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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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에겐 경멸밖에 들질 않아요. 최고의 형을 받아 마땅해요." 잭이 단호히 말한다.

  

놀랍게도 작가는 사이코패스 잭에게 이런 말을 하도록 시킨다. 

 

 설정상으로 볼 때 잭은 가정폭력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범죄자를 욕한다고 하여 가정폭력 범죄자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의 변호도 실패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성폭력 범죄자를 욕한다고 하여 성폭력 범죄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유독 범죄자들을 욕하며 강한 처벌을 내리길 어필하는 듯하다. 잭처럼 남들에게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세 보이려는 걸까? 성폭력 범죄자를 까길래 같이 까주는데 그것도 안 된단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저거 사실 내가 경험한 거다. 실제로 정신병 있던 친구가 성범죄자 이야기하면서 전기의자 같은거 리얼하게 이야기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나쁘단 말은 아니지만 무서웠다. 흥미로웠던 건 이 구절을 올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보통은 이 구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다가도 '이 말을 사이코패스가 말했습니다'라는 정보를 알려주면 놀라워한다. 그러나 몇몇은 '사이코패스도 맞는 답을 말할 때가 있네요'라는 식으로 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잭은 자신의 범죄도 가리고 더불어 그레이스를 괴롭히기 위해 범죄자를 욕하는 부정적인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그가 최고의 벌을 내리고 싶은 상대는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그레이스와 밀리지, 추상적으로 멀리 있는 모든 범죄자들이 아니다. 이 구절을 읽은 사람들은 범죄자를 손가락질하지만 실은 어떤 다른 사람을 벌주고 싶은 걸까?

 비하인드 도어에서 남편 잘못 만난 여주의 수난을 보면서 '아 그러게 남자들은 좀만 이상한 소리 하면 바로 헤어져야 하는데 꼼꼼히 좀 따지지...' 하고 생각했다가 문득 슬퍼졌다. 보통 남자는 여자가 '꽃뱀'인가 아닌가를 따져보지만, 여자는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인가 당하지 않을 것인가를 따져봐야;

 

  

보통은 사이코패스나 성범죄자 등을 괴물이나 괴물이 된 인간으로 보는 데 그게 틀린 지식이라는 걸 이 소설에서는 몇 번이나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의 문제와 비슷한데, 이 소설가는 정신병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 즉 당신이 만나는 특출난(?) 인물들 중 대부분은 기현상을 만나서 인류에서 변형된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어찌보면 남편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유심히 고민해본 적이 있는 세상의 모든 부인이 쓸 만한 이야기일 듯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결혼한 또래들에게서도 종종 엄청 희안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의 남편 이야기를 모아서 만들다보니 사이코패스 된 거 아닌가 이거...

 

  

글쓰기의 최전선 이후 리뷰보기를 갑자기 좋아하게 되었지만 인간들의 낮은 수준을 보면 상처받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번 비하인드 도어는 여성들이 특히 많이 볼테고, 두께상 책을 읽는 좋아하시는 분들만 읽을 거 같아서 어떤 글을 남길지 흥미로웠다.

1. 남주가 왜 나쁜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갑갑한 성격이라서 오히려 여주를 죽기 직전까지 팼다고 썼으면 속이 후련할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의외로 이런 여자들이 많다. 폭력으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할까? 그러나 남주는 여주가 공포 외에 다른 감정을 느낄 빌미를 주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다.
게다가 남주는 이전에 힘조절을 못해 어머니를 죽인 적이 있다고 하며 가급적 오래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람은 동물적 본능 때문에 신체적 폭력만 폭력인 줄 알지 다른 폭력도 폭력임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며 꽃을 바치고 다정하게 대하면 정이 많은 사람은 넘어가기 쉽다.

 2. 여주가 바보같다는 의견. 그렇게 완벽한 남자가 이 세상에 있겠느냐고 비웃는다. 솔직히 나도 엔젤이란 성은 많이 촌스럽지 않나 생각했으나,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거에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는 에스터가 오히려 이상한 편이지.

