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명적이다 - 경계를 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들의 예술
제미란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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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 같아 걱정을 금치 못했던 본인, 그러나 종이 표면 '드림'이라는 깜찍한 글씨체의 도장과 아트북스 기획마케팅부의 친절한 책 설명을 보고서 감동했다. 책을 받는 입장인데도 독자와 책을 세심하게 신경써 주시는 마음이 훈훈하고, 뜨겁다고 생각했다. 역시 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고, 그 책을 받은 날 밤 내내 기뻤다. 그리고 그 기쁜 마음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끊기지 않았다. 
 네이버 카페에서 표지그림만 보고 '이 책의 서평을 쓰자' 생각했다. 여인의 뒷모습과 연꽃이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어쩐지 본인은 이 여인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종잇장에 가로막혀 있고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있지만 마음으로 그녀의 물같이 흘러가는 사연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14명의 '그녀들'은 간디가 서 있던 자리만큼 비폭력적인, 그러나 치열한 최전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여자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옥 속 어딘가에서 창작의 물레를 돌리며 직관의 실로 직물을 짜내는 여성예술가들. 그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보기 거북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핑크색 소파에 삐죽 튀어나온 가시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중고 삐에로인형, 날씬한 몸매를 추구하는 한국 남성들에게 탄압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지모신' 조각상 등.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의 작품, 훤칠한 미남 아폴론의 작품, 9명의 아름다운 뮤즈보다 그들은 아라크네 혹은 사포와 닮았다. (공교롭게도 이 여신과 여인은 남자의 멸시를 받은 인물상이다.) 맨 마지막에 쓰여진 함연주 씨의 작품소개에서 나온 제목은 본인의 마음에 가서 닿았다. '거미여인 아라크네.' 그리고 본인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역시 함연주 씨의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만들어 바친다는 그 열정과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집념이 아닌 열정이다. 저렇게 작품을 만들때마다 머리칼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장난어린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사진에서라도 그녀의 작품을 보면 불현듯 침묵하게 된다. 왜, 일하는 남성에게도 양성성을 지니길 강조하는 시대가 아닌가. 일을 포함하여 모든 창조하는 챙위란 이렇듯 소름끼치도록 섬세한 여성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한 좋은 예시들이 아닐까 싶다. 가장 투박한 느낌이 드는 김은주씨의 작품 '무제'조차도 연필선의 섬세함과 미려함이 느껴졌다. 각자의 삶과 각자의 인생이 있다. 결혼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여자도 있고 10년 동안의 방황에서 이제 막 벗어나 다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는 여자도 있다. 그러나 무언가에 미치도록 빠져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닮았다. 그래서 사랑이던 종교던 무언가에 열중하고 헌신하는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본인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이상형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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