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환대라는 세계시민적 규범에 부응하는 정책이나 법을, 법제도와 담론적인 의지 및 여론 형성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각 나라 국민들 자신이다. 민주주의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입헌적 자기창조의 진행형적 과정이다. 비록 우리가, 배제되는 자가 배제와 포함의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결코 없앨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속적이며 다중적인 민주적 반추 과정을 통해 이런 차이를 유연하고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이방인과 외국인, 타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도덕적 양심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반성 역량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이 된다. 주권국가의 정체성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이며 공공적 토론을 통한 논란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와 당신,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경계는, 종종 검증되지 않는 편견의 결과이든지, 고대에 벌어졌던 전쟁, 역사적 부정의, 그리고 단순히 행정 명령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 모든 근대 민족국가의 시작은 어떤 폭력과 부정의의 씨앗을 안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칼 슈미트가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을 주권자로 만듦과 동시에 이런 국민주권의 정당성을 기본적 인권 원칙의 고수에서 찾는 면에서 스스로를 한계 짓는 집합체이다. ‘우리, 국민’이라는 말은 바로 그 말 자체 속에 보편적 인권에 대한 존중과 국가적으로 경계 지어진 주권적 요청이라는 입헌적 모순을 담고 있는 내재적으로 위험한 문구다. 그것이 난민인지 아니면 이주 노동자인지, 망명객인지, 탐험가인지를 불문 / 하고 외국인과 이방인의 권리는, 반대로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타협시키며, 묶고 풀며, 또한 윤곽 짓고 유연하게 하는 바로 그런 문지방과 경계를 규정한다. 우리는 시민권에 대한 단일한 모델 즉, 한 영토에서의 거주와 국민 전체가 다소간 밀착된 하나이기에 단일한 행정이 집행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그런 단일한 시민권 모델이 종언을 고하는 정치적 진화의 순간에 서 있다. 이런 모델이 종언을 고한다는 것이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제도를 이끄는 정치적 생각이나 규범적 힘이 낡아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이제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시민권에 걸맞는 정치적 행위와 주체의 형식을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 나는 이런 새로운 정치적 추세를 ‘민주적 반추’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민주적 반추(democratic iteration) 개념을 통해 나는 보편주의적 권리 요구와 원칙들이 법적, 정치적 제도에서 뿐 아니라 시민사회적 친교에서 경합되고, 맥락화되며, 행사되거나 취소되고, 가정되거나 정립되는 그런 공공적인 복합적 토론 과정, 숙고, 의견 교환 과정을 총칭한다. 이런 민주적 반추는 공공적인 법제기구나 사법기구, 집행기구 차원에서 ‘강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고, 비형식적으로 시민사회적 친교와 언론 등의 ‘약한’ 공공성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208~209) 

 

"되풀이의 구조는 ...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함축한다. 가장 '순수한' 되풀이 - 하지만 이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 는 그 자체 안에 자신을 되풀이로 구성하는 어떤 차이의 간극을 포함한다. 어떤 요소의 되풀이 (불)가능성은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선험적으로 분할한다. 심지어 이 동일성이 다른 요소들에 대한 차이화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규정하거나 한정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이는 이러한 차이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
Derrida, Limited Inc, Galilee, 1990, 105쪽. <법의 힘>의 용어해설(186~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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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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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상봉 교수의 글 일부를 가져옴. <<철학>> 102집(2010년 2월)에 실렸던 글로  

전반부는 2008년 세계철학대회에서 열렸던 한국철학 세션에 대한 보고로 이루어져있고 

후반부는 함석헌과 유영모 철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담고 있다 

(...)

그런데 20세기 한국의 강단철학이 끊어버리고 이어가지 못했던 한국의 철학적 역사를 보이지 않게 이어간 사람들이 바로 유영모와 함석헌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철학사를 실학과 최한기 그리고 동학을 거쳐 유영모와 함석헌 그리고 우리 세대로 이어지는 연속성 속에서 서술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흥호가 지적했듯이 유영모에게 자기인식의 실마리가 되어 준 것이 한국의 말글이었다면, 함석헌에게 그것은 한국의 역사였다. 그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철학적 자기인식의 기초를 놓았다. 철학이 방법론적으로 다른 무엇보다 자기 언어로 자기의 현실을 반성하는 데 존립하는 것이라면 스승이 한국어 속에서, 제자가 한국사 속에서 참된 자기를 찾으려 한 것은 너무도 고전적인 철학적 자기인식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의 철학적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통시적으로 보자면 동양의 철학적 전통과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서로 매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대현교수가 정확하게 인식했듯이, 유영모와 함석헌은 전통적인 동양학문의 방법론을 계승한 철학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 세대와 달리 그들은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기 전에 조선의 전통적 학문의 기초를 먼저 닦았던 사람들이다. 다석은 노자의 도덕경을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함석헌 역시 󰡔노자󰡕와 󰡔장자󰡕 그리고 󰡔맹자󰡕 등, 동양고전에 대한 강의를 늙도록 꾸준히 계속했다. 그들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세대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런 동아시아적 교양에 바탕하여 서양학문과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양 철학 및 종교와 동양의 철학 및 종교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대립을 자기 속에서 치열하게 따라체험한 뒤에, 끝내 양자의 대립을 넘어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개방했다. 그 지평은 이전의 범주로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철학인 동시에 종교이며, 종교인 동시에 정치적 실천이다. 그들의 사유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지양될 뿐만 아니라 이성과 믿음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대립이 지양된다. 그들의 정신이 한국의 제도권 철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통 신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면 받았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계에서 보기에 너무도 종교적인 그들의 사상은 신학자들이 보기엔 너무도 철학적이었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진지하게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다른 것이 만나 부딪히는 장소가 바로 오늘날 한국의 정신적 삶의 현장이니, 그들의 철학은 바로 그 타자적 만남에서 비롯된 “정신의 임신”을 통해 태어난 새로운 세계관인 것이다.

씨철학이 만남의 철학이라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첫째가는 세계철학적 의미이다. 오늘날 세계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서양철학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 곧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일이다. 현실의 파탄의 근원에는 철학과 종교의 파탄이 뿌리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 시대에 이르러 서양적 세계관에 기초한 세계가 더 이상 이대로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현실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20세기에 이르러 서양정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타자적 정신은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타자가 있기는 있는가, 오기는 올 것인가? 마치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Godot)처럼 타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인류는 반신반의하며 새로운 정신을 고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20세기에 들어 가장 먼저 철학적 서양중심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의 목소리는 다양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담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학문으로서 철학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서양과 구별되는 타자적 자기인식으로서 제출된 것인 한에서 우리는 탈식민주의 담론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인정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철학이란 다른 무엇보다 자기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가 서양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제3세계 인민의 의식을 성찰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한 것은 커다란 공적이었으나 그것이 서양철학의 자기중심주의를 허무는 데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서구권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적 방법론을 통해 서양사람들을 주된 독자로 삼아 제시된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 이론은 뒤로 오면 올수록 현대 유럽철학의 다양한 변주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서양철학에 포섭되어 버려 더 이상 타자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 새로이 등장한 상호문화철학(Interkulturelle Philosophie) 운동은 탈식민주의의 이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여기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지만, 포르네-베탕쿠르(R. Fornet-Betancourt)가 대표하는 진보적 상호문화철학운동은 탈식민주의처럼 서양철학에 속절없이 포섭되어버리는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편으로는 유럽과 북미지역의 철학을 특수한 맥락(Kontext) 속에서 생성된 철학으로 상대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 지역 이외의 철학적 전통에 대하여 인식론적으로 동등한 가치(Gleichgewicht)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해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얼마나 철학에서의 서양중심주의를 실질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남는 의문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상호문화철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서구의 학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양 철학이 처음부터 상호문화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상호문화철학운동 역시 서양철학의 한 흐름으로 포섭되어버릴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씨철학의 세계철학적 의의는 그것이 탈식민주의담론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상호문화철학이 애써 찾고 있는 바로 그 타자적 목소리를 들려주고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개방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씨철학은 서양철학과는 다른 또 하나의 자기동일적 사유체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타자성의 지평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타자성이란 서로 무관심한 타자성이 아니라 만남 속에 있는 타자성이다. 씨철학이 개방한 이 사유의 지평 속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개방해온 모든 세계들이 서로 만난다. 거기에선 노자와 간디가, 예수와 부처가,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맹자와 마르크스가 이웃이다. 이 지평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편협한 당파성을 버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 정신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아집을 버리고 타자와 만나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은 그 철저한 일관성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정신의 만남을 방해해왔다. 대개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정신의 아집은 언제나 체계적인 세계관에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씨철학의 비길 데 없는 공헌은 바로 그런 이론의 아집을 해체한 데 있다. 이것이 세계철학사적 의미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절박하게 요청되는 태도변경이다. 하지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라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서양철학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전통 내에서 자기를 극복하려 할 뿐, 타자적 정신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 가상한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지젝(S. Žižek)이 그다지 전문적이라 할 수 없는 지식에 기대어 “불교와 폭력 사이의 보다 깊은 유사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이해하고 있는 불교의 상이 얼마나 일면적이며 또 초보적인지를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한국의 강단 철학자들이 독일과 프랑스와 영미 철학의 섬세한 차이를 구별하듯이 서양의 철학자들이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와 중국불교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유영모와 함석헌의 정신세계에서 동서양의 정신들이 깊은 상호 이해 속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독보적인 일인지 알 수 있다.

동서양의 정신이 만나는 것은 20세기 한국 정신사의 고유한 성격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온갖 철학과 이념 그리고 세계종교가 공존하면서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그것은 씨철학에 의해 반성되고 발효되기 전에는 한갓 무관심한 공존이거나, 정신의 분열상일 뿐이다. 이 분열상이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현실화된 결과가 바로 6·25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의 적대적 분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상이기도 하다. 씨철학은 그 적대적 분열과 투쟁을 만남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는 자기를 내적 분열에서 구해내어 온전한 주체로서 정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세계인류를 위해서는 만남 속에서 열리는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지평은 자기동일적 사유의 지평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의 지평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평이다. 그런데 씨철학이 이처럼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20세기 한국의 지성사가 그 자체로서 만남 속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즉자적 만남이라면 중국이나 일본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마오쩌뚱(毛澤東)이 있고 일본에는 니시다(西田)가 있지만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에만 있다. 마오와 니시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양을 추종한 결과를 보여주며 동시에 서양을 나름대로 극복하려 한 결과를 보여준다. 니시다의 철학은 일본적 사유에서만 가능할 것이며 마오의 혁명론 역시 중국의 전통으로부터 생성된 철학일 것이다. 하지만 니시다도 마오도 세계철학사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 새로운 보편의 지평을 개방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은 니시다도 마오도 자기를 포기한 철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쩔 수도 없는 역사의 반향으로서, 현대 일본은 물론 중국 역시 현대사 속에서 전면적인 자기상실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모두 지켜야할 자기가 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든 중국혁명을 통해서든 다만 그 자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적으로 쇄신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를 지킨 결과 하나의 자기로 남았을 뿐,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열리는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정립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마오나 니시다가 열지 못했던 새로운 정신의 지평을 유영모나 함석헌은 어떻게 열 수 있었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사상의 새로움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주장의 새로움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고방식인가? 우리가 이런 물음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씨철학의 새로움에 대한 주장은 한갓 허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씨철학의 새로움이 단순히 주의주장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새로움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연 것이라 주장하려면, 우리는 과연 현재 보편적인 사유의 지평으로서 군림하는 서양적 철학 및 학문의 지평에 대해 씨철학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서양적 사유의 보편성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특징지어진다. 한편에서 그것은 대상세계 전체를 동일한 지평으로 불러들인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를 통해 존재라는 이름으로 개방되는 대상의 지평이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존재의 지평에 단절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즉 모든 것이 어떤 의미로든 있는 것이란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일양한 보편자이다. 그리고 존재의 지평 외에 우리가 다른 대상의 지평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제약적 보편이다. 다른 한편 서양철학은 그 존재를 생각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 보편성을 보여준다. 서양철학의 보편성은 그들의 생각이 그 내용에서 모두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표현 방식에서 생각이 보편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전달될 수 있다는 데 존립한다. 생각의 제한 없는 접근가능성과 왜곡 없는 전달가능성이야말로 서양철학이 실질적 진리에 앞서 요구하는 진리의 형식적 기준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양철학에 참여할 때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한편에서는 무제약적으로 개방된 보편적 존재의 지평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누구에게도 차단되지 않은 보편적 생각의 지평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하이데거가 「철학-그것이란 무엇인가?」에서 철학이란 오직 그리스적인 유럽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다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철학이 전체로서 전체를 사유하는 데 존립하는 정신의 활동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그리스에서처럼 순수한 방식으로 그 이상이 실현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철학이 이처럼 순수히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정립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곳에서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자유인들의 공동체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자기의 주인으로서 세계 속에서 자기를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자기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적 자유의 이념 속에선 지배의 이념이 공속한다. 서양 철학은 그런 자유인의 공동체에서 탄생한 철학이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먼저 세계를 통일된 전체로 파악하려 했으며, 그 세계에 대한 인식을 누구도 독점할 수 없도록 모든 인식에 형식적인 개방성과 명증성을 요구했다. 그리스 철학에 의해 기초가 놓인 서양 철학의 보편성은 바로 그런 정치적 자유의 열매였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 철학과 서양 학문이 그렇게 대상의 무제약성과 주체의 무차별성에 기반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서양철학이 보여주는 보편성과 다른 보편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에 한번 세워지면 다시 허물 수 없는 영속성을 지니는 정신적 성과가 있다면, 그리스적 자유와 보편성의 이념 역시 그런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양 철학에 의해 열린 보편적 사유의 지평을 폐기하고 그 외부로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다른 지평을 그 위에 겹치게 하거나 그 지평을 확장시킴으로서 그 지평을 더 넓게 하고 더 깊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다시 우리는 서양적 사유의 외부에서 전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 비유컨대 서양철학의 지평을 잡아당겨 더 넓히고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의 지평 외부에 어떤 입각점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모순이다. 이미 우리는 서양적 사유의 지평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떻게 그 보편적 사유의 지평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아니, 이런 형식적 모순을 논하기 전에, 그런 외부가 있기나 한가?

