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미래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6
양안다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열 중에서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위로는 각자의 각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우리들이 꾸려 했던 모든 꿈이 위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리가 느낀 건 실망이 아닌 동정에 가까웠다 밤이 지나고 오는 건 새벽인데 사람들은 왜 아침이 온다고 하는 걸까


 


새벽이 만드는 소량의 빛과 소음 속에서


 


어느 취객은 유기견을 걷어차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뱉으며 죽어버리자 그냥 죽이고 죽어버리자, 중얼거렸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취한 채 다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좀 길지만 이 시가 맘에 들었다.


문학계에서 '요즘것들 뭘 쓰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해봤자... 교훈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쓴다고 그랬다가 재미없어서 상업가치가 떨어진 게 현실 아닌가? 요새 시가 스무고개하고 있는 건 사실인데, 난 오히려 그걸 내 머릿속으로 추리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요새 문학가들이 철저히 해석을 독자에게 맡긴 이후부터 나같이 말이 시니컬하게 나오는 사람은 부담감이 확연히 없어져서, 책 자체에 대해 비방만 안 하면 마음껏 난자할 수 있는 게 좋다(...) 솔직히 아포리즘 한 때 반짝 유행했지. 그렇지만 서로 디스전하다가 매장되지 않았나? 아포리즘 시는 괜히 건들었다가 나이주의부터 시작해서 엄청 욕먹고, 처음부터 난 자신들도 인생 잘 사는 거 아니면서 가르치려 드는 그들의 꼰대 의식이 몹시 싫었는데. 자연에 관한 서정시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아직까진 그렇게 창의적인 표현을 못 봐서. 최근에 송연우 시인 시집 보고 좋다 생각했는데 딱 그 정도가 한계다.

 

놀라운 건 60에 접어드시는 우리 어머니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들 과거를 살아봤다 해서 취향이 다 당신과 같은 것도 아닌데 왜 개인 취향을 자꾸 '그때가 좋았다' 식으로 생각하시는지...

 

전주곡 중에서


 


어느 날 교정을 걷다가 이곳이 영화 속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나를 속일 때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누군가가 너의 목소리를 모사한다, 나 역시 그대의 발목이기도 했으니까, 같이 춤을 춰요 그대


 


옅어지는 호흡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음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삶은 마치 스펙타클하지 않은 영화와 같으며 누군가 주인공인 나를 스크린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이야기는 영화의 주요 장면(다른 사람과 키스하기 직전이라던가)에서 고개를 휙 돌려 관객들을 응시하며 '야, 이게 재밌냐?' 하고 쏘아주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혹은 시인의 말대로, 딱히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내 이야기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은, 대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시집 안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게 좀 불쾌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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