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마음속 도저한 수압에서 당신은 살아간다, 내 기억이여, 표면으로 올라오지 마라 중에서

기억에게 물어보자, 기억아, 기억아,
너는 난생이니, 태생이니?
너는 식물성이니, 동물성이니, 그도 아니라면 미네랄이니?

기억아, 기억아,
너는 암컷이니, 아니면 암수동체니?
너는 아프니, 건강하니, 아니면 변화된 사실이니?

주름상어가 올라오는 해안
올라오자마자 수면에서 사라지는 고생대의 기억을 바라보는 포유류가 있었지.
수압에만 견뎠던 기억은 수압이 사라지자 죽었지.
마치 내가 당신을 내 몸에서 꺼내면 저렇게 황당하게 사라지는 당신처럼.

 

 

독일 하면 여러가지가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가 워커스다. 워커스 초반에 청년들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하는 코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중 한 여자애가 특이했다. 어투 자체가 남달랐다. 알고보니 독일에 유학까지 했는데 집안 사정이 복잡해서 다시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녀는 다시 독일로 가는 날을 꿈꾸고 있었다. 자주 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에 생각나는 게 김정운 교수님.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이 그리워서 오신 분으로 지금은 여러 저서들로 유명해지셨지만 내가 강의를 보러 갈 때만 해도 서울대 교수가 강의할 때보다 자리가 한산했다. 아마 자신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교수를 했더라면 자신도 인기를 누리셨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김정운 교수님은 쓴웃음을 띄셨다.

 맥주도 당연히 생각나는데, 사과맥주는 뜨끈하게 마셔야 제맛이다. 그거 마시고 나면 한국맥주를 한동안 잘 못 마실 정도로.

 허수경 시인은 이 시를 쓴 시기엔 독일로 일을 하러 떠나 있었다. 그녀가 쓴 시엔 확실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녀는 잠자리를 통해 고향을 들여다보기는 싫다. 투명하게 한국을 보고 나면 그동안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매하고 무지몽매하고 잔인한 인간들인지 새삼 깨닫게 되서다. 대신 그녀는 나비를 보길 원한다. 그녀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의 산천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된 지금도 그걸 보고 싶어하는 지는 의문이다.

 내가 황현산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문체가 유려한 것도 있지만 시인의 의도와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평론을 쓴 자는 허수경 시인보다 레벨도 상당히 딸리고 허접하고 꼰대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쓴 시라 해서 다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며 퉁치지 마라. 연애시, 서정시라고 치부하기에 이 시집의 메시지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반가부장적이다. 까짓거 정부에 블랙리스트로 좀 적히면 어때. 부들부들 떨지말고 할 말 똑바로 하시길 바란다. 솔까말 광화문 시위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기억은 부담감을 내포하고 있지만 추억은 정말 아무 기대도 분노도 없기에 부담감은 없다. 그러나 감정까지 없다고 보기엔 힘들다.
낡은 건 마구 다루다가 무언가가 훼손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오래된 건 말 그대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써서 개인적으로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상대적일 수 있다.

 그나마 제대로 된 평론가 이광호 씨가 허수경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올리고 마지막으로 음악이 나오는 시를 올리겠다.

 

허수경은 토착적인 정서의 가락으로 세간의 고통을 감싸안은 감수성을 보여준 시인이다. (...) 허수경 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세속적 삶의 남루와 비애를 끌어안는 '통속적인' 가락인데, 이것은 삶의 질곡과 타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성적 감수성으로 표현된다.- <이토록 사소한 감수성> p. 283

풍장의 얼굴 중에서

아아 네 귀를 열어 엉뚱한 만화들을 집어넣을까 헤엄치는 집이 있는 해안을 지나 얼음이 녹아가는 북극에서 같이 녹아버릴까, 고 언듯 전광판을 바라본다

아직 아직은 아니에요
헐떡거리며 지나가는 버스를 보아요
난국의 테러리스트들이 전범의 손을 머리에 달고 저 버스를 폭파해버릴 거에요
인권 운동가들을 불 속으로 집어던져버릴 거에요
(...)
삶겨진 이파리들, 이빨을 단 이파리들, 이빨을 갈며 다 잡아먹어버릴거야!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뒷모습을 보이며 우는 이파리들

내 기타는 너를 먹고 유순해져요
내 기타는 9월이 지나야 잠을 깨지요
내 기타는 피아노와 함께 술을 마셔요
내가 취한 게 아니라 내 피아노가 취한 거, 라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를 통해, '언어 미학으로서의 여성성'과 '정치 의식으로서의 여성주의'는 하나의 작품에서 행복하게 만난 적이 별로 없다.

