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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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이며 오락인 동시에 승부의 전장인 당구라는 분야에는 밀고 끌고 빨고 돌리고 벗기고 먹이고 회전시키는 등등,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얼마간 색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무수한 언어적 표현과 함께 한탄과 억울함과 바람과 행운과 불운, 애원, 기쁨, 비탄에 어울리는 각양각색의 몸짓과 비명과 감탄과 호소의 표출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는 늘, 신기할 정도로 과묵하고 무표정했다. 인간의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나타내는 표정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장 높은 등급은 바로 그런 무표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책 이름을 오인했던 적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바흐친과 문학 이론은 바흐친의 문학 이론과 꽤 비슷해보인다. 그처럼 이 책의 이름도 '번쩍하는'이란 대목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번쩍하는과 '번쩍였던'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보인다. 각각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슬슬 꼰대가 되어 과거가 좋았더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약간 겁이 났다. 그래서 명문장을 달 때 제목을 헷갈리지 않도록 상당히 조심했다. 그런데 이번에 명문장을 달 때 테마로 삼으려 했던 게 정치와 술인데, 최소 10장당 한번씩은 꼭 등장하는 주제였다. 자동으로(?) 현재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이번 소설은 뺑덕 어멈이 등장하는 판소리를 방불케 하는 긴 넋두리들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라 산문시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주제도 뭔가 모나고 못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쁜 사람들임을 알면서도 가끔 그 사람들처럼 살아보고 싶다거나, 심지어 귀엽다고 생각되는 건 어째서일까.

내가 사는 동네에서 진행했던 성석제 작가의 토크쇼에 대해서 에피소드를 하나 더 이야기 하겠다. 진행자가 복숭아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알차게 묘사한 어느 작가가 있다고 하며 그녀를 극찬한 대목이 있었다. 성석제 작가는 대뜸 자신도 복숭아에 대해서 소설을 썼으며 그 외에 딸기와 자두 등 다양한 과일을 취급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읽어보니 복숭아를 먹는 장면을 감각적으로 썼다기보단, 언어유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신 듯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에게 뒤늦게 발견되어 '아재 유머'라는 이름이 붙여졌기에 망정이지, 예전에 언어유희를 즐겨 하는 사람들은 더 심한 천대를 받았었다. 그래서 더욱 귀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교관은 궁리 끝에 후보생들의 옷을 모두 벗게 한 다음, 비 오는 연병장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각각 자기 앞사람의 성기를 잡고 줄을 지어 달리게 했다. ('군대는 줄이다'라는 관용어도 있다.) 그것은 하늘이 사람을 지상에 살게 한 이후 처음 나타난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때부터 'X 잡고 반성한다'는 말이 생겼다.

 

 

그래서 원래 그 ㅈ은 남의 ㅈ이라는군. 역시 군대는 BL소설 쓰기 좋은 무대야.

 

 진짜 동성애자가 지은 반실화라는 소설에도 나오고 이미 영화도 나왔지만... "그게. . .어떻게? 뒷사람이면 좀 나은데. . .앞사람걸 잡고 가려면 간격이 . . .??"라는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근데 성석제 씨는 소설에서 그랬듯이 하면 된다, 라고 대답하실 듯하다.

 

12월 24일. 나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제주도에 있었다. (하긴 지금도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혼자였고 전날 마신 술로 머리가 띵한 상태였다. (...) 하긴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돈을 주고 표를 사서 산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무슨 수를 쓰든 악착같이 개구멍으로 산으로 들어가곤 했다. 지리산 국립공원, 설악산 국립공원이 나한테 수없이 당했다.

  

술은 역시 혼술.
등산길은 역시 동물길.

 두 사람은 취해 있다. 아니 취하고는 배기지 못하리. 관동팔경 죽서루 난간 위.

 

 

나는 누각에서 술을 마시는 노인분들을 보진 못했지만 이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버스에서 술을 얼큰히 마신 듯한 노인들은 본 적이 있다. 청춘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가 카페나 술집인 게 별다른 이유가 있겠나. 관동팔경은 인생 멋대로 사시는 노인분들이 즐기시고 계신다. 가끔 떨어지고 싶은 듯이 벼랑을 쳐다보며.

