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에게 묻노라 겨레고전문학선집 이규보 작품집 6
이규보 지음, 김상훈 외 옮김 / 보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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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도다 자기를 돌아봄이 어렵도다.
성인군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우리.

자기 몸 보기를 남의 몸 보듯
행동거지를 하나하나 살피라.
자기라고 조금도 아끼지 말아야
자기를 돌아본다는 말 참뜻을 알리.

비유하여 내 얼굴이
거울 속에 있을 때는 남의 얼굴 같나니
남의 얼굴을 보고야
밉고 고움 모른다 할 사람 있으랴.

그것마저 알지 못한다면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지.
수많은 선비들 마음속에 새겨 두게
자기를 돌아보는 건 소중한 것 자기를 돌아보게.

 

 

 물론 글쓰는 사람들이 다들 술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과음하다 고막이 터진 시인도 있다고 하는 만큼 그 계열은 예로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문학계의 술타령은 이규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후반대에 나오는 설명과 '누가 더 미쳤는가?'에서 시작하여 '내가 제일 미쳤지'로 끝나는 산문에 의하면 이규보가 칠현을 자청하는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접하고 인생의 다크한 면을 알게 되고 '그들과 술을 접하면서부터' 시의 미학과 중심을 본격적으로 다듬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시로써 진리를 그려내려 했다. 이는 강원도에 부임하는 사람에게 동해의 경치를 시로 써서 전달해달라는 그의 간청이나, 시로 쓰면 초상화보단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람에 대해 알려질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생각에서 표현되었다. 이 책은 이규보 작품집의 두번째에 속하니, 그의 본격적인 작품은 동명왕의 노래를 참조하길 바란다. 조물주에게 묻노라에서는 이규보의 미학과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논하며 아주 방대한 세계관을 피력한다.


 

  

 역시 재밌는 건 술 이야기지만...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방법이 드러나서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구시마문>, 즉 시 귀신을 꾸짓는 글에서는 자신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며 만들어낸 시들이 한도끝도 없이 많다며 뻐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은근히 다른 사람들에게 시 귀신이 씌일 경우와 비교하는데, 내용인즉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 귀신이 씌일 때랑 달라서 출세의 수단이나 자연의 경관을 칭찬할 때만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중국 명시인의 시를 베끼는 것만 전념하지만, 자신은 '쓸데없이 망령되어 고독하게' 시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 또한 생각해보면 '혼자서' 고려 특유의 시를 만들어내는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언뜻 자기비하처럼 보이지만 속에 들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실루엣처럼 드러내어 사람들의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니, 정말 훌륭한 풍자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허영에 찬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던 듯하다. 그가 쓴 서평 중 우리나라 평론가?에 대해서 언급한 게 있다. 평론가는 중국 명시인을 찬송하면서 "어떤 중국 사람이 '나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닌데 왠지 이 중국 명시인만은 좋다'고 말했다 한다."라는 식으로 글을 썼나 보다. 이규보가 그 평론가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3가지 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자신의 말로 그 중국 명시인을 칭찬하지 그러느냐.
2. 이 중국 명시인은 누구나 인정하며 따라서 새삼 칭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뻔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낯뜨거운 칭찬을 해대니 우리나라가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3. 대저 남을 잘 칭찬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을 싫어한다는 혐오의 표시다. 그 어떤 중국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의 말실수를 굳이 거론함으로써 평론가는 남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돈을 많이 들인 애니메이션, 잘 쓰는 작가의 글이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좋고 나쁨'을 '옳고 그름'으로 거론함으로써 자신이 평론가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인물들이 더러 보인다. 이 블로그에서 예전에 법정스님과 법륜스님, 그리고 이병률에 대해서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한 욕을 먹었었다. 그런데 요새 유명한 시인들이나 작가들이 그들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을 한 이후부터는 그들에 대한 '숭배자'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고 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 유명함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인생이 잘 풀리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될 일. 아직도 죄와 벌같은 러시아 소설과 우리나라 소설을 비교하며 '우리나라 소설은 광고효과에 의해 잠깐 빛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강 작가같은 분은 이미 맨부커 상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분이며 시대는 다르지만 이규보 같은 천재시인도 우리나라에 있다. 대체 우리나라는 무엇을 더 바라는가? 노벨문학상도 순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대체 언제 깨달으려 하는가? 이규보는 천대만대가 지나도 우리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줄 글을 썼다. 이 글을 읽으며 이규보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우리 모두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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