만약 우리가 학문이나 철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끝끝내 서양적 보편의 지평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도 있음의 지평을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생각도 보편적으로 전달가능성의 원리를 거부하면서 보편적 인정을 요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비서양학문의 이런 곤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양적 개념을 통해 번역되는 한에서만 보편적인 승인을 얻는다. 그렇지 않을 때, 한의학은 그 모든 실질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학이 아닌 것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서양)과학의 개념으로 번역되면 (서양)과학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아니면 과학이 아닌 것이 된다. (서양)과학이 아닌 다른 과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자리는 없다. 사정은 철학 경우에도 비슷하다. 비서양 철학이 서양철학적 개념으로 번역되면 서양철학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번역될 수 없다면, 그것은 보편적 전달가능성이 없으므로 아예 철학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이런 곤경은 만약 우리가 단순히 학문과 이론으로 서양 철학 외부에서 보편성의 다른 지평을 추구하려 한다면 벗어나기 어려운 곤경이다.

외부는 도리어 안에 있다. 서양적 보편성의 지평 내부에서 그 지평을 초월하는 타자적 입각점을 확보하는 것은 오직 정치의 지평에서만 열린다. 왜냐하면 서양철학과 서양 학문 일반의 보편성의 근거가 바로 그 정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은 대상의 보편성을 말하고 주체의 보편성을 추구한다. 적어도 명목상으로 보자면 그 보편성은 무제약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추구한 보편성은 제약된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의 주체는 자유인들이며, 서양철학의 세계는 자유인들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서양철학을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인―상호문화철학적 의미에서의―‘맥락’(Kontext)이다. 우리 모두가 그 자유인들이 개방한 세계 내에 이미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서양 철학의 보편적 지평 내에 있다. 하지만 그리스의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인들이 아니었듯이 서양철학이 개방한 세계 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운 주체는 아니다. 도리어 프란츠 파농이 말했듯이 그 세계 내에서 대다수는 “자기의 땅에서 유배된 자들” 곧 자기의 땅에서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다. 즉 대다수의 인류는 같은 하나의 세계 내에서 타자이며, 내부의 외부자들이다. 하지만 자유인의 땅에서 노예로 사는 자들이야말로 자유인들이 개방한 보편적 지평 내에 거주하면서도 그 지평을 초월할 수 있는 타자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인 것이다.

20세기는 자유인의 세계에서 인류의 노예화가 극단에까지 진행된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한 유영모와 함석헌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 까닭은 노예상태는 다만 벗어나야 할 부정적 상태로만 인식되었던 까닭에, 바로 거기에 기존의 보편성의 한계를 폭로하고 전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보편성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오도 니시다도 우리의 박종홍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남들과 같은 권력의 주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으니, 그것은 낡은 보편의 모방과 반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영모와 함석헌은 바로 그런 권력의지를 포기하고 억압받는 씨의 고통 속에 머물렀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남다른 점이다. 허다한 식민지 엘리트들이 지배적 주류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민중적 삶을 등진 것과 달리 그들은 도리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민중의 고통에 참여함으로써 전체와 하나 되려 했다. 그들에게 철학은 지배를 위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곧 관조가 아니었다. 함석헌에겐 도리어 참된 “앎은 앓음”이다. 노예상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난에 참여하고, 그 보편적인 수난의 뜻을 묻는 것이야말로 씨철학의 길이었다. 플라톤의 비유를 거꾸로 돌려 말하자면, 빛을 찾아 동굴을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정신의 낮아짐이야말로 씨철학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영모는 빛이 아니라 어둠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이를 통해 유영모와 함석헌은 지배적 세계 내에서 지배적 주체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낸다. 칸트가 말했듯이 철학이 추구하는 세계는 이념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념인가? 칸트는 그것이 오직 생각 속에서 열리는 전체인 까닭에 이념이라 불렀다. 하지만 씨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칸트의 세계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들 각자는 하나의 세계이다. 철학이란 이념 속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개방하는 정신의 노동, 곧 세계화에 존립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서양철학이 개방하는 세계는 지배자의 권력의지가 개방하는 세계이다. 하지만 씨철학이 개방하는 세계는 오직 고통 받는 인간의 눈에만 보이는 세계, 능동적 관조 아래 열리는 사물적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고난의 수동성에 참여함으로써 열리는 만남의 세계이다. 외따로 떨어진 섬들처럼 낱낱의 사사로운 세계들이 하나의 보편적 세계로 이어지는 것은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계는 만남 속에서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너와 나는 만나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의 고통에 참여할 때이다. 지배하는 정신이 개방하는 관조의 세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인식하는 주체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물적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심연으로 내려가 보편적인 고통을 통해 타자와 만날 때, 그 세계는 언제나 사물화되지 않는 주체들의 공동체이다. 왜냐하면 사물은 고통을 모르나, 오직 살아 있는 주체만이 고통 받기 때문이다. 아니 거꾸로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고통의 주체만이 주체일 수 있다. 고통을 모르는 순수한 능동성 속에 있는 관조의 주체는 사실은 주체일 수도 없다. 주체성이란 고통이 있는 곳에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씨철학은 서양철학이 개방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화의 길을 열어준다. 그것은 사물들의 세계가 아니라 참된 의미에서 인격적 주체들의 만남의 세계이다. 그 만남의 세계는 오직 고통의 만남을 통해서만 열리는 것이니, 이 새로운 세계의 전망은 20세기 한국역사에 켜켜이 쌓인 고통의 뜻을 유영모와 함석헌이 정직하게 물었을 때 잉태되었다. 그 새로운 세계의 씨앗에 물을 주고 북돋우는 것은 이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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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관용에 관한 담론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 르네상스라고 부를 만큼 성행한다. 한국 역시 90년대 중반 이후 ‘똘레랑스’ 담론의 유행을 겪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웬디 브라운은 오늘날 관용이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도구로 작동하고, 야만이라는 수사나 서구의 위기 담론과 결합하는 방식, 폭력을 정당화하고 선동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용은 평등주의나 보편주의와 같은 자유주의 담론의 대리보충으로 작용하며(“추상적 시민권과 결합된 개인주의의 경계 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동질성에 기반한 평등이 정의의 원칙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차이의 탈정치화가 국가의 차원에서든 주체의 차원에서든 완전히 성취되지도 완전히 옹호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관용은 평등의 확장이 아니라 평등의 대리보충으로서 등장한다. 대리보충으로서 관용은 다방면에서 평등을 보충하고 대리하며, 무엇보다도 평등이 그 자신의 이름으로 ‘진정한’ 평등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 개입하여, 교묘하게 평등의 불완전성을 보완한다.” 125), 차이를 존재론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즉 차이를 물화시키고 자연화, 본질화시킴으로써 권력과 역사에 대한 담론을 차단시킨다(“관용은, 예컨대 ‘제도화된 인종주의’ 같은 불평등의 문제를 ‘상이한 행위와 믿음’의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관용해야 할 차이 자체를 생산해내는 불평등과 지배 문화의 작동을 은폐한다. 관용은 차이를 본질화하고 섹슈얼리티, 인종, 종족의 문제를 물신화함으로써, 섹슈얼리티, 종족, 인종이라고 불리는 차이들을 생산해 온 역사와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89). 관용은 이렇게 정치의 문제를 개인화하고 탈역사화, 탈정치화하며, 도덕적 상대주의를 부추긴다. 문명 담론으로서 관용 담론은 애초에 서구의 종교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기능을 가졌지만, 오늘날 관용의 최초의 의미는 희박해졌으며, 비서구 사회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관용은 오늘날 민족적이고 초민족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통치성의 한 방식이다. 문제는 관용에 대한 거부나 불관용의 지지가 아니라, 통치성의 한 방식으로서 관용 담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것이 갖는 탈정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효과들에 대해 싸워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책의 요지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장은 4장인데, 이 장은 관용 담론이 이전 시대처럼 국가와 교회의 전유물이 아닌 통치성governmentality의 한 형태로 등장함을 다룬다. 오늘날 관용은 법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인 담론은 아니며 국가 담론인 동시에 대중 담론인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브라운은 푸코의 통치성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 부분은 푸코의 통치성에 대한 유용한 설명으로도 읽힐 수도 있다. 푸코에 따르면 통치는 법의 부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의 배치 문제, 전술들tactics을 적용하고 법 자체도 전술로서 활용하는 문제인 것이다("Governmentality", in The Foucault Effect, 95). 법적이면서 비법적인 담론, 교육적, 종교적, 사회적 담론으로서 관용 담론은 근대적 통치성의 핵심인 “전체화하면서 개별화하는”omnes et singulatim 효과(사목권력 : 왕이나 지도자를 양떼를 이끄는 목자로 비유한 고대 오리엔트 사회의 사목 개념과 서구의 정치 사상의 결합에 주목, ) 역시 갖는다. 푸코가 통치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은, 1970년대 내내 그가 주목한 일련의 주제들, 주권 개념(죽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 비판, 국가 이론 및 정치경제학에 기반한 권력 개념의 해체, 국가와 자본의 탈중심화, 규율 및 조절, 규범 등의 권력 분석, 억압 가설을 비판하고 근대적 주체의 생산을 분석하기, 생체권력(‘삶을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 분석 등을 통합하는 것이다. 통치와 합리성을 결합시킨 통치성 개념은 제도와 지식에 의한 통치와 합리성 간의 근대적 결합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행위의 지도’conduct of conduct와 관련된다. 통치성은 주체들의 신체, 욕구와 능력, 욕망 등을 관리하며, 광범위한 비가시적 권력들과 다양한 과학적, 종교적, 대중적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
브라운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갖는 유용성을 긍정하면서도, 근대 정치 권력에서 국가가 갖는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한다(142). 현대 국가는 한편으로 세계화로 인한 주권의 약화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표방해왔던 보편성의 위기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데, 관용 담론은 이러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며,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국가의 통치화”(“Governmentality", 103)가 문제라고 해도, 국가는 여전히 정치적 정당성의 핵심 기반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142). 그러나 푸코는 제도에 종속된 이들이 제도에 부여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으며(푸코가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를 간과한 것은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그의 부정적 입장 때문이다. 진리의 생산은 권력의 전제 조건이며, 우리는 진리에 철저히 종속되어있다는 것이다. “Two Lectures", Power/Knowledge, 93~94. 또한 푸코는 권력을 이론화하면서 의식과 주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이 점에서 심리학적 행동주의와 몇몇 수렴하는 부분을 갖는다) 통치성에 대한 설명에서도 정당성의 문제는 누락되어 있다(143). 명시적으로 브라운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의식, 정당성, 주체성의 문제가 푸코에서 누락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녀는 푸코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부재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통치성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주체의 생산, 조직, 동원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는 정치권력의 장에서 여전히 이러한 정당화의 문제를 책임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44) 국가에 의한 관용 담론은 이 점에서 국가 정당성의 결핍 상황, 국가가 보편적 재현을 체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한 것이다(144). 제1의 시민덕목으로서 관용은 수동적인 시민상을 옹호하고, 사회적 삶을 혐오를 제어할 줄 아는 고립된 개인 및 집단의 상호작용으로 축소시킨다(150). 관용은 증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 된다. 더 나아가 관용은 “차이를 자연화/사사화함으로써 차이를 구성하는 사회적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갈등을 개인화/사사화하고, 개인화와 탈연대를 지향하는 관용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공포를 조장”(153)한다. 이처럼 차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용 담론 속에서, 차이는 영구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만다. 가령 “오늘날 대중 정치 담론 속에서, 이성애 여성은 평등의 후보자가 되는 반면, 레즈비언 여성은 관용의 대상”(130)이 되며, “국가는 평등한 대우와 평등한 보호에 대한 요구를 관용으로 대체해 버림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것의 평등한 향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170)
이어지는 6장에서 브라운은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관용 담론에 연루되는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관용의 자유주의, 외견상의 보편주의가 그 이면으로 갖는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어떤 문화는 관용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고, 다른 문화들은 불관용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관용 담론의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자유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문화에 지배되고, 자유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문화를 소유한다. 이러한 담론은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 대 문화라는 대립 구도를 설정하고 자유주의없이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245). 데카르트, 로크, 칸트, 롤즈와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합리성은 문화적 장소를 초월해서 존재하며, 합리성을 문화나 주체성과 분리시킴으로써, 자유주의 담론은 개인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선택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247). 이처럼 합리성과 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적 정식화는 그 자체로 합리성과 의지의 영역에서 미성숙한 반대항을 함축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관용은 자율성이라는 선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역으로 자율성을 가진 개인들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미덕이 된다. 관용은 “자신이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을, 이미 그 전제로 삼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이는 비개인화된 비자유주의적 주체는, 관용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250)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참조점은 가장 주되게는 물론 칸트이지만, 브라운은 “관용적인 자유주의적 자아와 불관용적인 유기체적 타자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구도”(251)를 프로이트를 통해서 살펴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집단적 정체성은 개인화된 정신의 반대라기보다는 성숙함으로부터의 퇴행이며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프로이트의 작업은 “성숙-개인-양심-억압-문명 대 유아스러움-원시-충동-본능-야만의 대립 구도, 즉 현대의 관용 담론에도 스며들어 있는 지극히 단순한 대립 구도”(254)에 기반해 있다. 철저히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프로이트에 따르면 개인이 집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을 하나로 묶는 추동, 에로스를 통해 개인 간의 경쟁과 원자화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잡단의 유대가 구성원 상호 간의 사랑으로부터 도출될 수는 없는데, 고슴도치 콤플렉스와 같은 사랑의 양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지나친 근접성과 고립이라는 두 위험 사이의 동요가 안정적인 친밀함으로 대체되는가? 이는 집단 내부의 에로스라기보다는 우리를 리비도 차원에서 결합시켜주는 집단 외부의 지도자나 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집단은 집단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사랑과 이상화를 통해 구성원들이 서로를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이다(259). 자아의 나르시시즘적 만족에서 시작된 사랑하는 대상화의 이상화는 종종 극단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이렇게 이상화된 대상이 자아이상을 대체하고 자아를 흡수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분별력은 붕괴할 수 있다. 즉 집단은 개개인의 자아이상이 공통의 대상에 의해 대체되는 한에서, 공고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응집을 통해 집단은 공통의 나를 만들어내며, 이는 사회계약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상태이다(이러한 공통의 나commune moi의 구성은 루소의 사회계약 모델에서도 의도되었던 것이며, 루소 역시 시민종교를 사회계약의 필수적인 보충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은 집단 구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파시즘이나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으나, 이 이론의 전제들은 오늘날 유기체적 사회를 위험과 불관용에 등치시키는 자유주의적 설명틀, 관용 담론에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64). 관용 담론은 비자유주의 국가와 자유주의 국가를 나누고, 전자를 원시 상태로의 퇴행으로 간주하고 후자를 성숙한 자기 규제적 개인이 가능한 사회로 간주한다. 이는 문화에 선행하고 문화로부터 자율성을 가진 원자론적 주체를 전제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문명을 위협하는 집단 정체성을 억제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함축한다. 문명 담론과 결합된 관용의 통치성은 유기체적이고 비서구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인 타자를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268).
결론적으로, 우리가 관용 담론에 맞서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물론 자유주의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성찰하고, 자유주의가 자신의 타자로 삼아왔던 것들과 조우함으로써 자유주의 자체가 변환될 가능성을 개방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 자율성과 유기체, 세속주의와 근본주의와 같은 허구적 대당을 해체하고, 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부분을 억제하여 자유주의 내에 항상 존재하는 혼종성을 의식하고 또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라운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주의적 관용 담론의 탈정치화를 넘어서 정치적인 것을 새롭게 실천해나갈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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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 세 개념 : 해방, 변혁, 시빌리테