 

P.S 왠지 이 명문장이 나온 소설의 주제와 비슷할 거 같아서 올려본 강릉 바다부채길 리뷰.
1. 길 좁으니까 사진찍지 마라.
2. 길 좁으니까 양산펴지 마라. 양산으로 때릴 것이다.
3. 여기서까지 술쳐먹고 들어오지 마라.
4. 총 맞기 전에 울타리 넘어서 바다 들어가서 낚시하지 마라.
5. 고소공포증 있으면 오지 마라. 바닥 비치는 곳 많음.
6. 우산 펴지 말라고 시뻘들아!!!!!!
7. 왜 바다에서 술판이야! 김정은 오빠!! 오디계세여!! 쟤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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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피었습니다 - 생각하는 만화
구상렬 글.그림 / 갤러리운수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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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 모자라면 치에 넉넉하고,
할에 모자라면 푼에 넉넉한 것이
인생사이거늘...

 

이건 뭔 소린지 몰라서 올려본다.
매사에 만족하고 살라는 건가?

 

 일단 나는 이 대목이 '두번째 선택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커다란 걸 바라는 게 어쩌면 욕심일 수 있으니,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방법 또한 좋다고 말이다. 저자가 자꾸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건데... 난 나같은 놈을 누가 사랑해주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꼭 하면 되는데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쫑알대는 부류들이 있다. 그런 인물이 잘 되는 걸 딱 한 번 본 적은 있지만 여러 번 본 적은 없다. 그 한 번도 티비에서 봤다. 고소공포증인 연예인이었는데 유달리 취재진들이 높은 데서 뭘 해보라며 자꾸 강요해서, 다 큰 남자인데도 엉엉 울기도 하더라. 예전엔 불쌍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그 사람도 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허락해서 시작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가 지배욕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걸 한 번 돌려 말하지도 않고 남에게 전달해버리는 사람은 뭘까?
1. 그 싫어하는 사람의 성격이 바로 나 자신이다.
2. 내가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루트에 대한 반항.
3. 할일없는 촌사람
4. 미친놈.
내 성격으로는 보통은 3,4번을 택하고 깔끔하게 날 험담하는 사람을 무시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비록 무시하는 루트를 또 택하더라도(...) 이 책은 1,2번을 고려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 때문에 내용이 극도로 짧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을 때조차도 남을 부러워하는 인간들. 죽어서도 남을 원망하며 구천을 떠도는 인간들. 부끄럽지 않나 모르겠다. 사람이 되고 싶어 목이 메는 건 정말로 호랑이와 곰 뿐이란 말인가. 사람 탈을 쓰고 있으면서도 사람인지 의심이 가는 분들이 몇 있다. 꼭 그런 분들이 남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데엔 도사다. 뺑덕 어멈처럼 모질기라도 하던가. 아님 애교가 예쁘기라도 하던가. 이 책을 쓴 분은 사람이 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애교가 예쁜 분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만화를 그리시던 분이 낸 책인데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 듯하다. 작가의 작품을 담은 굿즈(?)도 파시고 강릉 도심에 가까운 곳에서 생각하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계신다고 한다. 여기도 언젠가 시간이 나면 가보고 싶다.

 

구름 속을 걷고 있습니다.

구름이 흐르는지...
내가 흘러가는지...

오늘은 운두령을 넘었습니다.
내일쯤은 구룡령을 더듬고 있겠지요.

누군가 마음 비워내
바람같이 지났을 이 길...
오늘 나도 걸어갑니다.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설악산을 등반하거나 절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부러움을 조성한다. 하여간 난 등산 가고 싶어도 24시간 빠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나타나 추근대는 남자들 때문에 가질 못함. 겁나 짜증남. 나도 1박 2일로 공룡능선 넘고 싶은데 ㅠㅠ 가끔 다들 사라져줬음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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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스트 안승현의 마음이 머무는 풍경
안승현 연주 / 샴스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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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하늘

별도 반짝이고 달도 일렁이기에
마냥 반짝이는 밤하늘인줄만 알았지.