 

  나는 대충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는 게, 근 최근까지 나도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웃으면 나를 비웃는 게 아닌가 오해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각을 닫는 법으로 노래를 듣는 방법을 택했었다. 요즘엔 일을 규칙적으로 하고 건강이 좋아지면서 귀가 강제 개방되었는데(...) 내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궁금해도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대충 답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내 글을 보고 가만히 있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수적인 기독교를 믿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정치를 혐오하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양 사상만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물이 나를 증오하고, 나를 적대하고, 그에 반박할 말을 떠올리다가 나에게 직접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일이다. 답을 얻을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구하는 사람이 진실로 앞을 향해 나가는 추진력이 강하다.

 아무튼 여성주의에 연관하여 기존 문학들을 공격하는 거 보고 초반엔 이거 물건이네 싶었다.
 1. 신경림 농무- 계집애들이 딴거 보고 웃을수도 있는데 널 보고 웃었다고 하니 착각 오지다.
 2. 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6- 니 보라고 미니스커트 입은 거 아니니까 그만 좀 쳐다봐라 그리고 상상 속에서 날 죽이지 마.
 3. 장정일 아파트 묘지- 난 여우가 아니고 인간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다리 그만 쳐다보지?

 장충체육관에서 콘서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거 다 가짜에요!"라고 하면 미친 놈이라 불리며 끌려가는 건 박정희 시대 때 투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할 때랑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겠다. 대중 앞에서 무슨 말을 할 때 미친 놈이라고 불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간다거나 다짜고짜 뺨을 갈겨댄다면 대체로 그건 옳은 게 맞다. 거리를 두는 건 왕따가 되거나 진실 앞에 눈과 귀를 틀어막고 도망가는 게 아니다. 언제나 반성해야 할 건 나 자신이다.

 "굳이 우주로 갈 필요가 있어?" SF 판타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 주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주로 그들의 다음 이야기는 "지구에서 잘 살면 되지."로 끝나는 일이 많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환경 오염과 전쟁과 살육을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인 먼지, 고기, 혹은 동물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적 통찰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려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인간의 내면적 진실은 절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어는 그런 점에서 인간을 한계까지 밀어넣는 장르이다. 굳이 SF 판타지가 보기 싫다면, 고어를 보시라.

 부녀자를 사로잡는 전략은 옛날부터 문학 말고도 다른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많이 주목받았는데, 예를 들어 아이돌마스터를 들 수 있는데, 사진과 같은 부녀자가 좋아하는 애니가 증가하니까 딱 그 시기를 맞춰서 남자 아이돌마스터를 발표했다. 그 다음 러브라이브가 때맞춰 여자아이돌만 나오는 애니를 고집했지만, 역시 길을 잃은 아이돌마스터에 반발한 상업전략이라서 부녀자가 주권을 잡은 서브컬쳐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이제 제발 집사카페 좀 생겨라. 거의 여자만 있는데서 일하니 훈남이 그립다.

 아무리 2006년에 쓰여진 글이라지만 당시 시대의 분위기상 이런 글이 혁명적으로 보일 시대도 아니었다. 근데 대체 얼마나 이 계열엔 꼰대들이 많은 거야? 이런 굳이 붙일 필요도 없는 소논문을 이 책의 말미에다가 자연스럽게 가져다가 붙이는 걸 보면. 아무튼 우리나라에 무크지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문 대통령이 뽑혀서 나라가 진보했다는데 이쪽도 서코나 케이크처럼 동인 행사 열어서 무크지 축제 이런거 하면 안되겠냐. 하물며 조그만 카페 하나 빌려도 되잖아. 파스텔도 있고.