 3. 대게 이런 소설에선 반전을 이해 못 하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쓰여진다. 문제는 그 구절만 달랑 쓰여진 경우인데, 네타에 대한 걱정은 아닌 듯하고 정말로 반전이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현실에서 책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의 반전이 왜 이런지를 물어보느니 차라리 넷상에서라도 반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세히 이야기하는게 좋을텐데.
 결말은 일단 스포일러하면 재미 없어질 가능성이 너무 강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떤 리뷰에서 말한대로 소설이 '부유층의 고충을 말하고 있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비하인드 도어는 결국 여러 필연과 우연들이 겹쳤지만 눈치 빠르고 진보적이며 사회에 영향력이 센 이웃들의 협력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가 되어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하는 허탈감이 약간 남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스릴러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잭이 좀 죠죠 4부의 키라 요시카게 같은 이미지였던지라 그렇게 허당인 스토리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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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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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 (...) 아버지인 가해자가 자신의 성장기에 걸쳐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 폭군이었던 것은 아닌데 글로 써놓으면 하나의 나쁜 이미지로 고정되고, 자기 인생이 온통 불행한 것처럼 보일 텐데 사실과 다르며 그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도 조심스러운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상황과 미묘한 심정을 잘 표현하는 게 글쓰기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언젠가 독서모임하는 곳의 서점 주인장(A)의 책을 대판 까다가 글을 내려달라는 주인장 친구(B)의 부탁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제 2탄을 이야기하겠다.

 

 주인장 친구(B)의 친구(C)는 내가 평소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아이가 그(C)의 친구(D)를 '대머리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시를 썼는데, 외모비하가 걱정되서 시를 고쳐 쓰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은유의 말에 의하면 B와 C 모두 잘못된 말을 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글쓰기는 개인이 쓰는 것이니 남을 비방하는 글을 썼다면, 그리고 그에게 피해를 준다면 글을 공개하지 않는 게 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B는 글을 고쳐써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내려달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B의 나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현저히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까 경계하는 태세라고 할까. 하기사 나도 C의 그 말을 듣고 엄청나게 실망했으니 쌤쌤일지도. 그러나 C의 글은 널리 읽힐 테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글을 고친 그 사건이 억압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걸까? 선생님인데? 결국 글쓰기에는 상당한 계급차가 있다. 쓸 때부터 차이가 있지만 결국 쓰더라도 '니가 뭔데?'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서점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규격과 형식차이로 인해 서점 직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그 이유로 대학을 다녔는데도 대학을 다녔다고 인정받지도 못한다. 사르트르는 그래서 일부러 유명 학교에 재수해서라도 굳이 수석으로 입학했다는데, 요즘 내가 겪는 일들을 보면 그럴 만 했겠다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자본의 평등처럼 그녀는 글쓰기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내 경험상으론, 일단 띄어쓰기에 맞게 글을 쓰기만 하면 그에 공감하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정돈 반드시 있다. 그런데 지식인들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형식이 어긋난다 왈가왈부하며 사전에 꺾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작은 서점직원인 나에게 선생님(B)이 그러듯, 어린 아이(D)에게 작가(C)가 그러듯.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나에게도 저자는 개인의 감정을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켐페인 식으로 남에게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는 글을 쓰지 말라고 일축한다. 흥미로우면서도 일면 뜨끔한 점이 있는 책이었다 할까.

 그리고 아버지는 365일 폭군이 아니었다 하는데 세상엔 365일 내내 한 번도 아이를 때리지 않은 아버지도 있다. 자신의 인생이 365일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365일 내내 폭행을 당하지 않은 아이와 그는 체험한 게 다르다. 글로 써놓아야 한다. 당신이 그 경험을 써놓은 건 발가벗은 채 거리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게 이 세상에서 자유로 보장되어 있는 이상, 발가벗었다고 놀리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미친놈년들이다.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로 살아왔다. 여성의 경험은 사적 경험으로 할당된다. 자기 삶의 궤적이 보편 경험이 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은 늘 언제 어디서나 할 말이 많은 법.

 왜 지적인 남성들은 여성들의 하고많은 경험 중 오직 '출산'만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 전에 겪어야 할 여성의 수많은 경험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지 않아서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책을 보다보면 저자 은유가 미래파 시라거나, 김영민 책이라거나, 사르트르의 말 등 박학다식을 넘어 도전정신이 넘쳐야만 볼 수 있고 정말 도서를 사랑해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후에 나온 페미니즘 책의 목차를 볼 때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그녀는 페미니즘 에세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에 그 이유도 나와있다.