별 따라 달 따라 앞으로만 가면
마냥 반짝이는 밤하늘일줄만 알았지.

누가 알았겠어.
갑자기 땅바닥에 닿을 줄이야.

누가 또 알았겠어.
갑자기 머리를 박을 줄이야.

별도 반짝이고 달도 일렁이던 그 예쁜 밤하늘이
고작 호수인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일단 이 책은 인디서점에서 산 책이므로 알라딘 같은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강릉에 분수공원이라고, 큰 광장을 기대하고 가보면 큰 실망을 하게 되는(...) 아파트 도심 사이의 조그만 놀이터가 있다. 거기서 큰 길을 건너가면 해장국집이라던가 커피집이 모여 있는 상점가가 나온다. 거기에서 맨 구석 빌라가 있는 곳으로 가면 깨북이라고 아주 작은 서점이 있다. 오후 2시에 여니 조조영화 한 편 보고 해장국집에서 돼지국밥 먹고 들르면 되겠다. 그 주변에 북카페나 선인장카페도 있는데, 나름대로 좋은 가게 같았다. 아무튼 깨북은 매우 작은 규모인데다가, 내가 갔을 때는 직원들로 보이는 세네명이 큰 원탁 테이블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복작복작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디자인도 겸해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나. 아무튼 이 책을 하나 사니 꽤 여러 개를 챙겨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깨를 담은 병을 하나 주시는 게 가장 특이했다. 무언가를 더 못 주셔서 미안해하시는 주인장님을 보면서, 조만간 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보면서 큰 교훈을 얻었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 극단적으로 어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심리를 왠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절머리나게 그 안에 오래 있었으므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듯하다. 박소란의 심장에 가까운 말에서도 어둠에서 벗어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화자가 등장하지만, 이렇게 절절히 보여주는 건 안승현만의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의 주제는 사실 이미 다른 대중음악들에서도 흔히 쓰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도 헤어진 후면 하물며 술이라도 섭취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배고픔은 무척 생리적인 상황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연애의 경험이 많아질수록(그렇다고 스킬이 늘어나는 건 아니더라.) 위장의 꼬르륵 보채는 소리가 방구소리만큼 커지면서 더 잘 의식되더라. 하지만 받는 사랑이 부족하다 생각하기에 더더욱 배가 고픈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배고프다면 우리는 기운이 없어서 계속 무언가에게 사랑을 주기가 부족한 게 아닐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만히 보면 시의 레벨은 정말 낮은 편인데, 이 분이 시의 제목을 아주 잘 뽑는다. 그것도 사랑 시만. 이별에 노련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라니. 음표를 붙이면 70~80년대 디스코 음악 정도는 훌륭하게 뽑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에 휘청여도 배는 고프다 중 명시

->http://vasura135.blog.me/22107833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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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그림 동시집 세트 - 전2권 -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박성우 그림 동시집
박성우 지음, 박세영 그림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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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장사

전영숙

시끄러운 용달 트럭 지나간다
염소나 개 파세요
고철이나 빡스 파세요
비료 포대 파세요
고장 난 선풍기 세탁기 냉장고 전기용품 파세요
고장 난 보일러 파세요

고물 용달 트럭 오르락내리락
주착 바가지 떠드는 소리에
날아다니는 새가 다 웃는다
아저씨, 아저씨, 여기는요
고장 난 할매 할배가 더 많아요
고장 난 할매 할배는 안 사나요?

 

뭐 고장난 이유는 다양하겠다. 종교에 심하게 빠지거나, 지 하나만 챙기려 들던가, 아님 몸이 고장났던가. 그래서 난 돈을 많이 벌은 뒤, 사람들을 고루 도울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몸이 고장나지 말아야겠지.