 

 

하지만 이 책도 헛소리만 지껄이는 배용제의 진면모를 보지 못했으니 그렇고 그런 평론에 불과하다. 몰랐다고 하지 마라. 평론 쓰고 돈을 받으면 그런 것도 꿰뚫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초반엔 재미있게 읽었지만 세번째 챕터 명명에서부터 상당히 필력이 딸렸고 그 다음에 쓰신 책을 보기엔 무리일듯.

  P. S 우연히 바흐친 이야기를 듣게 되서 관심이 있었는데 또 우연히 여기서 바흐친에 관련된 글을 보게 되서 따로 포스팅해 두었다.
 http://blog.naver.com/vasura135/221010447483->카니발레스크: 축제성, 축제로서의 음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16
후지와라 히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도쿄에 왔다면 성지(교토 국제 만화 박물관)에는 가야만 하잖아?!

 

  

결국 미사키가 메이드를 해야만 했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버지가 돌아왔고, 미사키가 집안일에 대한 걱정을 너무 심하게 했던 게 가족들과의 이야기 끝에 증명되었다. 확실히 급전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에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뒷처리가 너무 미숙한 듯하다. 별거하면서 그 집안의 딸들만 아버지 얼굴 보고 살아가는 건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아마도 그냥 별거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뭐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남자한테 집안을, 아니 자기 자신을 맡기고 사는 건 영 내키지 않았겠지.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내 집안사와 비슷하던데, 그래서 그딴 일로 집을 나갔다는 게 더더욱 납득이 안 가고. 가족들의 반응이 모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면,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가라시는 어찌되는 건가?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결혼했다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결국 약혼녀랑은 어떻게 된 건가? 영국으로 가버린 우스이가 보고 싶어서 귀족 수업까지 받는 미사키를 보면서 그는 약혼녀에게 그녀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어떤 행동을 취할 거냐고 물었다. 그런데 약혼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자기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데리고 오게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심하다. 차라리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로 적당히 끝내면 되지 2절까지 나가면 어떡하니. 아무튼 그런 여자랑 살다보면 인생 조질 걸 알 만한 녀석이고, 아니 솔직히 성장할수록 엄청 괜찮은 녀석이던데 미사키에게 돌직구 던지고 키스 한 번 하더니 그 이후 더 이상 뭘 어쩔 생각이 없다. 독신으로 살 건가. 아깝다. 나에게 와라(?!) 

 

 아무튼 그럭저럭 보기에 괜찮은 책 같다. 커플 탄생 과정과 주변 인물들과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춘 작품인 듯하다. 단지 성추행에 가까운 짓을 한 이가라시와 카노우를 용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여전히 찜찜하다. 이가라시는 독신으로 혼자 살면서 충분히 값을 치르는 듯하지만, 카노우는 학생회장까지 맡게 되지 않았는가. 학생회장의 태도가 애매하긴 하지만 그가 한 악질 행동을 비밀로 하는 걸 보면 아마 용서한 게 아닐까 싶다. 여기서 아직까지 불편해서 말하기 힘들었던 목소리의 형태를 꺼내보겠다. 카노우도 성추행을 했다기보다는 학생회장을 괴롭히려는 의도로 행동을 했으니 그쪽에 대한 비유가 적절한 듯하다. 나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공책에 쓰는 여주의 행동에 모욕감을 느꼈다. 잘못한 게 있어야 용서를 구할 수가 있는 게 아닌가? 남주에게 동정표를 사려고 했다면 그녀의 태도를 인정한다. 그녀는 여자인데다 장애인이고, 명확히 이중적인 약자니까. 전략적으로 강자에게 굽신거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여주는 그저 남주의 모든 걸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었다. 학생회장에서는 이를 성공적으로 우회한 데서 차이가 있다. 메이드 알바한 일을 숨기면서 가토우의 행위도 같이 숨겼고 그것은 반쯤 전략적이었다. 하지만 가토우를 학생회장으로 위임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입막음을 위해서라거나 어떤 전략이 없는 행동이었다. 가토우가 악질적인 장난을 전에 자신에게 친 적이 있음을 생각하면 학생들의 미래를 그에게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를 대중작품이니까 적당히 넘기자고 하면 나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긴 글을 어떤 사람이 끝까지 읽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고, 13권을 덮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정리해 온 내 생각이니 역시 써야겠어. 프로 불편러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나는 정말 불편하다. 왕 불편하다고. 크앙. 아무튼 이 만화의 로맨스로서의 작품성은 인정한다. 몰입해서 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로틱한 찰리 문학동네 시인선 68
여성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로틱한 찰리