 

 

 

 

 

 

1. 들어가며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변별되는 개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첫 번째 개념은 정치의 자율성(autonomie)이라고 불리며, 이는 해방(émancipation)이라는 형상에 대응된다. 정치의 두 번째 개념은 정치의 타율성(hétéronomie), 즉 구조적이고 정세적인 조건들에 관련된 정치로서, 이는 변혁(transformation)이라는 형상에 대응된다. 이 두 번째 개념의 아포리아로부터 세 번째 개념이 도입되는데, 이는 타율성의 타율성이다. 이 개념은 정치가 의존하는 조건들이 결코 최종심급(dernière instance)이 아님을 보여주며, 반대로 이 조건들을 결정적이게 하는 것은 조건들이 주체를 낳는 방식, 또는 조건들이 주체에 의해 경험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주체는 자신에게 부과되거나 스스로 창조하는 동일성에 따라 행동한다. 동일성들, 소속들, 그리고 단절(rupture)의 상상적인 것(l'imaginaire)은 조건들의 조건이다. 이는 정치의 자율성과 타율성의 효과들이 설치되는 또 다른 장면/무대(scene)과도 같다. 해방이나 변혁으로 환원불가능한 하나의 정치가 이에 조응하며 나는 이것의 윤리적 지평을 시빌리테(civilité)라고 특징짓는다.  

 

 

2. 정치의 자율성 : 해방

 정치(la politique)의 자율성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자율성이 아니다. 정치는 내포적(intensive)이라고 할 권리의 보편성을 정치가 참조할 때, 정치가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이해하는 문제이다. 정치의 자율성은 집단(인민, 민족, 사회, 국가...)이 구성원들의 자연적이거나 초월적인 권위로의 예속화(assujetisement) 및 제약, 차별의 확립에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해방의 정치에서 가장 결정적인 언표행위 중 하나인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자율성 선포의 전형적인 정식화는 평등-자유(égaliberté) 명제이다. 즉 자유 없이는 평등도 없으며 평등 없이는 자유도 없다. 평등한 자유라는 명제는 논박(elenchos)이라 불리는 논리적 형식, 어느 명제의 부정이 곧 자기 반박으로 귀착되는 논리적 형식을 갖는다. 평등한 자유는 무제약적(inconditionée)이며 이는 다음의 두 가지 결과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먼저 정치란 우선 권리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총체인 인민(peuple/demos)의 자기결정의 전개이다. 정치적 주체가 처해 있는 조건들이나 자유와 평등에 가해지는 제약은 그 자체로 부당한 것으로 그것의 폐지는 즉각 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민을 스스로에게서, 즉 자신의 고유한 자율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모든 지배에 맞선 인민 자신의 민주주의 쟁취의 조건이며, 인민 자신의 책임이다. 다음으로 이 명제의 무제약적 형식은 또한 호혜성의 조항(clause de réciprocité)이라 부를 또 다른 명제를 초래한다. 이 명제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표현한다. 어떤 사람도 외적인, 일방적 결정이나 시혜에 의해 해방될 수 없고 오직 호혜적으로만, 상호 인정에 의해서만 그렇게 될 수 있다. 평등한 자유는 정의상 개인들의 권리들이지만, 이는 집단적으로 쟁취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들의 본질은 개인들이 서로에게 부여하고 보장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정치의 자율성은, 시민권 외에는 기원도 목적도 갖지 않는 하나의 과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주체의 자율성 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이때 정치의 주체의 자율성은 인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근본적 권리들을 서로에게 부여함과 동시에 인민이 스스로 만들어진다(se faire)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주체들이 서로를 위해 해방의 궁극적 원천 및 준거가 되는 한에서 정치의 자율성이 가능하다. 정치의 주체들은 보편적인 것, 즉 정의상 스스로가 그 속에 함축된 것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의 담지자들이다. 시민이기 위해서는 조건없이(ohne Eigenschaften) 인간인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순과 아포리아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스스로를 대표하고 보편적인 것의 대변인(porte-parole)이 된다는 관념의 경우가 그러한데, 말(parole)이 또한 하나의 권력 관계일 때부터 그렇다. 랑시에르는 󰡔불화󰡕에서 진정한 아포리아와 변증법의 측면들 가운데 하나를 분석했다. 그는 영속적으로 치안적 논리에 대립하여 평등주의적 논리를 내세우는 바른 정치가 ‘몫이 없는 부분’(part des sans part)의 구축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계쟁(litige)없이 민주적 정치가 없다면, 민주적 정치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귀결될 수 있다.1) 왜냐하면 몫이 없는 자들(또는 무소유자들)은 정치(de) 주체도 될 수 없고, 정치 내의(dans) 주체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본적인 의미의 몫이 없는 자들은 따라서 전체일 수도 부분일 수도 없다(ni tout ni partie).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인 그들[몫이 없는 자들]의 실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다.

 이러한 곤란은 역사적으로 전위된다. 비-배제는 법적 사실로서 자율성의 최초의 유일한 언표행위 속에 있다기보다는, 그 언표행위가 새로운 부정을 통해 포함하게 되는 사후성(après-coup)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은 사회의 한 부분이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것(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 다수자와 소수자의 대립)이 명백해질 때 정치가 된다. 이러한 부분은 시민권의 가장 능동적인 대변자로 스스로를 제시하며, 자신의 해방을 일반적 해방의 기준으로 행사할 수 있는 분파, 즉 프롤레타리아들, 여성들, 유색인들, 성적 소수자들이다. 이러한 예들은 모든 해방의 역사가 이미 선언된 권리들의 향유를 위한 실제적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요컨대 시민권의 부인에 맞선 전투는 해방의 정치의 생명이다. 물론 이는 복잡성과 근본적인 양가성을 수반한다.