 

 문제되는 것들이 그닥 많진 않았으니 일단 지적질부터 시작하고 글을 이어가려 한다.
지적 1. 여기 왜 이리 문재인 좋아하냐. 심지어 회의적이라던 분조차 하얀 꽃이라느니 뭐니 난리네. 그리고 이건 글과는 상관 없는 거지만 인천 노조 중 한 분은 자신도 모르는 구호를 왜 등에 붙인답니까. 그것보다 우리 이니를 깔고 앉으셨어(...) 그리고 우리 '문제인'은 역시 의도한 오타입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
멋지다 최고다 우리 이니의 환상은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이미 깨진지 오래다.

 

 

그놈의 이니란 단어때문에 문재인까지 싫어지려 했는데 속 시원하다.

 

 지적 2. 개구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다들 개구리에 관한 시를 쓰는 듯. 아무리 탁종철 씨가 여기서 제일 산문을 잘 쓴다고는 하지만 참고한다는 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완벽해보이지만 간혹 글을 늘이느라 본문과는 상관없는 단문을 올리는 게 많이 보인다. 그에게는 그만의 단점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만의 장점이 있다. 일단 소재부터 본인만이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게 어떨까.

이광연 씨가 교사직에서 퇴임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분이 좋기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모든 게 끝나면 조르바 같이 춤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이 했던 교과목을 이렇게 저렇게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글이 길게 쓰여 있던데, 그럴 땐 몸을 움직이며 아무 생각나지 않게 하는 농사가 최고지만 나는 일단 취미생활보다는 조금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돈이 아니더라도 이런 타입은 일을 할 때 대가가 있어야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의외로 청소나 경비도 괜찮은 직업이고, 어떤 나잇대이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뭐든 있을 것이다. 취미생활로만 시간을 소비하면 결국 그녀는 나중엔 가치가 없는 일만 잔뜩 하고 있다며 자신을 책망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쓴 그녀가 봐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녀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며 쓴다.

 

 

 

우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현재 보고 있는 동시생태계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단 이안이라는 동시를 짓는 사람이 있다. 그는 동시를 올리는 잡지를 만들어서 현대의 실험적인 동시들을 올려 기존 동시들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서서히 말하겠지만 동시는 하나하나 차이가 상당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현대의 실험적 동시를 대표하는 특징을 말하자면, 첫째로 성인들의 시로 옮길 수 있을만큼 심오하며 둘째로 비트겐슈타인 후기 스타일 즉 언어의 장난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시인으로 신민규를 들 수 있다. 동시의 전반적인 계열에서도 젊을수록 인기를 많이 끌고 주목을 많이 끄는 편이기 때문에, 이안도 동시의 계열치고는 상당한 관심을 얻고 있다 할 수 있다. 뭐든지 무시보다는 낫다. 이안 씨는 동시 팟캐스트를 하고 있으며 내 페친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제곤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황금시대는 도래했는가라는 글을 써서 또한 주목을 받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안 씨들이 그렇게 썰렁하고 아재 위주의 시를 쓰고 있으면 아이들이 동시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으며, 안 그래도 게임 등으로 현실과 멀어지게 된 아이들이 더욱 현실에 맞닥뜨리는 힘을 잃는다는 이야기이다. 이안과 유강희는 동시 팟캐스트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반발을 하여 오히려 김제곤이 더욱더 뜨는 빌미를 마련해주었다. (특히 아이들의 반응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썰렁하다는 김제곤 씨의 간접적 공격이 더욱더 그들을 초조하게 했을 것이다.) 김제곤 씨가 직접적으로 팟캐스트를 써서 공격하기보다는 그의 지인들이 팟캐스트를 하고 있으며 틈틈히 뜬금없이 그의 이름을 대며 그의 인기 없음을 공격하는 편이다. (사실 정말 뜬금없었다.)
내가 이안 편을 드는 건 있지만, 사실 이안 씨 자체의 시가 정말 재미없는 건 인정하므로(...) 중도에 속한다고 밝히고, 아무래도 길어질 글의 서막을 밝히겠다. 참고로 이 논란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동시가 계속 쓰여지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이 결국 이안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일반 시 분야에서도 미래파와 고전파(?)의 치열한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팟캐스트에서 진행되었는데, 하나는 창비에서 김사인이 진행하고 박준이 프로듀싱한 막강한 팀이었고 다른 모든 팟캐스트들은 다들 예산이 간당간당한 팀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미래파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김사인 씨가 몸이 편찮으셔서(...) 물러나게 되었고, 지금도 미래파들은 자신의 젊음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자신들의 시를 홍보하고 있다. 하물며 진보파가 성행하는 이 시점에서 보수들은 결국 지역 잡지로,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 잠복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반성

