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행복해 - 여성장애인 여덟 명이 전하는 행복한 삶의 이야기
신희지.이강조 지음 / 연인(연인M&B)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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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 기대만큼 잘하지도 못했어요. 그럼에도 부모님은 내 몸이 불편하니 의대를 가야 한다고 강요를 하셨지요.

'왜? 나에게 장애가 있으니 의대를 가야 하지?'

(...) "하면 된다."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나를 위로했어요. 재수에서 삼수, 삼수에서 사수, 대학의 문턱은 점점 멀어졌어요. 결국 사수만에 의대는 아니지만 비슷한 보건학과에 입학을 했지요.



 


 

;;; 옛날 일이지만 인턴들 잠도 안 재우고 얼마나 빡세게 굴리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의사되라는 게 참. 그리고 핑계로 댄 것인지도 모르지만, '넌 장애인이니까 ~를 해라'라고 굳이 지정하는 건 차별하는 발언 아닌가?


지리산행복학교 등 다양한 출신의 필자들이 여성장애인 분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직접 인터뷰해서 그런지 의외로 신파조는 아니었다. 문법에 맞지 않는 글들이 자주 보이고 오타가 많은 게 흠이지만, 오히려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투박한 느낌이 난다. 다른 독자분들도 신경쓰지 말고 재밌게 읽으셨음 좋겠다.

 

그러나 다들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시대에 맞지 않는 회상장면들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특히 병원에서 몇 번이나 척추 수술을 권했는데,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본인이 거부하셔서 결국 장애인이 되신 분 사례가 그렇다. 한 번 유산을 하셔서 그게 계속 맘에 걸리셨던 것 같은데, 사실 임신 상태에서 척추 수술을 해도 지장이 없다. 물론 마취약 기운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척추수술을 임신중에 하는 케이스는 외국에서는 흔한 편이다. 그 정도는 감수할만한 위험지수라는 뜻이다.

물론 애를 낙태시킬 거냐 아님 척추수술을 할 것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만 하라 강요한 병원도 문제다. 유독 우리나라만 임부의 수술을 거부하는데, 병원 돌아다녀보고 돈이 있으면 아예 외국에서 수술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경우는 요새의 경우 매우 특별한 케이스인데, 아무 부분 설명도 없이 이 사례만 떡 나와서 사람들이 이 분을 따를까봐 걱정이 된다.

 

체조를 시작하고 5학년 말쯤 아시안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소녀, 김소영에게는 목표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 옛날 TV에서 보던 것처럼 자신도 훨훨 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이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설레어 왔습니다.

(...) "8월 28일이었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죠. 태풍이 왔던 것 같아요. 비가 많이 왔어요. 그래선지 컨디션도 안 좋고 몸도 많이 피곤했지요. (...) 평행봉에 올라서는데 몸을 날리는 순간부터 기억이 없어요."



 


온몸의 뼈가 부서지셔서 척수장애인이 되셨다고 ㅠ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 일 쉬엄쉬엄 하셔요 ㅠㅜ

 

나에게 장애라는 그 낯선 녀석이 찾아온 그때가 여섯 살 무렵이었어요. 아버지가 군인으로 강원도에 근무하고 계셨기에 서울을 오고 가셨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를 찾아간 거예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걷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정말 걸을 수가 없었어요. 방금 전까지 정말 멀쩡했는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 요즘은 소아마비 장애가 백신이 있어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소아마비가 유행을 했지요. 1960년에 시작해서 1963년도에 절정이었어요.



 


 

아버지도 고혈압이 있으시고 어머니도 최근 등이 아프다고 하시긴 한데 이런 글 보면 그래도 부모님께 큰 병은 없으셔서 감사하다; 뭐 자위일지도 모르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스쳐 간다. 세상에 그 무엇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 거리에는 인생사라 불리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의 과정도, 치렁치렁 자신의 값어치를 쇼윈도 안에서 뽐내는 물건도 있다.

그럼에도 요즘 텔레비전 뉴스에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온통 소중한 물질에 대한 이야기로 99.9%가 채워져 있다. 하다못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수많은 학생이 목숨을 달리하였음에도 그 목숨보다 보상금이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도 그 어두운 바다 아래에는 소중한 생명을 간직했던 사람들이 남아 있는 데도 말이다.



 


 

사실 이런 말에는 훌륭한 대답이 있는데, 바로 "그럼 당신도 자식을 바다에 수장시키면 보상금 받아서 인생 이렇게 구차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되겠네요."이다.

 

순덕 씨는 이후 전자회사를 다니면서 오후 6시면 퇴근하는 일상을 갖습니다. 남들처럼 친구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도 같이 보면서 기분 좋은 웃음을 마음대로 깔깔거릴 수 있는 오후가 있어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이와 결혼을 합니다. 그가 바로 은서 아빠지요.

"그냥 무던하고 착해 보였어요. 우리가 일하는 곳에 저처럼 장애인들이 있었는데 차별하지 않고 잘 대해 주더라고요. 결혼까지 할 생각은 그때 못했는데 운명인가 봐요. 은서 아빠도 귀가 안 들리는 청각장애인이에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다들 기혼자이시고 자연스레 남편 이야기가 나온다. 남성 쪽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뺨을 맞았는데 그래도 결혼을 했다는 좀 어이없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다행히 다들 이후로 잘 사시는 것 같지만 여러분 폭력은 습관입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인간과 절대 결혼하시면 안 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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