 먼저 평등한 자유라는 명제의 진리에 호소하는 피지배자들,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편에 양가성이 있다. 그들은 인민의 인민으로 스스로를 제시하거나 보편계급으로 스스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자율성의 정치가 자신의 편에서 부정의 부정, 즉 하나의 절대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정치의 자율성이 우선 하나의 부정(négation)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치와 그 주체들의 이상화는 그것들을 정초하는 이상성(idéalité)의 맞짝이다. 이러한 이상화는 지배어들(maître mots)의 지명 및 창조에 의해 표현되며, 지배어들이 갖는 상상적 포획의 힘은 그것들이 기원적으로 발본적인 부정성 및 정치적 능력(capacité politique)의 실질적인 대리(représentation)의 거부를 표현해온 만큼 더욱 커진다(인민, 프롤레타리아트, 여성, 이방인). 다음으로 이러한 양가성은 지배자들의 편에서 여전히 다른 측면을 지닌다. 모든 민주적 정치가 노예도덕을 표현한다고 설명하는 니체를 따라가 보자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 및 합의 제조의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계보학이다.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기존 질서의 지배는 그 질서가 갖는 원칙의 이데올로기적 보편화에 상당히 의존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본 것과 달리 지배적 관념들은 피지배자들의 관념들이다. 헤게모니적 지배의 담론은 사실상의 차별로부터 권리의 평등으로 그 담론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모든 항의들은 기존질서의 불의 앞에서 원칙의 동일성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된다. 이 때문에 극한에서는 주어진 조건정치의 창립(institution)을 배제된 자들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양가성은 앞의 양가성과 마찬가지로 정치가 인간 해방과 시민권을 개념으로 갖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3. 정치의 타율성 : 변혁

 “인간은 직접적으로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는 언명은 정치의 타율성 개념 또는 현세(Diesseits)의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정치의 자율성 개념과 타율성 개념의 양립불가능성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양자를 단일한 시나리오로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마르크스는, 민주주의야말로 모든 헌정의 진리라고 여겼으며,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자신의 해방이 전인류의 해방의 시금석이 되는 보편계급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정치의 타율성의 발본적 관념(conception)을 해명하고 자코뱅주의의 가정들을 역전시켰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결정된 조건들(Umständen, Bedingungen) 속에서만 또는 하에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정치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의 타율성의 유일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단점 주변에서 서로 대립하는 복수의 모델들이 있다는 것이다. 타율적인 정치라는 관념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물질적 조건들이라는 통념(notion) 자체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규율 사회, 권력의 미시물리학, 통치성 연구에 이르기까지 푸코의 주제들이 본보기가 된다.

 마르크스에서 출발하여 두 가지 예비조건을 설정해보자. 우선 마르크스가 사고한 정치의 진리는 정치의 재료를 형성하고 이것을 스스로 물질적 활동으로 구성하는 조건 및 대상에 대해 정치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정치의 주체들(인민)의 자율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는 주체들의 자율성을 자신의 고유한 운동의 전제가 아닌 결과로 표현한다.2) 마르크스의 정치는 자유의 필연적 생성이라는 시각에 기입된다. 평등한 자유가 권리들을 초월적인 기원으로 돌려보내면서 권리들의 보편성을 전제한다면, 마르크스의 정치적 실천은 자유의 필연성, 인민의 자율성의 필연성을 자신의 결과로 생산하는 조건들의 내적 변혁이다. 둘째로 정치의 조건들은 역사의 토대나 경제적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경제적 토대를 보편화하고, 노동의 인간학을 택했다. 이러한 의미의 경제는 전형적으로 정치의 타자, 정치의 절대적 외부이다. 따라서 정치의 현실성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치의 타자를 단락(court-circuiter)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의 현실성은 혁명적 정치로서, 경제적 모순들의 발전과 다른 것이 아니다. 정치(la politique)는 이러한 제도의 비정치적인 조건들(따라서 최종심에서 현저히 정치적인), 즉 경제적 모순들로 소급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라는 모델 위에서, 새로운 사회운동들과 관련하여 경제만큼 결정적인 외적 역사적 조건들 역시 존재한다. 가족 구조, 가부장제 구조, 성적 지배관계, 상징적 자본의 구조(부르디외) 등등.

 마르크스의 정리(théorèmes) : 첫째, 조건들이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rapports sociaux)이다. 곧 조건들은 자신의 모순들 자체를 대가로 해서 규칙적으로 재생산되는(생산, 소비, 교환, 법, 문화, 이데올로기적 실천들) 관개체적 실천들의 객관적 총화(ensemble) 속에 있다. 둘째, 사회적 관계들은 경제적 관계들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계들은 그것의 편에서는 사회적 관계들이다. 정치의 사회적 조건들에 관한 모든 분석은 그 조건들이 발휘하는 구조적 인과성과 그것들이 생산하는 사회효과(effet de société)를 동시에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마르크스의 경우 이러한 원인과 효과의 구조는 자본의 생산 및 재생산 과정과 그 동역학(dynamique)이다.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이 과정의 함수로서, 마르크스의 야심은 임금노동 착취 과정이라는 동일한 기초 구조가 경제적 공동체와 동시에 국가 형태의 맹아를 구성하고, 역사 전반에 걸친 두 형태 사이의 의존 관계 및 상관 관계의 맹아를 구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관계들(조건들)은 역사를 갖는다. 이 역사의 의미는 경제적 과정의 동역학에 의해 설명된다. 정치적 실천은 항상 이미 이 변화의 도정에 삽입되며, 사회의 자본주의적 구조는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는 조건들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변화 속의 변화 또는 변화의 미분3)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는 주체 없는 것이 아니다(주체없는 것은 역사이다). 모든 정치 개념은 각각 종별적인(spécifique) 주체 개념을 함축한다. 문제는 정치의 타율성에 연계된 주체 개념의 곤란들을 보는 것이다. 헤겔의 직접적 상속자로서 마르크스의 경우, 정치적 주체라는 관념은 즉각 모순 관념에 준거한다. 주체화(subjectivation)는 변화가 변화하는 지점에서 생산되는 집단적 개인화이다. 문제는 유일하고 동일한 현실이기 때문에, 이때 객관적 반경향의 형성과 주체화의 운동 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역량(puissance)이 그것 자체가 야기하는 저항의 규모를 먹고 자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경향과 반경향이 서로 싸우는 모순의 운동은 끝없는 나선이며, 이는 정치의 관점에서 이 운동이 주체화와 탈주체화(désubjectivation)의 국면들을 부단히 통과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모순적 경향들의 변증법의 기초는 권력쟁취가 아니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축적에 함축되어 있는 적대적인 사회적 양식들의 갈라짐(dissociation)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적 축적 속에서 서로에게 맞서 발전한다.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실질적 포섭이라고 부른 사회화 양식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이라 부른 사회화 양식이 있다. 이 관계의 근본 요점은 그것이 하나의 갈라짐의 문제라는 것, 본질적으로 동일한 개인들을 변용(affecter)시키거나 자신에 반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양립 불가능한 실존 양식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의 타율성과 인민의 자율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재발견된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이론화한 바의 정치는 구조적 조건들의 총화가 끼치는 효과들의 가변성을 묘사하면서 이러한 갖가지 실천 양태들을 연결하는 주체화의 한 도정이다.  

 이제 가장 역설적이고 또 가장 계발적인 대조, 푸코의 몇몇 이론화들과 대조해보자(권력 관계들에 입각해서 제도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권력관계는 행위들에 대한 행위의 한 양식이며 사회적 연계 속에 깊이 뿌리내린다. 정치적 과제는 권력관계들과 자유의 자동사적 성격 간의 갈등에 대한 분석, 가공, 문제제기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존재론에 대해 일종의 전도를 행하면서, 마찬가지로 조건들과 변혁이라는 단어에 중심적인 자리를 부여한다. 푸코의 이론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조건들과 변혁 간의 거리가 최소화되고, 서로 동시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푸코는 정치에서 제도들, 거대 실체들, 거대 기계들(국가, 당, 계급)의 독점을 제거하고자 할 때에조차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의 지평으로서 역사와 사회에 관해 지속적으로 말한다. 사회는 서로 조건짓고 변혁하는 행위들의 복합체이다. 어떤 행위도 다른 행위의 실행의 새로운 조건들을 창조하지 않으면서 다른 행위를 변혁할 수 없으며, 어떤 행위도 다른 행위의 담지자의 자유를 변혁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조건지을 수는 없다. 또한 개인들은 이러한 복합체의 모든 독특성들(singularités), 이러한 독특성들 모두에 연결된 육체들이다. 역사적 갈등은 항상 이미 권력관계들에 본래적이다.  

 푸코가 정치를 구성하는 방식은 정치의 자율성의 재구성과는 무관하다. 다소 안정된 사회적 형식들, 행위의 규범들은 구성되는 반면, 권력관계는 진정으로 구성하는 것(constituante)이다. 권력관계는 결코 하나의 의지나 의지들의 대결로서 사고되지 않는다. 이는 푸코가 육체들에 대한 준거(référence)를 개인성의 궁극적 지시대상(référent)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방식에 관련된다. 권력관계와 예속화는 지배와 예속(법의 부과)의 견지에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들을 형성하고 어떤 행위들(action)에 배치하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기술들(technologies)로 해석되는 방식에 관련된다. 정치적 행위들은 이제 전략들(stratégies)의 견지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이는 상대편 개인성의 반작용들을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하도록 육체적 성향들을 변형(transformation)하는 것에 관한 일반적 도식이다. 이는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형상 및 장기간 지속되는 사회적 구조에도 통합될 수 있으나 그 효력의 원리는 항상 미시정치적(micro-politique)이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곤란에 이르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저항(résistance)이라는 통념이다. 모든 권력은 저항을 전제하지만, 권력관계가 또 하나의 지배관계가 될 때 ‘자유의 자유화’가 취할 수 있는 형식은 이러한 사실로부터 명확하게 귀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저항들의 우연적 생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권력관계들에 관한 푸코의 분석은 역전불가능하고 절대적인 권력관계들의 비대칭성이라는 질문에 의해 어떤 한계에 부딪힌다. 무엇보다 극단적 상황들이라는 문제, 그 속에서 주체들의 개인화로서 권력의 기술들이 총괄적인(global) 하나의 적대에 자리를 양보할 뿐 아니라, 죽음의 질서 및 파괴의 질서 속에서 발휘되는 벌거벗은 힘에 자리를 양보하는 상황들의 문제가 있다. 생명만이 통치될 수 있고 훈육될 수 있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다양한 형태의 절멸(extermination)의 실천들이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배(domination)의 뿌리 깊은 구조들이라는 질문이 또 있다(권력관계들은 지배의 상태와는 다른 것으로, 한 개인 또는 사회집단이 권력관계들의 장을 가로막고, 이를 유동성없고 고정된 것으로 만들어 운동의 모든 역전가능성을 막는데 이를 때 우리는 지배의 상태와 대면한다. 권력관계들 속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의 가능성이 있다. 저항의 가능성이 없다면 권력관계들도 없다. 권력관계들이 있다면 이는 도처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배의 경우들에 문제는 사실 저항이 어디에서 형성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관계들의 비대칭성이 역전이나 전위의 즉각적 가능성에 항상 준거하는 전략적 현재라는 시간을 잡아 늘리도록 강제된다. 구조들(제약, 법, 규범의 질서)이 나타났는데, 이 구조들로부터 주체는 분리되어 있고, 이 구조들은 육체의 친밀함 속에서까지 주체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력을 고정시킨다. 이 구조들에 대해 푸코는 단지 사회운동들에 대한 고전적인 호소에 의존할 뿐이다. 푸코의 유일한 독창성은 사회운동들의 범위가 사회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지배관계들 전체의 범위와 동연장적이고, 그 운동들은 어떤 미리 설정된 조직형태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갈수록 푸코의 관심을 독점하는 것은 자기의 기술들(techniques de soi)에 대한 분석인데, 이는 또 다시 곤란의 장소이다. 저항의 관념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고 이는 무한퇴행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4) 이로부터 푸코는 더 이상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개인의 자기와 그것의 생산 또는 창조의 양식(자기의 미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스토아적 영감의 운동은 지배의 양태가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에 의해 여전히 결정되는지를 아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운동은 최종분석에서 미완성이고 열려있으며, 아포리아적이다. 이 아포리아는 자기 또는 개인성의 통념들에 관련되며, 푸코는 이를 비판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단지 경험적이고 동시에 절충적인 방식으로 취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푸코의 아포리아와 마르크스의 아포리아를 나란히 놓는 것이다. 이 곤란들은 대립되는 것이지만 변혁이라는 중심적 관념에 본래적인 두 곤란들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의 사회적 관계들을 정치적 실천의 외적 조건들로 놓는 동시에 그 속에서 정치적 실천의 혁명적 분열과정이 발전되는 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세계의 변혁(Veränderung der Welt)을 조건들의 총체를 포괄하는 유효한 변혁 전체의 궁극적 지평으로 제시한다. 세계의 변혁은 세계적 정치와 세계적인 정치적 주체의 출현을 가정한다. 이러한 통념은 모순들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천이성의 이율배반들에 대한 칸트적 비판이라는 의미에서 변증법적이다. 변혁 개념은 단지 우리를 무한퇴행 속에 연루시키고, 이는 세계가 실제로 세계화(지구화)된 것으로 드러날 때부터 완전히 가시적이 된다. 반대로 푸코는 자기라는 질문 및 그것의 구성에 관한 질문을 의식과 실체의 지반으로부터 육체성(corporéité)이라는 지반으로, 따라서 금욕(ascesis)이라는 지반으로 전위시키면서, 이러한 배리(paralogisme)를 다른 형태로 되풀이한다. 그가 자기에 대한 자기의 노동을 수동적인 것으로 만듦과 동시에 능동적인 것으로 만든 한에서 말이다. 이러한 이중구속의 상황은 마르크스의 것만큼이나 칸트적 의미에서 변증법적이다. 이로부터 (주기적으로 부인되는) 숙명주의와 사실상의 주의주의 간의 잠재적 진동이 유래하며, 이때 니체에 대한 준거는 중화제(correctif)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5) 물론 변혁이라는 관념의 발본적 정식화가 아포리아에 부딪힌다는 사실 때문에 변혁 관념 자체가 자격박탈이 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러한 사실은 영속적 발명의 원동력이다. 이러한 관념이 진정한 불가능성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장면을 지나가야 한다.