찰리가 에로틱해도 되는 걸까 문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플룻을 부는 여자의 입술처럼 플롯은 은밀하다 나는 찰리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에서는 붉은 제라늄이 막 시들고 있다 찰리는 어떻게 됐을까 찰리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 나는 찰리를 몰랐다 그런데 찰리를 생각했고 찰리가 걱정스러웠다 찰리를 생각하기 전의 찰리와 지금의 찰리 사이에 무엇이 지나갔을까 카페의 테라스에서 여자가 플룻을 꺼낸다 나는 찰리를 생각한 내가 찰리이고 누구인지 몰랐던 찰리는 찰리 a이며 지금의 찰리는 찰리 b라고 구분한다 문제는 찰리에 대해 생각하다 찰리가 떠났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찰리 a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자 찰리 a는 찰리 b가 되었고 찰리는 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찰리에서 빌리로 옮겨간 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붉은 입술이 플룻에 닿는 순간 찰리는 찰리 b가 떠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찰리 a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나도 찰리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빌리가 왔다 세계를 잠시 해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찰리와 빌리 사이로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에로틱한 각성이라고 적어둔다 여자가 플룻을 가방에 도로 넣는다 플롯은 숨어 있다

  

오은 씨가 생각보다 평론을 얌전하게 하시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멋대로 상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내 상상이 현실이라면, 여성민 씨의 시는 퀴어로 분석할 수 있는 시들이 굉장히 넘치는데 그걸 캐치를 못하셨는지 일부러 외면하셨는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예를 들면 유리병이란 시에선 감자를 깎는 언니와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사라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생을 보자. 그녀는 '언니를 괴롭게 한 어떤 사건'을 엿보고 유리병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근데 그 시 바로 다음에 장미 통신이라는 시가 나온다. 등을 앞으로 하고 거꾸로 걸으면서 장미에 대해 알리는 시인데(왠지 진실은 미라인 듯하다) '걱정하지 마 근친은 많고 우리는 지하실처럼 안전해'라는 구절이 나온다. 왠지 자매간의 근친 GL 로맨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스미스 부인이라는 시에선 스미스가 하는 일은 무조건 따라하는 부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왠지 스미스와 웨슨의 관계가 수상하다. 스미스가 웨슨의 방에서 나온 뒤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사람들의 눈에 수상한데 스미스가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수상하지 않다. 그리고 스미스가 총을 쏘길 좋아하는 상당히 마초적인 성격임을 증명하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보라색 톰이라는 시를 봐서 알겠지만, 매니큐어는 여성이 바르는 전형적인 화장품인데 그걸 싣고 가는 건 군함이다. 가장 마초적이면서도 가장 동성간의 애증(?)이 절절한 게 해군이다. 이 시 전체의 세계를 보건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무튼 스미스 부인은 스미스와 웨슨 둘 다를 죽여버린다. (지금 보니 웨슨은 죽었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시집의 주제인 불분명성과 실패를 의미할 것이다. 스미스 부인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을 좋아했다면 둘 다 죽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성애, 근친, 친족살인 등 금기를 주제로 하여 쓴 이 시는 그러나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이 시의 후기를 써준 오은 시인이 자신의 사건사고를 가지고 말장난을 치면서 즐기는 걸 전제로 한다면, 여성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고독과 어둠을 직접적으로 시 속으로 드러낸다.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단지 그 비애에 상당히 원시적이고 발랄한 색을 입혔을 뿐이다. 그렇다고 껍데기 포장을 잘 했다는 말도 아니다. 아예 벽돌로 벽을 세우고 건축을 한다. 다만 거기엔 식탁에 수저를 박는 등 말도 안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서대경 시인의 시를 읽은 지 한참 지나 그 시 안에 이런저런 철학이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과 달리(지금 생각하면 특히 니체 쪽이 많았다.), 여성민 시인이 어떤 철학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금방 보여서 아쉬웠다.(구조주의 쪽과... 시와 책 이름을 통째로 언급하게 될 것 같아서 다른 건 생략하겠다. 도넛과 관련되어 있다.) 이미 충분히 난해하고 구조를 타파하는 시를 쓰고 있으니, 다음에는 더 깊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몇몇 시는 두번째로 본다. 신춘문예인가 젊은시인가에서 이 분의 시를 보고 너무나 인상이 깊어서 책까지 사서 봤다. (특히 시애틀.) 다시 봐도 좋은 시들이었는데 의외로 새로 본 보는 시들이 훨씬 좋았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던간에 난 이 시인에게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건축

