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 문학과지성 시인선 193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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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맑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겨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유성이 뿌리는 가루의 영향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는 스토리 설정 때문에

밤하늘을 잘 그릴 수밖에 없었던 (...) 샤를로트라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

 

 이 시집에 수록된 '섬'이라는 시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감옥에 갖혀서 볼 수난 못 볼 수난 다 보고 미국에 온 시인의 자괴감이 생생히 느껴져 온다. 매스컴의 범람으로 인해 닥쳐오는 일반인의 가벼운 상대적 박탈감과는 질이 다르다. 그를 따르다가 미국에서 죽은 동생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 고국의 광고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기시감, 아무래도 고향으로 느껴지지 않는 미국과 점점 변모해가는 한국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던 그는 이 시집의 끝부분에 가서야 무언가 교훈을 깨친 듯 이 시를 썼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시집은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지닌다.

 

 가수 루시드폴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해서 한달음에 서점에 달려가서 구입했는데, 결론적으로 내 취향의 시는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그의 성격이 느껴져서 좋았다. '게이의 남편'이란 시에서 그런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아무리 미국에서 살고 자유주의자를 표방하더라도 동성애자는 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그 때만은 다른 시에서와는 달리 확연히 화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문집 쓰면 잘 쓰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시가 워낙에 인기를 끌었었는지 이 시의 제목 그대로 2003년에 산문집이 나왔더랜다. 의사생활 은퇴 후에는 한국을 자주 방문할 뿐더러 비교적 최근인 2013년까지 열심히 책을 펴내고 계신다 한다. 사어, 즉 죽은 말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를 지속하고 계신 듯하고 이 시에서도 한국어를 잘 모르고 살아왔던 걸 후회한다고 하시는데 왠걸. 정말 그렇다면 이런 훌륭한 시를 쓰실 수 있었을까? 겸손이 지나치시네,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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