 

 

4. 타율성의 타율성 : 시빌리테의 문제

 푸코가 정치를 후면에서 공격하는 문제들이라고 부른 것,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이다. 이는 폭력(과 잔혹), 동일성(과 동일성의 정치), 합리성과 보편성의 도착적 효과들(effets pervers)에 의해 발생한다. 우선 종족 정화에 관한 페티 벤슬라마의 텍스트(이방인의 이방성은 그가 다르다거나 그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그가 너무 가깝고 친숙하고 자기와 분리할 수 없도록 섞여 있는 어떤 자라는 것이다. 동일성과 관련된 병으로 인한 모든 파괴는 정확히 이러한 조건에서 유래하며, 고유한 것의 재영유는 모든 정화의 슬로건이다. 이러한 증오는 적에게 승리를 거두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육체의 표상에 섞여 있는 이방의 육체와 육체의 이방성을 근절하려는 절단과 절멸의 실천이다. 그만큼 동일자와 타자는 밀접히 섞여 있다)와 들뢰즈와 가타리의 텍스트(남성은 다수적이고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되기이다. 다수성은 어떤 표준, 남성-어른-백인-인간 등을 뜻한다. 생성이나 과정으로서 소수와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생성 속에서 우리는 탈영토화되며, 흑인 조차 흑인이 되어야 하며, 여성들조차 여성이 되어야 한다. 파시스트가 되지 않으려면 흑인-되기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에서 출발해보자. 첫째로 폭력의 문제와 동일성의 문제의 융합에 의해 구성되는 수수께끼의 항들을 정확히 해야 하는데, 이는 정치에서 타율성의 타율성으로 돌아가게 한다. 둘째, 동일성들의 폭력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를 특징짓기 위해 시빌리테라는 개념을 시험할 것이다.

 폭력을 그 극단적인 형태들, 즉 초자연주의적이고 초객관적이며 초주체적인 형태들, 지향성의 발작들 사이에서 영속적으로 진동하는 잔혹(cruauté)의 형태에서 고려해보자. 오질비는 최근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말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의 종별적으로 현대적인 새로운 형상들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일회용 인간의 생산, 인간 자재 착취, 잉여 인구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절멸(전염병들, 집단학살들, 자연재해 등)의 예를 든다. 이러한 비주체성(a-subjectivité)의 환상적 압력과 함께 우리는 푸코가 이론화한 모든 권력관계의 정반대 편에 와 있다. 또한 우리는 정치에 대한 권리의 요구가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상황에 있다. 희생자들이 자신들을 해방시키면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직접 스스로를 사고하고 제시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 폭력은 체계의 재생산과 양립불가능한 저항들을 파괴하는, 사회적 관계들에 본래적인 억압이다. 그러나 비기능적이지만 세계경제의 계획 속에 기입되어 있는 수백만의 총체적 제거와 함께, 우리는 구조적 폭력의 한계를 넘어섰고, 구조의 재생산 전체를 초과하는 객관적 잔혹의 일상성 안으로 진입했다.

 폭력의 초객관적 형태들, "주소없는 폭력들"(오질비)의 일반화, 폭력의 초주체적 형태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기서 파시즘의 일상적 형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 모든 문화의 한복판에서 가능한, 증오의 이상화(idéalisation de la haine)의 증식 속에 있다. 이는 초주체적 폭력이라 불리는데, 왜냐하면 이와 같은 행위들은 의지와 목적을 갖고 행해지지만, 극한에서 그것들이 실행하는 의지란 주체가 그 도구에 불과한 하나의 사물(chose)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속에 있는(있다고 그가 믿는) 동일성, 타자 전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배타적이고 ‘우리’와 ‘자기’ 속의 이타성의 그 모든 흔적을 제거함으로써 자기의 고유한 실현을 오만하게 명령하는 이러한 동일성 말이다. 이는 혼합이나 탈고유화(dépropriation)의 위험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죽음을 선호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각각의 극단적인 형상들에서 폭력의 비전환성(non-convertibilité)이라는 환원불가능한 사실의 표지를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폭력은 억압하거나 추방할 수 없고, 역사를 만드는 수단으로 정치적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따라서 동시에 정치와 역사의 재료이고 경향적으로 그 전개의 영속적인 하나의 조건이 되지만, 이는 역사성의 장 내에서 정치의 이행 및 정치의 범위 내에서 역사적 조건들의 이행의 한계를 표시한다. 이 때문에 정치의 타율성을 넘어, 해방의 정치만큼이나 변혁으로서의 정치의 구성을 다시 의문시하는 타율성의 타율성을 보아야 한다.6) 이때 극단성이나 한계들은 지정불가능하며 고정되지 않는다. 폭력의 초객관성은 지배 관계들의 자연화 속에 적어도 잠재적으로 기입되어 있고, 폭력의 초주체성은 ‘죽음 이상의 것’을 요구할 정도로 충분히 잔인하고 불가해한 정신적 권위의 제국으로 개인들을 복종시키는 지평에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들의 역사란 동일성 자체가 고정되거나 변형되는 방식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여기서 다만 세 가지 정도의 테제를 제안해보자.

 첫째, 모든 동일성은 근본적으로 관개인적이다. 그것은 순수히 개인적이지도 집단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특한 것으로 경험될 수 있으나, 그것은 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사회적 관계들의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 역으로, 집단적 동일성, 소속의 관계나 우리의 구성은 개인적인 상상적인 것들 가운데 현실 속에서 인가되는 관계의 구성일 뿐이다. 상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그들의 삶에 필수불가결하다. 둘째, 동일성보다는 동일화들(identifications)과 동일화의 과정들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어떤 동일성도 주어지거나 단번에 획득될 수 없고(고정될 수는 있지만), 항상 불균등하고 미완성인 하나의 과정, 다소간 강력한 상징적 보증을 불러내는 위험한 구성들로부터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화는 타자들로부터 오며 항상 아직 타자들에 의존한다. 조건들의 조건은 자기와 타자들의 역할, 연결과 단절의 상징화가능성이 의존하는 제도들의 실존에 의해 구성된다. 셋째, 모든 동일성은 모호하다. 이 모호성은 우선 주체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어떤 개인도 특유하게 하나의 유일한 동일성, 유일한 소속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개인은 불균등하게 함축적이고 불균등하게 갈등적인 복수의 동일성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일의적일 수 없는 동일성 그 자체의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나의 동일성은 그것이 무엇이든 동시에 복수의 기능을 수행하며 항상 과잉결정된다. 그것은 항상 복수의 상징적 준거들 사이에서 이행한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스스로에 대해 착각하고 다른 것으로 오인될 위험에 노출된 채, 항상 빗나가 있다(à coté).

 이러한 테제들은 적어도 폭력과 동일성들 간의 결합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해준다. 동일성의 견지에서 숙고할 때, 두 극단적인 상황들은 똑같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상황이 정상적인 실존과 교통이 파괴되는 자율성의 영점 상태에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들 중 하나는 개인성을 집괴적(massive)이고 배타적인, 하나의 유일한 일의적인 동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 포스트모던한 어떤 유토피아뿐 아니라 시장의 유연성 요구에 순응하여 - 동일성으로 하여금 모든 역할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즉 절대적으로 한 사람이 되거나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도들의 역할은 동일화들과 소속들의 다면성(multiplicité), 복잡성, 갈등성을 제거하지는 않으면서, 감축하는 것(réduire)이다. 제도들과 대항제도들 없는 사회란 없다. 그러나 제도들이 정치는 아니며, 제도들은 정치의 수단들 또는 결과들을 구성한다. 정치가 총체적 동일화와 부동하는(fluctuante) 동일화의 불가능한 한계들 사이에서 동일화들의 갈등을 규제하는 한에서 그러한 정치는 시빌리테라고 불린다. 시빌리테는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정치는 아니지만, 정치(해방, 변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폭력 그 자체의 역사화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동일화의 극단성들 사이를 벌려 놓는다/배제한다(écarter).