이언 커티스는 죽을 듯이 노래를 불렀고

죽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몸부림은 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닮았다

벽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자 계단은 한 그루 나무가 된다 광폭하고 슬픈 소리를 품고 있지만 이 나무로는 기타를 만들 수 없다 스르르

나무에서 내려오는 뱀처럼 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떨어진다

벽돌을 던지며 안녕

방금 죽은 새처럼 붉고 단단하네 이륙하기 위해 벽돌은 건축을 택하고 편대비행을 시도하려 방마다 라디오를 켜네 벽이 투명해졌다고 생각해보자 목에서 금발의 전류가 발생하는

커트 코베인은 죽을 듯이 노래를 불렀고

죽었다 목이 부러진 기타로는 아름다운 정원을 세울 수 없었다 뱀은 나무 아래 모자처럼 앉아 있다 더 많은 모자를 던지며 안녕 붉고

선지 같은 벽돌들아 안녕 아픈 뱀이 모자 안으로 들어간다 아스피린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 모자를 너에게 준다 모자는 당장 슬픔을 배운다

기타에 나무에 정원에 아스피린이 쌓인다 계단에 복도에 아스피린은 하얗다

재니스 조플린처럼 못생긴

내부에 하얀 벽의 거리가 생긴다 한 주먹 아스피린이 물에 녹는 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나키스트에게 한국대표정형시선 3
박시교 지음 / 고요아침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마중

너를 잃고
비로소 나
이제 길 떠나네

한 번도
널 기다려
마중한 적 없는 이 길

기다림
마냥이었을
아득한
너의

  

일단 시집 뒤의 간단한 서평에서도 언급하듯이 협객을 기다리며라는 시와 행복한 눈물과 관련된 시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얻을 가치가 없는 시집이다.

 

 물론 원래부터 시조를 강조한 서정시집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에게라는 훌륭한 제목을 생각해보면 정말 불쌍할 만큼 건질 게 없다. 과거에 아나키스트라는 제목을 지닌 시들이 대체로 훌륭했고 무엇보다 이 시집 전에 읽었던 황지우가 이 시인과는 정반대의 국가주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훌륭한 시를 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철저히 국가주의적인 관점을 배제한 시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의 행복해서 울어보지도 못한 불행'을 이야기한 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밤을 새우는 화자의 정성과 그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로 인해 겪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이기를 고집하는 그의 앞길은 까마득하다. 게다가 그가 찬양하는 숲이나 산마저 그가 돌아서기를 바라는 듯하다. 결국 화자는 그를 버리고 떠난 사람을 기다리다가 길을 떠난다고 나와 있는데, 그 사람이 떠난 길을 따라가는 건지 아님 다른 길을 택한 건지는 분명히 나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어차피 둘 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충실히 간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던 협객을 기다리는 그의 자세는 왠지 '고도를 기다리며'를 생각나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시의 퀄리티가 그 정도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라. 글을 써서 책으로 낼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기다릴 필요 없이 글을 칼처럼 날카롭게 벼려서 자신이 협객이 되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가슴에 못을 박는다면, 못이 심장을 뚫어 그곳에 맺혀 있는 무언가가 콸콸 시원하게 나올 정도로 박으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유약한 느낌을 준다.

수유리에 살면서

수유리에 살면서 내 가장 즐거운 날은

밤새 비 내려서 계곡물 넘치는 때

그 소리 종일 들으며 귀를 씻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귀 혼자서 고향 냇가 다녀도 오고

파도소리 그립다며 동해 나들이도 즐기지만

이 날은 두 귀 하나 되어 꼼짝도 않습니다

수유리에 살면서 안빈이란 옛말을

새록새록 곱씹을 때도 바로 이런 날입니다

당신도 들었으면 해요, 귀 씻는 저 물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