생각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상록수라는 소설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올랐다.

 확실히 한국의 시점에서 보기에 한국인의 어려움을 보는 그의 시점은 약하기만 하다. 한국의 시점에서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은 태생부터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이다. 가난하다고 왕따당하고 천시받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똑같이 보통 일본인들에게 왕따당하는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아니, 보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인들도 그를 보통 일본인으로 여기며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이토라도 되서, 총을 맞고 죽는 극단적인 방식으로라도 한국인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건 밑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감정이 있을 때 행할 수 있는 일이다. 오죽 외로웠으면 당시 식민지 나라였던 한국에게 기대고 싶었을까 싶다. 한국인을 테러리스트로 직시한 그처럼, 우리도 그를 일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시카와 타쿠보쿠로서 본다면, 우리는 시집 안에서라도 그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왕따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스트라이크란 무엇인가. 나도 이 말이 뜻하는 게 시위 정도로만 알았지 정확한 뜻은 몰랐다. 동맹 휴교 혹은 동맹 파업이라고 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주요 업무인 농사의 모임이었던 두레가 깨지고,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즉시 자본주의의 흐름에 휩쓸려 개개인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학교나 직장에서 불만이 있을 경우 일개 청년이 사람들을 모으고, 공부나 일을 때려치는 게 가능했다. 이 얼마나 쉽게 교사나 사장을 회유할 수 있는 방법이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스트라이크라 부르지 않고 폭동이나 빨치산 짓이라고 여기며, 끔찍한 폭력으로 이를 저지하려 들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 단어를 배우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브나로드 이상의 단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문학을 접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브나로드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꼭 그런 '꼴'이 되서야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찌질한 남자의 매력이라고 본다. 아버지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의존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자신에게 화낼 기운도 없는 아버지를 안타까이 쳐다보며 어머니에게도 애정을 담은 시를 써냈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으니 '한번은 꼭 만나자' 이야기할 때 시인이 장담하듯이 시인의 아내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찌질한 남자는 그렇게 찌질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없이 되풀이해 써나갔고 그의 시는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과거를 불쌍히 여김으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도 부르주아적 시스템을 미워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걸 안타까워하고 외로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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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교의 바보경
정판교 지음, 스성 엮음, 한정은 옮김 / 파라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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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새를 따라 하기를 좋아하는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다른 새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새였다. 다른 새가 날면 따라 날고, 저녁이 되어 둥지로 돌아오면 자기도 따라서 둥지로 돌아왔다. 무리가 앞으로 날아갈 때 먼저 앞선 적이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때도 낙오되어 처진 적이 없었다. 먹이를 먹을 때도 앞다투어 먹지 않고 대오를 이탈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른 새로부터 위협받을 일도 거의 없었다.

 

  

대통령 노무현이 바보를 자처하면서 바보의 의미가 많이 왜곡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노무현은 바보 이미지와는 약간 느낌이 다르다. 

 

 하느님은 확실히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왜 하필 오른뺨을 맞았고 왜 굳이 왼뺨을 내밀어야 하는 것일까? 김규항은 예수전이란 책에서 새로운 의견을 적는다. 오른손은 사람들이 주로 쓰는 손이니 오른손으로 제대로 치라는 의미로 왼뺨을 내미는 것이라 한다. 정말인지 제대로 알 방법은 없으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통 실천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그럴 듯하다.

 요즘 세상에는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항상 승리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단점이 있고, 언제나 성공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아니, 단지 기분이 나쁜 상태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등 뒤에서 툭툭 돌을 던지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마치 그 말을 꼭 던져야 자신이 인생에 있어 늙어 죽을 때까지 승리자로 있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굳이 거론하진 않겠지만 내 주위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예전엔 웃어넘겼지만 지금 그들과 떨어져서 그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들의 말투는 마치 지나가는 행인의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벽돌로 치는 것과 같았다. 무차별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 책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일단 험담이라는 벽돌에 맞은 상황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서부터, 그 상황을 넘어가는 재치까지 폭넓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철저히 바보가 되어 현명하게 무시하면 언젠가 가해자인 상대가 병신이 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렇게나 질질 싸댄다고 우리도 질질 싸대면 결국 모두가 오줌싸개 똥싸개가 되서 가마니 쓰고 소금 얻으러 다녀야 된다. 그 순간 한 명이라도 험담이라는 구정물을 통제해야 된다. 한 번 바보가 되는 걸로 그 공동체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면,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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