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요시 다쓰지 시선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4
미요시 다쓰지 지음, 오석윤 옮김 / 소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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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든 역사는 마음에 두지 않고 잊혀지고, 사람들은 오로지 변함없는 습관에 따라서, 그들의 조상과 같은 형태의 밥그릇으로 같은 노란 음식물을 먹고, 들에 같은 씨를 뿌리고, 몸에 같은 옷을 걸치고, 머리에 상투같은 관을 물려주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법규이기나 한 것처럼, 그들은 늘 나태하고, 아무 때고 수면을 탐하고, 꿈의 틈새에 일어나서는, 두터운 가슴을 펴고, 꿀꺽꿀꺽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며 다량의 물을 다 마셔 버리는 것이다. 기류가 몹시 건조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대인 만큼 요새 우리나라 문화를 바라보고 향유하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을 단순히 한류라고 말하는 걸 나는 거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문화를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다룬 입국이라는 시집에서만 봐도 남북의 분단을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으며 서울의 냉랭한 익명적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미요시 다쓰지는 전반적으로 우리나라가 시를 좋아하는 나라이며 정서적인 데에 높은 평가를 하고 있지만, 위에서처럼 예리한 시선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내년이면 대선인데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흥미로이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를 잊고 독재자 박정희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뽑은 이 치욕스런 나라에서 이제 어떤 변함없는 습관이 어떤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지.

사실 이 시집이 맘에 든 이유는 '이리'라는 시 때문이다. 그는 '모든 남자는 다 늑대다' 따위의 시시껄렁한 일반화를 하지 않는다. '저잣거리에서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있다'라고 꿈에서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말줄임표를 써서 부끄러움의 여운을 남기고 있다.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이 세상에서 전부 없어졌음 좋겠어' 따위의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신중함과 막힘없이 유려한 단어 때문에 나는 그의 시를 선호한다. 물론 경치를 표현한 시들도 굉장히 좋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개미가 죽은 나비를 개미굴까지 들고 가는 게 꼭 요트타는 모습 같다고 표현한다거나, 책이 새처럼 종잇장을 파닥거린다 따위의 묘사을 하는데 이런 비유는 이후 일본 문학계에서 많이 쓰였다. 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소설에 쓰여있어서 친숙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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