함민복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이 시는 1년 전쯤 이안 씨의 팟캐스트에도 나온 시이다. 이안 씨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일반 시인이 동시의 세계에 들어오는 데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지만, 동시에도 이런 함축적인 표현이 들어가서 새롭고 좋다고 했다. 반면 김제곤 씨는 이 시가 난해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 시인들이 동시를 쓰려면 더욱 함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편들어줌으로써 상대방을 신경써 주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러나 말하는 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일단 함축의 기원부터 밝히는 게 맞는 듯하다. 부질없을 듯하지만.

 

거미줄

송찬호

거미가 거미줄 쳐 놓고
십 리 밖 먼 길
나들이 갔다

나비야, 이 쪽지 읽어 봐
내가 새집을 지었어
이따 내가 없더라도 그냥 돌아가지 마
네가 이 집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면
금방 돌아올게

밝은 촛불
반짝이는 나이프와 포크
너를 돌돌 말아
식탁에 앉힐게
우리에게 멋진 저녁이 되지 않겠니?

 이안 씨가 사실 이 시를 제일 좋아하고 자신의 팟캐스트에서도 몇 번이나 극찬했는데, 김제곤 분은 그가 지나친 해석을 하고 있다고 팩트폭격을 날린다. 무슨 작품을 보던 해석하려 드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이는 그 사람이 벌 돈이 달려 있으니, 지극히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동시에서는 이런 비유가 흔하게 쓰인다는데,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할 일이다. 십년 전보다 더 오래 전에 이런 동시가 나왔다고? 내가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최근이긴 하나, 여태 류선열 시인 빼곤 본 적이 없다.

 

넘어선, 안 될 선

신민규

넘어오지 마 이 선
넘어오면 다 내 꺼
샤프 볼펜 지우개 수첩
하나라도 넘어오면 다 내 꺼

왜 이렇게 야박해
뭣 땜에 날 미워해
화난 게 있으면 얘기해 내게
꼬인 우리 사이 다 풀어 줄게

다 필요 없고 알 거 없고
너란 애는 지겨워 제발 저리 고고
어? 샤프가 넘어왔네 내 꺼
지우개가 넘어왔네 내 꺼

잠깐만 아니 잠깐만
샤프 볼펜 수첩 다 줄게
부탁이야 돌려줘 지우개
우리 사이 가른 선 지우게

김제곤 씨가 그 다음 마지막으로 건드리는 결정타인 '너네 재미없음'은 이 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모두들 일리있다 한다능... (실제로 애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힙합 싫어하는 애들이 많은 건 둘째치고라도...) 그래도 애가 삐뚤어진 이유를 시로 제시하라는 건 좀 오바한 듯. 굳이 저런 장난에 이유가 필요하나. 불우한 가정?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약속

1. 우리는 나이, 성별, 성적지향, 성정체성, 장애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경력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합니다.
2. 기본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고, 호칭이나 존댓말/반말은 상호 동의 하에 결정합니다.
3. 나이, 성별,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에 관한 고정관념이 담긴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4. 소수자를 비하하는 언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5. 성차별적 농담, 음담패설에 웃지 않고 정색합니다.
6. 상대방의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존중합니다.
7.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평가나 비유를 하지 않습니다.
8.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하지 않습니다.
9. 상대방이 거부의사를 표현하면 즉시 중단합니다.
10. 피해자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11. 행사의 주관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경고하고 제지합니다.
12. 행사의 참석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해서 다 같이 항의합니다,
13. 발언권을 소수의 인원이 독점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발언할 수 있도록 합니다.
14. 이 약속문을 조롱하지 않으며, 기억하고 실천합니다.