 시빌리테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 첫 번째 거대한 문제는 시빌리테로서의 모든 정치가 필연적으로 ‘위로부터’, 주인의 행동 및 권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아니면 그것이 또한 ‘아래로부터’ 개인들과 집단들의 고유한 노력과 힘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철학은 다중(multitude)이 본래 폭력적이기 때문에 정의 및 사회질서 확립에 있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빌리테의 관념을 다중의 자율성이라는 관념, 즉 민주적 형태들과 화해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제안한 테마를 검토해볼 수 있다. 헤겔은 역사 속에서 폭력이 법치국가, 즉 개인들의 자유화를 목표로 구성되는 국가에 의해 예방적으로 처리된다면 전환가능하다는 변증법적 확신(“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을 가지고 있다. 헤겔의 관념은 동일성들과 일차적 소속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집단적인 정치적 동일성이나 국가적 소속의 특수한 표현 및 매개로 재구성하기 위해 잠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 동일성들의 차별적인 취급, 그것들의 인정의 위계화, 그리고 하나의 탈자연화를 가정한다. 다시 말해 국가 또는 상급의 공동체에 의해 미리 통제된, 따라서 그 결과가 보장되는 탈동일화 및 동일화의 동시적인 이중의 운동이 있다. 이러한 운동은 내포적 보편화의 효과를 생산하는데, 가족 공동체의 자연적 속박에서 개인성을 분리시킨다. 요컨대 개인들은 구속(adhérence)에서 가입(adhésion)으로 이행한다. 우리는 헤겔을 따라 탈동일화-동일화(영유-탈영유)의 운동이야말로 시빌리테 개념의 핵심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헤겔주의자라고 선언할 수 없는 이유는 헤겔의 삼중적 모순 때문이다. 첫째, 헤겔은 자유화의 대가인 일차적 동일성들의 해체가 그 자체로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과정이며, 하나의 구속으로 기능할 소속의 탈통합(désincorporation) 또는 절단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한다. 둘째, 헤겔은 보편주의적 공동체(국가)가 공화적이고 세속적일지라도 또한 하나의 공동체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한다. 그것은 근대에 하나의 민족적 또는 의사민족적공동체이고 그 주체들은 또한 공통의 소속을 상상하며, 상상적인 것 속에서 공유된 자신의 정치적 동일성의 실체, 즉 의제적 종족체(ethnicité fictive)을 구성한다.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탈동일화의 동일화이다. 이는 야만적인 것을 경계 밖으로, 타자의 방향으로 퇴출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매개를 구성하는데, 이는 경계 내에서의 평화와 문명의 향유와 상관적이다. 세계화가 새로운 단계를 넘어설 때 그것은 통합의 갈등의 확대재생산을 준비한다. 세계화된 공간 속에는 국가와 인륜(Sittlichkeit)의 등가물 같은 것은 없다. 셋째, 이는 헤겔이 부인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그 모순의 발전을 오판한 것이다. 헤겔은 국가가 오직 자신의 타자인 경제적 과정들(시민사회)에 본래적인 부정성을 통합함으로써만 자기 고유의 보편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과정들이 윤리적 보편과 정치적 제도들에 봉사하는 주변적 기능이 되기는커녕, 추상 노동의 역량 외의 모든 능력을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헤겔이 이해했을까? 한 쪽에서 그는 사적 소유의 자율화 운동이 빈곤의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생산한다고 분명히 설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시빌리테의 조건들 자체에 대해 파괴적인 계급들의 양극화를 주변적(marginal) 현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주변에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서는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조건들 속에서, 어떤 한계들 속에서 국가가 시빌리테의 구성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20세기의 역사에서, 다중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존엄을 인정하고 행정이나 공적 공간에 시빌리테의 규범들을 도입할 것을 강제하기 위해 연대했다. 다중은 스스로를 문명화하기 위해 국가와 국가의 제도들을 활용하는 한에서 이를 행했다. 이는 단순히 노예도덕이 아니며, 오히려 그 같은 주도권은 다중의 자율성이 충분치 않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시빌리테의 시각에서 ‘아래’(le bas)란, 다시 말해 다중이란 무엇인가? 들뢰즈의 시각에서 다중은 소수자들이거나 또는 발본적으로 탈동일화를 모든 동일화에 대해, 규범적인(표준적인) 집단적 인정에 대해 우선시할 소수자로 되기의 과정들이다. 여기서 들뢰즈가 취한 예들(흑인, 여성, 유대인)이 유지가능한 것인지, 그 무슨 예를 취한들 그것이 유지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논하지 말자. 다만 우리는 똑같은 변증화(dialectisation)가 대칭적으로 다수자라는 통념에는 적용되지 않아야만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성찰 전체를 반파시즘의 시각 속에서, 시빌리테의 정치라는 시각 속에 위치시킨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의 파시스트-되기가 불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성의 변환(transmutation)이 어떤 단계에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다수자적 다중들의 반파시즘과 소수자적 다중들의 반파시즘 사이에 일종의 실천이성의 이율배반이 지배한다고 시사할 수는 없는가? 각각의 관점은 상대방에 대한 논박을 통해 성장한다. 욕망의 미시정치 편에서 보면, 국가를 혁명적으로 전화시키고자 하는 대중운동들의 조직은 하나의 헤게모니 기획에, 전체주의적(totalitaire)이지는 않더라도 총체적인(totale) 이데올로기의 구성에, ‘증오의 이상화’로 귀착할 위험을 항상 지닌 표상에 매여 있다. 사회적 시민권의 거시정치의 편에서 보자면, 집단들의 모든 형성 및 변형의 탈영토화를 겨냥하는 욕망의 기계적 배치들(agencements machiniques de désir)은 사회적 연관을 자연화시키는 흐름들과 발본적 탈개인화의 흐름들, 교통·소비·통제의 거대기계의 이면에 불과한 이 흐름들과 본의 아니게, 그러나 우연히는 아니게 공명할 위험을 항상 갖는다. 탈통합은 양날의 무기이다. ‘아래로부터’ 시빌리테라는 정치적 가설은 따라서 저항들의 다수자-되기의 전략과 소수자-되기의 전략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다. 만일 이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정세(conjoncture)의 문제이거나 정치적 기술(art)의 문제이다. 아마 그것은 또한 단적으로 예술(art)의 문제일 것인데, 시빌리테의 수단들은 언표들, 기호들, 역할들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포리아는 불가능성(impasse)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식화하자면, 어떠한 정치의 개념도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것들은 다른 것들을 전제한다. 변혁 없이는 해방도 시빌리테도 없으며, 해방 없이는 시빌리테도 변혁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전제들로부터 하나의 체계, 하나의 불변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는 또 하나의 정치철학을, 즉 정치(la politique)의 문제들을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표상으로 전화시키는 도식만을 획득할 뿐이다. 위의 개념들이 정치와 관련되는 한에서 그것들은 개별적인 길 위에서만 절합될 수 있다(s'articuler). 이러한 길들은 진리처럼 필연적으로 독특하며 따라서 모델이 없다.  

 



1) “인민이라는 것이 인종이나 주민이 아닌 한에서 정치는 존재하고, 빈민들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주민의 일부가 아닌 한에서 정치는 존재하며, 프롤레타리아가 산업 노동자 집단이 아닌 등등에 한해서만 정치는 존재한다. 인민이 셈해지지 않은 것을 셈하는 특정한 형상이나 몫 없는 자들의 몫의 특정한 형상을 사회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보충으로서 기입하는 주체일 때 정치는 존재한다. 이러한 몫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바로 정치의 쟁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정치적 계쟁(litige)의 대상이다. [...] ‘부자들’과 ‘빈자들’ 사이의 싸움은 이러한 말들이 나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한 싸움이며, 그들이 공동체를 다른 식으로 셈하는 범주들을 설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한 싸움이다.” 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2008, 도서출판 길, pp. 246~247.


2) 이것이 해방의 정치와의 차이점이다. 발리바르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대표자로서 루소를 꼽고, 정치의 타율성의 대표자로 마르크스를 꼽는다. 양자는 전통과의 단절 및 인민의 통일성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유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의 봉기와 정치적 주체의 자율성에 관한 루소주의적 관념이 일종의 관념론의 쇄신이라면, 마르크스의 계급 정치는 정치의 타율성으로서 경제를 제시함으로써 유물론의 쇄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 :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정치의 타율성으로」, 󰡔스피노자와 정치󰡕,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5, pp. 230~235.


3)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철학󰡕 4장에서 마르크스의 경제주의와 진화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 이데올로기와 소련의 현실 사회주의로 실현되었는데, 이러한 종말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역사철학에 대해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진보가 아닌 과정(procès)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과정은 경제적 개념도 도덕적 개념도 아니다. 모순적 경향의 변증법은 단지 경향의 역전이나 반경향의 확립에 의해서 해결되거나 감축될 수 있는 것으로서, 헤겔과 반대로 모순의 화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논리적이고 정치적 개념이다. “마르크스가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수학적 은유를 사용하여 사태를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즉 역사의 진행 속에서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곡선의 일반적 형태로서 ‘적분’(intégrale)이라기보다는 ‘가속화’의 효과로서 미분, 따라서 각 계기마다 작용하고 전진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들의 관계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1995, p. 138.  


4)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늘 저항이 있다고, 특정한 행동에는 대항행동의 가능성이 항존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예속이 아닌 저항을 택하도록 하는 것, 선택의 선택의 문제 또는 자유의 자유화의 문제를 해명하지 않는다. 자유의 실천이 가능해지고 저항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자유화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점에서 푸코는 저항의 생성을 위한 저항, 저항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항이라는 무한퇴행에 들어서게 된다. 이 문제를 도외시한 채, 그는 다만 사회운동이나 자기의 배려라는 실존의 미학에 의존할 뿐이며, 이는 결국 정치적 비관주의로 흐를 수 있다.


5) 푸코에서 권력은 모든 관계 속에서 생산되는 것이고, 권력은 지배자를 통해 작용하는 이상으로 피지배자를 통해서도 작용한다. 계급, 국가, 법 등은 단지 권력을 통합한 것에 불과하며 힘들의 관계의 전략과 관계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억압적 권력 개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권력에 대한 니체적 영감에 관련된다. 힘이 힘과 더불어 갖는 관계는 하나의 힘이 다른 힘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그 힘이 다른 힘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힘들이 언제나 다른 힘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어떤 외부를 가리키게 된다. 여기서는 끊임없는 힘의 생성이 존재하며, 외부의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 독특성들의 방출이 된다. 들뢰즈는 이때 힘의 이러한 영향을 주는 힘과 영향을 받는 힘 모두와 혼동되지 않는 제3의 권력을 저항이라고 부른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의 주요 개념들에 대하여」,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 pp. 446~456. 그러나 이러한 니체에 대한 의존은 푸코적인 변혁의 정치가 마주치게 되는 주의주의와 숙명주의 사이의 진동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의견이다.  


6) 폭력의 감축을 통해 정치의 공간 자체를 개방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시빌리테의 정치는 반폭력의 정치의 문제설정과 관련된다. “아마도 이는 정치의 가능성을 부단히 삭제하는 주체적-객관적 폭력의 각각의 형태를 모든 곳에서 퇴치한다는 목표를 동시에 확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치적 실천도 더 이상 사고될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일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더 이상 단지 폭력의 지양(비폭력으로의 지양)으로도 그 규정적 조건들의 전화(대항폭력의 적용을 요구할 수 있는 것)로도 사고될 수 없다. 정치는 더 이상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 도구도 아니고, 더 이상 그 자체로 목적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는 그것이 그 자체 속에 담지하는 환원불가능한 이타성의 요소와의 대결이 불확실한 쟁점이다. 내가 여기서 어쨌든 가설적으로 ‘반폭력’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러한 또 다른 무한한 순환성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반폭력과 ‘인권의 정치’」,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1995,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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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9-21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이라 슬쩍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죠? 연휴 잘 보내시라고 인사 남깁니다. 맛있는 연휴 되시길...^^

바라 2010-09-21 2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야 연휴가 큰 의미는 없는데.. 그나저나 갑자기 쏟아진 폭우 때문에 걱정이네요ㅠ 추석인데..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827203554  

 

 

 

 

 

 

 

 

"우정 없는 관객…그들에게 보여줄 '영화'는 없다"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영화평론가 정성일


기사입력 2010-08-27 오후 10:03:30

영화평론집이라는 장르 혹은 형태는 독특한 독서를 요한다. 독자가 어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영화에 대해 쓴 평론 파트는 읽지 않고 그저 건너뛸지도 모른다. 혹은 거꾸로 그 평론을 읽기 위해서 그 영화를 기어이 찾아볼지도 모른다. 텍스트를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없는, 끊임없이 텍스트 바깥의 이미지가 간섭해 들어오고 독자로 하여금 독서 이외의 행위를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평론집의 특징일 것이다.

하나 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평론집 <필사의 탐독>(바다출판사 펴냄)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는 그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독서를 요한다. 1989년 창간한 영화 잡지 <로드쇼>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창간됐고 한국의 시네필 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잡지 <키노>의 편집장이자 혹은 1990년대 중반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하여 새로운 영화들을 청취자에게 소개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아는 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일의 글은 일반적인 영화 '감상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의 영화평론계에서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적으로 '본다'. 독자 역시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시선을 경유하여 그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독자가 거기서 멈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선을 경유하지 말고 결국엔 당신 자신의 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독려하고 선언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수동적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정성일을 따라잡기 위해서, 혹은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

영화 정보와 가벼운 감상평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더 확장된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두 권의 평론집을 통해 확장과 공감과 배움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렸던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를 인터뷰하며, 평론집에 얽힌 궁금증들을 질문했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프레시안(손문상)

- 영화평론가로서 오래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평론집을 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책 자체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다음 남는 건 영화지, 그 영화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둘러싼 글이라는 건, 그 글이 쓰인 특정 시간 동안 유효할 뿐이며 소설처럼 계속 읽힐 순 없다. 매우 미안한 얘기지만 그 시들이 남지, 시집 뒤의 김현의 평이 남진 않을 것 같다. 혹은 그 소설들이 남지, 그 소설에 관한 김윤식의 평이 남을 것 같진 않다.

말하자면 그건 비평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글은 그것이 발표된 지면의 운명과 함께 한다. 만일 지면이 오래 남는다면 그 글도 오래 남을 것이고 지면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그 글도 그 운명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태가 좀 변했다.

나는 인터넷이 생기기 이전부터 글을 쓴 사람인데,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예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글들이 되돌아오고 다시 떠돌기 시작하고 무한 자기 증식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글들이 다른 방식으로 소멸하거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나서서 책으로 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임권택 감독(<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 펴냄))과 김기덕 감독(<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행복한책읽기 펴냄))의 이름 뒤에 숨어서 머물고 싶었다. 첨언하자면, 김기덕 감독 인터뷰를 올해 초에 한 달 반 동안 새롭게 진행했다. 그 책은 아마 올 겨울에 나올 거다. 임권택 감독도 인터뷰를 새로 했다. 감독님의 신작 <달빛 길어 올리기>에 관한 인터뷰까지 추가한 다음, <달빛 길어 올리기> 개봉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다.


