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수수께끼 삶창시선 40
이진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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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풍선껌 같은 웃음을 거두려무나

이제 무르익었으므로

너의 발그레한 얼굴에 검뎅을 발라야겠다

거울이란 거울은 모조리 깨뜨려버렸다

 

어깰 움츠려!

봉긋한 가슴을 사내들이 탐내지 않도록 

 

꿈결 같은 저잣거리, 너도 나처럼

무명 손수건에 고이 싼

붉은 열매

아무 사내에게 함부로 내민다면

안 되지

 

설마 했는데

계집애 다섯을 낳아야만 반드시

사내아일 얻는다는 관상쟁이의 틀림없는 말

뱀 새끼 같고 승냥이 같은 너희 중

가장 아리따운 것아

너는 

 

애인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점괘를 얻었구나

그러므로 

 

뭣 하니, 울음 그치고 어서

사다리 없는 탑 꼭대기에 스스로 유폐되지 않고 

 

쓸모 잃은 베틀에 먼지가 수북한 그곳에서 백골이 된

미래의 언니들을 쓰다듬으렴

 

 

  

실비아는 30살에 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음을 이룸으로서 삶을 완성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실비아가 그 실비아였다니 맙소사. 설명하자면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시를 이진희 시인이 썼다. 실비아이긴 실비아인데 30살이 넘어서도 살아있는, 어딘가 허당같은 실비아라고. 실비아 플라스에 매혹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의 삶도 만만치 않다. 시집만 읽고 추정컨대(혹은 정서만 그런 걸지도?) 어머니는 시인을 포함하여 딸 다섯에 막내아들 한 명을 낳았으며, 아버지는 집을 나와서 계속 겉돌고 있는 듯하다. 어머니는 국수집을 운영하면서 이들을 키웠지만, 역시 아이들의 정서까지 챙기기는 문제였던가. 아무래도 본인처럼 '넌 못생겼으니 웃지 마' 같은 말을 듣고 갖은 폭력을 겪으며 어렵게 자란 듯하다. 애인들과의 관계도 몇 번이나 잘 풀리지 않는 듯.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실비아도 그녀도 휴즈같은 남자를 만나는 게 문제고, 이 시집을 읽는 내내 그걸 지적해주고 싶었다만 내 취향도 만만치 않아서 말이다.

 

 이제 내년이면 나도 29살이다. 그래도 시인과는 달리 아직 30살이 되기까지는 1년 남았다. 미련이 남고 용기가 나질 않아서 그렇지, 내심으로 나는 정말 죽고 싶다. 그 때까지 자살할 용기가 생기던가, 휴즈같은 전 애인들에게 더 이상 잔혹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일부러' 심하게 굴었고 산산조각으로 깨뜨렸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이 날 죽이러 올 수도 있다. 혹은 이제까지 뻔뻔하게도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을 사랑하고 살았으니 주님이 큰 결심을 하고 우연을 가장하여 자는 사이 내 영혼을 슬쩍 빼갈 수도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시나리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솔로 남성들에게 30살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사부니의 말로는 30살이 되어도 크게 변하는 것 없이 그냥 일하게 되지만, 그 전과는 달리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언가 큰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대부분의 솔로 여성들에게 30살이란, 페미니즘이 등장한 아직까지도 '노처녀 히스테리'와 '아직 팔리지 않은 크리스마스 케익'이란 단어를 인식하게 되는 나이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진희 시인을 포함하여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와 시집을 읽어본 일부 여성들에게 30살이란 마음 속 괴물이 날뛰는 시기다. 30살이 지나고 시인은 그 괴물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할 것인가 함께 죽을 것인가.

 

 

실비아 수수께끼 

 

실비아

실비아이기도 하고 실비아가 아니기도 한

모든 실비아

혹은 특별한 어떤 실비아 

 

처절하게 이기적이고 싶은 실비아

착하구나 장하다 칭찬받고 싶은 실비아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는 실비아 그래서 자신을

어느 날은 소녀라고 어느 날은 소년이라고

틀림없이 믿는 실비아

아무것도 아닌 먼지거나 쓰레기였다가

전능하기 짝이 없는 실비아가 되고 싶은 실비아

죽도록 살고 싶은 실비아 그래서

사는 게 헌신짝 같은 실비아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은 아름다운 실비아

새카맣게 응혈진 피의 매듭을 끊어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고민을 진한 커피처럼 즐기는 실비아

시를 쓰고 싶지만

훌륭한 시를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시를 쓰지 못하는 실비아

쓰고 싶은 시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 실비아

다만 쪼글쪼글 늙어가는 실비아

쿠키를 굽지 않는

구운 쿠키를 먹일 아이를 낳지 않는 실비아 

 

무엇이 실비아를

머뭇거리는 실비아로 살게 망쳤을까 

 

실비아가 망치는 실비아

망가진 실비아가 복원하려고 애쓰는 실비아

망가진 실비아를 복원하려고 애쓰는 실비아

 

모두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실비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실비아

한참 어리고 한참 늙은 실비아

한참 착하고 한참 나쁜 실비아

가스오븐을 분실한 실비아

일부러 분실하고 일부러 살아가는 실비아

혼자 처박혀 있을 때 세상과 함께하는 실비아

 

끝나지 않을

실비아 수수께끼

언젠가는 끝내야만 할, 끝내고 싶은

실비아 수수께끼 

 

 

* 올릴까 말까 고민했다. 난 사춘기라는 시가 더 좋다. 하지만 실비아 수수께끼를 올리지 않으면 어쩐지 시집에 대한 소개가 굉장히 허전해질 것 같아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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