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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70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중에서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호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버스들이 잠자러 오겠지 그럼 섹스하러 오겠냐.
개그콘서트 그런거 조또 재미 없다는데 왜 웃음을 강요하냐 니가 웃겨서 웃다 눈물날 듯.
그리고 돈 없고 배고플 때 우리 어머니도 꽃 먹으셨다고 하고 조선시대엔 화전 부쳐먹는 노래도 있는데 그럼 우리 어머니와 조상들 다 미친년들이냐.
누군진 몰라도 남자 새끼 피해의식 쩌네요. 아 성차별 발언 ㅈㅅ. 역시 한국남자가 욕이라 하는 한국남자답습니다요 ㅎㅎ 시인 본인인지 다른 사람 에피소드와 섞은 건지 모르겠지만 헤어지길 백만번 잘한 듯.
스토리텔링 시는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집은 에세이같은 스토리가 아무래도 메인인 듯하다. 오히려 없으면 허전하다고 할까. 여자의 삶 자체가 한국에선 별난 일이라는 게 표본이라는 듯, 시인의 어떻게든 남을 웃겨보려는 듯한(소위 남자들에겐 인기 없는) 익살 속에 기이한 일들과 풍자가 살살 녹아있다.
길이가 좀 있어서 중간중간 잘랐지만 끝까지 보면 더 재밌습니다 ㅎㅎ
나미가 나비를 부를 때 중에서
개그우먼이 되기에는 썰렁함밖에 재주 없는 소녀에게 재주라곤 제 얼굴이나 뜯어 먹는 일, 하여 한 입 두 입 솜사탕처럼 달착지근한 살점이 소녀의 엄지검지손가락에 들러붙었고 그걸 핥기 위해 고양이는 제 키보다 더 긴 기지개로 잠이 깨기 시작했어요 나비야, 나비야...... (...) 허나 우는 고양이를 내 젖으로 달랠 수는 없는 일, 우는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괜찮지만 너무 우는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혼이 날밖에요 지금 집집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튀김 솥이 끓고 있을 거예요 펄펄 끓는 식용유에다 슛! 이렇게 집어던져질 때 고양이에게 죽음이라 하면 그 잔뼈가 오독오독 씹힐 때야 비로소 제 뼈가 관절염에 좋다는 걸 아는 일일 터
사실 노래가 주제라서 맨 끝에 이 시를 올리지만, 가장 인상적인 주제요 시 구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면을 굉장히 잘 묘사해서 상상을 자극했다고 할까. 여성은 고양이에 많이 비유되는데, 그들의 삶은 길거리에 있을 땐 상당히 비참해진다는 데선 공통점이 있을 듯하다. 요새 그런 해석도 많고 말이다.
예상 밖의 효과
한겨울에 강원도의 아이들이
북어를 가지고 칼싸움을 한다
소리가 제법 칼이다
그렇게 믿고 또 휘두른다
칼에게 칼날이 전부이듯
북어에게 최선은 몸통이다
국으로 끓여 아침 식탁에 올리면
몸 푼 동생이 가장도 아니면서
가장처럼 먼저 한술 뜨는 이유,
젖 도니까
어디선가 덜 두드리면 18K이고 더 두드리면 24K가 된다는 이과문과 상관없이 심각하게 싫어할 만한 짤을 본 적이 있다. 이 시가 그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싫지 않은 이유는 뭘까. 시인의 묘사일까, 아님 비유의 적절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