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난다詩방 1
최승호 지음 / 난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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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모텔

 

교성으로 지은 모텔이

사라진 자리

고구마밭

꼬부랑 할머니가 고구마를 캐고 있다 

 

 

태양의 황금 손가락들이 옥수수 붉은 수염들을 어루만지는 가을날, 잘 익은 옥수수 통째로 찐 옥수수를 들고 고갯마루에 불쑥 나타나는 시골 할머니. 강원도 산길은 구불구불하고 뿌리가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아닌 도민들은 메밀이나 감자나 옥수수를 먹기도 하지만 묵사발이나 막국수나 토종닭을 팔기도 하고 골프장에 가서 풀을 뽑거나 모텔에서 청소나 빨래를 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송전탑 너머로 개밥바라기 별 뜨면

큰 엉덩이에 부엉이문신을 한 여자가 부엉 부엉 울면서

밤의 두더지들을 잡아먹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할거면 호텔이라도 좀 가던가 이것들아...

사진은 크로스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중 아침 교미 장면()

시에서 모텔이 나오길래 갑자기 이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솔직히 저 올빼미와 밤의 두더지에 관련된 시 구절이 어디에 실려있는지 몰라 계속 찾고 있었는데 이 시집에서 우연히 찾게 되어 상당히 반가웠다. 동시를 지은 사람이라고도 들었는데 의외로 이 시집은 18금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쌍봉낙타가 종종 여자의 가슴에 비유되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시에 실려있는 건 처음 보았다. 색신(녀)를 데려다가 '막걸리'를 마시게 하지만 밑 빠진 술자루에 술을 붓는 것 같고 술주전자도 밑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야했다. (그러니까 코뿔소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책인 줄 알고 자녀를 옆에 앉히고 읽으면 절대 안 되는 시라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코뿔소조차 야하다;;;)  

 이 책이 성인 시집에 속하는 이유 두번째는 철저히 종교를 조롱한다는 데에 있다. 불교에 염증이 생기신 건지 특히 그쪽에 대한 욕이 상당히 많다. 물론 신을 욕한다기보다는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음에도 자신들이 신인 줄도 모르는 바위 불상들을 불쌍히 여기는 식이지만... 홀로그램 반딧불을 보며 반디'불'이라고 좋아하는 스님들과 개똥벌레 부활하셨네 할렐루야 찬양하는 수녀들의 모습을 보면 그가 날카로운 펜으로 겨냥하는 목표는 언제나 종교이다. 종교인들이 세상을 자기들 식으로밖에 세상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는 대예언은 2차 총궐기의 '평화 시위'에서 증명되었다. 신자들이 받들어 모시면서 당장 죽게 생긴 가난하고 다급한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다 쳐내니 아주 그냥 배가 불러서는 신이 났더라.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승호 시인은 일찍부터 이 시를 지음으로서 그 분노를 밖으로 표출해내었다.

 세번째로 자연에 대한 숭앙. 멸종한 동물들과 상품으로 가공되어 포장되고 있는 곡물들을 열거함으로서 이기적으로 메말라가는 되우리나라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런 시도 나름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는 그의 투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마음 속에 새김으로서 잊지 말아야겠다. 살려면 몸이라도 팔아야 한다는 대도시라는 시를 읊어도 충분히 여가부에게 뺨맞을 일이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고 그런 시를 짓는 시인이라도 한 가지는 올바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는 메시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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