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5 : 먹다 나는 오늘도 5
미쉘 퓌에슈 지음, 안느 주르드랑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통통한 여성들을 미인의 기준으로 삼았던 19세기에도 이미 거식증 환자들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젊은 여성들은 원래 패션모델처럼 마르고 싶어한다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어떤 젊은 여성이 음식을 놓고 벌이는 게임에서 권력과 지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빠져드는 악순환의 늪이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은, 점점 더 날씬해지면서, 동시에 의사를 이기고 모든 사람의 뜻을 꺾으면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점점 더 커진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신기한 점 중 하나는 세계에서 이렇게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섭식 장애를 강요하는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작품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나라 일본은 어마어마하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주인공이 특정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집만 찾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밴드나 아이돌을 한다면서 왠지 케이크만 어마어마하게 먹어대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더군다나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하는 풍경, 혼자서 음식을 만끽하는 풍경, 도저히 한 사람으로서 불가능할 듯한 대량의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풍경,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는 풍경 등 먹는 장면도 굉장히 다양하게 등장한다. 또한, 미국 드라마같은 데서는 친구들과 만찬을 즐길 때 내내 라자냐가 등장한다. 영국 드라마에서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옷 다음으로 음식이 그 작품의 준비성과 품격을 증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 기억으로는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와 아름답다라는 영화, 혀라는 소설 외에 먹을 것을 심도있게 다룬 매체가 그닥 없다. 우리나라의 한 소설가가 계속 먹는 장면을 심오하게 다루긴 하지만,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다룰 뿐 독창성이 없다. 토를 맛깔나게 하는 배명훈의 단편이 최근 나왔지만 그것도 그저 단편일 뿐이다. 이로 볼 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굉장히 예외적인 작품이고, 장르도 글로벌하다. 서양 언어에는 맛을 표현하는 어휘가 우리말에 비해서 엄청 풍부하다 하는데, 나는 그것을 교육의 힘이라 봅니다. 콘코디아 언어마을이란 데서는 맛에 대한 토론으로 언어를 배운다고 하더라.

 

  

또한 햄버거병에 대해서 따져보자.

 물론 아기에게 햄버거를 먹인 어머니에게도 잘못이 있고 클 것이다. 그러나 아기에게 햄버거를 먹이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없고, 왜 그 때 아이에게 햄버거를 먹였는가 하는 사전 과정은 모두들 알고 싶지 않은가보다. 사실 그들도 하나같이 섭식 장애로 일컬여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음식들을 먹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형적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맘충이 무식하니까, 라는 이유 외엔 알고 싶지 않겠다. 또한 전형적 여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들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인 적이 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겠다.

 

  

김훈이 라면을 굉장히 그리워하는 산문을 썼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60년 동안 맛이 강렬한 분식에 의해 지배되었었다는 소리도 된다.

 그런 화학 식품을 그리워하는 자가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을 한 것도 또한 있을 법하다. 여성은 먹고 싶은 걸 먹을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특이한 인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결국 OECD에 뭔가로 승부를 걸고 싶다면 음식문화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권력을 상실해가고 있고, 괜히 무안해지니 맛에 대해 공부할 시간에 수학 문제집이나 풀라고 잔소리하고 있다.

 

  

먹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한 권으로 간추린 빵의 역사라는 책이 목침과 맞먹는 두께로 되어 있듯이 먹는 걸 사랑하는 건 어렵다.

 사회, 정치, 환경, 심지어 초자아에 대한 극복까지 통달해야 우리는 야밤에 치맥을 먹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건강에는 해로우니 가끔 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침 치맥도 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걸 귀찮아한다면 이미 당신은 반은 죽어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장담한다. 일단 흥미있어하는 음료나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부터 찾아 읽어보라. 상당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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