인디포럼에서 켐페인을 하고 싶다는 영화제 위원장이 읊은 구절이라고 한다. 새겨들을 만하다. 페미니즘 혹은 퀴어학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여성학을 배웠다면 필히 새겨들어야 할 교훈들이다. 왜냐하면 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 구절을 지키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철입니다라는 동화가 있다. 이 계열에서 상당한 입소문이 났었는데, 나는 표지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난다는 건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동화 칼럼을 쓰는 나명희 씨가 '사람들이 쳐다보는 곳과 지하철이 들어오는 방향이 다르다'라고 말한 데서 깜짝 놀랐다. 나로선 아주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런 소소한 점도 역시 감수성 많고 눈초리가 예리한 사람만 볼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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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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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가 다른 일로 잠시 술에 취하기를 잊었다. 혹은 다른 것에 취해 세월 가는 줄을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몇 달인가 몇 년 뒤엔가 문득 그는 첫사랑처럼 그 술집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연히 취하기 전에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성석제 작가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영문학 교과서의 서지에 속하는 시의 예술성에 관한 대목을 찢으라 명한다. 성석제 또한 시와 소설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글을 썼고 그런 속성은 아마 여기에서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선생님' 같은 면모도 잘 드러나 있다. 노벨상을 통 받지 못하거나 받지 않는,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들을 묶어서 '비밀결사'로 표현해내는 자신감.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권선징악의 코드. 꼭 악인을 응징하는 건 아니지만 과장과 익살로 그들을 풍자하는 데 그는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파리를 들 수 있겠다.

 

 

처음 소설엔 뱀이 등장한다. 

 

뱀 세 마리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는 장면이 나왔다가 나중에는 그 세 마리가 각각 분리된다는데, 이건 세 가지 다른 색깔로 교통을 통제하는 신호등을 나타낸 게 아닐까 싶다. 자주 섞이기 쉬운 색깔을 명확하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가 자신의 몸통을 먹기 시작했다는 게 신호등에 불이 켜진 상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입이 입에 먹히는 순간이란 신호등이 고장나서 영원히 켜지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게 아닐까? 그저 내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음 신호등에 대해 갑자기 숫자까지 보여가며 저렇게 상세히 설명할 의미가 있는가 싶고.

후반 소설에 또 뱀이 나온다.섬에서 모아놓은 뱀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어쩐다는 이야기인데 일본설화에서 등장한 거 같기는 하다. 작가는 그 이야기에 살을 붙인 듯하다. 그 강한 뱀을 돼지를 이용해서 죽여 거기서 나오는 구더기를 닭에게 먹인 다음, 그로 인해 털이 뽑혀 죽은 닭을 아무에게나 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섬에 토끼를 풀어놓아 번식하면 팔라나. 굉장히 장황한 이야기인데 일단 귀차니즘으로 인해 부자가 되기 싫은 독자(나)에게 이런 걸 말해봤자 결국 헛일이다. 작가에게도 헛일이었던 듯하다.

 

 

비행접시에 탄 휴머노이드를 만난 스님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게 좀 미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꿈에서 읽은 듯한 줄거리가 어떤 책에서 구문도 안 틀린 채 통째로 나와 상당히 당황한 적이 있다. 

 

(사실 만취해서 어디 서점에 들러 그 구절을 읽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근데 여기선 꿈에서 읽은 듯한 구절이 나온다. 이런 때는 대체 무슨 상황일까. 만취해서 아무 책(이 책)이나 집고 아무 데나 펼쳐서 구절을 읽은 적이 있나??

 

고녜이가 자꾸 냐옹냐옹 울고 가는 기 기분이 안 좋아서, 우물 가서 치성을 드릴라 카는데, 앵두가 우째 그리 빨갠 기 조랑조랑.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녀는 화자에게 벌어진 앞니를 고치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뜬금없고 내용은 상당히 잔혹하다. 그런데 그 말투가 어딘가 이북 사투리 같아서 인상깊은 구절로서 한 번 더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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