▲ <필사의 탐독>(정성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오랜 시간 생명력을 유지하는 훌륭한 평론집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랑소와 트뤼포가 앨프리드 히치콕을 인터뷰한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펴냄) 같은 책 말이다. 당신이 편집장으로 재직한 영화 잡지 <키노>에서도 그런 책들을 전략적으로 소개하고 칭송했는데, 왜 본인의 평론집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저한 건지 궁금하다.

그들만큼 훌륭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이야 워낙 눈이 밝은 사람들이니까. 예전에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1959년판을 구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별점을 매기더라.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년)와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년)의 별점을 보고 흠칫 놀랐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에게 그 해의 새로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고,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해선 '어린 평론가가 감독을 한답시고 되게 서툴게 할리우드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철없는 영화'라는 평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카이에 뒤 시네마>의 당시 평론가들, 나중에 우리가 눈여겨보게 되는 그 감독들인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프랑소와 트뤼포 등의 별점을 보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별 하나, <네 멋대로 해라>에 별 넷을 줬다. 이쯤 되면 이 사람들이 좀 무서워지는 거다. (웃음)

어떤 영화가 시간을 견디고 남을지를 당대에 딱 알아본다는 거, 정말 대단하다. 그런 안목은 훔치고 싶지. 내게 그런 안목이 있는가에 대해 끝없이 의심스럽고, 종종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예전에 그 영화를 잘못 봤구나 후회하기도 하고. 여담이지만, <씨네21>의 20자 평이 결정적으로 재미없는 건 대부분의 영화에 별 셋, 혹은 별 셋 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 이 영화와 저 영화의 차이가 뭔지를 알 수가 없다. 별 하나를 주는 경우는, 굳이 안 봐도 별 하나짜리인 줄 아는 영화뿐이다. (웃음) 그건 곤란하지 않은가. 물론 그의 안목과 그의 평, 그의 설명이 영화만큼 오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젠 교양이 되어버린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수잔 손탁, 앤드류 세리스 등.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문이 그만큼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글쎄…….


ⓒ프레시안(손문상)

- 서문에서 편집자와 3년 전 "첫 영화를 찍은 다음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고 정말 <카페 느와르>를 마치고 난 다음 두 권의 평론집을 출간하게 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바다출판사 편집자가 3년 전에 처음 전화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아직 낼 때가 안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다. 마침 <카페 느와르> 제작 준비 단계여서,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 책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정말 연락이 끊겼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카페 느와르>가 상영된 직후 전화가 왔다. "자, 이제 책을 내실 때가 왔습니다." (웃음) 그래서 진행하게 됐고, 대신 한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여기에 실릴 글은 내가 고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필사의 탐독>은 21세기에 발표된 한국 영화로 한정하자는 원칙 하에 에디터가 내 평론 중 일부를 선택했다.

아마 다른 에디터가 일했다면 <필사의 탐독>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됐을 수도 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도 에디터와 (일러스트를 그린) 올드독(정우열)이 함께 글을 선정했다. 그 권리를 그들에게 넘김으로써 그런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할까? 음…나는 책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책이라는 물적 존재에 대해서.

똑같은 글이라도 책에 실린 글은 다르다. 내가 사방에서 썼던 글들이 샘물처럼 흘러들어 고여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 한편으론 그 호수의 고요함과 깊이가 좋지만 또 한편으론 호수의 특징 중 하나가 '썩는다'는 점이다. 뭔가 생각이 멈춘다는 게 싫었다. 내가 글들을 직접 선택한다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내가 이 책에 붙잡힐 거란 생각도 들었다.

- <필사의 탐독>에 실린 평론의 순서는 영화의 개봉 순서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2006년 7월에 개봉한 <괴물> 다음에 6월의 월드컵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에디터한테 그렇게 부탁했다. 이 책이 연대기로 읽히길 원치 않는다고. <필사의 탐독>이 행여나 21세기 첫 10년간의 한국 영화사로 읽히길 원치 않았다. 그저 10년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이 언제나 순서대로 간직되는 건 아니지 않나. 개봉 순서보다는 책 전체를 쭉 읽어나갈 사람들의 독서의 리듬을 더 많이 생각했다.

- 그 글이 다루고 있는 영화 자체의 리듬이기도 할까?

둘 다다. 혹은 한 가지 더. 그 영화에 접근한 방식의 리듬도 고려했다. 어떤 것은 비평, 어떤 것은 인터뷰, 어떤 것은 현장 방문이다. 난 '현장 방문은 비평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평에는 서로 다른 태도가 있다. 현장 방문과 인터뷰 역시 하나의 비평적 태도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에서 시작한 비평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기자로 시작한 비평가인 내가 갖는 메소드의 스펙트럼이랄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훈련받은 비평가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뷰나 취재에는 현장에서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비평가 후배들이 영화를 본 다음 책상에서만 비평을 쓰는 게 굉장히 불만스럽다.

내가 존경하는 비평가들은, 예를 들어 세르주 다네를 보자.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다가 그 영화 속 바람이 궁금해졌다. 아무리 영화를 들여다봐도 바람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어. 그럼 방법은 하나다. 현장에 가는 거다. 아키라가 자기의 프레임에서 어떻게 바람을 창조하는가를 견학하러 가는 그런 태도, 또는 프랑소와 트뤼포가 에릭 로메와 함께 히치콕의 <이창> 현장을 방문하여 그 메소드를 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 오즈 야스지로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오즈의 촬영 기사와 긴 인터뷰를 하며 오즈의 창작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그 태도가, 지금의 비평가들에게는 명백히 결여돼 있다. 말하자면 호기심의 빈곤, 한편으로는 맹렬한 비평적 애티튜드의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건 책상에 앉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만일 후배 비평가들이 <필사의 탐독>이라는 책을 필요로 한다면, 특정 영화들에 대한 나의 견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메소드를 생각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책상에서만 쓰인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현장에서, 한편으로 감독과의 인터뷰로 영화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 <필사의 탐독>에서 제외된 영화, 제외된 평론에 대해서는 본인으로서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로서도 많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이를테면 2004년에 중요하게 다뤄졌던 한국 영화에 관한 글들은 여기 없다. <송환>, <빈 집>, <귀여워>, <마이 제너레이션> 같은 영화들 말이다.

혹은 <사랑니>도 빠졌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이 글이 왜 빠졌지 하는 생각은 분명 있다. 하지만 영화의 상영 시간이 결정된 것처럼 책의 쪽수도 결정되어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건 전집이 아니다. (웃음)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자.


ⓒ프레시안(손문상)
- 두 권의 표지는 각각 어떻게 선택한 건가. <필사의 탐독>은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 역의 김상경이 비 맞으며 손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선택했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알파빌>의 안나 카리나가 폴 엘뤼아르의 시집을 쥐고 있는 장면을 선택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부터 얘기해보자. <알파빌>에 끌렸던 이유는, 영화 속 도시 알파빌에서 '사랑'과 '왜?'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네필들에게 부족한 건 그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영화를 본 다음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지금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와선 "별 두 개야" 혹은 "별 넷이야"라고 말한다. 그 외에는 어떤 궁금증도 없다. 혹은 어떤 관객은 너무 근심어린 얼굴로 "큰일이야. 이 영화 백만이 안 될 거 같아"라고 한다. 아니, 근데 그걸 자기가 왜 걱정하냐고! (웃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표지를 보면, 안나 카리나가 이렇게 폴 엘뤼아르의 책을 들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건 두 가지 뜻이다. 첫째, 영화를 읽지 말고 보세요. '영화를 읽는다'라는 말은 아카데미가 만들어냈는데, 사실 영화를 '읽으면서부터' 영화에 대한 비평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영화에서 보지 못한 걸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젝이나 들뢰즈 같은 온갖 이론가들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둘째, 그 영화를 볼 땐 교양을 잊지 말아주세요, 교양의 바탕 위에서 생각해주세요. 만일 여러분들이 '교양은 필요 없고 영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영화는 과연 기뻐할 것인가. 교양 없이 얻어낸 그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필사의 탐독>의 경우, <생활의 발견>의 경수가 손금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지금의 영화를 정확하게 읽는다면 한국 영화의 과거를 볼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니까. 말하자면 과거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한국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대신 그걸 남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보자는 뜻이다.

난 그 장면에 굉장히 마음이 끌렸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 책의 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디터에게 부탁했다. 다른 순서는 뒤섞어도 괜찮지만 이것만은 지켜달라고. <필사의 탐독>에서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제일 처음 들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에 바치는 추모사가 끝나자마자 시작하는 원고가 <생활의 발견>이었으면 좋겠다고.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정성일 지음, 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필사의 탐독>의 첫머리는 고 정은임 아나운서에게 바치는, 지금은 가고 없는 영화 친구를 향한 애도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은 올드독이라는 새로운 영화친구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두 책의 첫머리가 그렇게 대구를 이룬다. 그건 결국 가고 없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나의 새로운 영화 친구가 되어달라'고 초대한다는 인상을 준다.

(한참 생각하다가) 지금 내가 믿는 정치학은 딱 하나다. 우정의 정치학. 예전의 시네필들은 영화의 친구를 애타게 찾았고 그들과 무리지어 다니고 주말엔 중국집에 모여 자장면을 먹으며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1인의 시대다. 개인 블로그, 개인 트위터의 시대다.

오로지 태그에 걸린 영화에 관한 단어들 때문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그 블로그 혹은 트위터를 찾아온다. 그들은 블로그나 트위터의 주인이 누군지 알 리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이 사람의 관심이 나와 어떤 지점에서 조응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다.

질문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시네필은 그 낯선 이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블로그들을 읽다보면 보면 종종 거칠게 얘기가 진행된다. 너 오지 마. 난 이렇게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이 보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좋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감동받는 순간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에 이르러 극장 어디선가 누군가 "아…" 하는 탄식을 지르는 걸 들을 때다. 그 순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거다. 이것이 영화를 보면서 갖는 나의 우정의 방식,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의 방식인 셈이다. <필사의 탐독>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두 권의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건, 다소 하드하고 따분한 표현이지만 우정의 정치학, 낯선 친구에 대한 환대를 생각해달라는 나의 호소다.


ⓒ프레시안(손문상)

- 평론들이 원래 실렸던 매체에서 붙인 글의 제목과, 이번에 평론집 내에서 새롭게 붙인 글의 제목 사이에 보이는 긴장감이랄까, 미묘한 차이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선 바로잡고, 어떤 면에선 보충하고, 또 어떤 면으로는 수수께끼 놀이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체에 내 글이 실릴 때 내가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첫째로 제목을 붙이는 건 편집자의 권리니까. 두 번째로, 내 글에 관한 독후감이 바로 그 제목이니까, 제목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궁금하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이상한 제목이 붙어서 당황하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근사한 제목을 붙여 과분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래도 매체에 글을 실릴 때는 제목이 시의성을 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제목이 생뚱맞게 들릴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 에디터가 제목을 새롭게 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각 잡고 단 건 아니고, 한편으론 유머처럼 혹은 그 글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메시지 같은 성격으로 제목들을 뽑았다.

- 기억에 의존해서 영화평을 써야 하는 것의 힘듦을 기술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평론을 쓸 당시 영화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이 책에 그대로 싣는다고도 했다. 내가 본 것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부분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장면이 명백히 롱테이크라고 생각했는데 쇼트가 쪼개진 거야. 혹은 그 장면이 명백히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가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나 있었던 거야. 예전에 임권택 감독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감독님, 보통 '영혼을 끌어내는 듯한 연기, 그 사람의 고통이 드러나는 듯한 얼굴'이라는 표현을 쓸 때, 어떻게 고통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님은 그런 연기를 시키고 끌어내지 않습니까? 그 비결이 뭡니까?"

감독은 0.5초 만에 대답했다.

"그거 다 사기여 사기. 그런 게 어딨어요."

핵심은 다음 말이다.

"그래서 연출의 핵심은 착시요."

잘못 기억된 어떤 순간이 오히려 연출의 의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당신과 대화하고 있다.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앉아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어느 순간 손을 입가에 올릴 때, 당신의 얼굴이 딱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연출자는 미디엄 쇼트로 계속 찍다가 배우에게 '어머'하면서 손을 입으로 올리게 한다. 쇼트는 그대로인데, 본 사람들은 나중에 컷이 쪼개졌다고 생각한다. 미디엄에서 클로즈업으로 들어갔다고.