 1.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의 글쓰기 수준을 위해 글쓰기 강좌를 시작한 이상 그들에게 강의를 해 주는 게 목표였고 그들의 레벨을 고려해야 했다.
 2. 그녀가 선정하는 책이 어렵다고 사람들이 항의하기도 했고 리뷰 글을 공개하는 것조차 어려워했으며 과제에 참가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토론 주제는 상당히 수준이 낮았다.
 3.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들이 많기에 일주일에 한 번 한 권을 100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다. 대다수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책을 읽었을 확률이 높다.

 결국 사람들이 강의에 참가하고 자신의 책을 읽게 하기 위해 글쓰기의 최전선을 썼는데 그것도 안 되서 수준을 더 낮췄다는 건데. 이런 식으로 가면 어디까지 수준을 낮춰야 하나 그게 그녀에겐 항상 고민이 되는 사항인가 보다. 그러다가 그냥 일반 사람들의 수준까지 낮아지기로 아예 결론을 내린게 아닐까. 개인적으론 그녀가 참 아깝다. 사르트르의 말을 풀이한 책도 내줬으면 좋겠지만, 최근 출간한 책을 보면 무리이지 않을까. 한 번 낮아지면 높아질 수 없는 게 에세이스트 대부분의 현실인지라...

 

고백하자면 내게도 도통 읽히지 않는 시도 있었다. 통칭 미래파라고 칭하는 2000년대 이후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을 보이는 시들이다. 시점의 혼동, 시제의 이탈, '덕후적' 문화코드로 이루어진 시 세계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물구나무를 서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시구를 못 알아듣는 게 속상하고 답답했다. 감각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꼰대 같은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미묘한 충동이 일었다. '그래 봤자, 시 아닌가.' 호기심이 일었다. 미래파 시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궁금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래서 시 세미나에서 동료들과 함께 미래파 시집 열두 권을 한 계절 동안 꾸준히 읽었다. (...) 취향을 만드는 일은 탈취향을 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 덕후가 되는 겁니다.
근데 난 시 중에서 제일 잘 읽히는 게 미래파 시고 가장 안 읽히는 게 강은교 시라서 미래파 안 읽힌다는 사람들이 되려 이해가 안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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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7 : 원하다 나는 오늘도 7
미쉘 퓌에슈 지음, 틸 샤를리에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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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운 것은 바로 이렇게 부정적인 것까지 원할 수 있는 가능성,

모든 것을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초연함의 자유'라고 부른다.
중립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인위적으로 '초연'하게, 그러니까 중립적으로 대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진짜 원하는 걸 찾기 이전에 원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라고 본다. 

 

 물론, 책을 쓸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안 쓰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그 와중엔 책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옆에서 책을 쓰라고 쓸데없이 강요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던가,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시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책을 잡은 뒤 느낀 점을 글로 옮기기 시작하는 게 제일이다. 너무 부담간다면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상부터 조금씩 일기처럼 써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받고 있다면, 게다가 그 타인의 사랑에 굶주려 중독된 듯 글을 쓰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정말 최악이다. 아무리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좋아도 그렇지, 아주 심각한 경우 당장 글쓰기를 그만 두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게 훨씬 낫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원하라고 강요하는 건 대부분 이유 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심한 경우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자식에게 글을 쓰길 강요하는 부모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꽤 옛날 얘기다. 60대에 헬스장을 다니며 근육을 단련하고 모델로 나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꼭 우리는 원하는 걸 늦은 나이에 새로 발견해야 하는가? 그렇진 않다. 어떤 나이라도 원하는 걸 발견하고 원하는 걸 다 성취할 때까지 꾸준히 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원하는 걸 대를 이어 물려받을 때다. 개인적으로 난 부모의 직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케이스가 많은 나라는 이미 글러먹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의 직업이 자식에게 훌륭해보이고 그게 일종의 동경과 사명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이룬 성취와 돈만 보고 그 직업을 평가했을 땐 이미 정말 원하는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잃는 셈이다. 이는 공무원도 마찬가지인데, 철밥통이 좋은 건지 아님 그 직업 자체가 좋은지를 확실히 해야 결과를 보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시험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진심으로 원해도 세상엔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원했고 그것에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그 후에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거절 못하는 사람이나 선택장애도 결국 원하는 것을 단호하게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보통 사람들은 '눈이 나빠서 어차피 너 하나밖에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려서 어차피 네 목소리밖에 안 들려'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만일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기적적으로 눈이 잘 보이고 목소리가 잘 들린다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너'의 옆에 있기를 바랄까? 애초부터 그 귀나 눈은 어떤 것도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렸던 게 아닐까? 그 귀나 눈이 듣고 보았던 게 다 그 자신의 환상일 뿐이라면? 무언가를 결심했음 결심했지 의지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단어와 마찬가지인 듯하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원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원함은 행동이다.

