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6 : 말하다 나는 오늘도 6
미쉘 퓌에슈 지음, 브루노 샤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모두들 풀은
'초록'색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소방차는 빨간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똑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것들을 지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용적인 의사소통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빨강'과 '초록'이라는 단어의 심오한 의미는 나와 상대에게 전혀 다를 수도 있다.
(...)
의사소통의 부족한 점들은
더 많은 소통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내가 그 인간이 간헐적인 색약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안 건 젠가를 할 때였다.

 

 특정 색의 젠가를 빼야 하는데 계속 반대되는 색의 젠가를 빼는 것이었다. 어떨 땐 정상일 때도 있는데 다른 때는 보색이 대비되서 보인다나. 그래서 그 녀석은 나의 도움으로 인해 젠가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나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이 뻘쭘해하니 안 돼 보이기도 했다. 보색으로도 모든 게 잘 보인다고 변명처럼 말할 때 '그래도 그 녀석이 좋아하는 석양은 잘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내가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해주려 했는데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좀 더 곁에 있었으면 말해줄 수 있었을까? 더욱더 나 자신이 한심했던 건, 그 녀석이 본 석양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고 설명은 들었어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생계에 관련된 일도 아니고 단지 서로 보는 색깔이 달랐을 뿐인데도 이렇게 대화하기가 어렵다니. 같이 살면서 선입견이 덮이기 쉬운 이슈에 대한 대화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러고보면 우리 가정에서는 대화하기 힘든 이야기는 일단 피하려 노력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나하나 꺼내는 편인 듯했다. 그것조차도 무척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새삼 커뮤니케이션의 힘듦을 느꼈다.

 

  

갑자기 영화 홍보가 뜬금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옥자는 여러가지로 이 책의 주제를 아주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미자는 돼지 즉 옥자와 교감을 나누었지만, 삼계탕은 맛있게 먹었다. 옥자와는 대화하지만 닭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 이 장면에서 옥자가 말을 할 줄 안다면 단번에 장르는 괴수 영화로 다시 바뀌어버릴 게 뻔하다. 영화는 옥자의 침묵 덕분에 옥자에게 동정심을 표하며 온화하게 흘러간다. 옥자를 좋아하는 미자에게 삼겹살을 먹는 건 금기이다. 이는 옥자가 싫어할 것이란 미자의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에 호기심이 왕성해지기 시작한 우리 집 강아지도 보신탕 앞에선 주춤거린 듯하다. 그러나 옥자가 말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졌다면 어땠을까. 그도 미자가 인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을까? 아님 메트로폴리스의 주인공 로봇처럼 '친구'를 죽인 세상이 미워서 닥치는대로 세상을 파괴했을까? 어쩌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 '종'차를 근거로 한 폭력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타자화의 절정이 동물착취 아닌가.

 고의로 잘못된 통역도 그렇다. 난 봉준호가 소통을 못하는 여러 상황을 주제로 잡은 거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채식주의, 인간의 이기심 정도로 영화를 본다.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하길 권한다. 배고프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거나, 혹은 미자가 나쁘다는 게 영화의 핵심이 아닌데 말이다. 저 영화는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문제이다. 배고프면 그 어떤 대화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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