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섬
세이머스 히니 지음 / 한겨레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스테이션 아일랜드 중에서

9
'내가 빨리 내 주제를 알았던게 증오스러워.
난 증오한다 내가 태어난 곳을, 증오한다 모든 것
나를 유순하게 또 기어들어가게 만든 모든 것을,'
나는 면도 거울 속 반쯤 침착한 내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 잔치 중에
목욕탕에서 취한 사람처럼,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누그러져 또 혐오감을 느끼며.
마치 돌무덤 돌이 돌무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처럼.
마치 소용돌이가 연못을 개혁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마치 폭포수 아래 소용돌이치는 돌멩이 하나,
그 노반에서 부식되고 부식하는
그 돌멩이 하나가 스스로를 으깨어 내려 다른 핵심으로 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때 나는 생각했다 종족을 그들의 춤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 종족
왜냐면 그들은 사슴을 목도할 때까지 계속 춤을 추므로.

 

 

영문학을 전공할 때 흔히 바이킹들의 문학으로 알려진 베오울프를 번역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셰이머스 히니. 헌책방을 갔다가 그냥 노벨문학상을 땄다는 분이 쓴 책이라고 해서 생각없이 산 낡은 책이 설마 베오울프를 번역한 이 분의 책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이름의 정체가 분명히 떠오르자 "아, 확실히 셰이머스 히니는 시인이라고 했지?"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처음엔 번역에 놀랐다. 원문을 제대로 살리느라고 노력을 했다는 김정환 시인의 인터뷰는 봤지만 단어의 배치 그대로 번역해서 실었을 줄은 몰랐다 ㅋ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불편했겠지만 영문학도들은 이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영단어와 그 배치가 어떻게 되어있을지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그 때 김사인의 시시한 다방에서 출연하신 걸 봤는데 이런 번역 방식으로 셰익스피어 전집까지 도전하시고 계신 듯했다 우왘. 과연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개성적이라면 특정 수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리즈 하나 정도 소장할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시도 꽤나 이단적이다. 이 시가 나오기 전에 가장 맘에 들었던 시는 슬로우 진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유명해진 양주이다. (역시 같이 술 많이 접하시는 시인이 번역을 하셔서 단어와 문장이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게다가 영국 여왕을 암소라고 하는 등, 정치성향도 상당히 들어있다. "뭐야, 왜 계속 나에게 시로 사회참여를 하라고 강요하는 거야? 시팔 그럼 내 생각을 한 번 말해볼까? 너네 다 X같애!"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처음으로 짧은 시보다는 긴 시가 좋았다. 아무래도 이 시인의 특성같다. 그러고보면 긴 시는 힘들어서 짧은 시만 잘 써진다는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과는 반대된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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