 

 P. S 만약에 공무원(ex.서울시 공무원)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발령이 안 나고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과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그 사람 행복의 요체고 직업은 그냥 수단에 불과하다면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뭐 직업을 돈 때문에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상관없지만 결국 훗날에 박차고 나가는 걸 난 너무 많이 봐서... 그리고 공무원도 열성없음 짤린다(...) 결국 짬밥을 오래 먹는다는 건 어떻게든 직업에 재미를 붙여서 잘 지낸다는 뜻일 수 있다. 즉,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리 철밥통이라도 죽도밥도 안 된다는 것. 내가 훗날 행복을 느낀다면 잘 된 일이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굳이 도박을 하기 싫다면 원해야만 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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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6 : 말하다 나는 오늘도 6
미쉘 퓌에슈 지음, 브루노 샤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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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두들 풀은
'초록'색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소방차는 빨간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똑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것들을 지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용적인 의사소통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빨강'과 '초록'이라는 단어의 심오한 의미는 나와 상대에게 전혀 다를 수도 있다.
(...)
의사소통의 부족한 점들은
더 많은 소통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내가 그 인간이 간헐적인 색약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안 건 젠가를 할 때였다.

 

 특정 색의 젠가를 빼야 하는데 계속 반대되는 색의 젠가를 빼는 것이었다. 어떨 땐 정상일 때도 있는데 다른 때는 보색이 대비되서 보인다나. 그래서 그 녀석은 나의 도움으로 인해 젠가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나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이 뻘쭘해하니 안 돼 보이기도 했다. 보색으로도 모든 게 잘 보인다고 변명처럼 말할 때 '그래도 그 녀석이 좋아하는 석양은 잘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내가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해주려 했는데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좀 더 곁에 있었으면 말해줄 수 있었을까? 더욱더 나 자신이 한심했던 건, 그 녀석이 본 석양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고 설명은 들었어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생계에 관련된 일도 아니고 단지 서로 보는 색깔이 달랐을 뿐인데도 이렇게 대화하기가 어렵다니. 같이 살면서 선입견이 덮이기 쉬운 이슈에 대한 대화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러고보면 우리 가정에서는 대화하기 힘든 이야기는 일단 피하려 노력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나하나 꺼내는 편인 듯했다. 그것조차도 무척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새삼 커뮤니케이션의 힘듦을 느꼈다.

 

  

갑자기 영화 홍보가 뜬금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옥자는 여러가지로 이 책의 주제를 아주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미자는 돼지 즉 옥자와 교감을 나누었지만, 삼계탕은 맛있게 먹었다. 옥자와는 대화하지만 닭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이 장면에서 옥자가 말을 할 줄 안다면 단번에 장르는 괴수 영화로 다시 바뀌어버릴 게 뻔하다. 영화는 옥자의 침묵 덕분에 옥자에게 동정심을 표하며 온화하게 흘러간다. 옥자를 좋아하는 미자에게 삼겹살을 먹는 건 금기이다. 이는 옥자가 싫어할 것이란 미자의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에 호기심이 왕성해지기 시작한 우리 집 강아지도 보신탕 앞에선 주춤거린 듯하다. 그러나 옥자가 말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졌다면 어땠을까. 그도 미자가 인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을까? 아님 메트로폴리스의 주인공 로봇처럼 '친구'를 죽인 세상이 미워서 닥치는대로 세상을 파괴했을까?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 '종'차를 근거로 한 폭력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타자화의 절정이 동물착취 아닌가.

