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공포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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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하나의 세계이다.
 행복에 속했던 무엇이 성교 중에 사라진다. 가장 완벽한 사랑, 행복 자체에도 갑자기 모든 것을 죽음 속으로 전복시키는 욕망이 들어 있다. 쾌락의 와중에 난폭하게 범람하는 무엇은 심리적이지 않은 슬픔으로, 그리고 두려움을 주는 무기력으로 극복된다. 물기 없는 눈물들이 서로 뒤섞인다. 쾌락은 궤멸하는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슴을 저미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순간에 대한 느낌이다. 과거에 느꼈으나 무엇에 대해서인지 모르며 다시 불러들일 수도 없는 질투이다. 기쁨으로 충만했던 음경의 수축은 갱신 불가능의 느낌과 겹쳐지면서 울고 싶은 욕망과 비슷해진다. 우리는 많은 동물이 산란을 하거나 짝짓기를 하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엇이 끝난 것이다. 가장 강렬하게 사랑할 때 무엇이 끝난다.

 

 

꽤나 오랫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나 보다. '섹스와 공포'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사진을 찍었는데 책을 읽는데는 막상 반년 정도가 걸렸다. 아무래도 제목 때문에 집에서만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해에 이 책이 유행해서 정말 좋았고, 동시에 뭔가 좀 더 당당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악스트라던가 문학 잡지에서 이 책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를 다루지 않았더라면, 직장 동료로부터 "이런 야한 책을 좋아한다니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는 소릴 들었을 때 요즘 이 책이 이슈임을 강조할 수 없었을 테고 반격의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충 파스칼 키냐르와 로마,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맞받아쳤다. 잘난 척을 하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이렇게 무식이 튀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을 교정해주려는 의도에서라도 일부러 내 학과 이야길 꺼낼 때가 있다. 그렇다. 사실 일부러 꺼낸 이야기가 맞다. 사실 섹스와 공포라고 하면 모임과 정치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사회가 아닌게 안타깝다. 나에겐 그들이 보는 드라마의 썸타는 이야기가 더 야하고 추하고 끔찍하다.

 이번에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에이즈 걸릴 확률은 남자가 80퍼센트 이상이라던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누가 물어봤더라. 그래서 난 에이즈 걸린 사람이 치매걸릴 확률이 적다고 이야기하려 했다가 그냥 얼버무렸어."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다시 나오네. 에이즈 때문에 사회에 섹스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교회같은 육체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 증세가 세상에 번져가고 있다 한다. 작가는 그에 맞서기 위해 성의 역사 2부작을 썼고 그 1부작이 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결코 야한 책이 아니다. 나는 결코 책을 욕하거나 손상시키는 인간을 참아내질 못하겠다. 아직도 그 뻔뻔스러움에 치가 떨린다. 강한 사람에게 한없이 약하면서 약한 사람에겐 한없이 강한 척하는 인간이 있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임시방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성을 혐오하고 에로스를 직시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을 정치꾼이라 욕하면서 매번 투표철 되면 근거없이 1번을 찍는 추태와 같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붙이는 정책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고 여성과 남성이 섹스를 해야 세계에서 아이가 나올 수 있다. 물론 동성끼리의 결혼도 보장해야 인간의 자유가 좀 더 완전해질 수 있다. 권태에 지지 말자.

 어제의 개인적인 일은 그렇다치고, 오늘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진이 자기네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한 기이한 문제도 있고 서프러제트 영화 도중 아저씨가 여성을 때린 사건도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썼다. 역시 등산은 생각의 정리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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