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 당선시집
김민철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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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

장맛비 간간히 내리는 밤
전동차 안은 졸음이 가득하다
책 읽는 아가씨 옆자리에 앉아
가방에 우산을 넣으려는 순간
탁!
자동 발사
턱이 날아갔다
사람들의 놀란 눈빛에 얼얼한 턱을 만져본다
피가 손끝에 미끈거린다
흉기로 변한 이 우산
내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 총구를 겨누고
어쩌자고 내 턱에다 방아쇠를 당겼을까
창 밖엔 다시 비가 내린다
손잡이를 철컥 다시 장전한 뒤
불법 무기를 살살 달래 가방에 넣고
눈을 감는다

이번 역은 총신대 총신대역입니다 내리실 비상구는 왼쪽입니다
번쩍 눈을 뜬다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있는 장총
총구가 나를 겨누고 있다

 

 

 

 이 시를 파악하려면 개방형이사제와 황규철 이야기에 대한 지식이 빠질 수 없다.

 

 2012년엔 이명박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이다. 교육부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인해서 개방형이사를 파견하라고 학교법인에 통보를 했다. 총신대 같은 총회 직영신학교의 경우에는 교단 총회에서 이사장 등등을 선출하기 때문에 개방형이사도 총회에서 선출을 해서 보내야 하는데, 사립학교법에는 이에 대한 근거규정이 없다 보니 학교법인 쪽에서 자기네들 사람 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교육부와 교회 사이의 충돌이 심했고, 얼마나 심했느냐면 어떤 학교는 아예 교육부에서 열받아서 이사 전원을 개방형이사로 채운 경우도 있었다.

 황규철이 총을 교회에 가져온 사건의 발단은 노래방을 가서 도우미를 불렀다는 의혹이 있어서 목사들이 사퇴하라고 주장해서였다. 지금은 살인미수로 빵에 있는데, 이 사건이 또 한 웃김 한다. 비리 사건에 연루되서 후배 목사가 고소하니까 고소 취하 해달라고 찾아가서는 후배 목사를 찌르고 자신은 할복을 했다. 그래서 1심에서 살인미수 건으로 징역 7년이 나온 것. 왜 교회에서도 쉽게 뒤집지 못했냐면 평소 이 목사가 존속살해 의혹도 받아서이다. 총신은 학연 가지고 족보 따지는 곳이라 불의에 침묵하는 정도도 심한 곳이다. 따라서 황규철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짓거리를 해도 사람들이 따지고 들지 않는다. 신춘문예 당선시집들을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라. 2012년판이 있는 데가 드물 것이다. 나도 인터넷 서점 가서 일부러 샀다.

 웃긴 건 이 사태에 대해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젊은 여성민 시인은 단 한마디도 없고 이해원이라는 연세 좀 있으신 시인이 장총이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의 시를 썼으며 시인 자신은 물론이고 심사위원들 모두 이 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볼 때 이 분 당선시가 그렇게 뛰어난 게 아닌 점을 볼 때, 사실 심사위원들은 장총을 당선작으로 뽑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전체적으로는 이단적인 시가 굉장히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안미옥 시인이 이 때 당선되었다길래 그 시를 보고 싶어서 질렀는데 서정시부터 FTA 비판부터 역사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의 시들이 있어서 좋았다. 목표치의 시집들을 다 읽어서 여유로워진다면 그 해의 당선작들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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