 고의로 잘못된 통역도 그렇다. 난 봉준호가 소통을 못하는 여러 상황을 주제로 잡은 거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채식주의, 인간의 이기심 정도로 영화를 본다.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하길 권한다. 배고프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거나, 혹은 미자가 나쁘다는 게 영화의 핵심이 아닌데 말이다. 저 영화는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문제이다. 배고프면 그 어떤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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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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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나오는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은
다음 주면 공격을 시작할 거라고,
달이 차오르는 날 폭격을 할 거라고,
그 전에 항복을 하라고 이 나라의 독재자에게
더 심각한 얼굴로, 더 무서운 말들을
쏟아 냈습니다.

  

그냥 출간행사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서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일단 서점에 걸려있는 유화가 압도적이었다. 일단 무거운 그림이었고,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나중에 읽으면서 이라크가 배경임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의 그림을 그리신 김종숙 씨는 잡일(덕장)을 하시며 담배, 소주, 맥심 커피만 있음 언제든지 작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한다. 그러다 현재는 문화재보수기술자로 일하고 계신 저자 박기범 씨를 만났고, 이라크에서 10년간 살면서 기록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만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권고하고,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글을 쓰기로 결심한 저자가 이라크에서 찍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과 책자와 영화와 다큐를 보여주셨다 한다. 대부분 그 자료들을 참조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시장에서 포탄이 떨어져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그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나는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강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권정생 씨의 글에도 삽화를 그리셨던데, 아무래도 진지한 그림을 좀 더 잘 그리시는 듯하여 난 이 그림책으로 김종숙 씨의 그림을 보길 추천하고 싶다.

 

 

  

정의의 용사라는 가면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적으로 지정하는 '지독한 악당이 사는 나라'의 아이들도 공차기를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독재자가 있는 나라의 돈과 자원이 탐나서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고쳐주는 척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다. 갖가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미국 남성은 총을 들고 아이들을 쏘면서 점차 죄책감에 망가져간다. 한편,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이라크 사람들은 전에 벌어진 몇 번의 전쟁 경험으로 인해 내국에선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그렇다고 해외로 갈 돈도 없기에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저 벌벌 떨면서 어제 같은 날이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평범하게 살기란 너무 어렵다.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가족들을 도와줄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청하는 장면에선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성은 피투성이가 되어 편의점으로 전력질주하는 다른 여성을 보자 본능적으로 문을 잠그고 화장실 가는 척을 했었다. 그리고 그 피투성이 여자는 그녀를 쫓아오던 한 남자에게 잡혀 처참히 죽음을 맞는다. 사실 그 알바하던 여성이 무슨 죄겠는가. 근처의 경찰이 좀 더 제대로 일했다면. 편의점 본사가 알바생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킬 궁리를 좀 더 일찍 했더라면. 마치 전쟁과 같이 팍팍한 삶을 사는 자본주의 국가가 우리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마치 좀비물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확실히 좀비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이는 '저럴 땐 군인이 되는 게 가장 편해'라고 나에게 말했다. 살아남는데엔 편하겠지만 죄책감을 느껴 다시 이라크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면, 그 군인의 마음은 편할까? 이라크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마음에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건 변하지 않으리라. 군인이 아이들에게 자신은 포탄과 총알을 날렸지 돌을 날리지 않았다고 울부짖을 때는 마음이 짠하다.

 자살 테러에 대해서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놨다. 부모자식을 잃어서 분노한 사람들이 미국에 반발하여 전쟁을 벌이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착한 전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책에서는 주장한다. 전쟁이 불러오는 것은 전쟁 뿐이라는 것이다. 열매가 익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기다릴까? 이는 자연보호와 평화와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바라는 모든 활동가들의 숙제일 것이다.

 

 

  

책에 담겨진 삽화와 행사장에 걸린 그림을 비교해보니 같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차이가 났다. 화가는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지라 그림의 질을 다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될 수 있으면 이 책도 사고, 전시회도 한 번 가보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화를 많이 진열하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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