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의 아폴론 1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도 시간도 필요없다.

 

 이 애니를 보면서 굉장히 감동을 받은 점은, 이렇게 레코드 가게에 꽃혀있는 앨범 표지들까지 하나하나를 섬세히 그려놨다는 점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같은 사람은 저기 멀리 꽃혀있는 마일즈 데비스 앨범이라거나 기타 여러가지 앨범들을 보면서 감회가 깊었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번 말하듯이 나는 나친적인데(...) 이상하게 연로하신 분들과는 굉장히 친분이 깊다.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일종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게 가장 좋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치 쪽에 관한 관심이 이상하리만큼 높아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그 중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있었는데, 주로 텃밭을 가꾸기 위해 모였지만 가끔 최고연장자인 어느 선생님 집에 불려가서 앱솔루트 마시면서 책 이야기 겸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다. 주택 옥상에 옥탑방을 만드신 그 선생님이 어느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LP 레코드 몇 장과 LP 플레이어를 꺼내셨더랬다. 그렇게 LP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감명이 깊었다고 할까. 지금도 그 분에게 조르고 또 졸라서 들은 도어즈 LP버전 노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락이지만.) 비록 선생님이 시끄럽다고 하시길래 한 곡밖에 못 듣고 다시 재즈삼매경으로 들어갔지만 ㅠㅠ

 

 어쨌던 좀 연령이 있으시거나 나처럼 음악 취향이 굉장히 올드한 사람이 이 애니를 본다면 꽤 감회가 깊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 인생철학도 사실 '뭐든지 저지르고 봐야 한다'는 식이라서 저 시절 봉처럼 얼굴 못 들고 다닐 일을 많이 저지르고 다닌다. 

 

 주인공 센으로 대변되는 아폴론은 따로 있지만 일단 이야기는 이 둘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편이다. 개인적으론 굉장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흘러서 둘이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진부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했다. 특히 이 봉이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좋아하는 여자에게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고민해본 다음 그 여자아이가 같이 있는 밴드 모임에 여전히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 특히 존경스러웠다. 대단한 인내력이라고 할까? 솔직히 사귀고 나서도 계속 센과 여자친구 사이를 질투하고 츳코미하는 점이 조금 짜증나긴 했지만, 사람이 착한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닌가. 이런저런 점에서 상당한 노력파라고 생각되고 솔직히 좀 본받고 싶기도 하다. (난 여자애랑 남자애가 일대일로 순수한 친구관계를 맺는 법이 절대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런 상황이 애초에 오지 않길 바라지만.) 솔직히 이 녀석이 계속 재즈밴드를 한다고 해서 '계속 붙어다니면 잘되겠지' 그런 희망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마음이 예뻤다고 할까. 말 그대로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랄까.

 

 

 

이 애니는 일본의 어느 특정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기도 했다.

여기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책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좌파운동이 한창 뜨겁고, 미군과 일본여성간의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래서 혼혈 아동들을 학대하고 차별했던 시대. 상당히 불안스럽고 가난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과하지 않게 스토리와 적당히 어우러지게 표현하려 노력한 티가 보인다. 어쩌면 이 감독도 이 애니에 나오는 봉처럼 상당한 노력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의 서사 너머에 있는, 이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원작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 꽃피기 시작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여담으로 '언젠가 왕자님이'는 내가 디즈니에서 나온 역대 OST 중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백설공주에서 나오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일곱 난쟁이들에게 먹일 파이를 만드는 장면이 선명하게 컬러로 떠오른다. 그 때 보라는 백설공주는 안 보고 저 장면만 몇번이고 돌려보며 '아 저 파이 정말 맛있겠다'라고 생각했었더랬다. 이에 관련된 음악은 나중에 다른 음악과 한꺼번에 뭉쳐서 블로그나 자유게시판에 정리해서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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