그런 어펙티브한 쇼크를 줌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건드리는 거다. 그 연출이, 되게 중요하다. 그래서 기억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수학 문제를 풀거나 팩트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을 갖고 비평을 쓰는 사람이니까 그 기억의 오류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하다.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되,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벌어진 기억의 착시야말로 내가 그 영화랑 소통했던 순간이었던 거다. 사실은, 다음 번에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착시다. 클로즈업, 롱 쇼트, 투 쇼트 등 영화의 개념들을 죽 설명하는데, 정석적인 설명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오류를 범했던 순간들, 착시를 일으킨 순간들을 쓸 거다. 말하자면 퍼스널한 터미놀로지에 대한 해설이 될 거다. 영화의 매직은 오히려 거기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보아온 나의 결론 같은 것이다.

-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평을 바로 써야 할 때, 어느 정도까지 메모를 하면서 보는 쪽인가?

메모를 하지 않는다. 메모하면 영화가 안 보인다.

- 그렇다면 <생활의 발견> 평론 등에서 보이는 신과 쇼트의 수는 어떻게 기록하는 건가.

영화 보면서 손가락으로 센다. <생활의 발견>의 경우는 두 번을 보고 쓴 거지만, 대개의 경우는 직접 세어 본다. 칸영화제에서 하루에 6편씩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장면이 30컷 미만이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세기 시작한다. 대충 어떤 템포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그게 아마 지금의 젊은 세대와 나의 차이일 텐데….

내가 비디오를 처음 본건 20대 후반이었다. 그 전까지 영화는 오로지 극장에서 봐야만 했다. 한번 보면 끝이다. 이 영화를 내가 소장하기 위해선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세대 평론가들의 공통적인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에 접근성이 용이해질수록 기억의 능력이 퇴보하기 시작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공감했다.

지금 영화과 학생들을 보면 리와인드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막 보고난 영화를 쇼트 바이 쇼트(shot by shot)로 기억하지 못한다. 10분 전에 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다. 기억이라는 능력의 퇴화, 퇴보라기보다는 퇴화가 더 정확하겠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착시라는 매직을 얻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중요한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프레시안(손문상)

- <필사의 탐독>에서는 2006년 월드컵의 스펙터클에 관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는 김선일 참수 비디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영화평이 이어지다가 문득 현실의 이미지를 논하는 그 글들이 등장하는 순간 유독 도드라진다. 이 글들을 저널에 발표할 당시에는 그 무렵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당연한 발언이었겠지만, 몇 년 뒤 책으로 엮일 때 이 글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는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두 글 모두, 난 그 글이 활용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썼다. 말하자면 영화평론가가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 말이다. 평론가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격문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철수가 쓰고 영희가 쓴 거지 영화평론가가 쓴 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평론가라면 광화문 촛불 집회 당시, 집회에 참가한 경험을 쓰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것이 중계되는 방식에 대해 쓰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촛불 집회가 방송에서 올바르게 중계되고 있는가, KBS와 MBC가 이를 중계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그 쇼트의 운영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는가. 그것이 평론가가 정치적 임무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이 죽여요, 라고 쓰는 건 영화평론가의 글이 아니다. 대신 NHK와 한국 방송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할 때 스포츠의 윤리에 대한 평론가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그 메소드, 그 애티튜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고 자기의 방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 그렇다면 스펙터클에 관한 이 글들이, 월드컵 사진과 김선일 사진이 없이 책에 실린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책을 낼 때 원칙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면 사진을 삽입하지 말자는 거였다. 많은 이들이 들뢰즈의 <시네마 : 운동-이미지>, <시네마 : 시간-이미지>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책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은 건 스틸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맨 처음 불어판본을 받아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무슨 영화 책이 사진이 없어! (웃음)

나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생각한 셈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미지가 운동하고 있을 때만 영화이고, 이미지가 시간 안에 있을 때만 영화이다. 그걸 멈춰 세운 스틸 이미지는 이미 영화가 아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평론집에서도 장식으로서의 사진을 빼자고 했다.

- 평론집에서 당신이 되풀이 강조하는 바는 환상에 대한 거절이다. 관객이 영화에게 기대하는 환상, 영화에서 읽어내려는 환상, 혹은 감독이 제공하는 거짓된 위안으로서의 환상. 그 태도에 대해 어쩌면 찬반의 의견이 갈릴 것 같다.

나한테 영화는, 결국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로셀리니가 세상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 영화가 가져야 하는 윤리, 그 윤리가 영화의 형식이 되어가는 과정, 그럴 때에만 비로소 영화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동료들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서로 다른 견해의 다양성이 그만큼 영화에 대한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나라는 평론가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관계 맺는 방식, 혹은 영화로부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로셀리니적인 태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지지하고 있는 영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 <필사의 탐독>에서 개인적으로 놀랍게 읽은 글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 평론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말하자면 영화의 '얼룩'이라고 할 만한 어떤 디테일에서 시작한 의문으로부터 그 글은 시작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밀어붙여진다. 일반적인 영화평이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라든가 전체를 관통하는 무엇에 대해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언젠가부터 영화 기자나 비평가들이 갖고 있는 고질병은, 자신이 쓰는 그 글이 그 영화에 대한 최종본이 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그런 글이 있을 리가 없잖아. (웃음) 보편적 비평, 일반적 비평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비평은 특수한 비평이다. 난 영화에서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비평의 시작이라고 본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를 멈춰 세우는 대목들 말이다.

왜 이렇게 됐지? 이 대목에서 감독이 명백하게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영화 전편으로 확산되는 하나의 논리일 수도 있다. 내가 그에 대해 답을 낼 수 있다면 사실상 이 영화의 논리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못 만든 영화와 잘 만든 영화 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궁금한 영화와 내가 무관심한 영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내가 무관심하다면, 글을 쓸 때 쥐어짠다는 느낌이 있다. 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웃음) 쓰고 나서도 스스로 너무 못마땅해. 하지만 모두가 별로라던 <외출>을 봤을 때, 난 어떤 장면에서 멈춰 섰다. 이런 이상한 연출이 왜 나온 걸까?

혹은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의 마지막 장면, 수애가 남편의 뺨을 때린 다음 바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영화를 여기서 끝낼까? 아, 이 감독은 지금 나랑 다른 논리로 영화를 끌고 왔구나.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거꾸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점에 있어 정말 흥미롭고 궁금한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다. 그의 영화는, 매 장면이 다 그렇다. (웃음) 1시간 4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한 장면만 나를 멈추는 게 아니라 매 장면이 다 그렇다. 모든 장면을 그렇게 운용하는 홍상수의 영화적인 비전, 그의 영화의 리듬에 이르면 "아, 굉장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손문상)

- 사실 지금까지 왜 당신이 홍상수 감독에 관한 책을 내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에 관한 긴 발언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거꾸로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관한 인터뷰집을 낸 이유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대해 책을 쓰기까지 나를 이끈 열정의 근원은, 그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도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만 영화를 배웠다. 자기가 자기로부터 배운 사람들. 그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나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나아갔다.

한편으론 그 태도를 배우고 싶었고 또 한편으론 그 자수성가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과정의 기록이 지금 막 영화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격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 역시 한 번도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는 동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선생님이 가르쳐줬다면 한 시간 만에 끝났을 일이, 어떤 경우에는 1년, 어떤 경우에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오로지, 끊임없이 몸으로 배우는 거다. 또한, 그들이 만든 최종 결과물로서의 영화로부터 배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난 인간의 기록을 하고 싶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어떤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흥미롭다.

사람이 먹고 사는 건 언제나 치사한 일이고 자신의 배움을 배신하는 일이다. 타협하고, 교활해지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일상이 그의 예술적 영혼을 갉아먹고, 갉아 먹힌 다음 앙상한 나머지만을 끌어안고 그걸 부숴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제일 역겨운 건 비평가나 전기 작가들이 그 과정을 멋있게 치장하는 거다. 아름다운 표현이 정말 싫다. 난 스스로 경험한 자의 목소리로 직접 담고 싶었다.

반면 홍상수는 그들과 다르다. 홍상수는 결론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사실상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찍었을 때 이미 자기 영화를 완성했다. 그 다음부턴 끊임없는 변주만 해나가고 있다. 난 홍상수 감독의 말이 궁금하거나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지 않다. 그의 영화가 흥미롭고 그의 영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홍상수는 충분히 미루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를 인터뷰하고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태도에 온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 영화사에 위대하고 훌륭한 감독들이 많다. 그러나 홍상수는 어쩌면 한국영화사가 처음 맞이하는 예술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의 작업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벌고 싶다.


책 속으로

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당장 다시 보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서 다시 생각하고, 왜 그것만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왜 저것은 사라져버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가는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나에게 영화란 그것을 보는 시간과 그것을 보러 가는 시간, 그리고 보고 난 다음의 시간, 세 개의 시간 사이에서 기억의 사용에 대한 용법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저 자유롭게, 종종 선험적으로 상상하며, 때로는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세상을 쳐다본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13쪽)

나는 오픈 토크에서 앙겔로풀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시대는 영화가 이미지에 포위당한, 점점 더 야만적인 이미지들, 이를테면 게임이나 뮤직비디오처럼 사유하지 않는 이미지들에 의해 영화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화에서 에술을 향해서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영화의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앙겔로풀로스는 매우 길게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인상적인 말로 마무리를 했다.

"결국 영화는 하나의 기록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것을 포기한다면 더이성 우리 시대의 인간에 대한 시선의 기억은 말소되고 말 것입니다. 시선을 거둘때, 우리는 더이상 다른 사람을 보지 않겠다는 시대를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를 볼 때, 이미 너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입니다."

그리스에서 온 이 현자는 우리들에게 왜 여전히 영화가 필요한지 웅변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몇 번이고 말했다. "영웅적인 절망을 포기하지 마라." 그는 우리 시대에 거의 마지막 남아있는 거인이었다.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모두 볼 생각이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422~423쪽)

(내 생각에) 홍상수의 새로운 점은 바로 그 변덕, 말하자면 종합의 포기에 있다. 그는 균형을 잡으려 들지도 않고, 그 안에서 그 어느 것에도 명령의 자리를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변덕을 멋대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홍상수는 자기 영화의 원칙에 대해서 엄격하다. 심지어 이 원칙에 대한 엄격함은 그 자리에 대한 권리를 그 자신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로 그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 혹은 사건에 대해서조차 애매하게 볼 때가 있다. 이미 던져져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의 자포자기한 세상에 대해 홍상수의 유일하게 반성적인 태도는 그의 직관이다. 그러나 홍상수가 자신의 영화를 직관에 내맡길 때 그는 그 직관이 붙든 것을 분석이 설명하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흔든다. 그가 영화를 흔드는 방법은 언제나 시간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럼에도 시간은 되돌아오거나 혹은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에서 앞의 시간은 반복으로 보이고, 뒤의 시간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는 착시이다. 대부분 그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를 말하면서 그것이 착시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안에서 홍상수는 우리의 기억과 경쟁한다. (<필사의 탐독>, 234쪽)

정성일 : 교실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아마 내 생각에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가장 공들인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이라는 점에서도. 사실 이 신 전체를 신기하게 찍었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백한상을 죽이러 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카메라가 다 움직이는 쇼트로 찍었어요. 그렇다고 롱테이크로 찍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장면은 장면대로 나누면서, 핸드헬드로 마치 '대사의 액션 장면'처럼 영화를 연출하고 있거든요. 나는 이 회의 장면을 무척 이상하게 봤어요.

박찬욱 : 여기가 가장 활력있는 장면이죠. 액션 장면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금자 씨가 총을 들고 뛰어가는 장면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가득하고 활력있는 장면이라고 봤어요. 그들이 거기서 논쟁을 벌이고 의견을 나누고 하는 것이 찍기에 따라서는 그냥 맥 빠지고 무기력한 군상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이건 너무 절박한 일이고, 아이들이 죽은 뒤 자신의 인생을 결산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의견도 개진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럴것 같았어요. 그럴 때 이것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뭐랄까 너무 좀 편하게 간달까요, 감독으로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필사의 탐독>, 317쪽)


 



/김용언 씨네21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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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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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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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0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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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2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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