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7 : 원하다 나는 오늘도 7
미쉘 퓌에슈 지음, 틸 샤를리에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운 것은 바로 이렇게 부정적인 것까지 원할 수 있는 가능성,

모든 것을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초연함의 자유'라고 부른다.
중립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인위적으로 '초연'하게, 그러니까 중립적으로 대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진짜 원하는 걸 찾기 이전에 원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라고 본다. 

 

 물론, 책을 쓸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안 쓰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그 와중엔 책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옆에서 책을 쓰라고 쓸데없이 강요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던가,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시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책을 잡은 뒤 느낀 점을 글로 옮기기 시작하는 게 제일이다. 너무 부담간다면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상부터 조금씩 일기처럼 써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받고 있다면, 게다가 그 타인의 사랑에 굶주려 중독된 듯 글을 쓰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정말 최악이다. 아무리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좋아도 그렇지, 아주 심각한 경우 당장 글쓰기를 그만 두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게 훨씬 낫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원하라고 강요하는 건 대부분 이유 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심한 경우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자식에게 글을 쓰길 강요하는 부모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꽤 옛날 얘기다. 60대에 헬스장을 다니며 근육을 단련하고 모델로 나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꼭 우리는 원하는 걸 늦은 나이에 새로 발견해야 하는가? 그렇진 않다. 어떤 나이라도 원하는 걸 발견하고 원하는 걸 다 성취할 때까지 꾸준히 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원하는 걸 대를 이어 물려받을 때다. 개인적으로 난 부모의 직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케이스가 많은 나라는 이미 글러먹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의 직업이 자식에게 훌륭해보이고 그게 일종의 동경과 사명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이룬 성취와 돈만 보고 그 직업을 평가했을 땐 이미 정말 원하는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잃는 셈이다. 이는 공무원도 마찬가지인데, 철밥통이 좋은 건지 아님 그 직업 자체가 좋은지를 확실히 해야 결과를 보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시험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진심으로 원해도 세상엔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원했고 그것에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그 후에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거절 못하는 사람이나 선택장애도 결국 원하는 것을 단호하게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보통 사람들은 '눈이 나빠서 어차피 너 하나밖에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려서 어차피 네 목소리밖에 안 들려'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만일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기적적으로 눈이 잘 보이고 목소리가 잘 들린다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너'의 옆에 있기를 바랄까? 애초부터 그 귀나 눈은 어떤 것도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렸던 게 아닐까? 그 귀나 눈이 듣고 보았던 게 다 그 자신의 환상일 뿐이라면? 무언가를 결심했음 결심했지 의지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단어와 마찬가지인 듯하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원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원함은 행동이다.

 

 P. S 만약에 공무원(ex.서울시 공무원)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발령이 안 나고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과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그 사람 행복의 요체고 직업은 그냥 수단에 불과하다면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뭐 직업을 돈 때문에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상관없지만 결국 훗날에 박차고 나가는 걸 난 너무 많이 봐서... 그리고 공무원도 열성없음 짤린다(...) 결국 짬밥을 오래 먹는다는 건 어떻게든 직업에 재미를 붙여서 잘 지낸다는 뜻일 수 있다. 즉,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리 철밥통이라도 죽도밥도 안 된다는 것. 내가 훗날 행복을 느낀다면 잘 된 일이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굳이 도박을 하기 싫다면 원해야만 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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